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무역 전쟁의 격랑 속에서트랜스퍼시픽 실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미국의 언론인이 6년간 중국과 미국을 오가며 직접 취재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오랫동안 자유시장, 민주정치 등의 가치를 내세우며 세계의 지배권을 행사해온 미국과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국내적 혼란을 딛고 일어나 글로벌 리더십에 도전장을 던진 중국. 전 세계적으로 무역 전쟁의 파고가 점차 높아지는 오늘날, 두 초강대국의 관계 지형 변화와 주도권 다툼은 결코 양국에 한정된 문제로만 머물지 않는다. 동북아뿐만 아니라 세계의 평화, 번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이러한 시점에서 이 책은 미·중 관계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면서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위한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미국은 동등한 입장에서 중국과 경쟁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실리콘밸리의 기술기업이 도덕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중국 기업과 협력할 수 있을까? 중국인 투자자는 미국인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가, 아니면 미국의 지적재산만 빼앗아가는가? 중국인의 부동산 투자로 인해 저렴한 주택이 더 많이 지어지는가, 아니면 부동산 가격만 높아지는가? 중국 학생은 미?중 관계의 우호적 바탕을 구축하는 일을 돕는가, 아니면 양국 간의 틈을 더욱 벌리는 역할을 하는가?금융위기 이후 최근 10년간 캘리포니아에서는 민간교류의 거대하고 생생한 실험이 다양한 영역에서 진행되어왔다. 일명 ‘트랜스퍼시픽 실험(Transpacific Experiment)’이다. 이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 민간 차원의 외교적 교류를 일컫는 말로, 골든스테이트(Golden State)라고 불리는 캘리포니아 주와 세계의 중심(中國)이라고 자부하는 국가 사이에 형성되는 학생, 기업가, 투자자, 이민자, 그리고 갖가지 아이디어의 역동적인 생태계를 의미한다. 중국 학생이 미국에 있는 대학에서 학문의 지평을 넓히고,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창업자가 중국 투자자를 찾고, 캘리포니아의 도시 시장이 중국으로부터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구애의 손길을 보내고, 중국의 성장(省長)이 캘리포니아의 탄소시장을 연구하는 일 등은 모두 이 실험의 생생한 모습이다.트랜스퍼시픽 실험의 결과는 이미 미국과 중국에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으며, 두 나라를 둘러싼 국제체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양국 간의 상호작용으로 수많은 기회, 즉 투자, 일자리, 대학 재정 충족, 문화적 결합 등이 새롭게 생겨났지만, 그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국가 간의 외교는 일반인의 일상 속으로 파고드는 순간 다양하게 변화한다. 민간 차원의 교류가 확대되면서 낯선 ‘타인’이 이웃, 학우, 심지어 친구가 되기도 하지만 접촉이 늘어날수록 서로의 차이 때문에 갈등이 발생하고, 국가 간의 지정학적 문제가 개인적 사안으로 비화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것은 곧 양국 간의 통합 및 시너지를 확대하고자 하는 욕구에 따른 흡인력과,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이용 혹은 조종당한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반발력이다.세계의 초강대국이 된 미국과 중국이 처한 입장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여러 산업의 본거지로서 세계를 선도해온 미국의 위상이 점차 퇴색해가는 상황에서 중국은 짧은 기간에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룬 신흥강국으로서 글로벌 리더십을 구축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해나가야 하는 때에 이르렀다. 특히 중국은 레닌주의 정치체제와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 그리고 언론과 문화에 대한 철저한 통제가 배합된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가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띨 수밖에 없는 것이다.이렇게 지정학적 역할과 국제적 위상 변화는 양국의 국민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트랜스퍼시픽 실험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준다.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자신들의 동네에 새로 이주한 부유한 중국인을 불안감이 혼재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중국인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때로 미국과 미국 기업을 존경의 대상이자 예술, 기업, 교육 등에 대한 영감의 원천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미국이 돌이킬 수 없이 몰락하는 늙은 국가이며, 오직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위상을 끌어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나라라고 생각한다.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중국 정부에 백기 투항하는 실리콘밸리의 대기업과 할리우드의 불투명한 미래실리콘밸리의 대기업은 이제 중국 땅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스냅챗, 인스타그램 등 세계적으로 인터넷을 주도하는 미국 기업은 ‘만리방화벽’에 철저히 가로막혔다. 10억 명의 새로운 고객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 기업은 중국공산당의 엄격한 검열 정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국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페이스북은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들이 정치적인 내용이 담긴 콘텐츠를 외국으로 전송하지 못하게 차단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구글도 완벽한 검열 기능이 포함된 검색 프로그램을 출시해서 또다시 중국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인류의 기술 유토피아를 꿈꾸던 사람들은 중국인들의 자유로운 인터넷 사용을 통해 중국의 민주화가 앞당겨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실리콘밸리가 중국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고 묻지 않고 ‘중국이 실리콘밸리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그로 인해 세계의 인터넷 지형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라고 질문해야 한다.중국의 경쟁적 생태계는 미국인의 사고방식을 뒤흔들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과거 반세기 동안 기술과 문화 영역에서 세계를 지배했다. 그러면서 개인적 자유와 기술혁신 및 문화적 생산성은 절대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굳게 믿었다. 정치적 자유가 없는 나라는 혁신이 불가능하고, 표현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국민은 성공적인 문화 산업을 창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중국의 기술 발전, 그리고 영화산업의 도약에 따라 그러한 신념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중국은 개인적 자유를 보장하기보다 산업의 기반을 차곡차곡 구축하는 데 힘을 모은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고용하고, 자본을 모으고, 영화 세트를 만들고, 스크린을 확보하고, 업계 종사자의 소득을 보장하면 혁신과 문화 발전은 자연히 따라올 거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 성과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중국과 미국의 관계 또한 극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미국의 문화적 지배력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위대한 요새는 할리우드다. 지난 수십 년간 할리우드 영화는 중국의 영화관을 점령하고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 자체의 영화산업 발전, 정부의 통제, 그리고 중국산 블록버스터 등으로 인해 중국 내에서 할리우드 영화의 영향력은 점점 약화되어간다. 실리콘밸리의 기업가들처럼, 할리우드의 영화제작자들 역시 중국 정부의 검열을 피할 수 있는 내용으로 영화의 스토리를 재구성함으로써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에 접근하려 한다. 하지만 중국의 영화산업이 자체적으로 발달하면서 이제 미국의 영화사는 중국 제작자가 할리우드의 기술과 지역정서를 결합해서 만들어낸 영화들, 말하자면 ?람보?나 ?캡틴 아메리카?의 중국판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주의적 블록버스터와 경쟁해야 한다.실리콘밸리의 기술 산업 발전 덕분에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캘리포니아의 주택시장은 이미 가격 폭등을 겪었다. 그리고 지난 5년 동안 부유한 중국인들이 집을 사들이며 주택 가격은 더욱 크게 뛰었다. 자국 내부의 정치적?경제적 혼란기를 경험한 중국의 부자들에게 해외 부동산은 재무적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획기적인 대안이었다. 그들은 미국의 주택이라는 ‘새로운 스위스 은행 계좌’에 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부유한 중국인들은 부동산 가격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관에도 변화를 가져왔다.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자신들이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자를 기꺼이 포용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새롭게 이주한 사람들이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온 주민들보다 훨씬 더 부유하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의 포용심은 복잡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제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스스로 이렇게 묻고 있다. 우리는 모든 이민자를 환영할 것인가, 아니면 ‘가난하고, 지치고, 위축된’ 사람들만 받아들일 것인가?새로운 중국인 이민자가 미국에 자리잡으면서, 중국인이 미국에서 오랫동안 지켜온 정치적 유대 관계도 흔들리는 추세다. 과거 미국에 도착한 중국인 이민자는 대부분 노동자 계층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민주당을 지지하는 세력이 되었다. 그들은 흑인이나 라틴 계열의 운동가와 범민족 연합을 형성해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고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하지만 요즘 중국을 떠나 새롭게 미국에 들어오는 이민자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그들은 차이나타운의 최저임금 일자리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부유한 교외 지역에 거주하면서 높은 급여의 기술직이나 투자 업무에 종사한다. 정부의 소수집단 우대 정책에도 오히려 강력한 반기를 드는 이 새로운 세대의 중국계 운동가들은 최근에 도널드 트럼프라는 뜻밖의 인물을 중심으로 연대를 형성하고 있다.뿐만 아니라 도시의 시의회로 진출해 보수 성향의 중국계 미국인을 위한 정치적 전위부대 역할을 수행한다. 미·중 관계는 지정학적 차원에서 미국인의 일상적 삶의 영역으로 파고 들어왔다. 이제 양국 관계가 중점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은 백악관이 아니라 일반인의 가정집이며,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아니라 학부모 모임이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두 나라가 어떻게 만나고, 협력하고, 경쟁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워싱턴 DC나 베이징에서 벗어나볼 필요가 있다.불편한 협력, 피할 수 없는 경쟁이익이 먼저인가, 도덕이나 가치를 지향할 것인가이 책은 중국과 캘리포니아를 오가며 트랜스퍼시픽 실험 현장의 주역인 유학생, 기업가, 투자자, 이민자 등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먼저 2012년 마이애미 대학교를 졸업한 중국인 팀 린이 한때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다가 결국 중국으로 돌아와 칼리지 데일리라는 미디어 기업을 설립한 사연을 소개한다.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구글 본사에서 근무한 뒤 베이징에 앱, 운영체제, 스마트워치 등을 포함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회사를 설립한 리 지페이와 소수집단 우대 정책에 반대하고 트럼프를 지지하는 캠페인에 앞장선 중국계 미국인 알렉스 첸도 만난다. 이들을 인터뷰하면서 미국 땅에 차이나타운을 건설한 초기의 중국인들과 최근에 미국으로 들어온 부유한 중국인들의 성향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등을 비교 분석한다.폭력과 마약이 활개치는 자신의 도시를 녹색 기술에 특화된 중국인 투자의 오아시스로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쏟아붓는 랭커스터의 괴짜 시장 렉스 패리스의 이야기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그는 중국이라는 나라에 자신의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는데 중국과의 민간교류를 통해 랭커스터에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탄소 감축 기술을 도입해 랭커스터를 지구온난화의 해결책을 개발하는 실험실로 만들고 싶어 했다. 결국 그는 워런 버핏이 투자한 중국의 전기자동차 기업 비야디(BYD)의 공장을 유치했으며, 2013년부터 가동되기 시작한 이 공장은 1990년대 이후 제조업이 빠져나간 랭커스터에 수백 개의 새로운 일자리와 소득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 노동력 착취 혐의, 싸구려 제품 생산 의혹, 공산당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는 비난 등에 휩싸인데다 첫 번째 고객 주문까지 결국 무산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이야기는 미국과 중국 양측에 많은 교훈을 준 모범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이외에도 중국의 정치적 기류를 타고 인정사정없는 비즈니스 본능을 휘둘러 막대한 부를 쌓은 뒤 세계에서 가장 큰 영화관 체인을 인수하면서 할리우드의 마법을 사들이려 한 완다 그룹의 왕젠린, 개발 사업이 잘 진행되도록 여러 가지 도움을 제공하고 개발에 따른 혜택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게 만드는 일을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헌터스 포인트 조선소 주민자문위원회의 베로니카 허니컷 박사, 중국에서 태어나 정치적 혼란기를 겪은 뒤 미국으로 건너와 사회복지사로 활동하다가 최초의 중국계 미국인 시장이 된 릴리 리 천 등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트랜스퍼시픽 실험에서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이 책의 저자인 매트 시한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보통 사람들에 의해 트랜스퍼시픽 실험이 계속 만들어지고, 다듬어지고, 재창조되는 중이며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형태의 교류가 잠재적인 씨앗이 되어 땅에 뿌려지고 있지만, 그 씨앗이 싹을 틔워 맺은 결실을 확인하려면 몇 년, 또는 몇십 년을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