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중 하나만 선택하는 정치가 바꿔놓은 세계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정치 양극화는 확실히 근 몇십 년간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그리고 양극화된 정치가 우리 삶까지 갈라놓는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양극화의 근본적인 문제는, 네 편 아니면 내 편 이렇게 편 가르기 형태로 정치를 바라보게 된다는 점이다.두 가지 선택지만 있는 세계에서 우리의 라이프스타일과 삶의 영역만을 보고 정당을 유추할 수 있는 확률 또한 상당히 높아졌다. 이렇게 삶의 영역이 이분법으로 갈라지는 세계는 당연히 좋은 세계라고 할 수 없다. 정당의 정책이나 이념의 다양성은 두 가지로 갈라질 수 있는 영역이 아닌데도 이러한 세계에서 우리는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선택으로 나의 정체성이 드러나기 때문에 우리는 당을 선택함으로써 나를 표출하는 정체성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두 편이 생겨날 때의 또 하나의 문제는, ‘상대편이 지는 것’을 목적으로 정치적 선택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서는 편 가르기 정치가 되었을 때 우리 행동의 기저원리를 유명한 심리학 실험을 통해 증명하고 있는데, 우리에게 이득이 없을 때조차도 상대방을 지게 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편 가르기 정치는 인간의 오래된 본능에 기초한, 상대를 적으로 인식하는 오래된 집단 심리를 자극한다. 이때의 정치는 마치 팀 스포츠와 유사하게 바뀌게 된다는 게 저자가 다양한 연구를 내놓으며 내린 결론이다. 이렇게 무의식과 비이성이 만들어내는 정치에서는 정책에 의한 투표가 불가능해지고, 올바른 정당정치로서의 정치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를 위해 투표하고, 똑똑한 사람이 최악의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것은 이 두 개의 선택지가 만들어낸 집단 심리에 그 원인이 있다.또한 저자는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한다. 양극화는 어느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 외부 변화 속에서 끝없이 심화하는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팬덤에 가까운 정치, 상대가 싫어서 투표하는 선거, 상대를 비방하며 자신을 당화하는 미움의 정치는 양쪽 모두에게 상처만을 안긴다. 저널리스트로서, 시대의 변화를 바라보는 관찰자로서 매체가 만들어내는 양극화의 역학에즈라 클라인이 바라보는 시선에는 언론인으로서의 내부자이자, 대안 언론의 창립자로서 미디어의 변화를 몸소 지켜보며 성장해온 한 세대의 날카로운 시선이 담겨 있다. 특히 인터넷 언론이 성장하고, 또 유튜브라는 새로운 매체가 생겨나면서 우리는 더욱더 선택적인 정보만을 취하게 되었다. 디지털 혁명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정보에 대한 접근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했다. 선택의 폭발적 증가는 관심 있는 사람들과 무관심한 사람들 간의 간격을 더 넓혔다. 더 많아진 선택으로 인해 뉴스광들은 더 많이 배우게 되었지만 무관심한 사람들은 덜 알게 되었다.그렇다고 우리가 더 다양한 의견에 노출될 때, 덜 양극화하는 것은 아니다. 실험에 따르면 상대편의 의견을 들을수록 양극화의 감정이 더 심해졌다고 한다. 특히 저자에 따르면 보수를 전하는 언론일수록 그 메시지가 더욱 보수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보수 언론은 가장 깊숙이 몰두하는 독자들을 위한 타깃에 가까운 메시지를 전한다. 디지털 뉴스가 불러온 선택과 경쟁의 폭발은 그러한 셈법을 뒤집었다. 독점적 비즈니스 모델의 전략이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만족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의 전략은 특정 사람들에게 가장 매력적이면 되는 것이다.언론의 산업적인 측면에서 이전에 지역에 기반한 언론이나 지면 신문들에 비하면 이제 전국화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언론은 독자의 정체성을 노리게 된다. ‘많은 독자’들의 니즈를 만족시키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언론은 타깃화된 독자들을 노리면서 더욱더 양극화한다. 또한 고도로 산업화된 미디어는 메시지 자체가 더 ‘자극적’이고 ‘오락적’인 선택 취사가 심해지므로, 저널리스트의 보도는 더 자극적이고 오락적인 형태로, 더 중요한 정책적인 보도를 넘어서게 된다. 이것은 미국에서 트럼프의 자극적인 발언 하나로 중요한 정책 뉴스가 묻히고, 한국에서도 이슈에 가까운 뉴스가 우리 삶에 중요할 수 있는 정책 문제를 덮어버리며 자극을 경쟁하는 현시대의 언론 문법과도 같은 원리다.책에서는 언론과 정치와의 불가분의 관계를 분석하며 오늘의 뉴스와 오늘의 정치가 어떻게 극단의 무한루프를 형성해가는지 알기 쉽게 설명한다. 정치 양극화 메시지가 매체를 통해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현상은 우리 모두가 돌아봐야 할 지점이다.MZ 세대의 저널리스트가 말하는 분열을 헤치고 나아갈 아주 합리적이고 개인적인 방법이 책은 가히 ‘이 시대 양극화에 대한 모든 것’인 동시에 양극화를 만드는 사회 내 모든 구조와 시스템을 밝힘으로써, 그 시스템의 소용돌이 안에서 휘둘리지 않는 개인의 자각을 촉구한다. 상대를 비난하고 시스템을 비난하면서 나를 자각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정치 양극화에 브레이크는 없을 것이다.양극화 시대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흔히 보는 지나치게 냉소적인 비평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의 정치는 분명 이전보다 진보해왔고, 그동안 논의하지 않았던 다양한 인권과 사회문제의 이해도 또한 높아졌다는 것에서 그는 희망을 발견한다. 변화된 사회 속에서 부정적인 갈등만을 찾아내지 않고 이 시대가 지닌 장점을 잃지 않은 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고자 하는 것, 이는 시대를 읽는 젊은 비평가로서 에즈라 클라인이 보여주는 독특한 점일 것이다. 책에서는 또한 양극화의 시대를 헤쳐나가는 개인적인 멘탈 관리 방법도 찾아볼 수 있다. “정체성 마음챙김” 같은 에즈라 클라인만의 독특한 대안법은 ‘정체성 정치’로 더욱 양극화되어가는 우리에게도 울림을 전한다. ‘저쪽 편에 나와는 전혀 다른 한 무리가 있어서 나는 그들과 싸워 이겨야 한다’는 이분법이 아닌, ‘왜 우리는 이렇게 둘로 나뉘어 싸우고 있을까?’하는 자각과 ‘그 원인이 혹시 저쪽 편이 아닌 기성 정치가 짜놓은 프레임에 있는 것은 아닐까?’ 깊이 생각해보는 것. 저자의 메시지는 일견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하지만,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내가 해볼 수 있는 움직임’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과연 정치란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가 아닌, ‘수많은 나’가 풀어야 하는 숙제가 아닌가? 편 가르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미움의 정치’를 헤쳐가는 방법을 함께 모색해보자고 말하는 클라인의 목소리는 귀 기울일 말한 가치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