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나는 어느 정도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사람의 반응에 대해 나도 모르게 추측과 오해를 하고
혼자 가슴 앓이를 하기도 한다.
이 책은 이런 나 자신의 모습과 대면하게 만들었다.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불편한 느낌을 갖게 하기도 했지만
스스로가 그래도 이정도는 괜찮지 않을까...하고 위로하게 만든 책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이 상담을 받는 것은 내 이야기가 아니기는 했지만
그 안에서 나와 비슷한 점을 찾아보게 만들었다.
나 스스로에게 계속 이야기해주고 싶다.
나는 이런 나 자체로 충분하다.
이 책은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와 네 명의 미혼 여성들이 6주 동안의 집단 상담을 하면서 변화해가는 모습을 담담히 서술했다.
대화식으로 되어 있어 읽는 것 자체는 그닥 어렵지 않았으나 그 속에 담겨진, 또는 숨겨진 의미들을 파악하고 때로는 나와 같은 모습에 공감하고 눈물도 흘리면서 읽느라 시간이 좀 걸린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제 각각 마음속에 상처를 가지고 있다.
마음속에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이들은 특히 사람들과의 관계에 서툴고,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며, 외로움에 익숙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타인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들과 비슷한 점이 많아 읽으면서 감정 이입이 많이 되었다.
디자인 회사를 경영하고 쿨해 보이지만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황지혜, 중학교 교사면서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언니에게 늘 감시당하는 느낌으로 사는 김해인, 엘리트 회사원으로 타인의 감정에 쉽게 공감하지 못하며, 오히려 해결책을 내놓는데 익숙한 양미란, 윤리 교사인 아버지 밑에서 엄격한 가정 분위기 때문에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신미수..
자라온 환경이나 조건이 모두 똑같을 수는 없기 때문에 내가 딱 이 사람이다 라고 꼽아서 비슷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 속 상처와 감정을 짜집기 하면 바로 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상담이 진행되면서 내담자들이 스스로 변화하고 치유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오히려 상담을 이끌어 나갔던 정혜신 박사는 별 말도 하지 않았는데 본인들이 알아서 말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생각해 보면서 스스로 자신의 문제점이 뭔지, 상처가 뭔지를 깨우쳤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도 이런 집단 상담이나 심리 치료를 받고 싶다는 바램이 더 강해졌다.
하지만 내가 직접 상담을 받지 않았어도 네 사람이 치유되어 가는 과정을 따라 읽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마음이 밝아진 기분이다.
제목만 읽어도 내 존재 자체가 온전히 받아들여진 느낌, '당신으로 충분하다'..
참 오랜만에 쓰는 서평이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서평 공백을 깨고 내가 따스한 감정을 단지 가슴에 묻지 않고 이렇게 활자화해서 몇 자 끼적이게 된 데는 아무래도 저자의 힘이 크지 싶다.
솔직히 나는 이 작품으로 저자와 처음 만났다. 기존 작품과의 만남을 통해 저자의 신보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나, 집단 상담이란 주제에 대해 평소 막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는 바도 아닌데 내가 이 책을 고르고, 이렇게 끼적이게 된 것은 바로 얼마 전 힘들어하는 내게 친구가 보내 준 몇 자 안 되는 글귀 때문이었다.
“괜찮다. 모든 게 다 무너져도 괜찮다. 너는 언제나 괜찮다. 당신의 상처보다 당신은 크다.”
이 짧은 몇 마디가 참으로 오래 가슴에 남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이 몇 마디를 접한 나는 순간 숨을 못 쉴 뻔했으며 그 후 찾아본 이 책의 제목 “당신으로 충분하다”는 몇 글자로 이미 이 책을 만나기도 전에 나는 왠지 저자로부터 따스한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다. 이 책과 대면하기 전까지의 내 마음이 정말 그랬다.
살면서 볼멘소리 한번 안 내도 될 정도의 평탄한 삶이 어디 있으며, 사연 없는 인생 또한 어디 있겠냐만... 요 근래의 나는 참 심신이 힘들었다. 한 살 한 살 더 어른이 되어 갈수록 이런 저런 이유로 남들 받는 스트레스도 곱절은 더 받았고, 또 그 외적인 일들로 가슴 졸이고, 결국 가슴 미어지는 순간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면서도 참 아이러니 했던 건 저자와 다르게, 난 한 번도 내 상처보다 내 자신이 크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거였다.
그렇다, 찌질 한 루저였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나는. 심신이 이미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기에 내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그새 또 새까맣게 잊은채 껍데기뿐인 삶을 더러 살고 있었더랬다. 오로지 내가 입은 상처에 온 신경과 감각을 집중한 채,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까지는 절대로 내 자신이 내가 입은 상처보다 더 크다는 점을 오롯이 인지하지 못한 채. 적어도 그 때의 나는 그렇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쉬이 그치지 않을 것 같던 아픔이 어느덧 잠잠해질 즈음에 만난 이 책의 저자는 내게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저마다의 사연과 아픔을 갖고 있는 4명의 내담자들에게 이렇게 쉴새 없이 일러준다. 때론 소리 내어 그들의 상처에 공감하며, 때론 가슴으로 그들을 격려하며. “내 앞에서 울고 있는 당신 괜찮다. 지금의 삶이 힘겨워 움츠러든 당신, 때론 무너져도 괜찮다. 당신의 상처보다 당신은 크다고.”
굳이 이 책에 등장하는 내담자들의 사연이 어떠한지, 또한 그것을 풀어가는 저자의 상담 실력이 어떠한지는 심리학에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내가 주절주절 떠들고 싶지 않다. 단지 주변에 누군가 가슴 아파 하는 사람 있다면, 삶이 힘겨워 털썩 주저앉은 채 다시 일어날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타인의 사소한 시선 하나, 말 한마디에도 움찔 움찔 상처 받는 사람이 있다면 조용히 이 책 한번 건네는 건 어떨까. 구태여 그 사람의 상처를 다 아는 척, 이해하는 척 어설픈 공감하려 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