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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

대청 외교와 『열하일기』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

구범진 | 21세기북스 | 2021년 5월 10일 한줄평 총점 8.0 (34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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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한국/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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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

책 소개

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서가명강’ 대청 외교와 『열하일기』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 강의를 책으로 만난다! 현직 서울대 교수진의 강의를 엄선한 ‘서가명강(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시리즈의 열여섯 번째 책이 출간됐다. 역사, 철학, 과학, 의학, 예술 등 각 분야 최고의 서울대 교수진들의 명강의를 책으로 옮긴 서가명강 시리즈는 독자들에게 지식의 확장과 배움의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 『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은 중국 근세사 전문가인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구범진 교수가 쓴 책으로, ‘1780년의 열하’를 배경으로 조선과 청나라의 외교 관계에 관한 역사적 장면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특히 『열하일기』속의 ‘열하 이야기’가 사실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발견과 1780년을 분수령으로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가 크게 달라졌다는 핵심 주장을 사료를 통해 증명해나간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제대로 알지 못했던 역사적 실체에 한 걸음 다가서는 쾌감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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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이 책을 읽기 전에
- 학문의 분류
- 주요 키워드

들어가는 글 - 1780년의 열하를 가다

1부 조선의 반청 의식과 사대 외교
치욕을 기억하며 오랑캐의 멸망을 꿈꾸다
청나라에 해마다 조공 사절을 파견하다
Q/A 묻고 답하기

2부 정조의 건륭 칠순 진하 특사 파견
1780년 청 황제 건륭이 칠순 잔치를 열다
정조가 건륭의 칠순을 축하하러 특사를 보내다
Q/A 묻고 답하기

3부 진하 특사 박명원의 사행과 ‘봉불지사’ 소동
정조의 특사 박명원이 열하에 다녀오다
‘불상을 받들고 돌아온 사신’이 되다
Q/A 묻고 답하기6

4부 박지원 『열하일기』의 ‘봉불지사’ 변호론
청 예부의 거짓을 밝혀 사신을 변호하다
『열하일기』에 목격담과 전문을 뒤섞다
Q/A 묻고 답하기

5부 전환기의 조선·청 관계와 대청 인식
정조와 건륭이 양국 관계를 크게 바꾸다
건륭이 외번과 외국을 모아 ‘성세’를 자랑하다
Q/A 묻고 답하기

나가는 글 - 건륭의 제국과 만나며 역사를 기리다

상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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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저 : 구범진
‘통념을 뒤집고 실체를 추적하는 역사학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로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근세사를 전공했으며 조선과 청나라의 외교 관계, 명청 시대 경제사 등을 주요 연구 분야로 삼고 있다. 국내를 대표하는 중국 근세사 전문가로 꼽힌다. 탄탄한 사실 증명과 정교한 논리에서 비롯된 설득력 있는 역사 연구로 주목받고 있다. 또 사료 분석과 추론을 통해 잘못된 역사 지식을 바로잡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은 책으로는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 『조선시대 외교문서』,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최후의... ‘통념을 뒤집고 실체를 추적하는 역사학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로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근세사를 전공했으며 조선과 청나라의 외교 관계, 명청 시대 경제사 등을 주요 연구 분야로 삼고 있다. 국내를 대표하는 중국 근세사 전문가로 꼽힌다. 탄탄한 사실 증명과 정교한 논리에서 비롯된 설득력 있는 역사 연구로 주목받고 있다. 또 사료 분석과 추론을 통해 잘못된 역사 지식을 바로잡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은 책으로는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 『조선시대 외교문서』,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최후의 황제들』, 『중국의 감춰진 농업혁명』 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1780년, 정조의 사신들이 열하에 가다!
오랑캐의 멸망을 꿈꾸던 조선의 변화된 대청 외교!


『열하일기』의 탄생 배경이기도 한 1780년은 명성과 달리 지금까지 한국사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해’로 여겨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해를 분수령으로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가 크게 달라졌다고 주장하며 ‘1780년의 열하’라는 시공간을 마치 한 편의 추리소설처럼 재구성해나간다.
열하는 베이징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있는 지역이다. 청나라 황제들이 여름을 보낸 궁전 ‘피서산장’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열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병자호란의 치욕 이후 조선과 청나라는 군신 관계로 전환된다. 기존의 질서에서 위계의 맨 아래에 있던 오랑캐가 단숨에 위계의 꼭대기로 뛰어오른 것이고, 당연히 이에 대한 조선의 반감도 형성되었다. 이처럼 반청 의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조선의 대청 외교가 1780년을 기준으로 크게 변한다.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는 왜, 어떻게 달라지게 되었을까?
영조에 이어 왕위에 오른 정조는 1780년 청나라 건륭 황제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3진하(進賀) 특사를 파견한다. 조선에서는 병자호란 이후 150여 년 만에 일어난 매우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이례적인 사건은 또 일어난다. 조선의 사신이 베이징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건륭이 칠순 잔치가 열리고 있는 열하로 그들을 직접 초대한 것이다. 저자는 1780년 건륭 칠순 진하 특사의 활동에 관한 여러 역사적 사실을 면밀하게 추적할 뿐 아니라, 이후 조선 사신들을 접대하는 청나라의 태도 변화도 들여다보며 ‘한중 외교’의 디테일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진하 특사를 이끈 박명원의 팔촌 동생 박지원이 1780년의 그 현장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다. 1780년 조선의 정조가 건륭의 칠순을 축하하는 특별 사절을 보낸 덕분에 그토록 유명한 『열하일기』가 탄생하게 된다. 저자 구범진 교수는 ‘1780년 열하’라는 시공간에 주목하며, 우리가 몰랐던 한중 외교사의 중요한 장면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열하일기』의 역사학적 해석!
정조의 ‘조선’이 건륭의 ‘제국’과 만나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만큼 유명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고전 중의 고전으로 불리는 『열하일기』는 사상, 정치, 문화, 사회 전반에 걸쳐 놀라운 안목과 해학 넘치는 문장으로 잘 알려진 만큼 그 위상도 높다. 1780년 정조는 건륭 황제의 칠순 잔치를 축하하기 위해 진하 특사를 파견했고, 이를 따라간 박지원이 열하를 다녀와서 남긴 기록이 바로 『열하일기』다.
구범진 교수는 『열하일기』를 역사학적으로 분석하여, 박지원이 기록한 ‘열하 이야기’에 사실과는 다른 점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구 교수는 『열하일기』에 대해 지금까지 누구도 제기하지 않았던 ‘발칙한’ 질문을 던진다. “공식 수행원 신분도 아니었던 박지원이 『열하일기』에 묘사된 장면들을 직접 ‘목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일이었을까?” 『열하일기』에는 조선의 사신이 불상을 선물로 받는 장면이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열하에서 돌아온 조선의 사신들은 이 불상을 받들고 돌아왔다는 오명을 뒤집어쓰며 성균관 유생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이에 박지원은 곤경에 처한 사신을 변호하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독자가 이해하도록
이야기 소재를 취사 선택하고 사건이 일어난 시간과 순서를 의도적으로 배치·구성했다는 것이 구 교수의 합리적인 추론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열하일기』가 불상을 받들고 온 ‘사신을 위한 변호론’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저자는 『열하일기』와 다른 사료의 일치·불일치를 검토하고 그 집필 의도를 추적해나가는데, 여기에 활용된 사료는 조선 왕조의 공식 기록뿐 아니라 청나라 사료와 티베트어 사료 등 그 범위도 방대하다. 그리고 박지원이 목격담과 전문을 뒤섞어 『열하일기』을 썼다는 ‘발칙한’ 결론에 도달하며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규명한다.
이제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열하일기』의 역사학적 독법으로 새롭게 경험할 수 있으며, 정교하고 상세한 논리 구성을 통한 한중 외교사의 생생한 면모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 1부: 1780년 이전 조선의 반청(反淸) 의식이 어떤 연유로 형성되어 어떤 식으로 표출되었는지를 대략 설명하고, 청에 대한 사신 파견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소개한다.

▶ 2부: 청의 황제들이 자신의 생일을 어떻게 기념했는지, 건륭이 1780년 열하에서 벌인 칠순 잔치가 청나라에서는 어떤 의미의 ‘이벤트’였는지 소개한다. 이어서 1780년에 조선의 젊은 국왕 정조가 과거 조선이 청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던 틀에서 벗어나 건륭의 칠순 생일을 진하 특사 파견이라는 특별한 방식으로 축하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풀어낸다.

▶ 3부: 1780년 건륭 칠순 진하 특사의 활동에 관한 여러 역사적 사실을 면밀히 추적한다. 1780년 조선의 정조가 건륭의 칠순을 축하하는 특별 사절을 보내지 않았다면 박지원의 열하 방문도, 따라서 『열하일기』의 탄생도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에 진하 특사 파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한 『열하일기』 속의 열하 이야기가 역사적 실제와 어떻게 다른지 포착하려면 1780년의 진하 특사와 관련하여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논의의 전제 조건이 된다.

▶ 4부: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특히 어떤 문제에 초점을 맞춰 열하 이야기를 구성하고 서술했는지, 그리고 그러한 구성과 서술은 어떤 배경과 의도에서 나온 것인지 탐구한다.

▶ 5부: 1780년의 열하 이후 조선 사신들에 대한 청나라의 접대에 나타난 변화를 소개한다. 조선 사신을 접대하는 데 어떤 변화가, 어떤 경위를 거쳐 일어났는지 그리고 조선·청 양국 관계의 역사라는 맥락에서 그 변화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또한 이러한 청의 변화가 사실은 1780년대 이후 전체 제국 경영 및 대외 관계 운영에서 건륭제가 도입한 변화의 일부였음을 밝히고, 그러한 변화의 의도 및 효과에 대해 알아본다.

종이책 회원 리뷰 (33건)

1780년 칠순을 맞은 건륭제를 축하하기 위해 열하로 간 조선 진하단 이야기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벤*****북 | 2021.08.12

명과 조선은 사대자소(事大字小) 관계였다.(‘자; 字’에는 자애롭게 보살핀다는 의미가 있다.) 1619년 사르후 전투, 1627년 정묘호란, 1636년 병자호란이 있었다. 사르후 전투는 조선이 대명(對明) 전쟁을 선포한 후금을 칠 군사를 파견하라는 명의 압박에 못 이겨 강홍립 군대를 파견한 전투를 말한다. 강홍립은 투항했다. 광해군이 적당히 싸우는 척 하고 돌아오라는 밀지를 내렸다는 말은 전체 파병 수 13000 중 희생자가 8, 9천이니 설득력이 없다.

 

광해군의 중립외교는 실현하지 못한 바람에 불과하다. 파병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정묘호란은 조선이 아닌 조선 서북부의 명군을 공격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저자는 홍타이지의 칭제(稱帝)식에서 삼궤구고두를 완강하게 거부한 조선 사신들을 흙탕물을 끼얹은 것이라 표현했다.(32 페이지) 병자호란은 이 흙탕물 사건을 일으킨 조선을 응징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고려는 조공 대상을 여러 차례 바꾸었다. 한족이 세운 송나라,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 한족이 세운 명나라,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등이다. 연천 미산면에 고려 4왕(태조, 현종, 문종, 원종)과 16공신을 모신 숭의전이 있다. 16공신을 모신 곳이 배신청(陪臣廳)이다.(陪; 모실 배) 배신(陪臣)이란 신하를 모셨다는 의미보다 제후의 신하가 천자에 대하여 자기를 일컫는 말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대보단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원병을 파견한 명나라 황제 만력제에 대한 제사를 거행하기 위해 창덕궁 후원에 설치한 제단이다. 저자는 1704년에 세워진 대보단이 보통 조선이 명나라에 대한 사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상징하는 시설로 여겨지지만 명 황제의 후손이 아닌 조선의 임금이 명 황제의 제사를 모시는 것은 명의 회복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전제로 한 행동이었다고 말한다. 즉 조선이 명나라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과거의 존재로 정리했다는 것이다.

 

1704년은 명나라가 무너진 1644년 이후 60년이 지난 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가 재위한 60년은 조선의 영조, 정조 재위기와 거의 겹치는 시기다. 1780년 건륭제는 자신의 칠순 생일(만수절; 萬壽節)을 대경(大慶; 큰 경사)으로 기념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는 수사적 표현이었다. 건륭제는 자신의 생일(음력 8월 13일)을 열하의 피서산장에서 지냈다.

 

당시 가을 사냥은 황제의 연례행사였다. 가을 사냥을 연례행사화한 첫 황제는 강희제였다. 목란위장(무란웨이창)은 사슴 사냥을 가리키는 만주어 muran을 음차한 목란(木蘭)과 관설(官設) 수렵장인 위장(圍場)의 합성어다.(圍는 사냥하다, 포위하다, 에워싸다는 의미다.) 면적은 1만 제곱킬로미터로 경기도 정도의 크기였다. 이 안에 72곳의 사냥터가 있었다.

 

1780년은 정조 재위기였다. 진하(進賀)란 나라에 큰 경사가 있을 때 신하가 군주에게 특별히 축하의 뜻을 밝히는 것을 의미한다. 박명원(박지원의 8촌형)이 열하의 건륭제의 칠순 만수절 하례에 참석하게 되었다. 조선의 진하 특사 파견은 건륭제도 기대하지 않았던 이례적 성의 표시였다.(진하 특사 파견은 의무가 아니었다.)

 

베이징이 아니라 열하에서 잔치를 연 것은 천연두와 관련이 있다. 건륭제는 천연두 면역이 없는 몽골 등의 왕공 귀족을 위해 매년말 베이징으로 오는 대신 팔월 중순 자신의 생일에 맞춰 열하로 오게 했다. 진하사, 사은사는 되도록 가까운 종친이나 부마를 임명하는 것이 관례였다. 적당한 종친을 찾을 수 없었던 정조는 부마 가운데 금성위 박명원, 창성위 황인점을 선택했다.(박명원은 정조의 고모 화평옹주의 남편이었다. 황인점은 영조의 딸 화유옹주의 남편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정조의 고모부였다.)

 

정조는 ’열하일기‘를 꼭 집어 비판했다.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통속적인 글들과 비슷한 문체를 구사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조선 사신단은 외교 사절의 성격만을 띤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대상(隊商)과 다를 바 없었다.(88 페이지)

 

베이징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원래 청나라의 수도는 선양(瀋陽)이었다. 1644년 명나라의 수도 베이징이 이자성이 이끄는 농민 반란군에게 함락되고 숭정제가 자살한 기회를 타 청나라는 베이징을 점령하고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겼다. 이 사건을 청의 입관(入關)이라 한다. 천하제일관이라 불렸던 만리장성 동쪽 끝의 산해관 안쪽으로 들어왔다는 의미다.(68 페이지)

 

압록강을 건너 선양까지는 옛날 거리 단위로 540리에 불과했으나 베이징까지는 무려 2000리가 넘었다.(69 페이지) 원래 박명원 일행이 목적한 곳은 베이징이었다. 박명원 일행이 베이징에 도착하자 베이징 예부에서 이 사실을 황제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건륭제는 조선에서 만수절을 축하하는 사신이 도착했으면 곧장 열하로 보냈어야지 왜 그곳에 붙잡아두느냐고 역정을 내면서 당장 열하로 보내라는 명령을 내렸다.(162 페이지)

 

이때 사신들이 베이징을 떠나면서 이 사실을 서울에 장계(狀啓)로 알렸다. 수행 무관 중 몇 명을 뽑아 역관과 함께 사신의 장계를 들고 먼저 귀국하는 사람들을 선래군관(先來軍官)이라 한다.(163 페이지) 저자는 박명원 일행이 베이징을 떠나며 서울로 보낸 장계를 9월 17일 장계라 칭한다.(164 페이지)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박명원의 이 장계는 당일인 9월 17일 서울에 도착했다.(편찬자의 실수다.) 건륭제는 칠순 잔치를 열하에서 벌일 계획을 세우고 박명원 일행이 서울에서 출발할 무렵 이미 베이징을 떠나 줄곧 열하에 머물고 있었다.(161, 162 페이지)

 

청나라는 베이징과 열하 간에 매우 신속하고 효율적인 연락 체계를 운영하고 있었다. 1년에 몇 달씩이나 베이징을 떠나 있었음에도 황제가 정무를 처리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박명원 일행은 금불 사건을 겪었다. 황제의 진노에 따라 허둥지둥 열하에 도착한 박명원 일행은 황제의 명을 칭하는 예부 관원들의 요구를 이기지 못하고 판첸을 만난 자리에서 판첸이 준 금불을 받는다. 판첸 라마라 하는 판첸은 티베트 불교에서 달라이 라마에 버금가는 종교적 권위를 지닌 전생활불(轉生活佛)이다.(251 페이지)

 

황제의 명이라고만 하고 왜 만나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듣지 못한 박명원은 모든 것을 황제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박명원은 성균관 유생들의 규탄에 직면했다. 배불(排佛)의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박명원은 황제가 정조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으로 금불을 선사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연의 산물이었을뿐이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 판첸과의 불상 관련 일을 자세하고 치밀하게 기록(해명)했다. 이 책 곳곳에는 봉불지사(奉佛之使)라는 비난의 표적이 된 박명원을 변호하는 내용이 숨어 있다. 저자는 박지원이 강조한 내용들이 정말 그해 8월 11일에 그가 직접 목도한 바에 근거한 것이었을까?란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박지원이 공식 수행원 신분도 아닌 자제군관의 하나였음을 고려하자. 1780년 이후 3년만인 1783년 정조는 박명원을 동지겸사은사행의 정사로 임명했다. 그러나 박명원은 부담을 느끼고 명령을 거두어줄 것을 요청했다.

 

1790년 정조는 건륭제 팔순 진하(進賀) 특사를 보냈다. 정사는 창성위 황인점, 부사는 서호수였고 박제가도 포함되어 있었다. 1784년 박명원은 영조에게 존호를 올리기 위해 설치된 상호도감의 제조(提調) 중 하나로 임명되었다.

 

’열하일기‘가 문학적으로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참신한 문체의 책이라지만 문학적 감별 능력은 없고 그저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기도 벅찬 역사학도의 입장에서는 무엇을 보고 새로운 문체라 하는지 알 모르겠다(152, 153 페이지)고 한 저자는 문학 작품으로서 ’열하일기‘의 가치는 오히려 단순한 여행 견문록에 머물지 않는다고 평하며 다만 ’열하일기‘를 사료로 취급할 때에는 저자의 집필 의도를 염두에 두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결론짓는다.(260 페이지) ’열하일기‘에 오류가 있지만 그것은 학자적 양심을 버리면서까지 사실을 왜곡한 것이 아니다.

 

정조는 대청(對淸)외교에 전에 없던 정성을 기울였다. 1780년 정조의 건륭 칠순 진하 외교는 예외적 우연이 아니다. 정조는 사신 파견에 수반되는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누차에 걸쳐 사은사를 특파했다.(275 페이지) 조선과 청은 사대와 자소의 관계를 맺었기에 조선이 성의 표시를 할 때마다 청 또한 그에 상응하는 우대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291 페이지) 건륭제는 1780년 열하를 무대로 칠순 만수절 이벤트를 거행했다.

 

건륭제는 이 자리에 두르베트, 우량하이, 토르구트, 회부의 무슬림 벡, 금천 지역의 토사 등을 참석하게 했다. 이들은 모두 건륭 연간에 이르러 비로소 청에 완전히 복속된 집단이나 지역의 수장들이다. 천자 건륭제에게 이들을 대거 한자리에 모은 칠순연은 자신이 평생 이룬 업적을 상징하는 이벤트였다. 이를 외번필집(外藩畢集)이라 한다. 건륭제는 조선에만 사상 초유의 특은을 베푼다는 혐의가 일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즉 모두에게 골고루 혜택을 베푼다는 일시동인의 원칙을 확고하게 지키는 모양새를 갖추면서 3대 연회의 문호를 외국 사신들에게 개방했다.(325 페이지)

 

저자는 1663년 겨울 청나라에서 파견한 칙사가 서울에 왔을 때 홍문관 수찬 김만균이 칙사 접대 업무를 맡긴 왕(현종)명을 거역한 사건을 이야기한다. 그의 조모는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가 함락될 때 오랑캐에게 욕을 당하지 않으려고 자결한 분이다. 부모가 죽으면 3년상을 치르고 조부모가 죽으면 1년상을 치르는 것처럼 관계가 멀어지면 사의에 입각한 도덕적 의무의 강도도 약해져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김만균은 파직되었으나 후에 주자를 인용하면서 복수오세설을 주장한 송시열로 인해 김만균에 대한 처벌을 주장한 사람이 오히려 파직을 당했다.

 

저자는 영조는 병자호란의 치욕을 겪은 인조의 4대손이지만 정조는 6대손이라는 말을 한다. 굳이 복수오세설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관계가 멀어지면 사의에 입각한 도덕적 의무의 강도도 약해져야 하고 시실 그렇겠지만 김만균의 경우 병자호란으로부터 30년 정도 지난 시점이었고 당사자가 조모였으니 원한을 모두 떨쳐버릴 수 없지 않았을까? 영조는 4대손이고 정조는 6대손이어서 차이가 났다고 보기는 어려운 듯 하다.

 

저자는 1776년 25세의 젊은 나이로 등극한 정조가 마주친 것은 청나라의 전무후무한 성세(盛世)라고 말한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열하일기‘를 더 깊이 이해하려는 의도는 물론 정조에 대한 관심 때문에 접한 구범진의 책은 열하일기를 소재로 사대자소, 존주대의 등의 이야기를 들려준 참신한 책이다. 열하일기의 배경을 알 수 있었으니 이제 문제의식을 박지원의 ’연암집‘으로 이어가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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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밀*티 | 2021.04.27

서가명강 시리즈는 늘 기대된다. '서가명강'이란 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라는 의미로,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는데 이번이 열여섯 번째 책이다. 이번에는 대청 외교와 『열하일기』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하여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평소 관심이 있던 주제든, 별로 관심이 없던 주제든, 서가명강에서는 시선을 끌어들여 집중해서 읽어나갈 수 있도록 이야기를 풀어나가서 늘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었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새로이 알게 될지 궁금해하며 이 책 『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구범진.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이다. 통념을 뒤집고 실체를 추적하는 역사학자이다. 중국 근세사를 전공했으며 조선과 청나라의 외교 관계, 명청 시대 경제사 등을 주요 연구 분야로 삼고 있다. 국내를 대표하는 중국 근세사 전문가로 꼽힌다. 탄탄한 사실 증명과 정교한 논리에서 비롯된 설득력 있는 역사 연구로 주목받고 있다. 또 사료 분석과 추론을 통해 잘못된 역사 지식을 바로잡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책날개 발췌)

『열하일기』 속의 '열하 이야기'가 사실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는 나의 발견과 1780년을 분수령으로 조선과 청의 관계가 크게 달라졌다는 나의 핵심 주장만은, 조선 후기 사신의 외교 활동 및 여행에 관한 한 다른 책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깨알 같은 지식'들과 더불어 독자 여러분께 고스란히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4쪽)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된다. 들어가는 글 '1780년 열하를 가다'를 시작으로, 1부 '조선의 반청 의식과 사대 외교', 2부 '정조의 건륭 칠순 진하 특사 파견', 3부 '진하 특사 박명원의 사행과 '봉불지사' 소동', 4부 '박지원 『열하일기』의 '봉불지사' 변호론', 5부 '전환기의 조선·청 관계와 대청 인식'으로 이어지며, 나가는 글 '건륭의 제국과 만나며 역사를 기리다'로 마무리된다.

이 책은 일단 '들어가는 글'을 읽으며 『열하일기』에 대한 생각을 달리한다.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 든다.

『열하일기』는 또한 국내외를 막론하고 학자들에게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기도 하다. 한국학 분야의 학자들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중국을 연구하는 외국 학자들도 『열하일기』에 주목한다. 중국사 연구자들에게 '1780년의 열하'는 당시 청의 황제였던 건륭제(1711~1799)가 자신의 '칠순 잔치'를 벌인 때와 장소로 유명한데, 『열하일기』에는 황제의 칠순 잔치와 관련하여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소중한 기록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12쪽)

게다가 저자의 연구 계기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나는 청나라 역사를 공부하긴 하지만, 애시당초 『열하일기』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1780년의 열하에서 벌어진 일 때문은 아니었다. 사실은 정반대였다. 『열하일기』로 인해 1780년의 열하에 주목하게 되었다. 나도 한국 사람인지라 오래전부터 익히 들어온 명성에 끌려 『열하일기』를 읽어볼 생각을 품게 되었다. 실제로 읽어보니 『열하일기』는 듣던 대로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역사 연구자의 직업병 탓일까, 청나라에 관하여 사실과 다른 이야기들이 적잖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연구자들은 이런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한번 파고들어 볼까?' 하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13쪽)

이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연구자의 호기심이 더해져 함께 파고들어보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가게 되었다.

『열하일기』를 다른 시각으로 살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이 책이 정말 흥미진진한 느낌이었다. 전혀 몰랐던 사실을 누군가가 '그동안 몰랐지?'하면서 척척 짚어주며 설명해 주니, '아, 그렇구나!' 생각한다. 책 뒤표지의 추천사에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라는 글이 눈에 띄는데, 정말 그렇다. 강의를 들으며, 문득 들려주는 질문에 궁금해하며 함께 해답을 찾아가는 기분으로 이 책을 읽어나갔다.

이 책은 일단 펼쳐들어야 호기심이 생긴다. 어쩌면 '열하일기'라는 것이 내가 아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다면, 그 틀을 깰 수 있는 독서의 시간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독서를 하면서 지금껏 알고 있던 지식을 확인하는 시간도 필요하겠지만, 역시나 지금껏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보는 다른 시각을 끌어내도록 도와주는 것이 독서의 즐거움이다. 이 책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서가명강 시리즈의 책은 특별한 강의를 듣는 듯 솔깃하며 집중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풀어내준다.

평화 시에는 사신의 왕래가 사실상 외교 관계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던 시대에 이 책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면, 그 변화의 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1780년은 더 이상 '아무 일도 없었던 해'라고 부를 수 없을 듯하다. 이제는 조선·청 양국 관계의 역사에서 시대를 가르는 분수령이었다는 의미를 부여해도 무방할 것이다. (347쪽)

이 책이 아니었다면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청 황제의 칠순 잔치로 읽는 특별한 한중 외교사'라는 점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알던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을 끌어올려 준다. 그냥 '열하'가 아니라 '1780년의 열하'라는 점이 중요하다. 왜 그런지는 이 책을 펼쳐들면 하나둘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내줄 것이다. 그냥 '열하일기'라는 이름만 알고 있어도 역시 이 책에서 풀어내는 이야기에 흥미롭게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독특하고 특별한 강의여서 일단 펼쳐들면 지금껏 알지 못했던 역사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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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오* | 2021.04.25

얼마 전, 방영되던 드라마가 역사 왜곡 논란으로 폐지되었어요.

장르가 판타지 사극이라면서 등장인물은 조선의 임금을 비롯한 실존인물들로 묘사하여 조선의 역사를 폄하하고, 중국풍의 소품들로 우리 문화가 중국의 것을 모방한 것처럼 연출했다니, 이건 해도 너무 하다 싶을 정도의 역사 왜곡이었어요. 앞서 똑같은 작가의 전작이 이런 논란이 있었음에도 시청률이 높았기 때문에, 연달아 동일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볼 수 있어요. 다시 한번 시청자들의 강력한 항의로 드라마는 폐지되었지만 작가나 PD 등 방송 관계자들이 각성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반복될 일이에요.

근래 중국이 김치, 한복 등을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하며 문화 왜곡까지 벌이는 이 시기에 드라마까지 왜 이러나 싶었는데, 그 이면에는 우리 콘텐츠 제작에 깊숙하게 들어온 중국자본이 있었네요. 단순히 제작진의 실수가 아니라 철저하게 계획된 역사 왜곡이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어요. 

 

<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은 서가명강 시리즈 열여섯 번째 책이에요.

저자는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구범진 교수님이며 중국 근세사를 전공했고, 조선과 청나라의 외교 관계, 명청 시대 경제사 등을 주요 연구 분야로 삼고 있다고 해요.

한국사에서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자는 『열하일기』에서 1780년의 열하에 주목했고, '열하 이야기'가 사실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는 것과 1780년을 분수령으로 조선과 청의 관계가 크게 달려졌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어요. 1780년 조선의 정조는 청나라 6대 황제인 건륭의 칠순을 축하하는 특별 사절을 보냈고, 그 역사적 사실이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탄생한 계기지만 그 내용이 역사적 실제와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어요. 

흥미롭고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로만 여겼던 열하 이야기 속에 조선과 청 양국의 미묘한 관계가 숨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은 건륭의 칠순 잔치 자체보다 판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 이유는 '봉불지사' 문제 때문일 수도 있지만 청과 몽골, 티베트의 관계에 대한 박지원의 이해 수준이 그다지 높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봉불지사를 위한 변호가 건륭 칠순 만수절을 덮을 정도의 주된 내용이 되어버린 거죠. 지금까지 우리는 박지원의 명성에 가려 『열하일기』를 역사학적 사료의 비판 대상으로 올린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좀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 객관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가 우리 역사뿐 아니라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당연히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은 확실하게 대응해야 할 문제이며, 우리 역시 올바른 역사의식과 역사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네요.

1780년에 정조가 사행을 통한 칠순 만수절 진하라는 전례 없는 생일 축하 외교를 펼친 것은 대단한 외교 전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정조와 건륭이 성의와 은혜를 주고받는 우호 행위가 결과적으로는 양국 관계의 증진 또는 격상을 가져왔다고 해석하고 있어요. 한반도의 역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중 외교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에서 '1780년의 열하'라는 외교 전략을 현대에 알맞은 새로운 해법으로 살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이 책 덕분에 열하 이야기를 조선 시대 사람들이 중국을 여행하고 남긴 기록만이 아닌 숨겨진 한중 외교사로서 이해할 수 있어서 유익한 역사 공부가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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