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에 대한 기억은 무엇을 기억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언젠가 TV에서 본, 붙잡히지 않는 흑백의 영상이다. 다리 한 쪽을 잃은 에이해브 선장이 모비 딕을 잡았는지 실패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흑백의 영상에선 에이해브가 고함치고 있었다. 찾아보니 유명한 그레고리팩 주연의 1956년도 작품이었던 모양이다.
<모비 딕>을 읽기 전에는 지루하고 읽기 힘들 거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책은 재미있었고 술술 읽힌다. 작가는 이슈마엘을 통해 이야기를 전한다. 낡은 물기둥 여인숙 낯선이와 함께 한 침대에서 자야 하는 이슈마엘. "내 이름은 이슈마엘."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며 첫 줄에 화자를 내놓는 것과 달리 이 낯선이를 등장시키는 데 뜸을 들인다. 한밤 중 등장하는 퀴퀘그는 식인종 작살잡이다. 자기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는 이슈마엘을 당장 죽일 듯 하지만, 이 식인종 작살잡이 퀴퀘그는 곧 이슈마엘을 부인처럼 껴안고 잠이 든다. 둘은 둘도 없는 사이가 된다.
작가는 등장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키는 이런 구성을 다시 등장시킨다. 포경선 피쿼드호에 승선하기로 한 이슈마엘과 퀴퀘그 앞에 낯선 일라이저를 내세워 드러나지 않는 피쿼드호의 선장 에이해브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피쿼드호가 출항한 후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에이해브는 한참 후에 등장하고 첫번째 출격 때에는 갑작스럽게 감춰진 승선원 황인종들이 등장한다.
그 후에는 흰색 향유고래 모비 딕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키게 하는 글들로 채워져 있다. 상권 460쪽이 끝나도록 모비 딕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요즘 TV 어느 광고에 흰색 고래가 화면 상단에서 유영하는 장면이 나온다. 모비 딕일 것이라 생각되어지는 광고 속 흰색 고래는 순하고 착해보이지만 상권에서 그려지는 모비 딕은 영악하고 흉폭하다. 집요하게 포경선을 파괴하는 전략가다. 모비 딕에 대한 소문은 피쿼드호의 선원들에게 공포심을 심어 놓는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해 본 후에 푸르고 온화하고 더없이 순한 대지를 바라본 다음, 바다와 육지를 모두 생각해 보라.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어떤 것과 묘하게 비슷하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가? 섬뜩한 바다가 푸르른 육지를 감싸듯이 인간의 영혼에도 평화와 기쁨이 넘치는 외딴 섬 타히티가 있고, 우리가 절반밖에 모르는 삶이라는 공포가 그 섬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그대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 섬에서 밀려나지 말지니, 그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라!"(4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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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역시 잡아 본 사람이 쓸 줄도 아는 것이다.
작가 내력이 참 특이하다. 고래잡이에 나선 작가라니.. 기구하고 놀라운 이력이다.
그나저나 모비딕이 실험적인 형식이었다고 하는데
어떤 점들이 실험적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당대에에는 제법 파격적인 부분이었을까?
아무튼 좀 동떨어진 얘기지만 스위니토드 생각도 나고? 좋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소설을 잘 고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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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에서 키퀘그를 제일 좋아한다...
기존의 여러 좋은 판본 들이 나왔던 반면, 모비딕은 유독히 다양한 판본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열린책들이 드디어 모비딕을 펴냈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기존의 판본과 비교할 겸, 새로운 마음으로 읽어 보려 구입을 한다. 상하 두권으로 나왔는데,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뭐 그리 가격이 크게 비싸지 않으므로 이해할 만 하다. 대신 번역에 잇어서는 그만큼 신경을 써 주었으면 한다.
흰 고래 모비딕 이야기는 어린 시절부터 만화영화로 여러 번 접하다가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소설로 접했다. 고래에 대한 상세한 정보와 포경선의 디테일한 묘사를 보면서 굉장히 세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그리고 다시 40에 들어 다시 한 번 예전의 향수를 떠올리며 읽는데 그 향수는 사라지고, 그저 평이한 느낌으로 마무리를 짓게 된다. 다시 읽어도 좋은 명작이기도 하고, 영화로도 나온 대작인 것 만큼은 분명하지만, 소설도 발전한 것일까? 고전의 맛 보다는 그저 조금 허술한 느낌의 소설같다는 생각마저도 들게 된다. 그래도 그 주제 의식이라든지 멜빌의 이야기 풀어나가는 방법에 대해서 무시할 수 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