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와무라 이치 저/오민혜 역
권여름 저
2018년 08월 31일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시선에 지친 우리들의 이야기
2017년 11월 08일
작년 2022년, 우연히 들린 OO도서관 추천 도서목록에 실려 있던 책이었다. 제목에 이끌려서 보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어째 10개월이나 지나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초점은 남자가 아니라고 저자가 밝힌 것처럼 다른 사람이 부여해 준 권력을 겪어 본 경험으로 인해 또는 어렸을 때부터 내사된 고정관념으로 인해, 넘쳐나는 매체에서 우리에게 쏟아붓는 아름다워지라는 메세지에 의해... 여튼 엄청나게 많은 압력들에 의해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집착하거나 또는 살이 찔까봐 공포에 질려있는 여자들과 상담을 한 여자의 관점에서의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아름다움에 대해 날 선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이 머릿속을 가득차게 한다면, 외모 강박으로 인해 세상과 멀어지고 연민을 메마르게 한다면, 목표로 한 나의 중요한 것에서 멀어지게 된다면 외모로부터 멀리 떨어 필요성이 있다. 누구도 우리만큼 우리의 외모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 이제 시선을 받는 대상이 되는 것에서 벗어나서 멀리 내다보아야 한다!고 Renee는 우리에게 피력하고 있다.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인가, 여자로 길러지는 것인가.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대다수의 여성이 외모 지상주의라는 자기검열에 빠져 끊임없이 나의 미모가, 의복이, 헤어스타일이 다른이에게 어떻게 비칠지 고민하고 특히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런 외모 지상주의가 확대 재생산 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인터뷰이들을 통해 확인한 외모 지상주의는 특히 유아기부터 시작하기도 하고, 유년기는 무사히 통과하더라도 청소년 시기에는 예외없이 패션, 뷰티 매거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어떤 사례에서는 부모가 자녀의 외모를 비판하고, 억압하여 어린 여자아이들이 외모에 강박적인 스트레스를 받게 하기도 한다. 마치 리사 핍스의 소설 <Starfish>의 뚱뚱한 자녀에게 다이어트를 강요하고 사춘기에 이른 딸에게 비만억제 수술을 강요한 엄마의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책은 SNS의 영향력이 어느때보다 어린 아이들의 세계관을 지배하는 요즘 십대들은 어떤 마음으로 사진 보정 앱을 까는것인지 의문점을 갖게 만들게 하였다. 요즘은 외모에 거의 신경쓰지 않는 나에게는 그런 앱은 의미가 없었지만, 십대의 자녀를 둔 엄마로서는 조금은 관심을 가지고 어린 소녀들, 소년들 그리고 청년들의 외모 지상주의에 대해 장점과 단점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패미니스트인 저자는 미디어의 외모강박 부추김을 단호히 맞서라고 주문한다. 내가 느끼기에 자기 자신에게 전적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다. 내가 만약 평소에 완벽하다고 여기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가정할때, 이 사람은 스스로에게 만족할까? 아마도 아닐 것 같다. 저자의 주장처럼 매체들이 유혹하는 사탕발림에는 당당한 대처가 필요하지만, 내가 느끼는 모든 불안은 때로는 내적 불안에서 기인할 수도 있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내적 성장을 더 구가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며 내 외모에 대해 생각하던 최초의 시기를 기억한다. 초등학생 때는 그러지 않았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거나 흙장난을 하거나 학원에 가거나 재밌게 책을 읽던 순간은 기억하지만, 거울을 보던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거울 속의 내 외모가 나 자신의 눈에 띄기 시작한 때는 중학생 무렵이었다.
거울에 비춰 외모를 본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내 외모를 본다는 뜻이다. 그렇게 나는 나를 사회적 기준으로 대상화하기 시작했다.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 삶은 좀 더 낭비되고, 떨쳐내기 힘든 족쇄를 달고 살게 되었다. 내 외모가 누군가에 비해서 잘났는지 못났는지, 내 신체의 어떤 부분이 아름답거나 추한지 평가하는 내부의 심판관 말이다.
아름다움의 자기 심판에서 때때로 승리한다고 해도 나는 기쁠 수가 없었다. 세상은 한 부위의 패배를 전체의 패배로 규정했다. 아무리 얼굴이 예뻐도 뚱뚱하면 소용이 없어. 아무리 몸매가 예뻐도 피부가 안 좋으면 말짱 헛거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체의 모든 부위에 심판관이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그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드물게 누군가가 전승한다 해도 그에게는 나이라는 장벽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예뻐도 나이는 못 이기네, 라는 식으로.
외모 대상화는 패배할 수밖에 없도록 짜인 구조다. 너무나도 거대하고 굳건하며 오래된 구조. 그 구조를 여성이 사회 변방에서 외모에만 신경쓰며 살기를 바라는 쪽에서 만들고 유지해왔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사회경제정치적 권리에서 여성을 배제시킴으로써 여성이 외모 이외의 자원을 갖지 못하도록 차단시켰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저자는 '그들'에 관해 적극적으로 토로하지는 않는다. 책 대부분이 여성들의 생각과 행동, 반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이야기한다.
외모에 신경쓰다가 사회에 관여할 힘을 잃을 수도 있다고. 사회를 바꾸려면, 개인을 강압하는 거대구조에 맞서려면 외모에 낭비되는 힘을 아껴서 비축해야 한다고.
'우리는 거울 앞에서 한 발짝 물러설 필요가 있다. 치마가 잘 맞는지, 머리스타일이 괜찮은지 걱정하느라 산만해지면 회의실을 장악하지 못한다. 체중이 몇 킬로그램 늘었다고 해서 스스로 가치 없다고 여긴다면 권력 구조에 도전할 수 없다. 외모 강박에 시달릴 떄 우리의 배터리는 방전 상태이므로.'
이 책은 정말 너무 최고로 좋았다. 이런 책을 이제야 읽다니.
근거를 제시하며 (행동과학적 접근)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방식의 책을 참 좋아한다. 요즘 특히 행동과학이 유행하고, 행동과학적 접근이 설득력이 높다. 나는 내 석사논문 마저도 행동과학자 타일러의 넛지 전략을 언급하였다는 사실과, 올해 초에 <해빗>을 읽으면서 행동과학에 반감이 들고 인식론적 접근이 더 좋았던 것때문에 혼란스럽다. 이원론적 생각보다 상호보완 또는 비율을 달리하여 수용하는 쪽이 나은 것이겠지만, 사람의 행동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세심한 실험 설계와 결과 해석에 있어서 행동과학은 매우 명쾌하다. 여성을 대상화하고 외모강박으로 인해 여성들이 겪어온 피해를 논리적으로 설명해 준다. 무엇보다도 외모지상주의는 이제 외모강박(성형, 과도한 다이어트, 노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을 초래)이 여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린이와 남성에게도 피해를 주는 지경까지 초래했다. 결국 모두 피해자가 되었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인가?
꾸밈노동에 관해서 이야기한 책이었다. 읽으면서 외국인이 쓴거라 외국여성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하고 그래서 문화가 다른데 뭔가 좀 공감은 안되지 않을까 생각했던것도 잠시, 내가 고민했던것들, 내가 어렸을때부터 생각해본 것들을 똑같이 하고있는 여성들의 인터뷰와 이야기가 너무 공감이 되었다. 더불어 좀 억울했다. 내가 다이어트걱정, 피부걱정하면서 집중하지 못했던 공부와 일들이 생각났고 화장을 해야한다고 일찍 일어났던것들, 중요한 일이 있을때 화장도 공들여 했었는데 그시간에 차라리 일을 한번더 생각했으면 좋았을걸 일 외에 다른것에 집중한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졌다. 책에서 이걸 짚어주기전까지 정말 당연하게 하고있었던거라 이상하게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걸 모아놓고 글로 읽고보니 너무 이상했다. 문화권이 다른데도 같은 여성이라는이유로 외국인여성들의 사연과 고민이 공감이 안되는게 없었다. 그중에는 나도 분명히 했었던 고민들이 있다는게 너무 놀라웠다. 이책을 읽고나니 내가 손해보는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졌다. 같은시간인데 똑같이주어지는시간에 다른것에 신경쓰느라 내 일에 집중을 못하고 내가 즐거운시간을 놓친다면 너무너무 억울할것같다. 그걸 몰랐을땐 모르지만, 알았으니 충분히 다른것들에 허비하는시간을 줄여나갈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