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드 버크 평전을 왜 출간하는가?대한민국은 몇 년 전부터 총선과 대선, 지방선거에서 진보 세력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보수와 진보의 심각한 세력 불균형을 초래했다. 보수 세력의 몰락으로 진정한 의미의 ‘보수주의’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 세력은 스스로를 성찰할 능력도 의지도 없이 갈 길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다. 진보 세력도 힘의 불균형 속에서 긴장의 고삐가 풀린 채 기득권 집착에 여념이 없는 듯하다. 보수와 진보의 세력 불균형은 양쪽 모두에게,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에 독이 되고 있는 셈이다.작금의 총체적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보수가 회복되고 바로 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수주의’가 과연 무엇인지 그 본질부터 되돌아봐야 한다. 정치가로서 에드먼드 버크의 생애는불의와 권력 남용에 대한 투쟁이었다『보수주의의 창시자 에드먼드 버크』는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에드먼드 버크 평전이다. 영국의 현직 하원 의원인 제시 노먼이 18세기 영국 하원 의원이었던 에드먼드 버크의 생애와 사상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제1부는 버크의 생애를 다루고 제2부는 버크의 사상을 다룬다. 제1부에서는 아일랜드에서 나고 자란 어린 시절부터, 잉글랜드에서 정치계에 입문하여 하원 의원으로 활동하고, 인생의 정점에 [프랑스혁명에 관한 고찰]을 집필한 뒤 세상을 떠날 때까지 버크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저자는 팸플릿, 연설문, 서신, 책, 잡지, 신문, 그림 등 풍부한 사료를 인용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묘사한다. 버크의 생애를 이해하려면 그 맥락인 18세기 영국과 유럽 대륙의 역사와 정치, 철학 등에 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한다. 다행히 역자가 한국 독자들에게 생소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 용어에 관한 옮긴이 주를 충실히 추가해 독서에 큰 도움을 준다. 제1부는 버크가 정치가로서 일생 동안 이어간 다섯 차례의 정치 투쟁을 주요하게 다룬다. 버크는 아일랜드 가톨릭교도에 대한 평등한 대우를 강조했고, 아메리카에 있는 13개 영국 식민지에 대한 영국의 억압에 반대했으며, 행정 권력과 왕실의 공직자 임명 권한을 헌법적으로 제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도에서 동인도회사가 휘두르는 기업 권력에도 반대했다. 무엇보다도 프랑스혁명이 미칠 해악에 반대한 것이 가장 유명하다. 이러한 투쟁들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주제는 불의와 권력 남용에 대한 혐오였다. 버크는 정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과 선견지명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내다보았다. 영국이 아일랜드를 통치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대부분 예측했다. 영국은 아메리카 식민지들을 잃게 되고, 동인도회사는 무리하게 팽창하며, 프랑스혁명은 참혹한 결과를 낳게 된다고 예언했다. 버크의 예리한 정치 분석 능력의 바탕에는 그의 탁월한 사상과 철학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상가로서 에드먼드 버크의 정치철학은극단주의에서 벗어난, 온전한 사회질서를 추구했다버크는 역사상 드물게 현실 정치가이면서 정치사상가로 활동한 인물이다.버크의 정치철학은 사회의 본질과 인간의 안녕에 대한 깊은 사유에서 비롯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 현장에서 몸소 겪은 경험을 통해 형성되었다. 제2부에서는 버크의 사상이 탄생하게 된 사회적·정치적·지적 맥락을 살피며 그의 정치철학을 오롯이 집약해놓았다. 일각에서는 버크의 태도가 일관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기존의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수적인 사상가가 가톨릭에 반기를 든 이들을 옹호하거나 영국 왕실과 반목했기 때문이다. 또 아메리카 혁명은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프랑스혁명은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 전반에 걸쳐 버크의 정치 활동과 이를 뒷받침하는 사상 저변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버크의 사상은 크게 인간, 사회, 정치 세 영역으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버크는 인간이 자의적인 이성에 이끌리는 존재라기보다는 본능과 감정에 좌우되는 피조물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계몽주의자들이 이성의 이름으로 내세운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한낱 추상적인 관념에 불과하다. 우리는 본능과 감정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온 공동체의 전통과 지혜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러므로 버크에게 프랑스혁명은 인간의 오랜 역사와 경험, 지혜를 무시하고 자유, 평등, 박애와 같은 추상적인 권리를 쟁취한다는 미명하에 ‘사회질서’를 뒤엎은 폭력에 불과했다. 버크는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여겼다. 동시대의 사상가들인 홉스, 로크, 루소는 인간이 필요에 의해 ‘사회’를 만들었다고 보았다. 하지만 버크는 이미 인간에게는 사회 자체가 주어졌으며, 인간은 사회 속에서 성장할 수 있고 인간의 인간다움도 사회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사회질서는 인위적인 설계의 결과물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우연하게 형성된 것이다. 근본적으로 사회질서는 모든 계층의 ‘예의범절(manners)’로 유지되는데, 이것이 모든 법의 근간이 된다. 또한 사회가 질서정연해질 때 그 결과물로 개인에게 진정한 의미의 ‘자유’도 주어진다. 버크는 이러한 사회질서를 존중하고 온전히 유지하는 것이 정치인의 핵심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사회 변화를 반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공의 사회질서 유지에 해가 되는 것은 가차 없이 개혁(나아가 혁명)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버크에 따르면, 영국의 헌법은 사회질서를 이루는 세 집단인 군주, 귀족, 평민의 이익이 균형을 이루는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특히 버크는 사회질서의 중심축인 귀족 계급의 권한과 의무를 강조했다. 정치계에는 겉만 번드르르한 귀족이 아니라 공동체의 도덕규범을 몸소 실천하는 타의 모범이 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여기서 귀족 계급은 오늘날의 정치 지도자로 바꿔 말할 수 있다. 이제 버크의 사상 저변에 흐르는 일관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버크는 일생에 걸쳐 사회질서를 해치는 모든 종류의 극단주의를 불의로 여기며 저항했다. 아일랜드와 아메리카 식민지와 인도에서 벌어지는 기득권 세력의 폭정에 저항했다. 급진적인 선동가들이 군중을 동요시켜 사회 체제를 전복하려 한 프랑스혁명에 저항했다. 그는 한결같이 영국 시민의 행복과 정의를 실현하고 약자에 대한 배려를 중시하는 사회를 모색하며, 좌우 양쪽의 극단적인 세력들과 번갈아가며 맞서 싸웠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에드먼드 버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이상과 같이 『보수주의의 창시자 에드먼드 버크』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에드먼드 버크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늘날 몰락의 위기에 처한 한국의 보수(더불어 진보)에게 더 이상 스스로 회생할 힘이 없다면 에드먼드 버크와 영국의 정치를 참고하고 배워야 한다. 물론 21세기 한국과 18세기 영국은 시공간의 간극이 크지만, 이를 뛰어넘어 정치와 인간 사회에 대한 보편적인 태도와 근본 자세는 충분히 배울 수 있다. 우리가 보수주의의 창시자인 에드먼드 버크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앞서 말했듯이, 버크의 보수주의가 적으로 삼은 것은 진보주의가 아니다. 버크는 사회질서와 공공선(公共善)에 해가 되는 모든 종류의 극단주의와 권력 남용에 저항했다. 어느 하나의 세력, 하나의 주장에 경도되어 극단으로 치닫는 전체주의적인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보수와 진보는 서로 견제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면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가야 한다. 보수와 진보가 대결하는 이유가 헤게모니 장악이라면 그 싸움은 사실상 의미도 없고 생산적이지도 않다. 자기 진영의 이익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건전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합리적인 정책을 세울 때 정치는 성숙하고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도 높아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에드먼드 버크를 충실하게 소개한 이 책은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 꼭 필요한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버크가 보수주의의 아버지라면, 버크의 자녀들은 가출한 듯하다. 버크는 보수주의자일지 모르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사회 모두의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저자는 버크의 사상을 묵살한 결과 어떤 난관이 야기됐는지를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커커스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