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명승에는 어떤 이야기가 깃들어 있을까?동쪽에서 서쪽으로, 고대에서 현대로 종횡무진 생생한 역사와 문화 속으로중국 소설 전공자들이 다시 뭉쳤다. 이번 주제는 ‘중국의 명승’으로 정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단순한 여행안내서나 정보 위주의, 어찌 보면 너무나 흔한 콘셉트에서 벗어나 차별화된 시각으로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중국의 도시와 명소, 유적지 등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이후 집필진과 지역을 확정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글쓰기 작업에 돌입했다.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여행하는 즐거움 속에서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맛보여줄 수 있는 길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듯 이 책은 문장을 다듬고, 자료를 선별하고, 함께 공유하는 2년에 가까운 과정을 거친 뒤에야 출간되었다.이 책의 저자는 1989년 창설되어 중국 서사문학과 관련 분야의 학문을 연구하면서 학술지 발간, 대중 강연, 저술 활동 등으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한국중국소설학회의 연구자 21명이다. 국내의 대학 강단에서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저자들은 이 책에서 다양한 시각과 문체로 중국의 어제와 오늘, 그 장대한 역사와 문화를 간결하면서도 명료하게 보여준다. 대륙의 동북쪽 끝인 하얼빈에서 시작하는 이 책의 여정은 서북쪽의 둔황에서 끝이 난다. 지금의 중국을 지탱하는 동남 연안의 여러 도시를 거친 후, 내륙으로 방향을 틀어 스치듯 중원을 지나 서북쪽 길로 빠져나가면서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문화와 삶의 모습이 반영된 그 지역 특유의 면면을 포착하여 담아낸 것이다.인간의 욕망과 삶, 그리고 자연이 어우러진 그곳을 찾아가다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간절한 염원이 담긴 발자취를 따라중국 대륙은 거대한 교류와 소통의 장이었다. 철도가 놓이면서 작은 어촌에서 국제도시로 부상한 하얼빈과 맥주로 유명한 칭다오에는 러시아와 유럽풍의 건축물이 도시의 주요 경관으로 자리잡았고 바다를 통해 서양의 문물과 사상이 들어오면서 아시아에서 가장 번영하고 국제화한 대도시 상하이, 관광과 쇼핑의 천국 홍콩, 포르투갈의 조차지가 되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한 마카오, 실크로드의 관문 둔황 등은 국제적인 교류를 통해 성장했는데 이들 도시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겪은 풍파가 무척이나 흥미롭다. 또한 삼궤구고두례를 연습하던 자금성 습례정, 대운하의 기착지인 양저우의 저잣거리 동관가, 과거 시험의 희비가 교차했던 난징 강남공원,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품은 항저우 뇌봉탑, 변방에서 이주해온 객가족의 집이자 요새인 푸젠 토루 등은 다양한 사람들이 소통하는 공간이었다.이 외에도 비혼을 선언한 자소녀들, 당나라 최고의 시인 이백이 붓을 내던진 황학루, 정통 무협의 상징이 된 소림사, 천하 제패의 야망이 새겨진 용문석굴, 영원을 꿈꾸며 지어진 진시황릉, 피난민의 삶을 상징했던 산성보도, 느림과 소박함이 느껴지는 두보초당, 티베트 불교의 본산지가 된 조캉사원 등의 이야기에서는 궁핍과 전쟁으로 인해 고단한 삶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헛되고 가없는 욕망의 흔적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모던 보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도시부터 비열한 착취의 현장까지“이곳에 들어서면, 웬일인지 올 곳에 왔다는 느낌이 난단 말야.”이 책에는 우리 역사와 연관된 이야기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중 하나는 조선시대에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며 치른, 흔히 ‘치욕의 의식’으로 알려져 있는 삼궤구고두례 이야기다. 그런데 사실 이 의식은 한족의 의례에서 유래한 정중한 인사법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매년 정기적으로 청나라를 방문한 조선 사신들은 고두례를 치욕적으로 받아들였고, 황제를 알현하기 전에 자금성 습례정에서 행해진 예행연습에 불성실한 태도로 임했다고 한다. 당시 청나라는 동아시아의 중심이었는데, 이 습례정은 각국의 사신들이 함께했던 교류의 현장이었다. 그에 관한 기록과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가 당시의 세계정세에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알 수 있다.이 책의 출발점인 ‘하얼빈’을 떠올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중근 의사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1930년대 조선인에게 하얼빈과 만주는 학생들과 문인 및 예술가들에게 인기 관광지였다. 특히 ?메밀꽃 필 무렵?으로 알려져 있는 동시대 작가 이효석에게 하얼빈은 각별한 도시였다. 그는 러시아인들의 생활에 비상한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1939년 여름과 1940년 초에 하얼빈을 두 차례 방문했다. 구라파를 동경한 ‘모던 보이’에게 활력이 넘치는 하얼빈 거리는 매력적이었지만, 한편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목격했을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하얼빈은 어떤 도시로 그려지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대만의 지룽과 지우펀은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비극의 현장이었다. 이곳에서 독립운동가 신채호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다롄으로 압송되었다. 또한 많은 한인이 돈을 벌기 위해 천직에 종사했고 여성들은 반감금 상태에서 일본인과 소수의 대만인을 고객으로 맞이했다. 그 뒤 일본이 패망하면서 대만에 살던 수천 명의 한인은 지룽항에 집결하여 귀국했는데, 당시 그들이 겪었던 고통과 아픔을 오늘날의 우리는 감히 짐작하기조차 힘들다.16세기에 포르투갈인 최초의 정착지였던 마카오에서는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왼쪽 가슴에 성경을 댄 채 오른손을 펴서 축복하는 한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곳의 성 안토니오 성당에는 김대건 신부의 목상과 유해 일부가 모셔져 있으며, 매주 한국어 미사도 올려지고 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질병으로 인한 고난과 긴 타향살이를 겪고 스물다섯 살에 순교한 김대건 신부, 그에 관련된 자료를 보면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끼게 될 것이다.아름다운 풍광과 감동 어린 이야기가 어우러진 이 책은 ‘그곳’으로 떠나기 전에, ‘그곳’을 마주하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길잡이다. 특히 누군가와 함께라면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어떤 흔적이 남아 있는지, 그리고 어떤 이야기가 전해져오는지 한 번쯤 되새겨보라. 그러면 더욱더 뜻깊고 즐거운 명승 여행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