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사장 저
야마구치 슈 저/김윤경 역
문요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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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 저
2018년 05월 28일
학교에서 근무하다보면 평균이라는 단어를 많이 접하게 된다. 특히 평가와 관련해서는 평균이 중요하다. 반평균을 비교해서 반별 피드백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방과후 학습을 권유하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평균의 종말'이란 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호기심을 자아낸다.
책에서는 기존에 사용하던 '평균은 실체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한다'라는 내용을 여러가지 사례로 설명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두사례를 소개하면, 비행기 조종사의 평균적인 치수를 측정하여 조종석을 만들었지만, 실제로 평균적 치수에 맞는 조종사의 비율은 터무니 없이 낮았다. 미국에서는 여성의 평균적인 신체 치수를 측정하여 '노르마'라는 신체 조각상을 만들고 궁극적인 미에 가깝다고 칭송하였다. 하지만 실제로 '노르마'와 비슷한 여성을 찾기에는 어려웠고 가장 비슷한 여성도 실제로는 신체지수가 다른 부분이 더 많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평균에 대한 환상은 어디서 부터 왔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책에서 역사적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케틀레, 골턴, 테일러, 손다이크 등 수학자 부터 교육학자까지 평균을 활용했고 각각 조금씩 다른 '평균'의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저자 토드 로즈는 평균을 가지고 개인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서로 다른 두 그룹의 사람들을 비교할 때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우리는 평균을 개인과 비교할 때 쓰기 때문에 잘못되었다. 이런 비교는 개개인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보면, 시험을 통해 평균 점수가 나왔다. 이 평균 점수를 바탕으로 개인의 성적이 높고 낮음을 비교하여 줄을 세우는 것은 학생들이 과목에 대한 흥미도를 알 수 없으며, 수업태도도 반영하지 못한다.
그리스 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라는 거인 이야기가 있다. 이 거인은 사람을 잡아다가 자신의 침대에 예쁘게 눕혔다.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사람의 키를 늘리고, 키가 침대보다 크면 발을 잘라버렸다. 우리는 평균이라는 침대에 우리를 맞추고 있었던건 아닐까? 평균이라는 것을 기준으로 높고 낮음으로 학생을 비교했던 과거에서 우린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었다.
한 사람의 대해 올바른 이해와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저자는 개개인성의 원칙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제시한다.
평균을 개개인의 이해를 위한 주요 도구로 삼길 거부하며 개개인을 이해하려면 개개인성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p.32-
개개인성의 원칙으로 들쭉날쭉의 원칙, 맥락의 원칙, 경로의 원칙 세가지를 제시하였다.
먼저 들쭉날쭉의 원칙은 인간의 복잡한 특성은 다차원적이기 때문에 한가지 잣대로만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맥락의 원칙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기질은 없으며, 행동은 특성이나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 둘 사이의 독자적 상호작용을 통해 표출된다.
경로의 원칙은 A에서 B지점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이고, 개개인성에 따라 가장 잘 맞는 경로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평균의 종말을 통해 새로운 평가 시스템을 생각한다. 이 시스템은 교육현장 뿐만 아니라 기업체에서도 적용할 수 있으며, 사회 전반에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교육계에서 개개인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패러다임이 불고 있다. 바로 고교학점제이다. 2025년에 전면 도입하기로 결정되었고, 지금은 시범운영 중이다. 고교학점제는 대학교처럼 학생들이 과목을 선택해서 교실을 이동하여 수업을 든는 제도이다. 학교에서 개개인성을 살릴 수 있는 수업과 평가를 한다면 학생들에게 학교는 더 이상 지루한 곳이 아닌 신나는 곳이 될 것이다. 이 제도가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수능제도의 개선이 필수적이다. 더 이상의 자세한 이야기는 책과는 관련이 없으니...
앞으로 사회도 수능을 잘보는 사람, 토익이나 텝스 성적이 높은 사람이 취업을 잘하는 것이 아닌 능력주의 사회로 변화할 것이다. 한가지 잣대에서 벗어나 다양한 기준으로 평가하는 사회가 빨리오길 바라며, '법정 마음의 온도'에서 인용한 글로 이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살아 남은 것은 가장 강한 종이나 가장 똑똑한 종들이 아니라 변화에 잘 적응하는 종이다.
소장본으로 구입하였습니다. 처음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 읽고 느꼈던 충격이 잊혀지질 않아요. 우리가 평균이라는 단어 속에서 살면서, 그것에 속으면서도 속는 것을 알지 못했던 생활들이 생각 나더라구요. 아직도 저는 평균의 생활에 살고 있지만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조금 다른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평균의, 보통의 구속에 갇혀 살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도 느꼈어요. 정말 좋은 책이고 깊게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장본으로 한 번 구입해 보았어요. 다시 읽어 보려구요.
평균이라는 것이 얼마나 합리적인 단어이며 사회에서 활용하기 좋은 기준인가. 평균만 되면 된다, 평균이하다, 평균 이상이다라는 말로 자신을 다른 사람과 상대적인 위치에서 평가하게 되면서 때로는 우월감을 느끼고, 때로는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사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고 그 능력치는 영역마다 다른 위치에서 나타나는데 학교에서 바라는 평균적인 인간이 이 되기 위해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한다.
정말 잘 적은 책이며, 번역도 말끔하게 잘 된 책입니다.
평균이란 허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초반에 공군의 대니얼스와 노르마 대회?를 비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대니얼스가 평균의 허상을 찝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공군의 조종사의 육체를 감히 하등?하다고 의심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었고, (그러니 평균에 들지 않는 육체여도 그게 평균의 문제이지 조종사의 신체 결함이라고 여기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반면 노르마 대회에 참여한 여자들의 육체를 미적이지 않다고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애초에 노르마를 미의 기준으로 잡아서이지 않을까요?
자료를 보고 분석하는 방법 자체가 달랐고, 전제로 깔렸던 배경적 지식이 무척이나 상이했기에 대니얼스는 정확하게 평균의 허상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적잖게 놀랐던 점은 대니얼스가 제시한 체계를 전복하는 아이디어를 공군에서 받아들였다는 거였네요.
여전히 읽고 있습니다.
다 읽고 감상은 수정될 수 있습니다.
1. 평균 때문에 우리는 죽을 때까지 경쟁해야한다
결혼적령기, 취업 스펙, 멘사 회원 IQ 등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숫자들이 있다. 그 숫자를 벗어난 사람들을 특이하게 바라본다. 이 숫자를 우리는 평균이라고 부른다. 닻 효과처럼 강박관념을 갖고 이 숫자들에 가까워지거나 넘어서기 위해 아둥바둥 거린다.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평균에 가까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평균을 넘어서 상위권으로 가야한다.” 평균에 가까우면 ‘보통’, ‘평타’ 라고 말하고, 평균에 넘어서면 ‘우월’, ‘상타’ 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평균을 한참 넘어선 사람일수록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많다.
과학의 기계론적 세계관이 사회학에 접목된 사회과학의 등장으로 통계와 평균이 지금까지 계속 맹위를 떨치고 있다. 과학이 자연에서 ‘근원’과 ‘원리’를 발견했듯이 사회학이 인간의 ‘근원’과 ‘원리’를 파해치기 위해 도입됐다. 모든 것을 수치로 측정해 정량화하고 추세를 파악하기 위해 평균을 남긴다.
이때 만들어진 두 가지 평균에 대한 생각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첫번째는 목성의 속도를 측정하던 케틀레의 주장에서 비롯됐다. 그는 ‘평균이 이상적이며 완벽함의 전형이고 평균에서 벗어날수록 오류’라고 생각했다. 두번째는 진화론으로 유명한 다윈의 손자이자 우생학을 주장하고 ‘회귀분석’의 창시자 프란시스 골턴에 의해 제기됐다. 그는 “평균을 뛰어넘는 자는 우월층Eminent, 평균에 가까운 평범층Mediocre,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사람들은 저능층Imbecile으로 구분했다. 우월층은 무엇이든 잘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리소스를 몰아줘야한다는 인종차별 주의, ‘우생학’을 산엽혁명 시대의 사상가들에게 주입했다.
2. 개개인성이 평균의 종말을 고하다
이들에 의해 ‘평균’이라는 개념이 우리의 일상에 정착해 당연시 여겨지고 있다. <평균의 종말>은 개개인학이 발견한 3가지 이론으로 평균의 고정관념을 반박했다.
첫째는 들쭉날쭉의 원칙이다. 특정 수치 하나가 개개인의 특성 모두를 대표할 수 없다. <더 지니어스>라는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장동민은 소위 천재로 불리는 수많은 멘사 회원과 고학력자들을 상대로 모두 승리하며 ‘갓동민’으로 불렸다. 그는 학벌이나 IQ가 ‘정치’와 ‘협력’, ‘전략’, ‘문제풀이’를 모두 잘할 거라는 고정관념을 직접 깼다.
둘째는 맥락의 원칙이다. 상황에 따라 나타나는 개개인의 특성이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에 따라 보여지는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특정 상황에서만 사람을 만나기 때문이 이 사람이 어떤 다른 특성을 지녔는지 모른다.
셋째는 경로의 원칙이다. 개인마다 자질이 발현되는 ‘시기’, ‘속도’, ‘방향’이 다르다. 정상적인 경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개개인학이 주장하는 세 가지 원칙을 알지 못하는 우리들은 조건반사하듯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평균을 강요한다. 평균 이하로 분류되기 싫은 우리들은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당연하게 여기고 인내한다.
개개인을 대할 때는 평균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나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아야한다. 나의 생각은 나의 맥락에서만 정답이기 때문이다. ‘이상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상대의 맥락을 염두해야한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집단 전체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평균을 활용해야한다. 평균이라는 기준점을 강요해야한다. 물론 맥락에 맞지 않은 기준점을 설정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앱의 평가기준은 MAU(Monthly Available User)이다. 우리는 사실 극소수의 앱만 주기적으로 사용하며 대부분 일회성으로 사용하고 지운다. 앱 이용이 유저의 습관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회사에서 KPI로 월 앱 다운로드 수를 기준점으로 세웠다. 아무리 다운로드 수가 많아도 한 번 사용하고 삭제 되면 무슨 소용인가. 본질과 전혀 관련 없는 기준점은 오히려 직원의 사기를 저하시킨다.
마지막으로 나의 자질을 발현시킬 수 있도록 신경써야한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와 직무(맥락)가 나에게 어떤 능력치가 특정 이상 되지 못하면 형편 없는 고과(평균)를 받으리라 압박을 줄 수 있다. 나는 거기 적응하지 못해 평타도 못치는 스스로를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근데 다른 맥락에서 나의 포텐이 폭발하고 능력치와 생산성이 하늘을 치솟을 수 있다.
그러니 나의 어떤 점이 강점인지 알고, 그 강점과 어울리는 환경을 찾아야한다. 굳이 평균에 종속되지 않고 내가 최고가 될 수있는 분야를 찾아 평균의 기준점이 되어야한다.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행동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