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클라인바움 저/한은주 역
주제 사라마구 저/정영목 역
보니 가머스 저/심연희 역
보니 가머스 저/심연희 역
손아람 저
로라 데이브 저/김소정 역
범죄 추리소설을 읽다 보니 이런저런 연관성에 힘입어 알게 된 작가의 글이다. 87분서라고 미국의 경찰서를 배경으로 연작소설이 나와 있고 이 책은 이 중에 하나인데 더 읽을지 아직은 망설이는 중이다. 범죄는 추하고 경찰은 고단하기만 하니 썩 당기는 세계관은 못된다. 추리소설에도 취향이 생긴다는 걸 점점 더 알아가고 있는 셈이다.
범죄자도 범죄에 희생되는 사람도 우선 사람이기는 하니, 기본적인 연민을 가질 수는 있겠으나 왜 하필 범죄의 길로 들어서는가 하는 점은 두고두고 생각해 볼 일이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쩌다 보니, 정말 어쩌다 보니 한번, 혹은 이번이 마지막으로, 이번만 딱 저지르고 다시는 안 하겠다는, 대놓고 무지막지한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태도에 대해서는 섣불리 뭐라고 말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다. 범죄에 동조하는 게 아니라 왜 그렇게 되었을까에 대한 근본 원인을 헤아려야 할 것 같아서.
사건은 단순하고 심지어 코믹하다. 재벌가 아들을 유괴한 줄 알았는데 그 아들의 옷을 잠깐 빌려 입은 운전수의 아들을 유괴하고 만 범인들. 자신의 아이가 유괴되지 않은 것을 알고 난 재벌은 범인들이 요구하는 돈을 주려고 하지 않고. 재벌의 아내는 남편이 유괴범에게 돈을 주지 않는다고 아들과 함께 남편을 떠나겠다고 하고. 범인 중 한 명의 아내는 유괴된 아이를 지켜주려고 애를 쓰고.
1950년대에 발표된 소설이니 그려 내는 풍경이 요즘과는 거리가 좀 있다. 유괴범들이 풋풋해 보일 지경이고 경찰이 수사하는 장면들이 이미 익숙해져 버린 첨단 과학을 이용하는 건 아니라서. 내가 즐겨 보았던 미국 범죄 드라마 CSI를 떠올려 보아도 한참 못 미친다 싶고. 그럼에도 경찰이 수사에 기울이는 노력이나 애쓰는 장면만큼은 인상적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거기나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나. 경찰과 형사들이 이토록 애를 쓰고 있는데 우리는 왜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기 어려운 것인지 도로 의문이 든다.
몇 줄 쓰다 보니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경찰직은 시민을 위해 꼭 필요한 직업이기도 하니 읽으면서 고마운 마음을 새겨야겠다는 소박한 바람마저 품고.
한 아이가 유괴를 당했다. 내가 몸값을 지불하면 아이는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날아갈 뿐 아니라 미래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무조건 양자택일해야만 한다. 자,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생명부터 구해야한다는 원론은 남의 이야기니까 쉬운 법이 아닐까. 만약 나의 경우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아이는 잘 아는 사이여도 내 핏줄은 아니라면? 몸값을 내면 내가 목숨처럼 생각했던 전부가 사라진다면? 그러나 아이가 유괴된 원인은 내게 있다면? 하지만 그 이유라는 건 내가 부유하기 때문일 뿐이라면? 이 도의적 딜레마에 빠지게 되면 미칠 것만 같은 기분이리라. 냉정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리 간단히 몸값을 내겠다는 결단을 내리지는 못할 것 같다.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 치고는 경찰조직보다는 다른 등장인물들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그만큼 형사들의 활약은 미진하지만 대신 인간 개개인의 심리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하게 만든다. 구두 회사의 중역인 더글라스 킹.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간 야심가다. 중역들은 자신들이 회사를 차지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킹의 보좌관을 매수한다. 그들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비밀리에 주식을 매입해오던 킹은 최종합의만을 남겨두고 있었는데 운전기사의 아이가 유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실은 킹의 아들을 노린 계획이었으나 나이와 체형이 비슷한 엉뚱한 아이를 납치해버린 것. 유괴범들은 누구에게든 몸값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논리로 거액의 돈을 요구하고 킹은 일생일대의 기로에서 괴로워한다.
이 작품의 묘미는 모든 인물에게 공감이 간다는 점이다. 절대악이나 절대선이 없기 때문이다. 더글라스 킹은 출세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짓밟은 전력이 있으나 자신의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노력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목숨과도 같은 건 돈만이 아니라 그의 인생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아이의 목숨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하여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으랴. 유괴된 아이 아빠의 슬픔은 말할 것도 없고, 아빠라는 입장에서 분노하는 형사의 마음도, 유괴 범죄에 가담하게 된 젊은 여성의 고뇌도, 모든 절망이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이다. 그 절망감에서 벗어나고자 책장을 쫓기다시피 넘겼다.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연출력을 인정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1963년작이고 소설은 1959년작. 하지만 걸작은 시대를 뛰어넘는 이유가 있다. 소설과 영화의 차이는 제목에서 엿볼 수 있다. King’s ransom. 天國と地獄(천국과 지옥). 한순간에 지옥에 빠진 사람들이 다시 천국에 오르기란 힘들어 보인다. 안타깝게도.
유괴범은 범죄자 중에서도 최악에 속하는 부류로, 마약 밀매상보다 더 저질이었다. 남의 아이를 훔치는 범죄를 막을 억제책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건 바로 사형이다. 유괴는 그 성격상 대체로 고의적 범죄이기 마련이다. 실제 납치에는 세심한 계획이 필요한 법이고, 부모에게 요구 조건을 내걸면서 불확실성이라는 고문을 천천히 가하는 과정에는 세심한 심리적 조작이 개입된다. 많은 2급 살인은 사전 계획의 철저하고 꼼꼼한 정도를 경계로 1급 살인과 나뉘지만 유괴라는 더러운 범죄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고 꼼꼼한 계획이 서 있지 않은 경우가 극히 드물다. p.130~131
소중한 아들(바비 킹)을 납치했다며 50만 달러를 요구하는 남치범의 전화를 받는 제화업계의 거물 더글라스 킹, 하지막 납치당한 것이 그의 아들이 아닌 운전기사의 아들 '제프 레이놀즈'이라면?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던 드라마가 생각난다. 요즘 즐겨보는 MBC 주말드라마 <옥중화> 속 주인공 옥녀는 윤원형과 정난정의 딸로 오해받아 산적들에게 납치당했지만 그들 부부는 자신의 딸이 납치당한 것이 아닌지라 너희들 마음대로 하라며 구하기를 거부했지.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타인을 위해 돈을 쓰기란 힘든 일이다. 특히 그 돈이 자신의 어떤 일에 꼭 필요한 것이라면 경중을 따지기 마련이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로 더글라스 킹은 납치범이 요구하는 돈을 거절하고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는다.
자신이 가진 모든 돈을 끌어모아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기 일보직전의 순간에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이것을 내 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도 소중하다는 단순한 이분법에 의해 생각할 일은 아니다. 그래서 더글라스 킹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를 비난할수만은 없었다. 더글라스 킹의 아내 다이앤은 킹이 납치범들이 요구하는 돈을 지불한 뒤 가난한 상태에서 버틸수있을까? 가진 돈을 다 내주고 운전기사의 아들을 구해야만 했을까? 한편으로 유괴범들의 정신을 이해하기가 힘드네. 다른 사람의 아이를 납치하는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계획대로 그에게 돈을 요구하는 이유는 뭘까? 더글라스 킹이 사회적 시선(체면)을 두려워해서 돈을 지불해 줄거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주범 사이 바너드와 공범 에디 그리고 은행털이는 용인해도 유괴는 안된다는 특이한 성격의 아내 캐시 등 책속에는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가족 중 누군가가 납치(유괴)를 당하면 나머지 가족들을 납치범이 요구하는 돈을 내주고 납치당한 가족을 구해야 하지. 물론 그렇다고 납치당한 사람이 무사히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다. 때론 납치범과 돈은 사라지고 납치당한 사람은 시체가 되어 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지. 남치당한 아들을 되찾기 위해 은퇴를 미루고 납치범이 요구하는대로 다시 방송<원티드>를 하는 여주인공 정혜인(김아중), 아들 송현우(박민수)의 출연분이 적다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어. 그리고 갈수록 방송내용이 잔혹해진다는 것도 거부감을 주기는 해. 납치범의 요구가 돈이었다면 차라리 쉬웠을거야. 드라마가 이어져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용의자로 등장했다 살해당한 모습으로 사라져갔다. 이제 진짜 범인은 방송관계자 중에 있다는 말이 떠도는데. 다시 책속으로 돌아가서 저자는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질문한다. 과연 당신이 이상황이라면 다른 사람의 아이를 위해 거액의 돈을 내던질수 있느냐고. 자~ 이제 그에 대한 나의 선택은?
다이앤 킹은 아름다운 여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얼굴이었습니다.
그녀의 매력은 얼굴 골격과 직결되어 있는데, 그 골격이 매력적인 용모를 쌓아주기에는 딱 알맞은 기반을 마련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초록빛 눈동자를 현관에서 피트 캐머런의 얼굴로 옮긴 다음 재차 물었습니다.
"저 사람들이 더그에게 무슨 짓을 한 거죠?
캐머런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킹의 몸값,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킹의 몸값>. 에드 멕베인의 87분서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이 시리즈는 고정된 주인공이랄 사람이 없고 87분서의 모든 형사들이 돌아가면서 한 번씩 주연을 맡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작가가 총애하는 형사 한 명을 꼽자면 스티브 카렐라가 아닐까 싶다.
<킹의 몸값>은 그 스티브 카렐라가 주역으로 등장하는 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내내 신경이 쓰이는 건 더글러스 킹이라는 인물이었다. 이 책은 도덕적 딜레마를 다루고 있는데, 더글라스 킹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이자 딜레마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나의 50만 달러를 지킬 것이냐, 남의 아이 목숨을 구할 것이냐"라는 질문은 제3자 입장에서는 대답하기 쉬울 수 있다. 일단 아이 목숨을 구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주인공이 된다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사람이 나라면 선뜻 결정하기 힘든 문제다.
50만 달러의 반대편에 걸린 것이 킹의 아이 목숨이었다면 이 책은 이 정도까지 흥미롭지 않았을 듯 하다. 왜냐하면 이건 상대적으로 쉬운 선택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선택을 살짝 꼬아서, 유괴범이 다른 아이를 데려가고 더글라스 킹에게 몸값을 요구하게 한다. 사건이 유괴사건으로 끝날지 살인사건으로 끝날지는 87분서 형사들의 활약이 아니라 더글라스 킹의 선택이 중요하고 그가 어떤 선택을 하던 비난하기 어렵다.
읽는 내내 흥미진진하면서도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가 많은 글이었다. 87분서 시리즈에 별 관심이 없더라도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