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리우,왕콴유,홍지운,남유하,남세오 등저/박산호,이홍이 공역/람한 그림
조예은,류연웅,홍지운,이경희,최영희 공저
표국청,황모과,안영선,하승민,박태훈 공저
이은용,하유지,설재인,김혜진,남세오 공저
스미노 요루,가토 시게아키,아가와 센리,와타나베 유,고지마 요타로,오쿠다 아키코 저/김현화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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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주인공인 여자 작가가 당연히 책방 주인인 유부남을 이성의 감정으로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불문율처럼 회자되는 남녀사이에 친구란 없다는 강력한 프레임이 작용한 것인지, 그저 그런 불륜 이야기인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주인공은 레즈비언이었고, 자신과 책방 주인과의 관계를 의심하는 책방 주인의 아내에게 그녀는 끝내 ‘나는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이니, 오해마세요 ’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사람들의 편견어린 시선과 차별이 두려워서였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우연히 작가들의 모임에서 신인 작가가 된 책방주인의 딸을 만나면서 오랜 세월 동안 용기내어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편지로 적어 내려간다. 내가 나일수 없게 만드는 시선과 언행들, 사람들의 판단이나 시선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할수 있겠지만 단 한순간이라도 혐오적인 시선과 차별 대우를 받고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를 바라볼 때, 나도 모르게 편견을 가지고 제 2의 시선으로 대하지 않았나 반성하고 돌이켜보게 되었다.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나, 상상만으로 가능할 것 같은 이야기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누군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꿈이나 환상이나 전생 같은, 기이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차원이 다른 세상이 존재할 수 있고, 이승이 아닌 저승도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1의 세상일까? 아니면 2의 세상일까? 그게 어떤 세상이든 내가 속한 세상에서 잔잔히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좋아하는 작가들이 ‘2’라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썼다.
‘모노레일 찾기’(고요한)은 12월 31일 인천의 어느 횟집에서 전 여자친구 주변을 맴돌던 남자의 이야기를 모노레일로 표현한다. ‘시험의 미래’(권여름)는 파이널 점독관으로 선정된 구은열의 이야기다. 호텔에서 자신의 존재조차 비밀에 부쳐졌는데 자신을 통제하는 또 다른 제2의 점독관이 있었다는 것. ‘코노스툴’(김혜나)은 그 사람에게 쉼이 되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이반’ 작가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2차 세계의 최애’(류시은)은 아이돌 쇼케이스에서 서로의 이름은 알지 못한 채 벌어지는 두 사람의 이야기다. 사람과 사람의 세계가 아닌 온라인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덕질의 세계. ‘2의 감옥’(박생강)은 퍼펙트 도플갱어를 만나 2의 감옥으로 사라진 2% 부족한 남자와 그 남자친구를 찾는 여자친구의 이야기다. ‘다음이 있다면’(서유미)는 어렵게 입사한 회사에서 구조조정 당하고 집에만 있던 주인공이 사촌과 배우의 죽음을 통해 조금 성장하는 이야기다. ‘이야기 둘’(조수경)은 두 개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에게 찾아온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다.
복잡하고 어렵게 엉켜있는 것 같은 세상이지만 실제로는 간단하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상처가 있다면 그에 맞는 위로가 있다. 바쁘고 정신없는 삶 안에도 쉼이 있듯이 세상은 동전의 양면처럼 깔끔하게 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7편의 단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건 서유미 작가의 ‘다음이 있다면’이다. 살면서 ‘다음 기회에’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여태까지는 산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았기에 ‘다음 기회’가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점점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 ‘다음이 있다면, 혹은 다음 기회’라는 말에 위안을 얻는다.
회사 구조조정으로 집에만 있던 나는 3개월 단기 알바를 시작한다. 그리고 사촌이 찾아와 자신이 다쳤던 순간을 이야기하며, 또 다른 인생이 펼쳐진 것처럼 열심히 산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사촌은 자신을 만나고 한 달 뒤 세상을 떠났다. 또한, 자신이 일하고 있는 카페에 배우가 와서 커피를 마시고 가는데 ‘나’는 그녀에게 반가운 알은 채를 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반갑게 인사하는 날이 오겠지 싶었는데 배우는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삶이 있다는 건 반가운 것일까?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 어느 쪽이 후회의 마음을 갖게 될까
내가 사는 세상이 1의 세계든 2의 세계든 그냥 산다. 최선을 다해 살지 말고 70%의 에너지를 갖고 산다. 아직은 다음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오늘도 그렇게 산다. 산다는 건 그런 것 같다. 아무도 알 수 없고,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냥 사는 거라고. 오늘도 나는 무수한 2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