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월의 세 번째
조조 모예스 "호스 댄서 "
프랑스 소뮈르의 젊은 기병 장교중의 최고의 기수였던 앙리.. 기수로서의 최고의 영애인 '위대한 신'으로서의 장래를 뒤로하고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영국의 평범한 시민으로 정착한 앙리..
뒤늦게 얻게 된 손녀 사라와 사라의 분신과 같은 말 부셰.. 그러나 그들의 삶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앙리의 뇌졸증과 가난으로 균열이 이루어지고 결국 사라는 위탁 가정에 맡겨지게 된다.
우연한 기회에 사라를 맡게 된 너태샤와 맥.
그들은 현재 아직 이혼 서류에 도장만 찍지 않은 부부.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는 그들이지만 사라를 통해 자신들의 관계를 회복하고 서로에 대해 몰랐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들을 확인해 나간다. 미비포유 이후의 조조 모예스 작품을 꾸준히 읽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글을 통해 다양한 인간 관계 특히 가족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점점 가족 구성원이라는 것이 정형적인 틀에서 벗어나 다양화 되고 있는 요즘 구성원의 다양함도 그 기저에서 서로에 대한 배려와 신뢰,경청 그리고 진심이 바탕이 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게 된다.
그녀의 후속작중 아직 미비포유를 능가하는 것은 없는 듯 하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말들은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천성적으로 겁이나 걱정이 많고 성질도 까다로운 단점이 있지만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해주느냐에 따라 정직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린 아이와 마찬가지로 상대에게 또 한 번 기회를 주는 것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개들이 두들겨 맞은 후에도 저항하지 않고 다가와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과는 달리 말들은 토라지면 결코 쉽게 다가오게 놔두지 않는다. (p55)'
'말을 온당하게 이끌 수만 있다면 말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동작을 수행할 수 있어요. 닫혀 있는 문을 열어서 무한한 능력을 들어내도록 하는 거예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원해서 하게 해야하죠. 바로 그때 그 말은 최고가 되는 거예요. (p289)'
'어떤 동물이 모든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한다고 해서 당장 불합격 판정을 내리는 것은 불합리하다.
뭐든 처음에는 부족하기 마련인데, 그것은 능력이 아니라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크세노폰, [기마술]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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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모예스의 소설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알게 해준 책. 68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에 이걸 언제 다 읽나 살짝 걱정은 했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오히려 그 긴 이야기 내내 얼마나 많은 감정을 소모할지를 걱정하는 게 옳았다. 너태샤와 맥이 여러 가지 일로 부딪히거나, 할아버지가 쓰러진 후 사라의 처지가 나빠질 때마다 '이보다 더 최악일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을 넘어서면 그보다 더한 위기가 찾아왔다. 마찬가지로 인물들 간의 갈등이 조율되고 희망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장면 역시 '이대로만 행복해지면 좋겠다' 싶은 마음으로 보고 있으면 그다음에는 더한 기쁨과 더 커다란 희망이 등장하곤 하니 행복과 위기 사이의 한도가 어디까지 일지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강도가 점점 커지는 위기와 행복이 번갈아 오거나 동시에 진행되곤 해서 그 낙차에 휘둘리는 게 정말 즐겁기도 했지만 다 읽고 난 후의 피로감이 의의로 상당했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음껏 휘둘릴 작정으로 단번에 읽어버리길 추천하겠다.
소녀와 말을 앞세우고 있지만, 이 책은 부모와 아이에 대해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매컬리 부부의 사이가 소원해진 이유 중 너태샤의 반복된 유산이 언급되고, 너태샤의 새로운 연인 코너와의 관계에서도 코너의 두 아이가 등장하며 "너태샤, 당신은 아직 자식이라는 존재를 잘 몰라" 라는 코너의 대사가 나오고,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을 변호하는 너태샤의 업무, 아이들에게 휘둘리는 너태샤의 언니 이야기, 사라에게 좋은 보호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너태샤와 맥의 다양한 시도,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에 찾아온 선물 같은 아이 등등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이야기되는 경우는 몇 번 없지만, 이야기 전반에 걸쳐 성장 도중의 아이들의 미숙함과 그 미숙함을 감당하고 보살펴줘야 할 어른들의 의무, 그 피로감과 특별함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말과 아이들이 겹쳐 보일 때가 꽤 있었다. 기본적으로 돌봐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부분이 그랬고, 말에 대한 여러 가지 묘사와 말을 돌보거나 훈련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조언들(예를 들어 앙리 할아버지가 사라에게 가르쳐주는 표현이나, 각 장의 본문이 시작되기 전 작은 글씨로 쓰인 크세노폰의 『기마술』의 내용들)이 아이들을 키우는 데 필요하고 주의해야 할 점들과 그리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 사람과 말의 관계, 혹은 그저 사람 대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서로의 신뢰관계를 쌓는 과정은 비슷하다. 서로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며 온전히 상대방을 믿을 수 있는지 가늠해보는 것이다. 누군가를 온전히 믿고 자신의 문제나 비밀을 전부 털어놓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책에선 아이들이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리란 착각에 빠지거나, 타인에게 말했을 때 자신을 믿어주지 않을 거란 불신감에 의지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게 아이들만이 가진 모습일까. 많은 어른들 역시 자신의 문제를 혼자서 해결하려 들고 타인에게 쉽사리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다만 조금 더 살아온 만큼의 경험과 지식과 경제력이 쌓여서 아이들과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진정한 어른들은 그 약간의 차이로 아이들을 도우려 한다. 책을 읽고 나서 문득 나는 자라면서 가족 혹은 누군가에게 나의 문제를 온전히 털어놓고 믿고 기댄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제법 나이를 먹은 지금 내게 모든 문제를 말해주며 온전히 자신을 기대어온 사람이 있었는가도. 만약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대답이 "있었다"라면 있었다면 그 누군가는 아마도 가족이었을 확률이 높지 않을까.
사라가 너태샤와 맥에게 쉽사리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무모한 시도와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이 안타까웠고, 할아버지의 병실을 사라와 부의 사진으로 가득 채워준 맥의 상냥함이 좋았으며, 말투가 냉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 모습도 나다움이란 걸 깨닫고 사라에게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며 도움을 받으라 말을 건네는 너태샤의 당당함이 멋졌고,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나고 많은 일들을 겪은 후에야 너태샤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눈물을 흘리는 사라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이 책은 말과 기수가 한 몸이 되어 완벽하고 멋진 동작을 완성하기 위해 말을 훈련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족이나 사람 간 관계에 있어서 서로에게 더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