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란 저
찰스 화이트필드 저/김세영 역
클라우디아 하르만 저/홍민경 역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모의 숱한 시행 착오 속에서 한 명의 인격체가 성인으로 성장한다. 그들의 노력에 경외를 표한다. 그들이 기울인 최선의 노력을 나로서는 따라잡을 길이 없다. 최고가 아니기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발생한 모든 일들이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한다. 차라리 아이를 낳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의지할 존재라곤 부모밖에 없는 아이에게 실로 무자비한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부모를 볼 적마다 그와 같은 생각이 치솟는다. 저 아이가 평범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정말이지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리라는 게 빤히 보여서다. 상황이 그러함에도 자신은 진심으로 애썼다고 말하는 부모에겐 쓴소리도 맘껏 퍼붓고 싶다. 만일 그 주장이 진심이라면 당신의 그릇된 믿음이 나은 결과를 두 눈으로 톡톡히 확인하라고 외치고 싶다.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라는 제목은 왠지 자극적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쁜 엄마 하나 발견하는 일이 아예 불가능하진 않다지만, 이와 같은 일인칭 문장이 성립하는 일은 잦지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일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공개적으로 책을 통해 제 경험을 고백하는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성장 과정이 마냥 화목하진 않았다. 그와 배우자 모두 알코올로 문제를 겪는 부모가 있었다. 시대가 한 번 결혼한 사람들이 헤어지는 일을 탐탁잖게 여겼다. 병리적인 관계를 인지했더라도 가정을 지켜내야만 한다는 사명감을 내려놓을 수가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엄마처럼(혹은 아빠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은 결혼할 상대를 고려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아예 술을 마시지 않는 이를 택함으로써 저자는 지난날 자신과 형제들, 제 어머니가 겪은 문제를 원천봉쇄하는데 성공했다. 문제가 술뿐이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세상 일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았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남편은 주춤거리며 선택을 미루었다. 우유부단함은 저자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행동토록 이끌었다. 남편이 어려워할 적마다 자신이 나서서 일을 처리했고, 일말의 저항감을 남편이 드러낼 때면 어르고 달래가며 남편으로 하여금 자신을 따라오도록 만들었다. 아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남들보다 예민하고 세심한 아이다. 휘청거리는 모습이 안스러운 나머지 포기라는 카드를 꺼내 들어도 지지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힘든 건 아들 존이라며, 아직은 세상에 맞설 준비가 되지 않은 아들을 지키려 나섰다.
그는 자신을 가리키며 인에이블러(Enabler)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우리식으로 풀자면 조력자 정도 될까? 하지만 이는 진퇴양난 기로에 놓인 이가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이끌 수 있는 긍정적 존재와는 사뭇 달랐다. 자신은 도와주고 있다고 철썩 같이 믿는데, 실상은 오히려 상대를 망치고 있는 경우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실례로 나는 판단이 껄끄러울 때마다 침묵을 하거나 아예 뒷걸음질치는 성향을 지녔다. 차라리 내 삶을 다른 이가 살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비현실적인 바람을 내비치기도 한다. 이럴 때 저자가 나서서 나를 대신해 모든 걸 행한다면 결과는 어떠할까? 그의 결단력은 남편과 아들이 어려운 순간마다 빛을 발했다. 이 말은 일가견이 있으나 어디까지나 단기적으로만 그러하다. 살면서 비슷한 상황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고, 인간의 성향이라 하는 것도 아마 유사한 방식으로 발현될 것이다. 지난번에 아내가, 엄마가 나를 대신해 어려운 상황에 나서줬으므로 그들에겐 지금의 어려움이 최초인 것 마냥 낯설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한두 번 부닥치며 해결해보고자 안간힘을 썼더라면 문제의 해결에는 실패했을지라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면 되는지가 머릿속에 그려질 테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럴 기회를 누리지 못했다. 다양한 변수로 인해 상황이 지난번과 완전 동일하진 않더라도. 내가 반응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도를 조금은 높일 수 있었을 것이나 그마저도 이룰 수가 없었다. 조력자 덕에 위기 상황은 모면하는 대신 마치 백지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은 두려움을 덜어내는 일은 실패했다.
조력자에게 모든 짐을 지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가 보여준 조력자다운 태도가 생존을 위한 방편이었음을 언급했다. 술에 취해 무기력한 남편이 스스로 일어서도록 놔뒀더라면 자신과 아이 여섯은 가정을 잃는 불상사를 마주했을 수도 있다. 그의 어머니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슬프게도 가정이 유지되는 대신 남편은 영영 성장치 못했다. 왠지 이와 같은 역기능은 우리 사회에서도 쉬이 엿볼 수 있지 싶다.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설계하는 일에 앞장서는 열의 있는 부모, 소위 명문대로 일컬어지는 곳에 진학하기 위해 태어난 것만 같은 아이들의 삶. 우리 사회의 조력자들이 분주히 움직임으로써 몸만 성인인 아이어른이 급증하고 있는 현실이 과연 옳은지, 반추해보게 됐다.
책 소개를 읽다가 내용에 무척 관심이 가서 찾아 읽었다.
저자 앤절린 밀런은 초등학교 교사였고 가족관계학, 상담 심리학을 전공한 교육자로 네 자녀의 엄마이다.
이상적인 엄마가 되는데 실패했다고 고백하며 변화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88년 출간이래 30년간 꾸준히 사랑받은 스테디 셀러로 모든 부모를 위한 심리 에세이다.
인에이블러(조장자)라는 말이 먼저 와 닿는다.
그들은 남들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자리에 있기 위해 자기 삶의 상황을 조종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의존자를 계속 허약하고 무기력한 사람으로 취급해서 자신의 곁에서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의존자는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자립할 힘을 잃고 인에이블러의 부수물로 살아간다.
이러한 행위는 뮌하우젠 증후군과 다를 바 없다.
이들은 헌신적이고 박애적인 찬사를 얻기 위해 주변 인물이나 애완동물을 의도적으로 병들게 만든 뒤 헌신적으로 돌본다.
스티븐 호킹 박사의 둘째 부인인 일레인이다.
조금 다르지만 누군가의 심리적 건강을 저해하고 건강한 성장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정서적 학대로 간주 될 만하다.
저자는 자신의 남편 스텐이 불안증이 심해지면서 불필요한 감정적 고충을 덜어주려고스스로 문제를 도맡아 주위 상황을 처리했다.
그러면서 점점 책임을 면제하기 위한 구실로 작용했다.
인에이블러의 가장 큰 덕목은 용서하는 것이다.
용서하는 척하면서 의존자들에게 평생 겁을 먹을 만큼 죄의식을 듬뿍 쌓아줄 수 있다.
낮은 자존감으로 인한 결과이다.
강인한 인에이블러는 나약한 의존자가 실제로 성공해서 더는 자신을 필요호 하지 않거나 원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 한다.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선택ㅇㅣ 그들의 문제이고 전략을 개발해야하는 사람들도 그들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저자는 조장하는 습관을 버리려면 인에이블러임을 인정하고, 책임을 시인하고, 조장 행위를 끝내도록 헌신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인에이블러와 의존자의 관계를 벗어나 스스로 변화하는 방법과 자신의 조장 행위를 막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실전 가이드로 인에이블러에서 벗어나기 위한 단계별 훈련이 수록되어 있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나 역시 조장자가 아닐까?
조장자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 된다.
많은 것들을 새롭게 생각하게 하는 의미깊은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