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전체를 읽을 것인가?
복잡계 물리학자 김범준의 부분과 전체를 꿰는 법
한국출판문화상 저술상에 빛나는 『세상물정의 물리학』 김범준 교수 4년만의 신작
복잡한 세상의 연결고리를 읽는 통계물리학의 경이로움
― 유행, 불평등, 지진 등 복잡계 물리학자의 숲을 보는 법
90년대 유행하던 벙거지 모자와 와이드 팬츠는 어째서 2019년의 이십대들에게 다시 사랑받게 된 것일까? 경주와 포항의 지진 피해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을까? 김정은과 트럼프의 긴장관계를 보며 앞으로의 한반도 정세를 예측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 유행이 바뀌고, 어느 순간에 주식은 폭락하며, 어느 날 난데없이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뜻밖의 분위기 속에서 전쟁이 일어나기도, 평화의 사건이 생겨나기도 한다. 사건이 되고 현상이 되는 전체를 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까?
얼음은 딱딱하다. 하지만 얼음을 이루는 물 분자 하나는 딱딱하지 않다. 물 분자 사이의 연결구조가 얼음의 딱딱함을 만들어낸 것이다. 하나의 존재로는 의미를 읽을 수 없어도, 많은 구성요소들이 모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때 전체는 새롭게 거시적인 특성을 만들어낸다. 비로소 현상이 되고, 사건이 된다. 이러한 현상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복잡계’라 부른다. 우리 인간사회 또한 대표적인 복잡계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복잡하고 무질서해 보이는 복잡계의 ‘전체’를 읽을 수 있을까?
복잡계는 시스템의 내부 구성요소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구성요소 사이의 강한 연결은 하나의 구성요소에서 발생한 사건의 규모를 파급시켜 엄청난 규모의 격변을 만들 수도 있다. 한 사람의 패셔니스타가 유행을 만들 수 있고, 땅속 어딘가 바위 하나의 위치 차이가 지진의 규모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무엇이 연결되었는지를 보는 것은 전체를 보는 것이고, 변화의 순간을 포착하는 일이다. 부분과 전체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그중 어떤 연결의 힘이 센지를 살피는 것은 복잡계 과학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관계의 과학』에서는 우리의 일상과 친구 관계에서부터 사회 현상과 재해 등 자연현상까지 어떻게 작은 부분들이 전체로서의 사건이 되고 현상이 되는지 통계물리학의 방법으로 조명한다. 복잡한 세상의 숨은 규칙과 패턴을 연결망(Network)을 만들어 살펴보고, 연결고리를 찾아 전체의 의미를 읽는다. 통계물리학자의 시선에서, 세상의 숲을 보는 법을 안내한다. 연결, 관계, 시선, 흐름, 미래라는 다섯 개의 큰 주제 안에서 다루고 있다. 각각의 글은 상전이, 링크, 인공지능, 중력파, 암흑물질 등 과학의 핵심 개념을 글마다 하나씩 다루며 과학 공부를 하는 즐거움도 함께 선사한다.
2015년 『세상물정의 물리학』으로 제56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상, 아태이론물리센터 올해의 과학도서 등을 수상했던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의 4년만의 신간이다.
연결망(network)을 만들면 보이는 것들
― 친구가 많은 페친의 인기 비결부터 SNS에서 친구관계를 확인하는 법까지
“사람들의 관계의 구조를 생각하지 않고 사회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올 하나 없는 그물 아닌 그물로 물고기를 잡으려는 헛된 시도를 닮았다. 사람들이 서로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연결의 구조는 우리 사회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 84쪽, 「우정의 측정가능성에 관하여」
복잡계 과학의 여러 방법 중 연결망(network)을 만들어보는 방식은 우리 일상의 무작위하고, 특별한 규칙이 없어 보이는 존재와 사건들의 의미를 드러나게 해준다. 연결했을 때만 보이는 구조적인 특성을 발견하게 한다. 가령, 저자인 김범준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서로가 공통으로 맺고 있는 친구의 수를 조사해 관계의 강도를 측정하는 연결망을 그려보기도 하고 페이스북 친구 관계에서 마당발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따라 관계가 달라지는 양태를 역시 연결망을 만들어 보여주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데이터를 수집해 연결망을 만드는 흥미로운 시도를 여럿 하고 있는데, 가령 국회의원들 간 관계를 측정하기 위해서 법안 발의를 할 때, 누가 누구와 협력했는지를 조사해 연결망을 만드는 식이다. 연결망뿐만이 아니라 데이터를 수집해 다양한 그래프를 보여주며 통계물리학에서 관계를 읽어내는 법을 다루고 있다.
사회를 읽으며 과학을 공부한다: 과학의 핵심개념 22가지
― 때맞음, 상전이, 링크부터 창발, 프랙탈, 암흑물질, 인공지능까지
홍콩의 많은 시민들이 길거리로 나왔다.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에 한곳에 모여 시위를 하고, 대학생들은 학교를 점거하기도 했다. 6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는 홍콩의 시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책에서는 사회현상을 과학개념을 빌어 설명하는데, 시민저항운동이 성공하기 위한 방법을 이야기하며 ‘상전이’ 개념을 소개하고, 촛불집회의 집회 측과 경찰 측 추산인원이 다른 것을 분석한 과학자들 이야기를 하며 ‘암흑물질’ 개념을 소개하기도 한다. 가령, ‘상전이’ 개념을 다루면서는 정치학자 체노웨스의 연구를 소개하는데, 그는 1900년부터 2006년까지의 시민 저항운동을 조사한 결과 저항운동에 참여한 인원이 3.5%가 넘었던 ‘모든’ 저항운동이 성공했다는 점을 발견한다. 책에서는 물리학에서 진행한 가상사회 모형실험을 함께 소개한다. 구정권을 옹호하는 B라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인 사회에, 강한 신념을 가지고 저항운동에 참여하는 Ac라는 사람들이 있다. Ac가 13.4%가 되기 전에는 B가 다수지만 13.4%를 넘는 순간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 B 의견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는 상태로 수렴된다. 이를 통계물리학에서는 ‘상전이’라고 부른다는 식의 설명이다. 지금 홍콩의 시민저항운동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물리의 ‘상전이’ 개념을 익히며, 추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렇듯 물리학을 비롯한 과학의 중요한 개념들이 하나의 글마다 하나씩 소개되어 있다. 사회 현상 속에서 발견하기도 하고, 우리들 일상의 경험에서 찾아 흥미로운 실험과 함께 소개하기도 한다. 만취자를 찾는 법을 소개하며 ‘마구걷기’ 개념을 설명하고, 차은우와 저자의 합성사진을 통해 ‘중력파’ 검출방법을 소개하기도 한다. 세상을 복잡계 물리학자의 눈으로 들여다보며, 과학 공부를 차근히 해나갈 수 있게 돕는다. 각 글의 말미에는 해당 개념에 대한 개념 설명을 따로 덧붙여 친절함의 강도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