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30대 실존주의자의 품위 있게 사는 법이 책은 베스트셀러 독립출판물 『알바의 품격』의 저자 정나영의 서른 관통기다. 30대로 산다는 것의 어려움과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품격 있는 삶을 꿈꾼다. 알바생에게도, 직장인에게도, 심지어 백수에게도 품격은 있다. ‘30일간의 지방의회 알바 일지’에는 품격 없는 삶이 얼마나 웃기고 자빠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할 일도 많고 고민도 많은 30대로 살아가면서 최소한의 품격만큼은 끈질기게 붙들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책은 우아함을 잃어버린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위 있고 우아하게 살아가려는 마음들에게 이 책을 건넨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30일간의 지방의회 알바 일지이 책은 저자가 한 달 동안 지방의회 행정사무감사 업무 보조 아르바이트를 기록한 일지에서 시작된다. 이 알바 일지는 『알바의 품격』이라는 독립출판물로 출간돼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지방의회 알바라니, 듣기조차 생소한 만큼 저자의 30대에도 짧지만 굵은 한 획을 그은 경험인 듯하다.30일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알바’를 하면서 관찰한 모습이긴 하지만, 일지에 기록된 도의회 다반사는 상식의 선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1부를 읽다 보면 알바 일지라기보다는 맛집 탐방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저자에 따르면 의원들이 실제로 공무만큼이나, 아니 공무보다 매 끼니에 각별히 신경을 쓰셔서 그렇단다. 주무관들의 주 업무는 높으신 의원분들 눈치 보기와 알아서 의전 챙기기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매달 적지 않은 봉급을 받으면서도 생수까지 챙겨가는 의원들은 또 왜 이렇게 공짜에 집착하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직원들의 점심시간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날려 보내기 일쑤고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만드는, ‘품격’을 가차 없이 저버린 이들과 함께한 저자의 입담 좋은 알바 기록에 배꼽을 잡고 웃다가 씁쓸해지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1부의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해 있다. 알바와 직장 생활, 퇴사와 백수 생활을 오가며총천연색의 30대를 보내다지방의회 단기 알바가 우리 모두의 일터, 더 크게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체험할 기회였다면 그다음엔 진짜 직장 생활이다. 아무리 일이 재미있고, 근무 환경이 쾌적하고, 사람들이 좋아도 직장 생활이 백수 생활만큼은 못하다는 게 저자의(많은 직장인의?) 말 못 할 속마음이기도 하다. 할 말은 다 해도 ‘영혼 있게’ 사람들을 대한 덕분에 너도나도 붙잡는 프로 직장러지만, 그런 저자에게도 직장 생활은 ‘퇴사 테라피’가 절실할 만큼 극도로 피곤한 일의 연속이라서 오랫동안 버티기는 어려웠다. 저자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두 번의 퇴사와 2년의 공백기를 경험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쉴 법도 하건만 이 시간을 참 바쁘고 살뜰히도 보낸다. ‘자아실현’을 바라고 이 가치가 일터에서도 전부인 줄만 알았던 20대를 지나, 현실에서는 정작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만 30대의 직장 생활을 만회하기라도 하듯이. 이 기간에 저자는 대안경제 여행을 테마로 독립출판물을 만들어 유통하고, 예술학교 교장이자 학생을 자처한 친구와 동네 책방을 연 친구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이 책에 적기도 했다. ‘지속가능한 백수’를 꿈꿨던, 마음만은 천상 백수일지라도 과거에 NGO 활동 등에 활발히 참여하곤 했던 만큼, 저자는 조금이라도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에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야말로 저자에게는 백수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품격’이 아니었을까. ‘좋은 사람’을 만나지 않고 이루어낸 독립,하지만 웃픈 일이 더 많다는 웃픈 현실30대 비혼 여성으로 살아가는 저자의 삶에서 ‘독립’이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당연히’ 결혼이 전제된 독립을 생각한 부모님의 바람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독립생활을 지향하고 지금도 헤쳐나가고 있는 저자의 이야기를 담은 4부는, 특히 혼자 사는 젊은 여성 직장인들에게 큰 공감을 얻으리라 기대한다. 부모님에게 손 벌리기 싫어 간신히 집을 구해보지만 부동산은 세입자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우주의 힘을 모아 집 상태를 포장하는 데 급급하질 않나, 내놓은 집을 보러 온다며 사생활 따위는 사뿐히 즈려밟기 일쑤다. 어디 그뿐인가, 쥐꼬리만 한 예산에 맞으면서도 마음에 드는 집은 세상천지 어디에 있기나 한 건지. 언제나 위험에 노출된 독거 여성이라는 점은 저자를 더 고달픈 ‘집 찾아 삼만 리’로 내몬다. 니체와 카프카가 우리를 구원하리라!‘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할까’에 대한 답을 얻다알바, 직장, 백수, 독립 생활을 거쳐 이 책은〈존재의 품격〉이라는 사뭇 진지한 5부로 마무리된다. 이쯤 되면 밥벌이의 갖은 풍파를 거치다 보니 저자가 마치 득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백수 시절 도서관을 즐겨 찾고 독립출판물 제작자도 했을 만큼 책을 가까이하는 저자는 마지막 5부에서 약간은 뜬금없이 니체와 카프카를 불러들인다. 고단한 세상살이를 버티기 위해 저마다 다른 방식을 택하는 가운데, 저자는 자신만의 답을 찾기 위해 철학이라는 길을 찾아낸 것이다. 이 두 인물이 저자에게 가르쳐준 건 역설적으로 당장 직장에서 뛰쳐나가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주의였다. 관점을 조금 바꾸었을 뿐인데 저자의 마음가짐은 이들을 만나면서 급선회한다. 이들의 텍스트로 뒤통수를 된통 얻어맞고 나서 그는 진정 ‘품격 있는’ 삶을 찾아 스스로 공부를 시작했고, 그 공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대와 40대 사이에 낀 30대,어설프고 애매하지만 그것대로 괜찮지 않을까저자는 30대가 몹시 애매한 세대라고 생각한다. 20대와 40대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세상을 다 아는 어른이라고 하기엔 아직 미성숙하고, 간혹 20대의 개념 없음에 헉 소리가 나는, 꼰대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이 애매하다고 투덜대지 않고 이것도 하나의 과정임을 온몸으로 알아가고 싶다고. 40대, 50대가 되어 30대의 자신을 돌아본다면 참 별거 아닌 거에 울고 웃었구나, 그런데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부정하지 않고 담담하게 추억하고 싶다고. 한편으로는 먹을 만큼 먹은 자신의 나이도 좋고 가끔은 40대가 기다려지기도 한다. 저자는 위태로운 삶을 사는 우리가 적어도 서로가 서로에게 지독해지지는 않기를, 사람으로서의 ‘품격’만은 잃지 않기를 바란다. ‘먹고사니즘’이라는 이름 아래 연대하는 30대에게 주어진 밥벌이에 정답은 없기에, 그의 고민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