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작가이자 정리 수납 전문가 소형의
몸도 마음도 기쁘게 쉴 수 있는 공간 만들기
독립의 시점은 저마다 다르지만, 한 가지는 비슷하다. 바로 ‘막막함’. 부모님의 그늘 아래에 있을 땐 몰랐던 집안일의 실체가 훤히 드러나는 시점이 바로 독립할 때 아닌가. ‘마이 홈’의 기쁨은 잠시뿐, 청소는 할 때마다 귀찮다. 언젠가 쓸 거라며 사다 놓은 식재료는 유물이 되어 간다. 이 모든 상황을 뒤로한 채 미어터질 듯한 옷장에서 겉옷을 겨우 꺼내 걸치며 ‘역시 집에서는 집중이 안 돼’ 하고는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 밖으로 나선 적, 있지 않은가?
뜨인돌출판사에서 출간한 소형 작가의 그림 에세이 『나에게 맞는 삶을 가꿉니다』는 바로 그런 경험이 있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어떻게 해야 나의 공간을 쉬기에도 편하고 일하기에도 좋은 곳으로 가꿀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이 책을 펼쳐 읽는 것!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의식주 관리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매일을 변화시키는 작은 정리 습관
지금은 정리 수납 전문가가 된 저자도 ‘조금만 방심하면 잡다한 게 늘어나고 손에 잡히는 곳에 물건을 늘어놓는’ 시절이 있었다. “예전에는 방에 물건이 가득해서 정리가 되지 않았다. 마음도 공간처럼 어수선했고, 몸은 마음을 닮으려 한다는 게 사실인지 적당히 시름시름했다. 그런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정리 습관이 든 이후부터다.”(53쪽) 몸과 마음까지 무너뜨리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저자는 자신의 공간부터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집 안을 정리 정돈하고 생활 루틴을 하나씩 세우다 보니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좀 더 알게 되었다. 좋은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며 자신에게 맞는 삶을 오롯이 가꿔 나가는 여정은 기쁨으로 충만했다. 그 과정들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어 저자는 매일 밤 펜을 들어 그림으로 남겼다. 『나에게 맞는 삶을 가꿉니다』는 그 수많은 밤들 중에서도 가장 반짝이는 날을 꼼꼼하게 선별해 엮은 것이다.
이 책은 크게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물건의 자리, 나의 자리 만들기’에서는 왜 우리 생활에 정리 정돈이 필요한지 근본적인 이유를 짚어 준다. 2장 ‘심심하고 건강한 루틴 만들기’에서는 매일 조금씩 청소하는 사소한 습관의 위력을 어필하며 독립생활의 거의 모든 것(가전제품, 식료품, 옷, 이불, 서랍장, 싱크대, 냉장고, 화장실 등)을 관리하는 실제적인 방법을 꼼꼼하게 설명한다. 3장 ‘삶에 의미 부여하기’에서는 공간을 넘어 자신의 생활을 정리 정돈하며 나라는 사람을 탐구해 나가는 재미와 기쁨을 이야기한다.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알찬 방법들을 귀엽고 아기자기한 그림체로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어 사진과 텍스트가 주를 이루었던 기존의 정리 책과는 색다른 느낌을 준다. 이뿐만 아니라 본문 곳곳에는 저자가 자신에게 맞는 삶을 가꿔 나가며 느낀 점과 깨달은 점을 차분하게 풀어낸 에세이가 삽입되어 있는데, 그림에 다 담지 못한 그의 생각을 깊이 느껴 볼 수 있다.
“일상의 미덕은 심심한 습관에서 온다.”
삶의 우선순위에 집중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
저자는 정리 습관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었노라고 고백하지만 사실 그가 정말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리가 아닌 ‘습관(루틴)’이다. 정리하는 일은 즐겁지만 온종일 매달리지 않는다. 집안일에 시간을 최대한 적게 쓰려고 노력하며,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만큼만 한다. 불규칙한 시간에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하면 시간과 에너지 흐름에 불균형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살아온 시간이 쌓일수록 성향과 개별성을 알게 되는데, 나는 에너지가 적은 사람이다. 경제적인 안정감을 주는 금전 관리 루틴을 만들고 집안일을 쪼개 힘을 적게 쓰는 살림 루틴을 만드는 것도 전부 정신적?육체적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다. 이렇게 아낀 시간과 에너지를 좋아하는 일에 쓰며 휴식과 충전의 시간을 가진다.”(85쪽) 삶의 우선순위에 에너지를 쓰기 위해, 저자는 매일 조금씩 자신의 생활에 정리 습관을 붙여넣는다.
『어린 왕자』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장미꽃을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이란다.” 일상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싶다면, 가치 있는 일에 자신의 에너지를 마음껏 쏟고 싶다면 지금이야말로 나의 공간과 생활을 돌볼 때다. 겉옷을 벗고, 미어터지기 일보 직전인 옷장을 열어 옷부터 전부 꺼내 보자. 오늘의 할 일은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