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 겐타로 저/서수지 역
정승규 저
정진호 저
정승규 저
토머스 헤이거 저/양병찬 역
인간 본연의 호기심, 우연히 걸려든 발견, 대박을 노리는 한탕주의
신약 탐험의 기괴하고 흥미진진한 세계! 약을 찾아 헤매는 건 질병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일이다.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신석기시대 미라의 주머니에 들어 있던 자작나무버섯은 편충 치료제로 밝혀졌다. 인류는 모든 재료를 구사해 약을 만들어왔다. 마구잡이 채취 시절부터 바이오 기업까지 신약 개발이 성공할 확률은 불과 0.1%다. 페니실린, 아스피린, 인슐린 등 인류의 운명을 바꾼 약들은 그런 어려운 연구 과정을 거쳐서 실용화된 “꿈의 약”이다.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약을 개발해낸 사람들은 약 사냥꾼(drug hunters)이라고 불린다. 이들은 과학자이자 돈을 좇는 탐험가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약 관련 책이 에피소드에 중점을 둔 반면, 이 책은 식물의 시대부터 합성화학을 거쳐 전염병 의약품 시대별로 각 분야의 원조가 된 의약품이 탄생한 과정을 알려준다. 신약 개발 과정에 대해 전면적으로 탐구한 책은 이 책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제약 산업의 최전선에서 35년 동안 일한 저자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살려 흥미롭게 서술했다. |
신약 '발견'에 더 가까운 선사시대부터 시작해서 신약 개발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대표적인 약물을 가지고 설명하는 책이다. 대략적인 순서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선사시대(발견)->대량생산->합성->연구 윤리>유전자 재조합 의약품->역학 연구
제약회사 이름도 많이 나오고 사람 이름도 많이 나온다. 실제 약의 개발 과정(우연히 발견한 계기, 효과를 입증한 실험 과정 등)에 대한 내용 반, 약을 계속 개발하고 싶어하는 연구자와 돈이 안되니 접으라는 제약회사의 갈등+연구자들 사이의 갈등을 포함한 정치적(?) 스토리 반이다. 군더더기 없고 흡입력 있는 문체지만 몇몇 에피소드에서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이 사람은 언제부터 튀어나왔지' 싶을 때도 있었다. 현실이 그러하니 있는대로 기록한 것이겠지만 어느 정도는 생략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제약회사에 대한 인식은 책을 읽기 전부터도 딱히 좋지는 않았다. 길진 않지만 임상연구직에 종사했었는데... 제약회사에서 나에게 해를 입힌다거나 못 써먹을 약을 억지로 환자에게 처방하도록 하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담당했던 임상연구는 이미 개발은 한참 전에 끝나고 시판중인 약을 사용한 연구였다. 내가 실망했던 건 정말로 결과를 얻기 위한 연구가 아니라 그냥 제약회사와 의료진 서로의 금전적 이익을 위한, 이름만 연구인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에서 그려지는 제약회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약이 얼마나 아픈 사람을 살릴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 약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까?'에 더 비중을 둔다. 물론 기업이니까 직원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항생제는 오래/자주 쓰지 않기 때문에 개발을 꺼려한다는 점이 놀라웠다. 나는 감기나 감염성 질병이 다른 중대 질병보다 자주 발생하니까 항생제를 두고 굉장히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을 줄 알았다. 생각해보니 너무 당연한 결론이다. 인슐린과 항생제 중에 한 가지를 개발한다면 당연히 매일 투약해야 하는 인슐린을 개발하는 게 이득이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제약회사의 관점은 어떤지를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뒷부분에 있는 주석이 관련 연구 내용을 인용만 한 게 아니라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느낌이어서 주석만 따로 읽어도 재미있다. 나는 정치적 스토리보다는 실험과 개발 과정이 더 흥미로웠다!
흥미진진한 약 탐험의 역사
약이 어떻게 발명되고 인류에게 이용되었는지 그 역사가 궁금해 읽게 된 책이다. 저자들은 베테랑 신약 연구자와 전문 과학 작가 두 명으로 구성돼 현직에서 보고 들은 여러 가지 생생한 이야기들을 풍부하게 접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약이 발명된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통해 보면 발명이 아니라 발견에 가깝다. 저자들이 표현하기로는 거대한 바벨의 도서관에서 딱 필요한 변론서를 찾아내듯이 치료에 도움이 되는 약을 발굴하는 아주 무지막지하고 거대하고 지난한 작업이며, 에디슨이 전구 발명과 비슷하게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많은 경우 우연에 기대어 발견된다.
이런 우연의 역사에 첫 등장한 약은 기원전 3300년 신석기 시대에 쓰인 약 덩어리 유물인데, 이로부터 시작해 식물의 시대, 합성화학의 시대, 흙의 시대, 유전자 의약품의 시대를 거쳐 약의 발견을 통시적으로 아우른다.
이에 따라 책에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약의 탐험에 대한 풍부한 사례가 나오는데,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흙속 미생물을 뒤진 끝에 이뤄낸 라파마이신의 발견과 여러 인물들의 역할이 절묘하게 합쳐진 피임약의 개발이었다.
책은 방대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인지 지루함을 피하고자 유머러스한 문장도 많아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약 탐험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고 파헤쳐낸 책이었다.
매독을 치료하는 최초의 약 살바르산을 발견하고, 이에 ‘마법의 탄환’이라고 부른 파울 에를리히는 신약을 개발하는 데 4G가 필요하다고 했다. ‘돈(Geld)’, ‘인내(Geduld)’, ‘창의력(Geschick)', ‘행운(Gluck)’가 그것이다(파울 에를리히는 독일인이었으니 그에게 필요했던 4G도 독일어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다). 도널드 커시가 쓴 《인류의 운명을 바꾼 약의 탐험가들》은 그 중에서도 마지막 ‘행운’에 적지 않은 비중을 두고 있다. 어쩌면 딱딱해질 지도 모르는 책을 읽을 만하게 만들려면 그런 요소를 많이 포함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남궁석의 《암 정복 연대기》와는 많이 비교가 된다. 둘 다 신약 개발의 역사를 다루고는 있지만, 《암 정복 연대기》는 항암제, 그것도 최근에 개발된 3가지 종류의 항암제에 집중을 하고 있는 반면, 《인류의 운명을 바꾼 약의 탐험가들》에서는 말라리아나 세균에 의한 감염병 치료제, 마취제, 진통제, 당뇨 치료제, 고혈압 치료제, 경구피임약, 항정신병제 등 다양한 치료제를 다루고 있다(바로 빠진 게 바로 항암제다!). 그리고 《암 정복 연대기》나 《인류의 운명을 바꾼 약의 탐험가들》 모두 약을 개발하는 데 있어 사람의 역할과 과학의 역할을 모두 다르기는 하지만, 《암 정복 연대기》는 생물학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면, 《인류의 운명을 바꾼 약의 탐험가들》은 사람들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또 하나 다른 점은 《인류의 운명을 바꾼 약의 탐험가들》은 저자가 실제로 평생 신약 개발에 몸 담아 왔던 까닭에 자신의 경험을 책 속에 많이 담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책이 낫다기 보다는 서로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서로 겹치는 게 거의 없는, 모두 읽어야 하는 책이다.
저자는 신약 개발의 역사를, ‘식물의 시대’, ‘합성화학의 시대’, ‘흙의 시대’, ‘유전자 의약품의 시대’ 등으로 전개되어 왔다고 쓰고 있다.
‘식물의 시대’란 인류 초기부터 식물로부터 경험적으로 약이 되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이용해 왔다는 의미이며, 대표적으로는 말라리아 치료제인 퀴닌이 그런 식물로부터 얻어진 약이다. ‘합성화학의 시대’는 근대 이후 독일 라인강가를 따라 늘어선 커다란 제약 회사들이 처음에는 염색회사로 출발했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염색회사를 출발한, 현대의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합성 과정을 통해 새로운 치료약들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스피린(살리실산)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약이 어떻게 작용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던 시대이기도 하다(물론 지금도 실제 어떻게 작용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용하는 약이 적지 않다. 이 책에서도 한 장을 떼어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항정신병제라든가 , 항우울제 같은 것들이 그런 것들이다). 약이 작용하는 메커니즘을 알아낸 거의 최초의 사례는 매독치료제로 개발된 살바르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맨 앞에 인용한 파울 에를리히가 개발했으며, 그는 (비록 오랫동안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수용체 이론’을 주장하며 약의 작용 메커니즘을 설명했다.
하지만, 20세기 초까지도 약학은 과학이 아니라 마구잡이 스크리닝을 통해 효과가 있는 약을 찾아내고 만들어내는 분야였다. 그 약학을 과학으로 격상시킨 인물은 길먼과 굿맨이었다. 젊은 약학자였던 그들은 의기투합하여 증거 중심의 접근법을 통해 책을 썼는데, 무려 1200쪽짜리 책을 썼다(《치료의 약학적 기초》). 종신재직권을 위해 필요한 연구 시간을 잡아먹으면서 거의 희생과 가까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쓴 이 책은 오랫동안 신약 개발의 매뉴얼이 되었고, 약학은 과학이 되었다. 알프레드 길먼의 아들, 알프레드 굿맨 길먼(동료의 성을 이름에 넣었다)이 G단백질 결합 수용체에 대한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는 후기는 감동스럽다.
‘흙의 시대’란 항생제 개발의 시대를 의미한다. 플레밍, 플로리, 체인의 페니실린 개발로 수많은 목숨을 감염으로부터 구해냈고, 이에 이어 왁스만은 토양 세균으로부터 스트렙토마이신이라는 결핵 치료제를 발견해내고 상용화한다. 이때부터 많은 과학자들이 흙을 뒤집어 엎는다(저자도 마찬가지다). 흙에는 보물이 있었던 것이다(물론 지금은 항생제 연구는 큰 제약회사에서는 거의 관심 사항이 아니다. 항생제는 치료를 해버리는 바람에 제약회사에 큰 돈을 안기지 못한다. 고혈압약이나 당뇨약이 평생 먹어야 하는데 비하면…).
‘유전자 의약품 시대’의 선두 주자는 인슐린이었다. 제한효소의 발견으로 유전공학 시대가 펼쳐지고, 플라스미드에 사람의 유전자를 재조합하여 세균에 넣어 사람에게 필요한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아 벤팅의 사례를 보면서 사람의 욕심이라든가, 혹은 히스테리 같은 것도 덤으로 읽을 수 있다.
경구피임약 개발의 역사도 감동스럽게, 조금은 흥미롭게 쓰고 있다.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직업과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여기에 관여한다. 스위스의 낙농업자, 프로게스테론을 발견한 수의학 교수, 단지 흥미로운 문제라는 이유로 프로게스테론을 만드는 방법을 찾아낸 기이한 외톨이 화학자, 70년대 전투적인 페미니스트 두 명(이들도 출신 성분이나 성격이 매우 달랐다), 불명예를 안은 유대인 생물학자, 독실하지만 이상주의자인 가톨릭교도 산부인과 의사 등이 그들이다. 이것은 한 의약품 개발이 역사와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 의약품(경구피임약)이 역사를 만들어낸다는 것도 보여준다.
저자는 신약의 개발이 우연에 많이 기댄다고 했다. 하지만 누구라도 그 우연이 그냥 우연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 우연을 만나기 위해 전문적인 지식을 쌓았고, 무엇인가를 찾아 해맸고, 끈질기게 문제에 매달렸다. 그리고 우연이 다가왔을 때 번뜩이는 지성을 발휘했다. 그런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만든 약이 인류의 운명을 바꾸었다.
세종서적에서 나온 도널드 커시와 오기 오거스 작가의 인률의 운명을 바꾼 약의 탐험가들이라는 책입니다. 요즘같이 코로나 19로 고통받는 시기에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사두고는 구석에 박아두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신약 개발의 역사와 현실을 잘 정리한 책인 듯 합니다. 여러가지 흥미로운 내용들이 들어있어 재밌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