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라서 겪는 환란,
그간 밝힐 수 없었던 상처에 관한 이야기
“언니, 이 이야기를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한 번도 기록하지는 못했던 이야기. 다시 말해, 기록하는 것이 언제나 두려웠던 이야기. 그래서 이제야 용기를 내는 이야기입니다.”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오늘날에도 이 사회는 가부장제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으며, 여성이 살림과 육아의 많은 부분을 도맡는다. 임신의 고통, 출산 이후 신체와 정신의 무너짐을 제대로 돌봐줄 손길 또한 드물다. 여성의 직업과 경력은 단절되거나, 단절되지 않아도 쉽게 인정받지 못한다.
여기에 예술가라는 상황마저 더해진다면 어떨까? 큰 돈을 벌고, 비싼 아파트에 살며, 사랑하는 부부가 아이를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애쓰는 것이 ‘정상성’으로 취급되는 사회에서 대부분의 예술가는 정상성 바깥에 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여성-예술가의 삶에는 이중의 어려움이 따른다.
이 책은 강지혜 이영주 두 시인이 여성 예술가로서 겪는 여러 고충과 고통 들을 담고 있다. 둘은 자신만의 시 세계를 펼치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인이지만, 시를 벗어난 일상에서는 다른 이들처럼 누군가의 딸, 어머니, 아내로 살아가고 있다. 가부장제가 중심인 사회에서 여성들이 아버지로부터 받는 억압과 고통, 함께 살면서도 서로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과의 갈등, 생업과 육아 문제 등을 두 시인 또한 두루 겪는다.
상처, 관계, 가부장, 사랑, 폭력, 자기 돌봄, 치유 등 일곱 가지 주제에 관해 두 시인은 다정한 대화를 이어간다. 여성이라면 모두 공감할 만한 일화가 이어지는 한편, 개인적으로 상처가 너무 커서 지금껏 제대로 밝힌 적이 없었던 내밀한 이야기들 또한 용기 내어 공개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이 겪는 고통을 공유하는 일은 지금 우리뿐 아니라 다음에 올 세대, 모두의 딸을 위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대를 넘어서는 우정으로 소통하기
“우리는 정말 깡다구는 센 사람들”이라 말하는 강지혜?이영주 시인. 둘은 시를 통해 처음 만났다. 사제 관계로 시작된 둘의 인연은 시를 가교 삼아 더 깊은 우정으로 나아갔고, 곧 서로의 고통을 나누며 의지하는 사이가 되었다. 강지혜 시인이 결혼 후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기며, 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며 둘의 만남은 자연스레 어려워졌다. 그러자 함께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산을 오르며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둘은 새삼 깨달았다.
강지혜 시인의 제안으로 둘은 동시에 심리 상담을 받으러 다니며, 서로 편지를 주고받게 된다. 그러면서 내면에 품고만 있던 고통들을 하나둘씩 풀어놓는다. 함께 고통을 나누던 그 “든든했던” 시절들이 활자를 통해 다시 펼쳐지기 시작한다.
두 시인은 10년 넘게 나이 차가 난다. 그럼에도 그토록 진심 어린 이해와 공감이 오갈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왜 서로의 상처가 닮아 있는 것일까? 이영주 시인은 그러한 공감이 가능한 이유가 그 시간이 지나도록 여성의 삶이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비슷한 상처를 나누는 것에서 슬픔을 느낀다.
그러나 또한 세대를 넘어 공유하는 아픔이 없었더라면, 둘의 그토록 깊은 우정을 나누는 일 또한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둘의 우정은 어떻게 여성들이 세대를 넘어서 유대 의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둘의 내밀한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 또한 그러한 유대감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