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보는 죄와 벌의 주제는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숙고라던가 신으로의 귀환 혹은 사회주의적인 시각에서의 논평과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이는 앞서도 적은 데미안과 두 개의 세계의
영향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에 등장하는 두 명의
주인공(적어도 내 기준에서는)인 라스꼴리니코프와 쏘냐 모두 두 개의 세계 안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 두 개의 세계는 결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라스꼴리니코프가 대학중퇴자에서 살인자로 쏘냐가 여염집 처녀에서 창녀로 그 신분을 바꾸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바로 1분 전만 해도 대학중퇴자와 숙녀였던 존재가 살인자와 창녀로 변하지만 그들의 본질에는 차이가 없다. 살인자가 되었건 창녀가
되었건 그 사람은 그 사람 자체인 것이다-물론 여기에 1분 전의 나와 1분 후의 나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해석(상당히 유효한 해석이지만)을 붙일
생각은 없다.
다시 말하면 누구나 대학생에서 살인자가 될
소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누구나 양가집 규수에서 창녀가 될 소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신분의 파격적인 변화도 아니고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져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것도 아니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의 양식이 순간적으로 변할 것일 뿐인 것이다. 사실 이런 생각으로 이
책을 해석하면 마지막 장면에 대한 해석은 제법 어려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신으로의 귀환 역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모습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큰
무리는 없다.
아무튼 나는 이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가질 수 있는 변화의 양식이 얼마나 많은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나 라스꼴리니코프의 심리 변화의 모습을 보면 무척
흥미진진하다. 결국은 동일한 존재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인간의 모습이 존재하는가...
주인공인 ‘라스콜리니코프’는 금전적인 문제로 대학 그만두고 궁색한 삶을 살고 있는 젊은이이다. 어느 시대의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사회의 부조리를 참을 수 없었던 그는 사회에 대한 반항심으로 독특한 신념을 형성하게 된다. 핵심이 되는 목적만 좋은 것이라면 개개인의 악한 행위는 용납될 수 있으며, 비범한 사람은 자신의 사상과 발견을 전 인류에 보급하기 위해서라면 그를 방해하는 사람들을 해치울 권리가 있다고 믿는 것이었다. 종래 사회가 신봉해오던 구법을 파괴하고 새 법률을 반포한 비범한 사람들은 종래 사회의 입장에서는 범죄자이며, 그 법률을 전파하기 위해 조금도 주저 없이 무고한 피를 흘리게 하지만 그 혁명이 성공하게 되면 그들은 인류를 위한 건설자나 은인들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 신념을 표출하기 위해 범죄를 계획한다. 고리대금업을 하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지독한 노파를 살해하고, 그 노파의 재산을 돈이 없다는 이유로 시들어 버리고야 마는 이들을 위해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하나의 쓸모 없는 생명을 희생하여, 수십 개의 가정을 궁핍과 파멸과 타락으로부터 구원하자는 숭고한 자기 희생을 위한 살인을 저지르고 마는 것이다. 바로 이 살인을 통해 사건이 전개된다.
선과 악, 죄와 벌 그리고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이다.
자신도 모르는 망상에 사로잡혀 수 차례의 계획끝에 살인을 벌이는 라스콜리니코프, 맑은 영혼이지만 가족을 위해 몸을 파는 소냐를 통해 인간의 양심과 본성, 그리고 인간의 죄와 벌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작품이다. 사실상 완역본은 처음 읽어보는데 앞으로 몇 번은 더 읽어야 소설을 맛보며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신학을 공부하기 전에는 이 작품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말이 공감된다.
잘 모르겠지만 나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작품을 통해 인간 내면 깊숙히 있는 선악의 마음과 행동도 사랑과 용서의 마음으로 치유되고 변화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듯 싶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긴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에필로그를 통해 그것을 한번 더 확인하고 강조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내 나름대로 정리해 본다.
원작의 무게에 대한 부담이었을까? 번역 곳곳 부자연스러운 표현과 특히 오자가 많이 발견되어 편집상의 문제를 드러내어 읽는 리듬을 깨뜨렸는데 전면적인 교정을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몇 년 후 [죄와 벌]을 다시 한번 읽는 기회를 꼭 가져볼 것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