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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정희진 | 교양인 | 2020년 2월 19일 한줄평 총점 0.0 (14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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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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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내가 쓴 글이 바로 ‘나’다.”
글쓰기란, 평생에 걸쳐 자신을 알아 가는 일이다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의 두 번째 책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는 정희진이 읽은 64권의 책과 글을 쓰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글쓰기는 삶이자 생계라고 담담하게 털어놓는 저자가 서가를 기웃거리고, 책상에 앉아 괴로워하며 자신을 알기 위해 치열하게 쓴 글과 글쓰기 여정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
정희진은 “글쓰기는 삶과 분리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에게 글쓰기는 ‘말하기’이고, 말하기는 곧 ‘사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평생에 걸쳐 자신을 알아 가는 일이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자기 내부에서 다른 세계로 이동하면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이다.

앎의 이유와 목표는 자신을, 우리 자신을 아는 데 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내가 아는 지식을, 내가 쓴 글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는 ‘나’를 알기 힘들다. 이 질문은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탐구로 바뀌어야 한다. …… 내가 알고 싶은 나, 내가 추구하는 나는 협상과 성찰의 산물이지 외부의 규정이어서는 안 되므로/아니므로 우리는 늘 생각의 긴장을 놓을 수 없다. 글은 그 과정의 산물이다. - 머리말·13, 14쪽

“‘내가 먹는 것이 나다’,
‘내가 행하는 것이 나다’라는 진리처럼
나는 ‘글은 곧 글쓴이다’라고 생각한다.
아니, 글만큼 그 사람 자체인 것도 없다.”

정희진은 《침묵의 세계》에 관해 쓰면서 침묵이란 자기와 나누는 대화이며, 자신과의 만남이 존재를 뒤흔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근대초극론》을 읽으며 약자의 자기 찾기는 비서구, 여성, 장애인 등 나를 만든 이들을 모두 거쳐야 하는 멀고 복잡한 과정임을 떠올린다. 《제2의 성》을 읽으면서 여성주의란, ‘인간’과 ‘인간의 여자’로 나누는 권력에 대해 질문하는 인식론임을 깨닫는다. 프랑스혁명기의 페미니스트 올랭프 드 구주의 전기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에서는 위대했지만 알려지지 않은 사람의 역사는 ‘없는 역사’이며, ‘있었다’는 결국 ‘없었다’는 뜻임을 깨닫는다.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글은 글쓴이 자신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쓰는 형식이 다를 뿐이다. 영화든 소설이든 논문이든 신문 기사든, 모두 그 글을 쓴 사람의 이야기다. …… 자기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경험을 쓰는 것이 아니다. 경험에 대한 해석, 생각과 고통에 대한 사유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 자체로 쉽지 않은 일이고,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산을 넘는 일이다. - ‘심리적 허기’·246, 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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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_ 글이 나다
1장 몸에서 글이 나온다
- ‘나’에게 돌아오는 글쓰기
구리 거울 _ 《청춘의 감각, 조국의 사상》, 김윤식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저들 _ 《유착의 사상》, 도미야마 이치로
용서라는 고통 _ 《용서라는 고통》, 스티븐 체리
지나간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 침묵을 놓을 때 _《침묵의 세계》, 막스 피카르트
끝을 보고야 만 자의 씁쓸함 _ 《근대초극론》, 히로마쓰 와타루
지긋지긋 _ 〈끝나지 않는 노래〉, 이희중
외로움 _ 《그 섬에 내가 있었네》, 김영갑
나는 난초에 너무 집념하였다 _ 《무소유》, 법정
너로 인한 내 기준의 고통 _ 《내가 나를 치유한다》, 카렌 호나이
진저리를 쳤다 _ 《베니스에서 죽다》, 정찬
나는 뒤처졌다 _ 《우울의 늪을 건너는 법》, 홀거 라이너스
타인의 시선 _ 《늙어감에 대하여》, 장 아메리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병 _ 《프로작 네이션》, 엘리자베스 워첼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_ 《김수영 전집 2》, 김수영
시시한 인생 _ 《유리문 안에서》, 나쓰메 소세키
러브리스 모성, 러브리스 섹스 _《어머니를 떠나기에 좋은 나이》, 이수경
작가는 지배하기 위해서 쓴다 _ 〈지배와 해방〉, 이청준
노화는 감정이다 _ 《근대성과 육체의 정치학》, 다비드 르 브르통
이제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해 왔을 뿐이다 _《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프리드리히 엥겔스
은둔 _ 《숨어사는 즐거움》, 허균
2장 우리는 타인을 위해 산다
- ‘너’를 만나는 글쓰기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_ 〈감꽃〉, 김준태
사랑은 조건적 _ 《빅터 프랭클의 심리의 발견》, 빅터 프랭클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_ 《제주 유배길을 걷다》, 제주대학교 스토리텔링 연구개발센터
안전한 관계 _ 《모멸감》, 김찬호
다가가면 물러서는 미래 _ 《지나간 미래》, 라인하르트 코젤렉
복기 _ 《이창호의 부득탐승》, 이창호
무청 김치와 더덕주 _ 《토지》, 박경리
사랑은 말하고 싶음, 말할 수 있음이다 _ 《법구경》, 법구
인간은 변하지 않아 _ 《타인의 삶》,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널스마르크
당신의 상처받은 영혼을 내 목숨을 다해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_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먼지가 되어 _ 《먼지》, 조지프 어메이토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선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_ 〈크리스마스 선물〉, 오 헨리
고전이란 인간의 보편적 상황을 다루는 거죠 _ 《캐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내가 소설에 한자를 쓰는 까닭 _ 《나의 문학수업 시절》, 이호철 엮음
밤낮 쉬지 않고 먹을 것을 모으면? _ 《거꾸로 읽는 개미와 베짱이》, 프랑수아즈 사강·JB 드루오
혼자인 것과 함께 혼자여야 한다 _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미셸 슈나이더
죽음을 이해하는 것으로 예방하다 _ 《가만한 당신》·《함께 가만한 당신》, 최윤필
빚 _ 《끈》, 박정헌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_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엮음
길에서 살고 길에서 죽다 _ 《길에서 살고 길에서 죽다》, 한수산
될 수 없는 자 _ 《리부팅 바울》, 김진호
3장 내게 ‘여성’은 고통이자 자원이다
- 창의적 글쓰기의 가능성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 _ 《고통의 문제》, C. S. 루이스
무지는 어떻게 나댐이 되었나 _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해릴린 루소
모든 혐오의 출발은 자신이다 _ 《문명 속의 불만》,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 남자의 여자들, 제2의 성 _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페미니스트 _ 《젠더와 민족》, 니라 유발 데이비스
사회주의자 헬렌 켈러 _ 《헬렌 켈러》, 도로시 허먼
죽이는 것은 너무 자비로운 일이다 _ 《한 여자의 선택》, 풀란 데비 외
남성 페미니스트 _ 《남성 페미니스트》, 톰 디그비 엮음
완강한 묵살 _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프리드리히 엥겔스
사랑받지 않을 용기 _ 《사랑받지 않을 용기》, 알리스 슈바르처
임신 중 구타가 유아 사망의 주원인 _ 《가정 폭력의 허상과 실상》, 리처드 겔즈
성폭력 가해자의 실명 _ 《한국여성인권운동사》,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엮음
잠재적 가해자? _ 《포르노그래피》, 안드레아 드워킨
지배하는 치유자 _ 《프로이트 심리학 비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에리히 프롬
네가 나야 _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
남성성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요? _ 《하나이지 않은 성》, 뤼스 이리가레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_ 《가스등 이펙트》, 로빈 스턴
백인 남성 노동자 계급 _ 《교육현장과 계급재생산》, 폴 윌리스
있었다 _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 브누아트 그루
호르몬 과학? _ 《호르몬의 거짓말》, 로빈 스타인 델루카
여자를 먹었다는 남성은 식인종인가? _ 《남자들은 모두 미쳤어요》, 윤가현
심리적 허기 _ 《헝거》, 록산 게이
부록 _ 정희진이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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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저 : 정희진
융합 글쓰기·인문학 강사, 서평가. 여성주의 관점에서 공부와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서강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사회학을 공부했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여성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처럼 읽기』, 『아주 친밀한 폭력』, 『혼자서 본 영화』, 『낯선 시선』 등을 썼으며,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미투의 정치학』 등의 편저자이다. 융합 글쓰기·인문학 강사, 서평가. 여성주의 관점에서 공부와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서강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사회학을 공부했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여성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처럼 읽기』, 『아주 친밀한 폭력』, 『혼자서 본 영화』, 『낯선 시선』 등을 썼으며,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미투의 정치학』 등의 편저자이다.

출판사 리뷰

“살아내는 대로 쓴다”
‘나’에게 돌아오는 글쓰기

글을 쓰고자 하는 많은 사람이 흔히 하는 고민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다. 이 질문에 대한 정희진의 답은 ‘살아내는 대로 쓴다’이다. 이는 ‘몸으로 쓴다’는 표현과 가장 가깝다. 그에게 ‘몸으로 쓰는 글쓰기’란, 자신이 겪은 경험과 이야기를 자기만의 언어로 보여주는 것이다.
《나를 알기 위해 쓴다》에는 정희진이 읽고 만난, 자신에 대한 의문 속으로 뛰어들어 글을 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글쓰기는 삶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뇌성마비 장애 여성운동가 해릴린 루소, 생사를 넘나드는 우울증 경험을 씀으로써 고통받는 몸에 대한 새로운 사유로 나아간 작가 엘리자베스 워첼, 인종주의·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뚱뚱한 흑인 여성이 겪는 일상에 관해 기록한 작가 록산 게이, 쓴다는 것에 대한 막막함과 아득함, 그리고 그 고통이 글쓴이에게 오히려 위안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준 소설가 정찬…….

글은 아는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버리는 과정이다. 앎이란,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지식을 다르게 배치하는 것이다. 지식이 자료에 불과함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래서 진보(進/步)의 방식은 계속 걷기고, 보수(保/守)의 도구는 과거를 지키는 익숙함(진부함)이다. 쉬운 말은 지배자, 사기꾼, 게으른 이들의 언어다. 한국 사회처럼 스트레스가 많은 곳에서는 선호될 수밖에 없다. 생각은 엄청난 노동이기 때문이다.
자기 모순은 언어를 빼앗긴 이들의 운명이다. 이것이 지배와 피지배 관계의 핵심이다. 강자의 삶과 기존의 언어는 일치하지만 약자의 삶과 언어는 불일치한다.
- ‘길에서 살고 길에서 죽다’·165쪽

우리 사회에는 장애, 성별, 이성애 제도에 대한 지식이 없다. 나는 ‘정상인’들의 무지가 차별의 엔진이라고 생각한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매번 대응할 수도 없고, 교정을 요구할 수도 없는 고단한 삶이다. 무지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해결하기 어려운 권력은 ‘몰라도 되는 권력’이다.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글쓰기 중 하나는 사회적 약자의 자기 재현이다. - ‘무지는 어떻게 나댐이 되었나’·178, 179쪽

‘여성주의’와 글쓰기

저자는 이 책에서 ‘여성주의’를 틀로 삼아 기존의 인식 체계를 질문하는 ‘여성주의 글쓰기’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정희진은 “내게 ‘여성’은 고통이자 자원”이라고 말한다. 여성에 관해서, 여성의 삶에 관해서 쓴다는 것은 때로는 그를 자기 혐오와 연민, 피해의식, 분노로 가득 차게 한다. 하지만 그는 글쓰기를 멈출 수 없다. 여성에 관해 쓴다는 것은 나 자신을 아는 일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나도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타인에게 어떻게 설득할까. 사람들이 믿지 않을까 봐 경미한 사례만 간략하게 인용하고 분석에 집중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과장이 심하다.”, “〈주부생활〉 표절한 거 아니냐.”는 독후감을 말할 때 두 번째 좌절이 왔다. “어머니가 맞고 사시냐.”, “매 맞는 남편도 있다.”, “폭력 가정은 극소수다.”처럼 여기 다 적을 수 없는 내용이 세 번째 좌절이다. 왜 여성의 경험을, 말을, 생각을 믿지 않을까. - ‘임신 중 구타가 유아 사망의 주원인’·212쪽

단도직입적으로 여성주의만큼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학문은 드물다. 아니, 글쓰기와 여성학의 인식론, 방법론은 거의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문학은 언어의 역사이고, 여성주의는 언어의 역사가 형성된 과정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언어를 자명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개입된 권력 관계를 질문한다면, 기존 여성주의를 포함해 세상의 모든 언어는 상대화와 붕괴(의미의 다변화)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주의와 글쓰기 공부는 별개의 실천이 될 수 없다. - 머리말·15, 16쪽

[내용 구성]

1장 몸에서 글이 나온다
- ‘나’에게 돌아오는 글쓰기
1장은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에 관한 정희진식 글쓰기 방법론을 보여준다. 정희진에 따르면, 좋은 글쓰기란 통념과 상식, 기성의 것과 상투성에 머물지 않고 텍스트를 나만의 것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글쓰기 과정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이 ‘나’에게 돌아오는 글쓰기다.

나는 누구인가. 모든 사람이 이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물음은 내 경험과 사회의 시선이 일치하지 않을 때, 타인이 멋대로 나를 규정할 때 솟아난다.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넌 누구냐?”라는 심문(審問)에 대한 일차적 반응이다. ……
저자가 일관되게 문제 삼는 것은 이러한 상황이 피억압자의 삶을 내내 뒤덮고 있는 신문(訊問)의 정치라는 사실이다. ‘여성’, ‘아줌마’, ‘성골(聖骨)과 진골(眞骨)’이 아닌 사람, 식민지 사람은 이중 메시지 상황에서 늘 자기를 설명하라는 요구에 시달린다. -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저들’·25, 26쪽

유럽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가 된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다. 서구가 비서구를 규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서구를 열심히 연구하다 보면 질문은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나를 알려면 나를 만든 이들을 거쳐야 한다. 비서구, 여성, 장애인……. 모든 타자들에게 인생이란 이렇게 멀고 복잡한 우회로이다. 이는 피식민자의 자기 찾기는 전통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 자신을 다시 구성하는 과정임을 깨닫게 해준다. - ‘끝을 보고야 만 자의 씁쓸함’·38쪽

진저리는 몸이 해체되기 시작할 때 뼈와 근육 간의 연결이 이탈되기 전 단계의 몸이다. 진저리의 최후는 몸과 영혼의 분리, 죽음이다. 진저리치는 글을 쓰는 작가는 여러 번 죽었다 깨어난다. …… 독자 역시 최소한의 비슷한 경험, 진저리의 연대가 필요하다. 그래서 특정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이다. 인간의 변화는 진저리를 동반한다. 독서에는 반드시 몸의 반응이 따른다. 가벼운 바람도 있고 통곡할 때도 있다. 어쨌거나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여성들이 여성학 책을 읽을 때가 대표적인 경우다. - ‘진저리를 쳤다’·59쪽

2장 우리는 타인을 위해 산다
- ‘너’를 만나는 글쓰기
2장은 ‘타인을 만나는 글쓰기’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글을 모았다. 저자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자기 변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삶의 의미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생의 절정은 성별, 계급, 나이, 심지어 정치적 입장을 넘어서 상호 성장을 위해 자기가 알던 유일한 세계를 포기하는 순간”에 있다.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모든 사유의 시작이다.

호소하고 싶은 사연, 모순된 자기 행동을 이해받고 싶은 마음, 몸에서 말을 내보내야만 생존이 가능한 상태를 수치심과 상대방에게 판단당하는 걱정에 시달리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얼마나 될까. 내가 택한 안전한 관계는 나 자신과의 대화인데, 이 방법은 정신이 분열될 위험이 있다. 혹은 신이나 절대자와 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결국은 자신과의 대화다. 우리에겐 타인이 필요하다. 타인과의 상호 작용은 소중한 차원을 넘어 존재 양식과 생사의 문제다. - ‘안전한 관계’·109쪽

나의 바닥을 드러낼 수 있는 상대. 아무리 세게 부딪쳐도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벽, 나도 믿기 어려운 경험을 당연한 듯 믿어주는 사람, 내 안의 고통을 비워줄 수 있는 사람. ‘진정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이 필요한 시간이 있다. 이 사랑은 말을 들어주는 것이 첫째다. 상대방의 경험에 대한 수용력, 호기심을 품지 않는 예의, 취약한 상대방을 조종하거나 동정하지 않는 사랑. 깊고 신중한 배려 속에 나를 넣어주는 사랑이다. - ‘사랑은 말하고 싶음, 말할 수 있음이다’·124쪽

자신을 버리고 언제나 상대방이 되는 삶. 바울은 ‘주인, 이스라엘인, 남자’가 되기를 버리고 ‘여자와 노예’가 되기로 하지만 실패한다. 물론 우리가 아무리 간절히 타인이 되고자 해도 진정 타인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요지는, 바울의 제안이다. 타인이 됨으로써 약자의 저항과 융합을 강조하는, 공동체의 윤리를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내가 타인이 되고자 함은 ‘복음’ 때문이라기보다는 다른 세계로 가기 위해서이다. 타인을 수용하고 온전히 이해하고 이해받을 때 우리는 어떻게 변형될까. - ‘될 수 없는 자’·169쪽

3장 내게 ‘여성’은 고통이자 자원이다
- 창의적 글쓰기의 가능성
3장은 ‘여성주의 글쓰기’란 무엇인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글들을 모았다. ‘#나는_잠재적_가해자입니다’ 해시태그 운동,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 ‘남성 페미니스트’의 등장, ‘가스라이팅’ 폭력 등 한국 사회의 젠더 관련 이슈를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다시 쓴다. 성차별과 여성 혐오, 데이트 폭력과 살인(femicide)이 일상인 현실에서 여성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분노와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여성에 대해 쓴다는 것은 여성, 여성의 경험, 여성이 처한 현실에 대해 상상력이 없는 이 세계에 숨을 불어넣는 일이다.

헬렌 켈러를 다룬 책 중에서 가장 실체적 진실에 가깝다고 평가받는 도로시 허먼의 《헬렌 켈러》를 읽으면서 위인전에는 어떤 종류의 ‘19금’이 필요한가에 대해 생각했다. …… 위대한 인물은 부정의한 사회와 투쟁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헬렌 켈러가 헌신했던 사회운동에 대한 내용은 언급되지 않고, 주류 사회가 인정한 성취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한 교육일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이렇게 박제된 인식에 대한 교정이자 도전에 있다. 3중 장애 여성은 공산주의자, 페미니스트이면 안 되나? 박제는 생각보다 무서운 말이다. ‘박(剝)’은 벗기다, 깎다, 찢다라는 뜻. 그러니까 아예 다르게 만들어버리겠다는 의지다. - ‘사회주의자 헬렌 켈러’·193, 194쪽

사실 나를 가장 놀라게 한 사건은 “나도 잠재적 가해자입니다.”라는 ‘운동’이다. 잠재적 가해자라니? 남성이 잠재적 가해자라면, 여성의 현실적, 현재적, 일상적 피해는 누가 저지른 일이란 말인가. 물론 ‘선의’겠지만 무지에서 나온 선의는 지배 세력의 관용과 성찰로 둔갑하기 쉽다. 사회적 모순에 ‘잠재’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 빈부 격차를 ‘잠재적’이라고 하는가? 지역 차별, 장애인 차별도 일상적이고 노골적이지 잠재되어 있지 않다. 성차별은 더욱 그렇다. 따라서 “나는 잠재적 가해자입니다.”는 “나는 성차별 구조에서 가해자의 위치에 있습니다.”로 바꿔야 한다. - ‘잠재적 가해자?’·218, 219쪽

여성의 처지는 같지 않다. 수많은 차이가 있다. 계급, 인종, 나이, 성 정체성, 지역, 장애……. 이것은 단순한 다름이 아니라 적대적 모순 관계다. 그러나 이런 차이를 여성으로 일반화해버릴 수 있는 권력이 가부장제다. …… 여성이라는 ‘작은’ 공통분모 하나 때문에 일상과 목숨을 잃는 세상에서, 여성은 일시적으로 “너는 나다.”라는 정체성의 정치를 주장한다. 여성의 저항은 그 자체로 보편적인 사회 정의다. 이들의 목소리가 가시화되면 여성의 복종으로 성립되어 온 가부장제는 이전과 같을 수 없다. - ‘네가 나야’·225쪽

종이책 회원 리뷰 (14건)

주간우수작 하나의 사건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꼼* | 2022.09.07

사회에 대한 비판은 그 출발점에 따라 간절함이나 논리의 구체성이 달라진다. 아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속한 사회와 작금의 세대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주체의 자기 객체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회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자신을 타자화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분별과 객관화 작업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자신이 스스로를 평가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한다는 게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의 비판과 문제의식이 없다면 사회를 지배하고 이끄는 정치인과 소수 엘리트 계층의 자각과 반성은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

 

정희진 작가의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는 여성학 연구자인 작가가 자신이 읽었던 책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한 노력과 애씀의 흔적들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것은 자신의 말과 글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자 학자로서의 보편적 당위성을 지키는 분투의 과정이기도 하다. 약자로서 여성의 입장을 좀 봐 달라는 식의 구걸의 언어가 아니라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지이자 동등한 지위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평등의 언어를 희망하고 있다.

 

"극복, 사랑, 혐오......, 목적이 무엇이든 상대를 알기 위해 "벼랑까지 걸어간" 적이 있는가. 나는 한국 사회에서 학문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주류 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약자만이 지닐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의문 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인식론적 특권, 끝을 보고야 마는 것은 최고의 저항이다. 자신을 해명하기 위해 끝을 보려는 이들은 비교나 절충하는 방식으로 살지 않는다. 끝을 보고야 만 사람의 씁쓸함. 진실은 달콤하지 않다."  (p.39~p.40)

 

스스로에 대한 어정쩡한 타협이나 적당한 선에서의 물러섬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의 특징은 결과론적인 외로움에 직면한다는 점이다. 게으름에 천착하는 보편적 인간상에 대한 경멸이나 기피로부터 자신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경멸하는 다수의 편에 서서 그들과 화해하고 그들의 습성을 십분 이해하노라, 마음에도 없는 말로 그들을 다독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끝을 보고야 만 사람의 씁쓸함'을 곱씹을망정 게으름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보편적 인간의 대열에 서기는 죽기보다 싫은 것이다.

 

1장 '몸에서 글이 나온다', 2장 '우리는 타인을 위해 산다', 3장 '내게 '여성'은 고통이자 자원이다'를 통해 작가가 읽고 정리했던 60여 편의 작품에 대한 자신의 느낌이나 주장을 리뷰 형식으로 피력한 책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는 작가의 주관적 견해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게 할 만큼의 완벽한 논리 구조를 갖추고 있다. 물론 독자의 성향이나 이념적 기울기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글은 아는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버리는 과정이다. 앎이란,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지식을 다르게 배치하는 것이다. 지식이 자료에 불과함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래서 진보(進/步)의 방식은 계속 걷기고, 보수(保/守)의 도구는 과거를 지키는 익숙함(진부함)이다. 쉬운 말은 지배자, 사기꾼, 게으른 이들의 언어다. 한국 사회처럼 스트레스가 많은 곳에서는 선호될 수밖에 없다. 생각은 엄청난 노동이기 때문이다."  (p.165)

 

삶의 범주는 대개 세 가지로 분류된다고 나는 믿는다. 자신의 삶을 목표로 하는 어떤 지향점을 향해 채찍질하고 이끄는 극기의 삶, 사회적 관습이나 사회 구성원의 시선으로부터의 해방 또는 자유를 추구하는 풀어짐의 삶, 모든 사회 구성원과의 관계를 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존을 유지하는 도피 혹은 은둔의 삶이 그것이다. 인간은 대개 상황에 따라 세 유형을 번갈아가며 살아가게 마련이지만, 하나의 유형을 선택하고 그 방식을 극단적으로 고수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러나 풀어짐의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들 곁에 조력자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현대인의 삶에 필요한 제반 지식을 팽개친 채 오직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에만 몰두하는 영화감독이나 우주 연구에 매진하는 천체 물리학자 혹은 카사노바처럼 본능과 감정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곁에서 그들의 생존을 돌볼 조력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어떤 삶을 선택하든 필연적으로 후회와 번민을 안게 된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을 끝없이 곁눈질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것이다.

 

"홍준표의 '돼지 흥분제 사건'으로 나는 두 가지 진리를 다시 확인했다. 국가 안보를 내세워 표를 얻으려는 사람, 정확히 말하면 국민 안전을 대국민 협박용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사실과 이 땅에서 오래 살려면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p.242)

 

추석이 코앞이다. 그러나 태풍 '힌남노'의 위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사람들은 명절이 그저 즐겁지만은 않을 터,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인간도 하나의 동물 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허울뿐인 명예를 놓으려 하지 않는다. 자연 앞에서 인간의 삶도 죽음도 하나의 자연 현상에 불과할 뿐 특별할 게 없지 않은가. 정희진의 책을 몇 권 더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것이 추석 전에 있었던 하나의 사건이라면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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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2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싱* | 2022.02.17

 나는 글은 곧 글쓴이다.”라고 생각한다. 아니, 글만큼 그 사람 자체인 것도 없다. (10)

 내가 알고 싶은 나, 내가 추구하는 나는 협상과 성찰의 산물이지 외부의 규정이어서는 안 되므로/아니므로 우리는 늘 생각의 긴장을 놓을 수 없다. 글은 그 과정의 산물이다. (14)

 피식민자의 자기 찾기는 전통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 자신을 다시 구성하는 과정임을 깨닫게 해준다. (38)

 약자만이 지닐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의문 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인식론적 특권.... 자신을 해명하기 위해 끝을 보려는 이들은 비교나 절충하는 방식으로 살지 않는다. (40)

 나를 드러내는 것. 외면화는 말 그대로 개인이 타인과 사회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55)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죽음은 큰 사건이 아니다. 죽음의 관점에서 보면, 삶은 짧다. 대부분은 시시하고 잘 안 써지는 글과 같다. (74)

 기기가 인간의 몸을 대신하는 시민권이 되었으니, 휴대 전화와 인터넷 계정만 없애면 절로 은둔이다. (89)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의미다. 돈과 권력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의미하는 바다. 최고의 의미는 내가 타인의 앎의 노력 대상이 된다는 것(사랑받음), 그리고 상대를 알려는 노력이다(사랑). (102)

 다른 사람과 대체할 수 없는 신뢰와 정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다. (105)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한 관계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들, 억지로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공간이다(김찬호 재인용)... 삶에서 이해받고 싶은 마음만큼 간절한 것은 없다. 안전한 관계는 사람을 살게 하는 구조. (108-109)

 내 몸을 완전히 기댈 만한 든든한 벽을 가지고 싶다. 참마음으로 나를 안아주는 크고 안전한 가슴을 가지고 싶다. 나를 속이는 내 마음의 괴로움을 숨김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을 가지고 싶다. (김달진 재인용 123-124)

 예술가, 지식인, 정치가의 업무는 자기 변화다. (126)

 사랑도 기본적으로 자기만족 행위여서 주는 것이 쉽다.’ 반면, 남의 마음을 제대로 받을 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우리는 인생의 어느 시기부터 쫓겨서이든 자발적이든, 죽음의 열차를 타고 싶어 한다(공지영 재인용).”... 내 생각에, 이 시간을 견디는 최선의 방법은 타인의 상처를 돌봄으로써 나를 위로하는 대신 꽃다발마음가짐이다. (132-133)

 보이지 않았던 것을 통해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는 것, 모든 사유의 시작이다. (135)

 인간은 대단하지 않다. 모든 것들 중 하나일 뿐이다. 지구, 자연, 다른 생물들의 관점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이 무수한 미물들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136)

 돌봄 윤리의 핵심은 무조건 잘해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을 협상하고 타인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몸의 혼신이다... 선물하기의 핵심은 배려다. 타인의 상황을 고려하고 상상하는 일은 고차원의 윤리다. 헤아리기 어렵다면 물어보면 된다. (140)

 분노의 시대요, 상처의 시대다. 상처받고도 다시 힘을 낼 수 있을까.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모든 것이 양극화된다. 계급 구조는 물론이고 인성까지 둘로 나뉜다... 기존의 개인이 공동체로부터 인권과 자유를 보호받아야 할 존재였다면, 지금은 스스로 알아서 각자도생을 수행해야 할 자원이 되었다. (162-163)

 글은 아는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버리는 과정이다. 앎이란,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지식을 다르게 배치하는 것이다. 지식이 자료에 불과함을 증명하는 일이다. (165)

 나는 정치와 사회운동과 학문은 종교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종교/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겸양과 자기 변화. 궁극으로는 헌신으로서의 변신이다. 타인 되기. (168)

“ 무지한 사람들과 달갑지 않은 조우에 나오는 얘기들은 나도 매일 듣는 레퍼토리다. 무지clueless는 지식이 없다는 뜻을 넘는 심오한 말이다. 영어의 클루는 단서, 실마리라는 뜻이므로 클루가 없는 인간은 개념이 없는,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는 사람을 가리킨다. 대화는커녕 접촉에서부터 폭력을 발산하는 사람들이다. 본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분들. 권력이 부여한 무지는 국가도 구할 수 없다. 그들을 밟아줄 (상상 속의) 코끼리가 필요할 뿐이다. (178-179)

 파시스트는 피아, 자아 경계가 없다. =세상이다... 이치와 논리를 포기하고, 막 나간다. 이 과정에서 전쟁과 폭력은 필연적이다. 자기 행동의 의미를 모르므로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개념이 없다.... 의미를 모르면 고통도 없다(안드레아 드워킨 재인용). (182-183)

 생각은 자유지만 발화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다. (183)

 우리는 매일 누가 돈을 받았는가. 누가 진짜 피해자인가. ‘몸통은 누구인가...를 두고 가스등을 켜대는 세력에게 시달린다... 이때 약자의 무기는 단 하나. 자신을 신뢰하고 기존 언어를 의심하는 것이다.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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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파워문화리뷰 내 글을 쓰려고 읽는다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하*애 | 2021.03.14

그럴 때가 있다. 읽고 싶은 분야가 있어서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책이나 읽고 있을 때. 관심 분야가 없을 때, 읽기 편한 책들 혹은 베스트셀러들, 아니면 누군가 읽었다는 책을 검색하기도 한다. 주관 없이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는 것이다. 책을 읽은 후 리뷰를 쓸 때도 읽을 때와 다르지 않다. 책이 주연이고, 나는 조연이거나 엑스트라다. 내 생각이 글을 이끄는 게 아니라 책 내용에 내 생각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그러면 재미도 없고 내 것 같지 않은 글이 된다. 자기 생각을 풍성하게 담아야 글에 힘이 실린다.

 

<정희진처럼 읽기>에서 저자는 독후감에 대해 말한다. 작가가 "쓰고 싶은 독후감은 다른 시각으로 읽음으로써 '없는' 내용을 만들어내는 방법" 이라고 썼다. 정희진의 독후감은 책을 읽고 쓴 글이지만 작가의 생각이 주를 이룬다. 독후감이면서 책에 '없는' 내용들을 더 많이 만난다. 작가 자신의 생각, 관점, 철학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다. 책을 읽지 않아도 내용을 몰라도 글이 흥미진진하고 힘이 있다. <정희진처럼 읽기>를 읽고 같은 형식으로 쓴 책을 이어서 읽었던 이유다. 모두 책에 대해 쓴 책들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글은 글쓴이 자신의 이야기이다.(246쪽)

 

재미있는 글은 글쓴이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이 담긴 글이다. 흔히 만나는 책리뷰를 읽을 때도 책에 담긴 이야기보다 글쓴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더 흥미롭다. 그 때문에 소개한 책에 호감이 간다. 이 책은 60여 권의 책을 이야기 하는데도 내가 아는 책이 거의 없다. 내가 읽은 책에 대한 다른 견해를 기대하고 독후감책을 보는 데 이 책은 아니다. 작가 생각을 읽는 것만으로 흥미롭다. 작가의 생각 때문에 몇 권 구입해놓기도 했다. 책을 읽고 지축을 흔드는 충격을 나도 똑같이 느낄 수 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독후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책 자체라기보다는 독자의 처지와 조건이다. 어떤 이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책이 어떤 이에겐 지축을 흔드는 충격을 준다. (<정희진처럼 읽기>, 305쪽)

 

이 책과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두 권을 같이 읽고 있다. 차례대로 읽을 필요가 없으니 눈이 가는 대로 읽는다. 독후감이지만 사실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제목만 봐도 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이렇게 활용한다. 내 글을 쓰기 직전에 이 책을 읽는 것이다. 글쓰기 직전에 읽은 글 때문에 내 글이 미세하게 달라지는 경험을 가끔 한다. 글쓰는 스타일이 미세하게 바뀐다. 글에 줏대가 없어 그렇다. 이 책을 읽는 이유가 줏대 있는 글을 쓰고 싶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정희진처럼 말이다.

 

나는 "글은 곧 글쓴이다.(I am what i wrote 혹은 'All that me")라고 생각한다. 아니, 글만큼 그 사람 자체인 것도 없다.(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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