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한복판에서 탈출구를 찾는 지금, 우리를 살아 있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코로나19 이외에도 인류는 여러 번 위험에 처했고, 그 위기는 감염병의 영역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현재 필수재가 된 우유와 의약품, 자동차가 세상에 막 등장했을 때는 기대수명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이었다는 걸 돌이켜보면, 인류는 매번 험난한 길을 헤쳐나와 지금까지 살아남았음을 알 수 있다. 천재 이야기꾼으로 회자되는 저술가 스티븐 존슨은 코로나19 팬데믹 한복판에서 현재 인류의 수명,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감염병과 치명률, 백신과 데이터학의 역할, 전염병보다 인간을 더 많이 죽게 만드는 요인 등에 대해 냉철하게 분석했다. 또한 인류 생존의 역사 뒤에 숨은 이야기들에 주목하여 그 속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법칙을 찾았다. 200년 전 천연두 백신이 나왔을 때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수십 년 동안 사람들은 콜레라가 공기를 통해 전파된다고 믿었다?반복되는 위기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결책을 찾았을까?역사 속에서 찾은 인류 생존의 법칙, ‘네트워크의 힘’에 주목하라천연두는 대피라미드 시대부터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간 무서운 감염병이었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취약해서, 오랫동안 수많은 부모가 아이들을 먼저 보내야 했다. 그런데도 1796년 천연두 백신이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백신 접종에 반대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반대하는 지금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논리로, ‘건강한 사람의 몸을 공격할 권리가 없다, 백신 접종 의무화는 국가에 의한 개인의 자유 침해다’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결국 백신 접종은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졌고, 천연두는 지구상에서 사라진 질병으로 1980년에 공식 선언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천연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떻게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을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미국의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 백신 접종을 지지하며 백신법 제정에 힘썼고,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자신의 작품과 기고문을 통해 힘을 보태면서 서서히 분위기가 바뀌어갔기 때문이다. 천연두 백신을 만든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만이 영웅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를 지지하고 퍼뜨리며 반대 세력을 설득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마마(??)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콜레라와의 싸움에서도 동일한 양상을 엿볼 수 있다. 세계 곳곳에서 여러 차례 발병하며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든 이 감염병은 상당 기간 동안 ‘지저분한 공기에 의해 감염된다’고 오해받았다[독기설(毒氣說)]. 콜레라균을 현미경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단이 틀리다 보니 대책도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영국 의사 존 스노는 콜레라가 공기에 의해 감염되는 게 아니라 오염된 물에 의해 유발되는 질병[수인설(水因設)]이라고 주장했다. 1854년 런던 브로드가에서 콜레라가 창궐할 때, 그는 사망자의 거주 지역을 하나하나 지도에 표시해 발병 현황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 지도를 통해 사망자들이 동일한 수원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마침내 펌프 손잡이를 제거하는 조치를 이끌어내 전염을 막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존 스노 역시 ‘독기설’이라는 고정관념과 싸워야 했고,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그 지역에서 오래 살았던 헨리 화이트헤드라는 목사가 최초의 감염자를 찾아내고, 타 지역으로 이사간 뒤 사망한 사람까지 추적함으로써 스노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또한 그 시대에 활발히 활동하던 통계학자 윌리엄 파가 스노의 주장을 받아들여 다른 지역에서 발발한 콜레라를 잡으면서, 수인설이 확실하게 자리잡고 비로소 콜레라도 통제 가능한 질병이 되었다. 에드워드 제너, 존 스노가 혁신을 발견한 사람이라면,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찰스 디킨스, 헨리 화이트헤드, 윌리엄 파는 혁신을 전파한 사람이다. 어떤 혁신도 아이디어 하나로만 살아남지 못한다. 이를 지지하고 퍼뜨리고 반대 세력을 설득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있어야만 살아남는다. 이러한 법칙은 다른 위기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하였다. 살균되지 않은 우유와 수돗물, 규제 없이 만들어지던 의약품, 안전 장치 하나 없이 판매되던 자동차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을 때 이를 멈추게 한 것은 의사나 화학자뿐만 아니라 통계학자, 목사, 언론인, 백화점 사장, 포목상, 비행기 조종사, 법률가 등 다양한 사람들의 네트워크였다. 이 책은 우리를 지금까지 살아 있게 해준 혁신들과 그 혁신을 성공시킨 네트워크의 역사를 보여준다.우리는 또 한 번 살아남을 것이다인류를 위협한 위기에 대처하며 얻은 ‘보이지 않는 방패들’우리는 긴 투쟁의 역사 속에서 생존을 위한 ‘방패’를 얻었다. 천연두를 통해 백신을, 콜레라를 통해 데이터학과 전염병학을, 우유를 통해 저온살균법을, 신약과 자동차를 통해 약물 규제, 안전 규제를 발전시켰고, 그 결과가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이 방패들에 힘입어 기대수명을 80세 넘게 연장시켰고, 코로나19 팬데믹은 과거 팬데믹보다 치명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스페인독감은 전 세계적으로 무려 1억 명, 당시 인구(18억 명)의 5% 이상을 죽였다. 한편 지금은 그때보다 4배나 많은 인구(78억 명)가 살고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는 1%에도 못 미친다). 결국 현재의 위기도 극복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그러했듯, 발전한 과학 기술과 선구자들의 설득, 정치적 행동, 정부 차원에서의 규제, 데이터 연구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에 의해 종식될 것이다. 다만 우리가 이러한 역사적 궤도를 잊고 있기에 이 위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빌 게이츠가 대규모 백신 접종을 통해 마이크로칩을 우리 몸에 심고 있다’는 음모론이 난무하고, 마스크를 쓰는 단순한 행위에조차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며 협조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역사를 다시 확인하고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협조하는 한편,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들의 데이터가 보여주는 국가?지역?인종 간 불평등과 의료 사각지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다시 돌아올 감염병 유행에 대한 경계도 늦춰선 안 된다. 최근에 유행하는 감염병은 모두 동물로부터 발생하고 있는 만큼 동물 전염병 감시 시스템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동물 감시 체계 ‘프레딕트’가 이미 마련되어 있으나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단시킨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