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위대한 개츠비 영화로 인해 이 작품이 주목받던 게 기억납니다. 한 여자를 그토록 갖고 싶어한 주인공 개츠비의 인생 이야기가 닉 이라는 캐릭터에 의해 서술되는데, 개츠비, 데이지, 톰 등, 이 등장인물들이 허영과 부를 좇으며 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흥미진진하면서도 미국인이 아니라면 크게 감탄할 부분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진짜인 것은 이야기뿐, 등장하는 모든 것은 가짜다.
개츠비를 읽는 내내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과 동화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책의 겉만 맴도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일차적으로는 등장하는 인물들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이 몰이해의 조금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이 당시의 분위기와 내 시대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많이 떨어져있기 때문이었다. 혼자 사는 저택이 그렇게 클 이유도 모르겠고 알아보지도 못할 사람들이 매일 와서 파티를 하는 까닭도 알쏭달쏭하고 줄곧 무의미한 말만 허공에 흩뿌려지다 사랑은 사랑대로 깨지고 사람은 사람대로 죽었고 아무도 이 큰 사건에 주목하지 않는다. 이런 이상한 상황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위화감 같은 것이 내 생각 속을 들락날락거렸다.
모든 것이 그토록 쉬운 게 도시의 특징인걸까? 이것이 이 이야기에서 창작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었다면, 나는 그것을 제대로 느낀 셈이다. 그냥 그렇다고 치고 싶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인사를 나누는 것도, 사랑을 나누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무도 여기에 주목하지 않고 그 죽음을 둘러싼 모든 사실이 증발해버리는 것도 너무 아무렇지 않게 진행되어서 놀랍지도 않을 지경이다. 소설에 나오듯 이 구조를 견디지 못하고, 도시가 아닌 곳에서 건너온 사람들만이 각자의 사연을 안은 채 도시를 떠나 다른 곳으로 향한다. 그들에게 그 쉬움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는 듯 말이다.
그 가운데 사랑을 쫓아서 그 곳까지 흘러든 것 같은 개츠비만이 홀로 빛나는 것도 같지만, 역시나 미심쩍기는 마찬가지다. 이 글 안에 담긴 모든 가짜와 의심스러운 것들의 중심에 바로 그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그가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벌었는지 모르겠다. 기껏 추측할 수 있는 건 위험부담이 높은 불법적인 일에 종사했다는 것 뿐인데, 그조차도 증언에 의해 밝혀진 것인데다 설령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에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들을 취급한 셈이니 역시 가짜이며 의심스러운 것들과 얽혀있는 셈이다. 그 활동을 하면서 그는 거의 모든 것을 속였다. 심지어 이름까지도! 그 덕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둥둥 떠다닌 관계들도 장례식장의 썰렁함으로 드러났고. 파티에 왔던 사람들은 사실 개츠비의 정체 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허무하다. 화려함만 잔뜩 보여준 채 무엇 하나 제대로 맺어진 것 없이 사건은 갑작스럽게 끝나버렸다. 이 이야기 속의 시간을 파티에 비유하자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 파티란, 감각적인 모든 것에 역량을 집중해 그 순간에만 화려하게 불꽃을 확 태워버린 다음엔 재와 흔적만 남는, 그런 시간들이니까. 무엇 하나 안타까운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무엇 하나 확실한 것도 없는, 그런 시간이니까. 어쩌면 도시의 인간들이 보내는 시간이란 그런 시간들로 가득할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런 화려함조차 껴안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그런 시간을 꿈꾸는 시간으로 가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3년작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가장 먼저 보았고 이후 책을 읽고, 1974년작 영화를 보았습니다.
각색된 영화를 본 후 원작을 읽은 순서였기 때문에 영화가 얼마나 원작에 충실했는지, 묘사장면이 어떻게 영상화되었는지 비교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설을 읽을 때 영화의 이미지가 계속 떠올라 집중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원작 소설과 영화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작품을 만나는 경우 처음 접한 매체가 어떤 것이었는지에 따라 평이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3년작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와 매력적인 음악, 친숙한 배우들의 연기로 볼 만한 영화였으나 왜 명작으로 회자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풀어주지 못했습니다. 그 의문이 몇년째 책꽂이에 꽂혀있던 책을 읽게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3년 작 영화는 내용면에서는 책의 내용을 충실히 영상화하였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캐스팅이 적절했다고 생각되었고, 묘사장면을 영상화한 것은 탁월했습니다. 개츠비 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늠름한 체구에서 풍기는 중후함 이면에 몰두할 때 찌푸려지는 미간의 움직임으로 불안과 초조한 상태를 잘 표현했고, 닉 역의 토비 맥과이어는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며 이해되지 않는 세상에 의문을 갖고 있지만 어찌할 바를 모르는 힘없는 관찰자의 역할로 제격이었습니다. 닉이 톰과 데이지의 집 거실에서 데이지를 만나는 커텐이 흩날리는 장면은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개츠비가 닉의 거실에서 데이지를 처음 만날 때의 긴장감과 떨림을 표현한 부분은 책의 내용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화려한 파티 장면은 개츠비가 사망했을 때의 스산한 분위기와 비교되어 더욱더 씁슬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1974년작 영화는 원작을 각색한 부분이 곳곳에 있었으나, 이는 영화화하면서 생기는 간극으로 인한 이해를 돕기 위해 각색한 것으로 생각될 정도로 감상하는데 지장을 주지 않았습니다. 개츠비 역의 로버트 레드포드는 중후한 멋으로 개츠비가 성공을 위해 그릇된 행동을 했을 것 같지 않은 착각을 일으켰고, 도대체 왜 이런 그가 데이지에게 매달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2013년 영화에서 토비 맥과이어가 세상에 동조하지 못하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걷도는 모습의 '닉'을 연기했다면, 1974년의 닉은 세상과 사람들에게 쓴맛을 보았으나 뱉어버릴 줄 아는 이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닉은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인 데이지였으나 그녀를 얻고자 최선을 다해서 사랑했던 그 '순수함'에, 원하는 것(=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순수함'에 개츠비가 '위대'하다고 한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초록빛이 반짝입니다. 손을 내밀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곳엔 내 사랑, 데이지가 있습니다. 데이지 앞에 나서기 위해 난 무슨 일이든 했습니다. 일찍 일어나고 배우고, 일하고... 어려서부터 내가 원하는 것은 모두 이룰 수 있었어요. 데이지도 곧 내게 올 거예요. 그 순간을 기다립니다.
방안을 꽉 채운 꽃 향기가 내 코를 자극해 머리가 지끈거릴 것 같은데 내 머리는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하게 맑아집니다. 아름다운 데이지. 당신이 내 앞에 있어 행복합니다.
데이지의 한 마디, '톰을 사랑하지 않아요'. 그 말뿐이면 됩니다.
교통사고가 나서 데이지가 놀랬어요. 걱정이됩니다. 전화벨 소리, 데이지 일까요? 데이지, 전화주세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녀에게 시간을 주고 천천히 기다리려고 합니다. 수영이나 하면서요.
악! 총에 맞았어요. 전화를 기다려야 하는데, 총에 맞았어요... 데이지!...
개츠비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이상향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수많은 나날을 기다리고 기다려 데이지가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향이 아니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보다 그녀에 대한 기대를 안고 죽음을 맞이 하는 것이 그에게는 편안했을까요?
책에서 딸을 보며 "이런 세상에서는 예쁘고 귀여운 바보가 되는 게 최고지"라고 말하는 장면이 데이지의 캐릭터를 대변해 주고있다고 생각합니다. 데이지는 좋은 가문과 재력, 외모, 매력을 가지고 있고, 이를 잘 이용할 줄 알 정도로 영민합니다. 아마 데이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세상이 환한 빛으로 둘러싸여있고, 난 항상 행복해야합니다. 그러나 바람피는 톰과 재미없는 나날의 연속으로 지루합니다. 재미있는 일이 뭐 없을까요?
이 때, 개츠비가 엄청난 재력과 매력적인 미소로 나타납니다. '나를 위한' 그의 행동과 미소는 지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기 입니다. 자신에게 돌아오라는 그의 외침은 짜증나게 합니다. 딱 지금처럼이 좋은데 개츠비, 이 사람 참 많은 것을 바라는 것 같습니다.
운전하는 차에 여자가 뛰어와 부딪쳐 죽은것 같습니다. 하필, 왜!! 너무 놀랐습니다! 개츠비는 걱정말라고 합니다.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합니다. 나는 왜 이런 상황이 나에게 닥쳤는지 이런 상황이 싫을 뿐입니다.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습니다. 톰이 떠나자고 합니다. 여행가야겠습니다. 그곳엔 재미있는 일이 있겠지요?!
개츠비에겐 전부였던 데이지, 그녀에겐 개츠비는 '재미있는 그 무언가'의 스쳐 지나가는 사람일 뿐입니다.
왜 명작일까요?
개츠비가 강 너머의 초록빛을 향해 잡을 듯이 손을 움켜지는 장면이 그 답을 해주는 것 같습니다.
질흙같은 어둠속에서 강 너머에 초록빛이 반짝입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합니다. 손으로 움켜지니 잡히는 촉감은 느껴지지 않지만 내 손안에 있는 느낌입니다.
세상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은 항상 어둡습니다. 어떤 상황에 내가 처해있는지 잘 보이지 않죠. 내가 원하는 것이 있는데, 멀리있는 것 같으면서도 또 조금만 노력하면 얻을 수 도 있을 듯 합니다. 노력해서 얻은 느낌은 드는데, 실체가 없네요.
내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불빛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불빛을 향해 손을 뻗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손을 뻗었을 때 빛을 잡은 듯한 희열은 느껴지지 않는 촉감이 주는 헛헛함보다 강렬합니다. 나는 멈출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