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분야
분야 전체
북클럽 허브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정희진 | 교양인 | 2020년 2월 19일 한줄평 총점 0.0 (19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  종이책 리뷰 (19건)
  •  eBook 리뷰 (0건)
  •  한줄평 (0건)
분야
인문 > 글쓰기
파일정보
EPUB(DRM) 48.93MB
지원기기
iOS Android PC Mac E-INK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이 상품의 태그

카드뉴스로 보는 책

책 소개

사회적 약자가 이 세상과
‘품위 있게’ 싸우는 방법, 글쓰기

죄의식 없이 누가 더 뻔뻔한가를 경쟁하고, ‘가해자’의 마음이 평화로운 사회.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왜 그렇게 분노가 많냐.”고 말하는 사회. 자녀를 잃은 슬픔을 국가 체제의 위협으로 간주하는 사회. 이런 시대에 약자가 지닐 수 있는 무기는 무엇인가?
정희진에게 무기는 바로 ‘글쓰기’다. 그에게 글쓰기는 약자의 시선으로 타인과 사회를 탐구하고 새로운 세계를 모색하는 과정이다. 내 안의 소수자성을 자원으로 삼아 ‘저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드러내는 것, 나보다 더 억울한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과 연대하면서 세상을 배우는 일이다. 이것이 정희진이 말하는 시대에 맞서 ‘품위 있게’ 싸우는 방법으로서 글쓰기다.

품위는 약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약자에게는 폭력이라는 자원이 없다. 이런 세상에서 나의 무기는 나에겐 ‘있되’, ‘적’에겐 없는 것. 바로 글쓰기다. ‘적들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사고방식. 사회적 약자만 접근 가능한 대안적 사고, 새로운 글쓰기 방식, 저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내게만 보이는 세계를 드러내는 것. 내 비록 능력이 부족하고 소심해서 주어진 지면조차 감당 못하는 일이 다반사이지만, 내 억울함을 한 번 더 생각하고 나보다 더 억울한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러면서 세상을 배워야 한다. - 머리말·14쪽

“글을 쓰는 이유에는 네 가지가 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 미학적 열정, 역사에 무엇인가 남기려는 의지, 정치적 목적.
나는 모두 아니다. 나는 승부욕이다. 나는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의 첫 번째 책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에는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여성학자 정희진의 ‘글 혼’이 담겨 있다. 이 책에 실린 63편의 글에서 저자는 글쓰기의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글쓰기의 윤리에 관해 끊임없이 성찰한다.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에서 저자는 자신의 위치를 자각한 사람에게 글쓰기의 어려움과 ‘쉽게 쓰기’는 모순되지 않음을 발견한다. “글쓰기의 핵심은 정치학”이라는 연암 박지원의 말에서 상대를 설득하고 그 과정에서 성장하려면 독자, 주제, 나의 위치를 다각도로 고려해 모든 힘을 쏟는 것이 글쓰기의 과정임을 배운다. ‘세월호’를 쓰면서는 고통을 견디는 능력은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위로하고 공감하는 사회에서만 가능함을 깨닫는다.
정희진은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쓰려면, 나부터 ‘나쁜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글쓰기는 나를 검열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동반해야 하고, 궁극적으로 나의 세계관과 인간관을 찾아가는 여정이어야 한다. 흔히 말하는 글의 문장력과 상대를 설득하는 기술은 이 ‘몸부림’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이처럼 정희진에게 글쓰기는 쾌락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주는 일이다. 그는 이런 괴로움 속에서 ‘최선의 올바름’, ‘아름다운 문장’이 나올 수 있다고 믿으며 묵묵히, 치열하게 글을 쓴다.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머리말 _ 나의 몸, 나의 무기
1장 윤리학과 정치학은 글쓰기의 핵심이다
- 정치적 행위로서 글쓰기
여기까지 _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김형경
싸가지는 정치학이다 _ 《싸가지 없는 진보》, 강준만
심서(心書) _ 《목민심서》, 정약용
미디어는 몸의 확장이다 _ 《미디어의 이해》, 마셜 맥루언
방황 _ 《대통령과 종교》, 백중현
맞아 죽은 개의 가죽으로 만든 양탄자 _ 《내 무덤, 푸르고》, 최승자
근대의 상징, 광개토왕비 _ 《만들어진 고대》, 이성시
정치적 올바름 _ 《지젝이 만난 레닌》, 슬라보예 지젝·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촉감 없는 사회 _ 《생명권 정치학》, 제러미 리프킨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_ 《숨통이 트인다》, 장서연 외
탈성장은 우파일까 좌파일까 _ 《성장하지 않아도 우리는 행복할까?》, 세르주 라투슈
운명이다 _ 노무현 전 대통령 유서
더러워진 골목길 네가 치울 거냐 _ 《표현의 기술》, 유시민·정훈이
개신교는 동성애가 필요하다 _“왜 한국 개신교는 ‘동성애’를 증오하는가”, 〈인물과 사상〉, 한채윤
전단지 돌리는 사람 _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죽음 앞에서》, 복거일
멈춤(知止) _ 《도덕경》, 노자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 _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 박근혜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옵니다 _ “신약성서”, 《성서》
무연(無緣) 사회 _ 《노년은 아름다워》, 김영옥
함께 맞는 비 _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글짓기, 글쓰기 _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박수밀
희망은 욕망에 대한 그리움 _ 《기형도 산문집》, 기형도
2장 당사자의 글쓰기는 혁명의 꽃이다
- 내용이자 방법으로서 윤리적 글쓰기
이 전쟁이 제일 큰 전쟁이다 _ 《밀양을 살다》, 밀양구술프로젝트
장애인이 공부해서 뭐하냐 _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홍은전
백인들의 말은 대단히 매끄럽다 _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켄트 너번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 마음의 밑바닥을 보는 것이었어요 _《그의 슬픔과 기쁨》, 정혜윤
극단적 현실 _ 《보다》, 김영하
고공농성 _ 《엄마 냄새 참 좋다》, 유승하·“을밀대 위의 투사 강주룡”, 박정애·〈식민지 시대 여성노동운동에 관한 연구〉, 서형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_ 《더 리더》, 베른하르트 슐링크
길, 균도(均道) _ 《우리 균도》, 이진섭
사람 곁에 사람 _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 박래군
몸의 일기 _ 《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평화 _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 김재명
반짝이는 박수 소리 _ 《반짝이는 박수 소리》, 이길보라
과거를 떠나보내는 용기 _ 《꿈에게 길을 묻다》, 고혜경
감정이입 _ 《멀고도 가까운》, 리베카 솔닛
오직 엄마 _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소크라테스 _ 《The Gay 100》, 폴 러셀
피플 _ 《혐오와 수치심》, 마사 너스바움
아만자 _ 《아만자》, 김보통
아픈 몸을 살다 _ 《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몸에 깊숙이 박힌 못을 어떻게 빼내요? _ 《길, 저쪽》, 정찬
쉽게 씌어진 시 _ 《윤동주 시집》, 윤동주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때까지 살고 싶습니다 _《인간을 넘어서》, 나카무라 유지로·우에노 치즈코
3장 글쓰기의 두려움과 부끄러움
- ‘세월호’에 대해 쓴다는 것
이차적 인간 _ 《이야기 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 수잔 브라이슨
일상과 비상의 구별? _ 《호모 사케르》, 조르조 아감벤
무명 용사의 묘지 _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 베네딕트 앤더슨
우리가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슬픔이 우리를 선택한 것이다 _ 《감정 공부》, 미리암 그린스팬
상처 입히는 기쁨 _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후지타 쇼조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_ 〈임을 위한 행진곡〉, 백기완·김종률?199
썩지 않는 사랑 _ 《모성적 사유》 , 사라 러딕
빗소리 _ 《노란 우산》, 류재수·신동일
나는 무엇을 먹을까? _ 《숫타니파타》, 법정 옮김
불안 없는 영혼이 더 위험하다 _ 《만들어진 우울증》, 크리스토퍼 레인
카프카에서 출발하여 까마귀로 끝나지 않으려면 _ 《구체성의 변증법》, 카렐 코지크
유령 팔다리 _ 《뫼비우스 띠로서 몸》, 엘리자베스 그로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_ 《구약성서》
好, 삼년상 _ “한 칸의 사이”, 〈녹색평론〉, 배병삼
아이고 사건 _ 《스물한 통의 역사 진정서》, 고길섶
잊힐 것이다 _ 《잊지 않겠습니다》, 4·16가족협의회 외
주머니 안의 송곳 _ 《삼국유사》, 일연
잠실 밖으로 던져진 누에 _ 《사라진 손바닥》, 나희덕
4·3은 말한다 _ 《4·3은 말한다》, 〈제민일보〉 4·3 취재반
부록 _ 정희진이 읽은 책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저자 소개 (1명)

저 : 정희진
융합 글쓰기·인문학 강사, 서평가. 여성주의 관점에서 공부와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서강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사회학을 공부했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여성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처럼 읽기』, 『아주 친밀한 폭력』, 『혼자서 본 영화』, 『낯선 시선』 등을 썼으며,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미투의 정치학』 등의 편저자이다. 융합 글쓰기·인문학 강사, 서평가. 여성주의 관점에서 공부와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서강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사회학을 공부했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여성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처럼 읽기』, 『아주 친밀한 폭력』, 『혼자서 본 영화』, 『낯선 시선』 등을 썼으며,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미투의 정치학』 등의 편저자이다.

출판사 리뷰

“페미니즘을 만난 나는 운이 좋았다.”

정희진은 비평, 칼럼, 논문 등을 통해 ‘남성 언어’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의 통념과 상식을 뒤흔드는 논쟁적인 글을 쉬지 않고 써 온 필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는 글쓰기의 어려움에 관한 저자의 솔직한 고민을 만날 수 있다. 머릿속 생각이 손에 이르러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고통스러운 과정, 처음 쓴 글의 망신스러움 등 글쓰기의 어려움에 관해 털어놓는 저자의 고백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다.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칼럼이든 논문이든 쉬운 글쓰기는 없다. 특히 젠더를 주제로 삼은 글은 더욱 그렇다.

문제는 ‘작가’가 다소 시끄러운 직업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글쓰기에는 사회적 책임이 따르고, 나의 관심사는 페미니즘을 비롯한 온갖 논쟁적인 주제가 대부분이다. 젠더 관련한 글은 여성도 남성도 불편하게 한다. 당파성이 뚜렷한 글이라 당파성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틀리면 틀리는 대로’ 욕을 먹는다. 격려보다는 비판이 많을 수밖에 없다. - 머리말·12쪽

“글쓰기의 윤리와 두려움을 잊지 않는 필자이기를 소망한다.”
정희진, 글쓰기의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말하다

정희진은 글쓰기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더 아찔한 절벽’인 글쓰기의 두려움도 말한다. 정희진에게 글쓰기는 “책임과 윤리를 동반하는 두려운 일이고 두려워해야 하는 일”이다. 글쓰기의 ‘3대 요소’는 정치학(입장), 윤리학(방법), 미학(문장력)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정희진에게 글쓰기의 핵심은 바로 ‘윤리학’이다.

나는 글쓰기의 ‘세 요소’가 정삼각형 같은 형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상호 보완적이거나 대립하지 않는다. 핵심은 윤리다. 소재에 대한 태도와 글쓰기 방식이 정치적 입장과 미학을 결정한다. …… 누가 말하는가. 누가 듣는가. 누구의 목소리가 큰가. 누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사람들이 듣기 싫은 말은 무엇인가. 사회는 누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가. 이러한 권력 관계의 동학은 교육 현장, 출판 시장, 미디어 같은 구체적인 장에서 어떻게 구현되는가. 글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결정하는가. - 머리말·15쪽

윤리적인 글쓰기란 무엇일까? 글쓰기에서 왜 윤리가 중요할까? 글쓰기의 윤리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정희진에게 윤리적인 글쓰기란, 타인의 이야기에 반응하고 공감함으로써 나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 나를 타인과 연결하여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반응하지 않고 ‘감정 이입’이 없는 글쓰기는 불가능하다. 타인의 속으로 들어가야만 타인의 현실을 알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글쓰기에서 윤리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우월한 자신’을 재생산하는 글쓰기, 지배와 보편 규범을 재생산하는 글쓰기가 나올 뿐이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어떤 경험일까. 함께 느끼고, 상대를 위해 느낀다. 고통받는 사람에게 감정 이입하는 경청은 나도 당사자가 되는 ‘엄청난’ 일이다. 감정 이입이란 자신의 테두리 밖으로 나와서 여행하는 과정, 자신의 범위를 확장하는 일이다. 감정 이입을 두려워한다면 성장할 수 없다. - ‘감정 이입’·148쪽

[내용 구성]

1장 윤리학과 정치학은 글쓰기의 핵심이다
- 정치적 행위로서 글쓰기
1장은 글쓰기에서 윤리학(문장력)과 정치학(상대를 설득하는 기술)이 구현되는 방식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글을 모았다. 정희진이 중요하게 다루는 글쓰기 방법론인 ‘윤리적 글쓰기’와 ‘정치적 글쓰기’를 큰 줄기 삼아, 저자의 독창적 사유와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면면을 들여다본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1991년 이 시를 썼을 당시 안도현은 전교조 해직 교사였다는 저자의 소개와 해석을 읽고 반전이 일어났다. 그가 옳았다. 그의 정보 덕분에 이 시는 나의 시가 되었다. 이 시의 제목이 〈너에게 묻는다〉라는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
시인을 최고의 지식인으로 생각하거나 자부하는 이들이 있다. 나도 그런 축이다. 시는 언어들의 언어, 메타포이기 때문이다. 은유는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 시 한 줄이 사전 한 권이 될 수도 있다. 시인이 왜 잘났겠는가? 언어를 창조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더러워진 골목길 네가 치울 거냐’·65, 66쪽

이제는 고전이 된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이나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모두 그들이 20대 중반에 쓴 작품이다. 자신이 피억압자라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해 사회운동에 헌신하면서 그 과정의 분노와 열정이 걸작이 된 경우다. 글쓰기의 목적이 사회 변화에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글쓰기 자체가 사회를 다시 짓는 과정이다. 글쓰기의 목적은 결과에 있지 않다. 과정이 선하고 치열하면 결과도 그러하다. 글쓰기는 다른 삶을 지어내는 노동이다. - ‘글짓기, 글쓰기’·90, 91쪽

대중에게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바쁜 이들은 주로 정치인과 종교인이다. 요즘은 지식인이나 사회운동가도 힐링이라는 이름의 희망을 말하는데 이건 진짜 절망적인 현상이다. 그들의 임무는 고통을 드러내고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
희망은 바라는 것이므로 어차피 현재에는 없다. 내가 생각하는 ‘희망’의 문제는 두 가지다.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다. 맞다. 하지만 희망과 현실을 대립적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이런 좌절이 오는 것 아닐까. 현실의 일부인 ‘어두운’ 현실을 드러내면 희망이 없어지는 것처럼 생각한다. - ‘희망은 욕망에 대한 그리움’·110, 111쪽

2장 당사자의 글쓰기는 혁명의 꽃이다
- 내용이자 방법으로서 윤리적 글쓰기
2장에는 여성, 장애인, 암환자, 치매 노인 등 사회적 약자의 ‘자기 현실 쓰기’, 즉 자기 위치를 자각한 당사자의 글쓰기가 지닌 힘을 보여주는 글들이 실려 있다. 정희진은 훌륭한 저작이 되려면 지식의 축적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당사자가 자기 현실을 쓰려면 공감받기 어려운, 헤쳐도 헤쳐도 계속 달려드는 칡넝쿨을 쳐내야 한다.” 통념과 상식에 도전하여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사회적 약자의 글쓰기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장애인이나 여성이 자기 언어를 지니는 것은 지식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전복적인 행위다. 사회적 약자에게 공부는 취업, 성장 같은 당연한 의미 외에 자신의 삶과 불일치하는 기존의 인식 체계에 도전하는 무기가 된다. ……
장애인에게 공부의 의미는 이동, 관계, 투쟁……. 그리고 내가 알 수 없는 그 이상일 것이다. “장애인은 공부해도 어디 가서 써먹을 데가 없다.”는 생각은 현실과 정반대다. 공부야말로 사회적 약자가 해야 가장 효과적이다. 언어는 그들의/우리의 유일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 ‘장애인이 공부해서 뭐하냐’·105쪽

대중적인 글은 쉬운 글일까? 아니, 대중이 존재하기나 하는 것일까. 대중은 균질적이거나 실체적인 집단이 아니다. 모두가 만족하는 글은 가능하지 않다. 대중적인 글을 지향하는 것은 글을 못 쓰는 첩경이다. 안 되는 일을 어떻게 되게 하겠는가. ……
익숙한 말은 진부하게 여기고, 어렵다고 느껴지는 말에 호기심을 보이는 사회가 창조적인 사회가 아닐까. 사회적 약자가 경험을 드러내면 ‘사소한’ 것인데도 불안하게 느껴지고, 가진 자의 논리는 편안하게 느껴지는 사회에서 인간성은 어디를 향하게 될까. - ‘백인들의 말은 대단히 매끄럽다’·107~109쪽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글은 자기 시각은 없으나, 자기 뜻대로 쓰는 이른바 ‘객관적인’ 것들이다. 세상사를 전유(專有)하면서 스스로를 인간의 기준이라고 선포하는 글. 기회주의와 보신주의를 중립과 보편, 심지어 정론으로 포장한 것들이다. 거리를 ‘잡는 것’(포지셔닝 혹은 주제 파악)은 극도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거리 두기와 동일시는 자신을 이동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에서 동일하다. 반면, 자신을 변화시켜야만 가능한 공감과 연대는 어렵다. - ‘극단적 현실’·116쪽

3장 글쓰기의 두려움과 부끄러움
- ‘세월호’에 대해 쓴다는 것
3장에서는 이 시대에 ‘세월호’에 대해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찾고자 한 저자의 치열한 고민이 담겨 있다. 정희진은 2014년 4월 16일 이후 오랫동안 자신이 쓴 거의 모든 글이 세월호에 관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잊지 않겠다.”, “그만 울자, 산 사람은 살아야지.”, “불순파 유가족, 순수파 유가족”까지 세월호를 둘러싸고 등장했던 다양한 발화를 살펴보면서 세월호에 대해 말하는 방식을 다시 생각한다.

자녀의 죽음, 전쟁에서의 생존, 홀로코스트, 집단 성폭력, 지진……. 정말 신은 인간이 감당할 만한 고통만 주실까. 인간은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는가. 이는 어떤 조건에서만 맞는 말이다. 고난을 견디는 능력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위로하고 공감하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피해자와 잠재적 피해자들의 상부상조와 이를 지지하는 사회. 이것이 정의다. - ‘이타적 인간’·180쪽

“우리가 슬픔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슬픔이 우리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 고통받는 인간은 선택받았다. 누구도 이런 선민이 되고 싶지 않겠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인간의 조건인 것을.
다만, 사회는 이들에게 “(힘이 없는데) 힘을 내라.”,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은데) 잊어라.”, “(이미 너무 참고 있는데) 참아라.”, 심지어 착취 구조에 갇힌 사회적 약자에게 “왜 그렇게 분노가 많냐.”고 분노하지 않기를 바란다. 돕고 싶다면 그들의 분노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 가장 비윤리적인 분노, 그래서 참아야 할 분노는 딱 하나, 분노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다. - ‘우리가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슬픔이 우리를 선택한 것이다’·193, 194쪽

눈물을 금지하는 원리는 같다. 어렸을 적 부모나 교사에게 억울하게 혼났을 때 울면 안 된다. “뭘 잘했다고 울어!” 한 대 더 얻어맞기 십상이다. 때린 사람은 우는 사람이 불편하기 마련이다. 가해자의 논리는 “(나는 가해자가 아닌데) 네가 우니까 내가 가해자가 된 것 같아 기분 나쁘다. 고로 네가 가해자.”다. 자기 행동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고 심지어 동의와 웃음을 강요한다. 아이고 사건은 눈물이 불법을 넘어 체제 위협으로 간주된 예다. 눈물=체제 위협. 눈물은 힘이 세다.
눈물은 정치적이다. 그래서 ‘아이고 사건’은 어디에나 있다. 여론이 약자에게 동정을 보일 우려가 있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은 걷잡을 수 없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 ‘아이고 사건’·235, 236쪽

종이책 회원 리뷰 (19건)

정희진 1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싱* | 2022.02.13

 세월호 이후에 쓴 서평 묶음집이라는데 현재(정치)에 대입해도 무방할 말들이라 소름끼쳤다. 오지라퍼의 성향을 어쩌지 못하고 헤매는 요즘이다. 말은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고.. 바쁜 지인에게 글을 쓰라고 권해서.. 보호자 역할을 대행하던 사람이 사라져서.. 갑작스런 의료진 교체로 심란하다고 둘러댔지만 사실은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대한 스트레스가 높았다. 특정 후보를 반드시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 않지만 적어도 여러모로 아닌 사람이 집계 현황에서 선두로 달리는 게 불편하고 걱정돼서 뒤숭숭함을 핑계 삼아 방황했다.

 그러다가 조금 늦게 읽은 정희진의 글이 나를 중심 잡게 한다. 공통으로 모아볼 수 있는 철학과 소신을 토대로 날카로운 진단과 처방을 제시한다. 다시 암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의지와 국민의 집단 지성과 성찰을 믿고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선을 다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정한다. 지금 느끼는 슬픔과 우울과 분노의 감정이 아주 나쁜 것도, 이례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는다. 감정과 이성을 잘 써서 삼월 구일 날개 없는 추락만은 막자.

 

 마음이 없는 리더. 그런 리더를 선택하는 사회. 두렵고 심각한 현상이다... 이미 극소수는 양극화를 넘어 다른 공간에 산다. (31)

 언제 어디서나 모욕이 일상인 사회다... 그 정도까지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왜 자기한테도 불리한 오버를 할까. (42)

 세상의 기능을 자기 목적을 위해 동원하는 경지. 남의 생명과 상처는 귀찮을 지경이다. 시야는 미간의 폭보다 좁아져 점이 되었다. (43)

 정치인, 종교인, 지식인은 성찰이 업무이다. 따라서 이들의 생각하지 않음은 죄악이다. (55)

 착취와 규정으로 사회적 약자나 자연을 통제하는 사고방식, 이것이 포식이다. (60)

 지금 여기는 각자도생, 누가 더 뻔뻔한가를 경쟁하는 곳이다. 공식적, 비공식적 약탈 능력과 무지가 권력인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이다... 매일매일이 괴로운 뉴스다. 타락이 공기와 같고 언어도단이 일상이다. (75)

 그런데 세상이 좋은 글로 충만하지 않은 걸 보면 아무리 글쓰기 책을 읽고 노력한대 해도 자기를 이기기는 힘든가보다. 나도 늘 길이 아님을 알면서도 가르침대로 쓰지 못하고 성질대로 쓰다가 길을 잃는다. (89)

 글쓰기 자체가 사회를 다시 짓는 과정이다... 과정이 선하고 치열하면 결과도 그러하다. 글쓰기는 다른 삶을 지어내는 노동이다. (90-91)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인간은 무엇인가의 볼모가 된다. 희망은 욕망이 포로를 부드럽고 아름답게 조종하는 벗어나기 어려운 권력이다. (95)

 대한민국은 정말 생각이 필요하다. 답이 안 나오는 나라지만 그럴수록 더욱 생각하고 생각을 나눠야 한다. (101-102)

 사회적 약자가 경험을 드러내면 사소한것인데도 불안하게 느껴지고, 가진 자의 논리는 편안하게 느껴지는 사회에서 인간성은 어디를 향하게 될까. (109)

 그러니 거짓말을 하더라도 빈 머리(익숙함)에 의존하지 말고 생각하고 발언하라. (109)

 삶은 옳고 그름이나 일의 가치를 기준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그냥 사는 것,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반대로) 전쟁은 이런 것이 있다는 가정, 즉 정치경제적 이유와 진리는 하나라는 확신 때문에 발생한다. (124)

 사람이 하는 일과 사람의 질은 반비례할 수도 있다. (132)

 같은 몸은 없다. 몸의 다름이 정치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135)

 성별, 장애, 외모의 위계는 몸에 대한 사회적 해석이다. (141)

 감정이입이란 자신의 테두리 밖으로 나와서 여행하는 과정, 자신의 범위를 확장하는 일이다. 감정 이입을 두려워한다면 성장할 수 없다... 타인의 속으로 들어가야 타인의 현실을 알 수 있다. (148)

 더구나 은 원래 이해 불가능한 인간사다. 이해는 밑에 서야 보인다(under/stand). (152)

 인간은 제도의 산물이다. (154)

 보편성은 언제나 특수성이라는 범주를 고안하여 권력이 필요에 따라 특정한 인간을 배제한다. (155-156)

 모욕 주기는 권력 남용을 넘어 인간성 타락이다. (158)

 고난을 견디는 능력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위로하고 공감하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피해자와 잠재적 피해자들의 상부상조와 이를 지지하는 사회. 이것이 정의다. (180)

 심지어 착취 구조에 갇힌 사회적 약자에게 왜 그렇게 분노가 많냐.”고 분노하지 않기를 바란다. 돕고 싶다면 그들의 분노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 (194)

 실력도 없고 불성실한 데다 약자에게 함부로 하는 타입의 출세에 미친인재(재앙)들이 인재 행세를 하고... 능력 없고 부패한 자의 자신감이 곳곳에서 칼과 돈, 웃음을 팔고 있다. (196-197)

 회피와 침묵. 비는 계속 내리는데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무서운 일이 있을까. (208)

 피로감의 출처는 어디인가... 적반하장이 분노에서 가치관의 혼란과 자기 검열을 거쳐, 집단 우울증을 낳았다. (215)

 세월호가 정치권 핵심부의 비리라는 항간의 소문이 사실인가 보다. (235)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접어보기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b*******y | 2021.12.31

책의 첫부분부터 나의 고정관념을 깨는 문장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품위는 약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약자에게는 폭력이라는 자원이 없다. 이런 세상에서 나의 무기는 나에겐 '있되', '적'에겐 없는 것. 바로 글쓰기다. - p.14

이 책은 글쓰기 방법을 알려주는 형식의 책은 아니지만, 이렇게 글을 쓰면 되겠구나를 알게 해준다. 더불어서 글쓰기에 도움이 될 가치 있는 소스들을 제공하고 있으니, 책에 등장하는 자료들을 따라서 읽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다보면 사회와 사람을 보는 눈이 길러지지 않을까 싶다.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는 나쁜 사람을 상대하기 위한 글이기 때문에 답답하고 슬픈내용이 많다. 하지만, 작가가 그것을 충분히 꼬집어주고 있기 때문에 어떨때는 읽으면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상처는 재해석될지언정 사라지지 않는다. "너는 아프니? 나는 안 아픈데. 마음을 비우면 되거든." 시장에 넘치는 힐링서 중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문제를 피해자의 마음 탓으로 돌리는 책들이 많다. 어디를 비우라고? 마음은 몸인데 비우면 죽지 않을까? (남들에게 비우라고 말하기 전에 '멘토'들은 자기 마음, 아니 통장부터 비우기 바란다.) - p.192

 

글쓰기 시리즈의 첫편이고, 그 뒤로도 후속편들이 나왔다고 알고 있는데 차근차근히 모두 읽어보고 싶다. 다 읽고 나면 적어도 문장 한 줄 정도는 내 마음대로 쓸 수 있겠지.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접어보기
[독립 북클러버 26기 - 왠지 클래식한 떡볶이]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리뷰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퍼* | 2021.12.30

 

예스24의 분류에 따르면 이 책은 "인문" 분야를 거쳐 최종적으로 "글쓰기 일반" 카테고리에 포함되어 있다. 작문을 주로 다루고 있다기보다는 저자가 읽은 책의 내용과 서평에 기반하여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바라보는지에 대해 쓴 글이다. 나는 이 책을 보는 동안 인문·사회학 서적을 읽는 느낌을 받았다. 문장 하나하나에 감탄하면서 그 문장을 통해 나의 태도와 시선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취는, 글쓰기를 대하는 각오나 마음가짐뿐 아니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현상의 단면을 다른 시각으로 전복하여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16쪽), 곱게 늙는다는 말의 차별과 폭력성(82-83쪽), 희망의 허상과 오해(94쪽), 인생을 '길'에 비유하는 것의 배타성(127-128쪽), "사는 대로 생각하지 말고 생각하는 대로 살자"라는 경구에 대한 비판, 평화에 대한 해석과 재정의(139쪽), 사회 구조와 개인의 관계성(63쪽, 207쪽) 등, 나의 사유가 얼마나 얕은지 책을 읽는 매 순간 무자비하게 깨닫는다.

 

문장도 너무 좋다. 다 옮기지 못해 몇 자만 적어본다. 
 

16쪽.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쓰려면, 나부터 ‘나쁜’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과정은 나의 세계관, 인간관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나를 검열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감당하지 못하면 글쓰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글쓰기의 정치학과 미학은 이 몸부림 과정의 ‘자연스러운’ 산물이다. 사람마다 행로가 다르기 때문에, 이른바 독특한 글(콘텐츠)이 나올 수밖에 없다. 흔히 결과보다 과정이라는 말의 의미는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는 군자의 비현실적인 말이 아니라, 과정에서 결과가 나온다는 뜻이다. 괴로운 과정에서 ‘최선의 올바름’, 아름다운 문장이 나온다.


23쪽. 
삶과 죽음의 유일한 차이는 행이든 불행이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가능성이다.


36쪽. 
매체가 많아지고 간편해질수록, 사용자가 많아지고 중독될수록 소통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51쪽. 
사회는 서로 충돌하는 가치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어떤 올바름은, 필연적으로 다른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83쪽. 
이 책의 주인공들은 ‘노년인데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치열하고 성실하게 사는 아름다운 개인일 뿐이다.


93쪽.
희망은 삶에 대한 특정한 사고방식을 집약한다. 미래 지향, 긍정, 바람...... 사람들은 이 말을 편애한다. 희망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표현 그대로 생각하면 절망(切望)이 희망적이다. 절망은 바라는 것을 끊은 상태, 희망은 뭔가 바라는 상태. 어느 쪽이 더 ‘희망적’인가?


105쪽. 
그들의 시간은 사회의 것이다. 근대 초기 미국에서 초등학교 의무 교육 제도가 도입되었을 때도 주부와 노예는 예외였다. 인간은 스스로 대단한 문명인이라 생각하지만 차별의식은 문명의 몇 배를 앞서간다.


115쪽.
현실과 너무 먼 이야기도, 너무 가까운 이야기도 감상을 방해한다. 지식은 중간에서 나온다. 삶이 너무 안락하면 글을 쓸 이유가 없고 너무 고단하면 여력이 없다. 


127쪽. 
삶과 실제 길은 다르다. 길을 인생에 비유하는 것은 모든 이에게 길이 있다는 착각을 준다. 


128쪽. 
길이 막힌 사람에게 길은 비유가 될 수 없다. (중략) 이처럼 비유는 종종 비윤리적이다. 


139쪽. 
평화?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평화는 인간의 심장이 꺼질 때에야 찾아온다. 
(중략)
평화는 상태가 아니라 관계다. 


148쪽. 
감정 이입이란 자신의 테두리 밖으로 나와서 여행하는 과정, 자신의 범위를 확장하는 일이다. 감정 이입을 두려워한다면 성장할 수 없다. 


149쪽. 
글이란 자기 생각을 외부로 물질화하는 일


151쪽. 
나는 이 책을 읽고 '내 인생의 책'뿐만 아니라 '내 인생의 저자'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155쪽. 
나는 "동성애에 반대하는가?"란 질문이나 "좋아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질문 자체가 폭력인데 답할 필요가 있을까. 나라면 "이성애와 동성애의 구분에 반대한다."고 말할 것이다. 


192쪽. 
복수하거나 참거나. 상반되는 대처 방식 같지만 둘 다 피해자만 파괴된다. 
상처는 재해석될지언정 사라지지 않는다. 

 

206쪽.
빗소리는 비의 지문이다. 비가 닿는 곳에 따라 빗소리는 만 가지 소리를 낸다. 


207쪽. 
비가 피할 수 없는 구조라면 빗소리는 구조에 대한 개인의 반응이다. 그래서 비 온 뒤 상황은 동일하지 않다. 

 

작가는 114쪽에서 "오랜 시간 찾아 헤매던 말이 정확하게 표현된 글을 읽을 때 살아 있는 기쁨을 느낀다"고 썼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런 마음을 느꼈다. 저자의 치열한 사유의 산물인 문장들 속에서 공감하고 분노하고 생각하고 다짐했다. 

윤리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이다. 내가 감히 이 책을 고통과 공감의 윤리학으로 칭하여도 될까.

사회적 약자로서 나 또한 나만의 무기를 갈고 닦기 위한 수련을 지속해 나가고 싶다. 좋은 글들을 나침반 삼아.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접어보기
  •  종이책 상품상세 페이지에서 더 많은 리뷰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한줄평 (0건)

0/50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