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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

유물과 유적으로 매 순간 다시 쓰는 다이나믹 한국 고대사

권오영 | 21세기북스 | 2020년 9월 15일 한줄평 총점 9.0 (52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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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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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

카드뉴스로 보는 책

책 소개

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서가명강’
삼국시대의 타임캡슐을 열다!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 강의를 책으로 만난다! 현직 서울대 교수진의 강의를 엄선한 ‘서가명강(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시리즈의 열두 번째 책이 출간됐다. 역사, 철학, 과학, 의학, 예술 등 각 분야 최고의 서울대 교수진들의 명강의를 책으로 옮긴 서가명강 시리즈는 독자들에게 지식의 확장과 배움의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의 저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권오영 교수는 무수한 발굴 현장을 직접 발로 뛴 한국사 권위자로,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 출연해 고대사의 가치와 매력을 대중에게 알리면서 주목받았다. 저자는 유물과 유적을 통해 하남 위례성, 임나일본부설 등 기존의 통설이 뒤집히는 극적인 순간들을 소개하면서 다이나믹한 한국 고대사로 우리를 안내한다. 이 책에서는 한국 고대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통해 역사적 진실을 복원할 뿐만 아니라, 발굴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게 펼쳐놓는다. 유물과 유적, 고분과 인골을 통해 반전이 거듭되는 역사의 순간들과 세계로 뻗어 나가는 한국사의 역동적인 여정은 ‘제대로 된 역사’를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값진 감동을 선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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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이 책을 읽기 전에 학문의 분류
주요 키워드
들어가는 글 이제는 역사를 새롭게 바라봐야 할 때

1부 유물과 유적, 삼국 시대의 타임캡슐을 열다
한국 고대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역사를 바꾼 극적인 발굴의 순간
빛바랜 유산에서 빛나는 진실을 찾아내다
Q/A 묻고 답하기

2부 무덤과 인골, 고대인이 말을 걸다
땅속에서 복원한 인류의 자서전
사회적 존재로서의 고대인을 발견하다
그들이 꿈꾸던 사후세계의 재구성
Q/A 묻고 답하기

3부 수도유적, 삼국의 심장이 깨어나다
작은 취락이 거대한 도시가 되기까지
도성의 축조와 세계문화유산으로의 길
백제의 왕도, 하남 위례성을 찾아내다
Q/A 묻고 답하기

4부 교류의 길, 글로벌 삼국 시대를 열다
초원길에서 시작된 다문화의 역사
중앙아시아 속 한국 고대사의 흔적들
한국사를 넘어 세계사로 나아가다
Q/A 묻고 답하기

나가는 글 세계로 나아가는 한국 고대사를 꿈꾸며
참고문헌

상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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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저 : 권오영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고고미술사학 부전공)를 졸업하고 같은 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 고고부에서 학예연구사로 근무하고(1988.9-1992.2), 동아대학교 사학과에서 전임강사, 조교수로 근무하였다(1992.3-1998.2). 한신대학교 한국사학과에서 조교수, 부교수, 교수로 근무하고(1998.3-2015.2) 부속박물관장을 역임하였다(2009.8-2012.2). 2015년 3월부터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부고고학회 회장(2014.1-2015.12)을 역임하고 2018년 1월부터 백제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고고미술사학 부전공)를 졸업하고 같은 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 고고부에서 학예연구사로 근무하고(1988.9-1992.2), 동아대학교 사학과에서 전임강사, 조교수로 근무하였다(1992.3-1998.2). 한신대학교 한국사학과에서 조교수, 부교수, 교수로 근무하고(1998.3-2015.2) 부속박물관장을 역임하였다(2009.8-2012.2). 2015년 3월부터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부고고학회 회장(2014.1-2015.12)을 역임하고 2018년 1월부터 백제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2019년 5월부터 문화재위원회 매장문화재분과와 동산문화재분과의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주 연구 분야는 한국 고대의 국가 형성과 사회구조, 무덤과 취락, 유라시아 교류 등에 걸쳐 있다. 백제 왕성인 서울 풍납토성의 발굴조사를 주도하였으며, 2009년 이후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러시아 내 투바공화국, 베트남 등지의 해외유적 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고대 동아시아 문명교류사의 빛, 무령왕릉』, 『한국해양사 1』(공저), 『삼국지 동이전의 세계』(공저) 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유물과 유적의 극적인 재발견!
한국 고대사의 진실과 반전이 펼쳐진다!


식민사관, 동북공정, 임나일본부설… 다양한 곳에서 역사 왜곡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 고대사는 사료가 부족한 탓에 이 같은 공격에 더욱더 취약하며 온갖 근거 없는 주장들이 진실인 양 난무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왜곡된 역사를 걷어내고 올바른 역사를 인식할 수 있는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권오영 교수는 이 책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에서 그 해답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발굴 현장을 지휘하는 역사학자답게 저자는 유물과 유적을 통한 역사의 재인식을 권한다. 우리 조상들의 흔적은 역사의 진실을 밝힐 무기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유물과 유적으로 역사를 다시 쓴 대표적인 예가 임나일본부설이다.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왜곡한 임나일본부설은 지난 백 년 동안 한일 역사학계를 흔들었다. 오랜 발굴조사 끝에 가야 유물들이 발견되면서 통설을 뒤집을 수 있는 사료들이 확보됐고, 결국 2010년 임나일본부설이 공식적으로 폐기되었다. 오랫동안 사학계의 수수께끼였던 하남 위례성의 위치 논란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고려시대부터 약 천 년 동안 다양한 견해들이 난립했으나 풍납토성의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백제 유물들이 발굴되고 나서야 비로소 정체가 드러났다. 이처럼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은 발굴과 함께 극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책에서는 시공간을 초월하고 역사가 뒤집히는 반전의 순간들을 소개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뼛조각을 분석하고 왕릉의 주인을 밝힌 익산 쌍릉,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 등 저자의 경험이 담긴 사례들을 읽어가다 보면 한국사의 지식이 입체적으로 습득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4가지 프레임으로 보는 삼국시대 격변의 순간들
찬란한 역사를 새롭게 복원하다!


이 책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는 기존의 역사책과 달리, ‘유물과 유적’, ‘무덤과 인골’, ‘수도유적’, ‘교류의 길’의 4가지 프레임으로 한국 고대사를 새롭게 바라보면서 독자들이 좀 더 흥미롭게 역사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기존의 통설이 뒤집히는 생생한 발굴 현장 에피소드를 더해 역사적 지식이 더욱 풍요로워지도록 차별화했다.
1부 ‘유물과 유적, 삼국시대의 타임캡슐을 열다’에서 저자는 신라 성립의 수수께끼를 밝혀낸 경주 조양동 유적 등 오랫동안 베일에 숨겨졌던 순간들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한국 고대사가 굉장히 역동적인 분야이며, 유물과 유적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음을 강조한다.
2부 ‘무덤과 인골, 고대인이 말을 걸다’에서는 무덤(고분)과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골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정치사’ 못지않게 중요한 ‘생활사’ 연구에서 무덤과 인골은 필수다. 이를 통해 고대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분석할 수 있으며, 사후 세계 인식을 비롯한 그들의 생각을 엿볼 수도 있다. 저자는 여기에서 법의학, 인류학, 사회학 등 여러 학문의 융복합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역사 연구의 새로운 스펙트럼을 제시한다.
3부 ‘수도유적, 삼국의 심장이 깨어나다’에서는 국가의 핵심 기능을 담당했던 왕성, 왕궁, 도성을 모두 포함한 수도유적에 집중한다. 저자는 환호와 취락의 잔해에서 국가의 형성을, 천 년의 통설을 뒤집은 풍납토성의 발굴에서 수도유적의 조건과 고대 국가의 발전사를 읽어낸다. 나아가 고대인들의 지배 구조와 문화를 풀어내면서 고대 사회의 숨겨진 진실을 밝히고 있다.
4부 ‘교류의 길, 삼국시대를 열다’에서는 한반도와 중국과 일본에서 더 나아가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등 세계 속의 한국 고대사를 그린다. 저자는 로만글라스, 봉수병 등 세계 곳곳에 숨겨진 삼국시대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기존에 한국사가 보여줬던 역사의 현장을 대폭 확장한다.

‘제대로 된 역사’의 첫 조각을 찾아서
매 순간 다시 쓰는 다이나믹 한국 고대사!


우리의 역사는 쉽게 풀리지 않는 거대한 퍼즐과 같다. 수백 년, 수천 년간 정설처럼 굳어졌던 역사가 발굴 한 번에 와르르 무너지기도 하고, 한평생 역사를 공부한 연구자라도 모든 의문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올바른 역사의 첫 조각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역사가 고정된 것이 아닌 급변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제대로 된’ 역사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진실한 역사를 찾는 한 권의 지침서다.
이 책은 구체적인 발굴 사례를 통해 삼국시대를 돌아보면서 새롭게 써지는 역사를 정리하며, 한반도에서 세계로 나가는 한국 고대사의 생생한 현장을 소개한다. 한 편의 영화처럼 기존의 역사가 단숨에 뒤바뀌는 순간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비판적인 사고와 다양한 시각으로 역사를 재조명해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역사의 진실과 왜곡 사이에서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더욱 명확한 지식과 역사를 보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 '서가명강' 시리즈를 유튜브ㆍ강연ㆍ팟캐스트로 만나보세요!
▶ 강연 www.book21.com/lecture/
▶ 유튜브 youtube.com/서가명강
▶ 오디오클립 audioclip.naver.com/channels/345
▶ 팟빵 www.podbbang.com/ch/14808
▶ 포스트 post.naver.com/21c_sgmk?

종이책 회원 리뷰 (47건)

포토리뷰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피* | 2022.02.21

회사에 있을 때는 ‘시업시간 전, 점심시간=독서시간’이라는 습관이 길러져서 매일 매일 책을 읽었었는데, 휴직하고 나니 이게 좀처럼 안된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아침 6시로 휴직 전이나 후나 같은데^_T... 이상하게 집에서는 책이 손에 잘 안잡혀서, 매일 정기 독서시간 습관을 들이는게 조금 힘들었다. 휴직한지 보름이 지나서야 겨우 독서시간이 정착된듯 하다. 매일 아침 신랑이 출근하고나서부터 오전 9시까지! 더도 말고 덜도말고 딱 책 1권을 다 읽을 정도의 시간! 아 물론 만화책 읽기는 예외다. 만화책은 독서시간에 포함하지 않고, 언제 어느때나 읽을 수 있는걸로 ㅋㅋ

 

 

다만 이 독서시간에 읽는 책들을 보면...내 독서편식이 대놓고 들어난다는 게 흠이랄까. 아무래도 우리집에서 제일 많이 있는 책이 역사책이라서 그런지, 매일 읽는 책도 역사책 투성이다(어디까지나 거실에있는 책장에 한해서 ㅋㅋㅋ). 뭐, 믿고보는 역사책이니까! 태교에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으며ㅋㅋ

 

 

그런의미에서 오늘의 책은 권오영 교수가 쓴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이다. 원래도 한국 고대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인지라, 고대사 관련 책이 집에 많기도 많다(특히 한일고대사). 이 책은 구입한지가 꽤 오래되었는데, 그동안 여러 출판사 서평단을 하느라 읽지 못하고 계속 뒤로 미루고 미뤘던 비운의 책이기도 하다T_T. 권오영 교수님은 차클에서 백제사 강의하는걸 보고, 꼭 책을 읽어야지 했었는데. 이제서야 읽게되는 슬픈 사실...

 

 

 

요즘 경주 여행기 리뷰를 쓰면서 자주 언급하는 단어가 있으니, 바로 ‘신라 6촌장’이다. 그저 막연하게 『삼국사기』에 기록된 박혁거세를 신라의 왕으로 추대한 여섯 촌장이라는 사실과, 내 시조(ㅋㅋㅋ)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거기까지만. 정말 신라에 6촌이 있었는지, 그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는지, 단 한번도 의문을 가진적이 없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혁거세조에는 “이(혁거세의 즉위)에 앞서 (고)조선 유민들이 산과 골짜기에 나뉘어 살면서 육촌을 이루었다”는 수수께끼같은 기사가 있다. 신라를 설명하는 데 난데없이 등장한 이 기사의 의미는 조양동 유적발굴과 함께 풀렸다. 조양동에서 발견한 사로국 물질문화는 평양 일대의 고조선, 즉 위만조선의 문화와 유사한 면이 많았다. 위만조선이 멸망한 기원전 108년 이후 그 곳의 주민들은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중 일부가 경주를 비롯한 경상도 각지에 정착한 것이다. 조양동 유적 발견 이후 대구, 경산, 영천 등 경상도 각지에서 비슷한 성격의 유적들이 발견됐는데 이들에서도 위만 조선계 문화의 영향이 드러났다. 자연스럽게 사로국 성립과 발전과정에 대한 연구가 이어졌다. p 031

 

놀랍게도 신라 6촌에 대한 역사적 증거는 『삼국사기』 의 기록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진짜로 그를 뒷받침하는 유물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말하자면 신라로 발전하기 전, 진한의 소국인 ‘사로국’의 유물이라고 해야하나? 『삼국사기』에 기록처럼 나라가 멸망한 고조선의 유민들이 한반도 남부로 대거 이주해온 흔적이 진한, 마한이 있던 지역에서 유물로 발굴된 것이다. 완전 언빌리버블! 역시 우리나라 고고학자들의 능력이란!

 

 

(창원 다호리 유적)이로 인해 기원전 1세기 무렵 한반도 남해안에는 원거리 국게 교섭을 관장하던 세력이 있었고, 엄청난 부를 독점하던 지배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삼국사기』나 『삼국지』등의 사료에는 전혀 그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 세력은 변한의 구성분자로서 훗날 가야로 발전한다. 도굴꾼에 의해 처참하게 파헤쳐진 무덤이 변한과 가야의 역사를 밝히는 일 등급 자료로 변모한 것이다. p 034

 

 

다라국은 가야 여러 나라 중 하나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수수께끼와 같았던 왕국이다. 그런데 경상대학교 박물관에서 이 유적을(합천군 옥전) 발굴조사하자 보물로 지정할만큼 호화로운 유물이 대거 발견되었다. 기원후 5~6세기 합천을 무대로 성장했던 다라국의 실체가 여실히 드러났고, 그중 금과 은을 이용해 용과 봉황을 장식한 고리자루칼, 금으로 만든 귀걸이는 예술성을 인정받아 2020년 1월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초호화 장신구와 칼 여러점을 소유했던 인물은 다라국의 최고 지배자, 즉 왕이 분명하다. p 043

 

심지어 기록상에는 없던 변한의 흔적까지 찾아내서, 고대사의 빈공간을 메꾸기까지! 그나저나 다라국은 또 어디인가. 음. 변한의 12개 소국 중 하나일까? 우륵의 가야금 12곡이 각각의 가야 연맹국가를 지칭한다는 말도 있으니, 어쩌면 다라국도 또 하나의 가야 연맹국가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다라국이 위치한 합천 주변은 고령(대가야), 창녕(비화가야), 성주(성산가야) 등 현재 이름이 알려진 여러 가야의 도시국가들이 둘러싸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한국고대사에 관련된 당대 기록이, 우리나라에는 남아있는게 없으니 주변국에 의한 왜곡이 쉽게 이뤄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나마 우리에게 가장 오래된 기록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도 엄밀히 따지면, 삼국시대의 이야기를 고려시대에 집필한것에 그치므로 당대의 기록이 아니니 말이다. 반면에 중국이나 일본에는 우리의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당대의 기록이 남아있기에, 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여 역사왜곡을 시도하는 것이다.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역사 왜곡을 행했고, 왜곡이 가장 심하게 이루어진 분야는 가야사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아주 조금 언급된 내용을 제외하면 가야에 관한 국내외  문헌 자료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일제 관학자들이 취약한 부분을 비집고 들어와 역사를 심하게 왜곡했다. 그때 만들어진 논리가 임나일본부설이다. p 047

 

 

다행히도 땅속에서 더 이상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할 만한 보물들이 발견됐다. 김해 대성동 발굴조사를 진행하던 젊은 연구자들이 쾌거를 이룬 것이다. 여기에서 출토된 금관가야의 유물들은 같은 시기 일본의 것을 압도할 정도의 기술력을 보여주는데, 대표적인 예로 철제 비늘 갑옷을 들 수 있다. 4~5세기 무렵 일본에서도 쇠판으로 만든 갑옷을 많이 사용했지만, 대성동을 비롯한 가야 무덤에서 발견한 갑옷들은 그보다 훨씬 발전된 개량 기술로 만든 것이다. 이외에도 기마전에서 아용한 재갈, 발걸이 등 마구류와 철제 무기류는 일본을 압도하는 양과 기술을 보여주었다. 결론적으로 갑옷, 마구, 무기 제조술에서 나타난 우열의 차이를 감안한다면 왜가 군사적 우위로 가야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은 도저히 성립할 수 없다. p 051

 

요즘엔 일본에서도 ‘임나일본부설’이 많이 힘을 잃었으나, 과거에는 지금과는 달이 매우 강력하게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일본 진구덴노가 가야를 평정하여, ‘임나일본부’라는 기구를 두어 가야를 다스렸다는 뭐 그런 이야기다. 일본이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었것은 그들의 당대기록인 『일본서기』를 자의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이런 왜곡을 한 이유는, 고대 일본이 한반도 도래인 덕택에 문명국이 되었다는 피해의식을 뒤집기 위해서이며,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하는게 정당하다는 논리를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우리 땅에서 발견된 철기 유물과 일본 땅에서 발견된 철기 유물의 엄청난 질적 차이와, 우리 고고학자들의 『일본서기』 연구로 인해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의 상상력이라는 것 밖에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거기다 가야는 철의 나라였다. 당대에 그 어떤 나라보다 뛰어난 철제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가야에서 생산된 철은 한반도 여러 국가를 포함하여 중국 및 일본까지 수출되었다. 이렇게 가야에서 수출된 철과 기술이 아니었으면, 제대로 된 철갑옷도 만들지 못했던 일본이 감히 가야를 다스렸다고 하니, 우리나라 학자들은 얼마나 기가찼을까?

 

(발해 효의황후, 순목황후 묘비는) 발해인들이 자국을 황제국가로 인식한 확실한 증거인 셈이다. 하지만 이 귀한 자료의 전모는 발굴조사 이후 여태껏 공개되지 않고 있다. 발해사를 말갈족이 세운 당나라의 지방정권으로 깎아내리려는 중국 당국의 공식입장과 정면으로 상충하는 자료이기 때문인 것이다. 한국에서 고대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외부적으로 싸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고학적 실물자료 없이 정치적인 의도로 작성된 당시의 문헌 자료로만 역사 연구를 시도한다면 얼마나 큰 왜곡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경고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p 059

 

일본의 역사왜곡은 수많은 유물과 증거가 있기 때문에, 언제나 학술적으로도 반박가능하다. 다만 그놈들이 듣지를 않을뿐. 문제는 중국이다. 한마디로 ‘동북공정’. 중국땅에 있던 고조선, 고구려, 발해는 중국의 역사라는 뭐 그런 이야기다. 실제로 중국은 고구려의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기도 했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흔적들이 중국 땅에 있기 때문에, 중국이 유물을 숨기면 우리나라 학자들이 확인을 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하, 참으로 통탄스럽다..

 

 

 

 

인골의 체계적인 수습, 정리에서부터 사망 원인이나 생시에 앓던 질병, 습관, 영양 상태 등을 밝히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협업이 필요하다. 발굴조사 기술이 향상되고 체질인류학이나 법의학 등 유관 분야 전문가들과의 융복합적인 협동 연구가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하였으니 과거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영역과 깊이로 연구의 범위가 확장될 것이라 믿는다. p 078

 

난 간혹 오래된 무덤에서 인골이 나오면, 당연히 중요한 유물로 치중되어 연구가 진행된다고 생각했다. 헌데 아주 놀랍게도 인골이 고고학적 자료로 중요하게 다뤄지는 건 비교적 최근 일이란다. 과거에는 인골이 입고 있는 수의나 부장품등만 유물로써 연구조사로 진행했을 뿐이며, 인골은 후손에게 인계하거나 화장하는 등의 방식으로 처리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인골을 연구대상으로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인골을 하나의 유물로 구분하여 연구조사를 하고 있는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그렇지 않은가? 뼈 하나만으로도 성별, 유전자, 신장, 심지어는 식습관까지도 파악할 수 있으니 말이다.

 

중국 역사책인 『삼국지』에는 이 두개골 변형 풍습이 한반도 남부 진한에서 시행되었다고 기록돼있다. “아이를 낳으면 곧 돌로 머리를 눌러 편평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편적인 기록뿐이어서 실제 시행 여부를 밝힐 수는 없었는데, 인골 발굴로 사실을 밝혀냈다. (……) 경산 임당동 고분군은 진한에서 신라에 걸쳐 장기간 만들어진 무덤들인데, 발굴 결과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인골이 출토되었다. 200여 개체의 인골 중에서 편두를 한 두개골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진한과 변한은 물론 신라와 가야에서도 편두를 실시했음을 알 수 있다. p 083

 

고대인의 ‘편두’. 신라 6촌에 이어 또 한번 기록이 유물로 증명된 순간이다.

 

 

 

 

물론 전승된 기록과 실제 발굴된 유물이 다른 경우도 있긴 하다. 

 

우리는 『삼국유사』의 기록대로 미륵사는 무왕과 그 부인인 신라 출신의 선화공주가 세웠다고 믿었다. 그런데 2009년 미륵사지 서탑을 보수하다가 우연히 사리장엄을 발굴했고, 함께 출토된 사리봉영기에서 “좌평 사택적덕의 따님이 깨끗한 재물을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고, 기해년(639년) 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모셨다”는 기록이 나왔다. 이로 인해 연쇄적으로 거진 이슈가 있었으니, 익산 쌍릉의 피장자 문제이다. p 093

 

 

대왕묘에 무왕, 소왕묘에 선화공주가 아닌 사택왕후가 묻힌것이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제기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대왕묘에서 발굴된 치아가 여성의 것이란 감정이 더해지면서 오히려 대왕묘는 사택왕후, 소왕묘가 무왕의 무덤이란 주장까지 대두됐고 문제는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졌다. 얽히고 설킨 문제를 풀기 위해서 나선 곳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와 원광대학교로 공동 조사단을 구성해 대왕묘를 다시 발굴했다. p 094

 

그 유명한 서동(마동)과 선화공주의 이야기. 서동이 후에 백제 무왕이 되면서 선화공주도 당연히 무왕의 왕비가 되었고, 그 선화공주가 미륵사지를 세웠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믿고 있던 기록이었다. 그런데!!!!!!!!!!!! 발굴된 유물에서 이 이야기가 아주 깨끗하게 손절당했다^_T. 나 진짜 이때 뉴스보고 얼마나 충격이 컸었는지. 어디선가 갑자기 튀어나온 사택왕후로 인해 선화공주는 저멀리. 하지만 오랫동안 기록과 설화를 믿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죽하면 미륵사지 서탑을 사택왕후가 세웠지만, 미륵사지 동탑은 정말 선화공주가 세웠을 것이다! 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확실한건 미륵사지 사리장엄구 덕분에 무왕과 선화공주의 능이라 전해지던 익산 쌍릉까지도 피장자에 대한 의구심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물론 그 덕분에 쌍릉 발굴이 시작되었지만 말이다. 거기다 이때 놀라운 사실까지 확인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발굴보고서에는 없던, 인골이 담겨있던 나무상자가 발견된 것이다. 인골 연구가 진보한 바로 21세기에 말이다.

 

연구결과는 대략 이랬다. 첫째, 팔꿈치의 각도, 목말뼈의 크기, 무릎 너비 등이 남성적 특징을 보인다. 둘째, 방사선 탄소연대 측정치를 볼 때 뼈의 주인이 수명을 다한 시기는 620~659년 사이일 가능성이 68퍼센트다. 셋째, 뼈 주인공의 신장은 161~170센티미터 정도로 당시로는 상당히 큰 편이었으며, 60대 이상의 고령이다. 넷째, 젊어서 낙상한 결과 골반에 상처가 남아있고, 광범위 특발성 뼈 과다증이라는 희소한 질병을 앓았던 흔적이 있다. (……) 말년에는 누워 지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사택왕후가 사리를 봉안하며 남편인 무왕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한 해가 639년이고 무왕이 사망한 시점이 641년이니, 왕후가 사리를 봉안할 때 무왕은 이미 앓아 누웠고 곧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라는 추리가 가능하다. (……) 고고학자들은 대왕묘의 규모나 석재 가공 수준을 볼때 왕릉이 분명하다는 점을 증명했고, 역사학자들은 7세기 전만 고령으로 생을 마감한 백제왕은 무왕 외엔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인골이 백제 무왕의 것이라는 데 의견으 ㄹ모았다. 정체 미상의 뼈가 백제 무왕으로 밝혀진 순간이었다. p 096

 

덕분에 익산 쌍릉의 대왕묘는 이러이러한 합리적인 추론으로 무왕의 무덤이라고 결론이 내려졌다. 소왕묘는? 뭐... 아직 사택왕후의 무덤인지, 우리가 아는 선화공주의 무덤인지는, 아니면 의자왕의 생모인지, 그도 아니면 또다른 무왕의 왕비인지 알수 없지만 말이다. 적어도 확실한건 지금까지 삼국시대 왕릉 중 무덤의 주인이 정확히 밝혀진 것은 백제 무령왕릉 하나라는 점에서, 쌍릉의 대왕묘가 무왕의 무덤이라고 밝혀졌다는 건 정말 고고학과 과학의 승리나 다름없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속전속결로 발굴작업을 완료하는데 급급했지만, 이제는 국민들과 함께 발굴과정을 즐기는 방향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꾀하고 있다. 월성 북편의 쪽샘지구에서는 수년 동안 대형 고분을 조사하고 있는데, 고분 위에 우주선처럼 생긴 가건물을 씌워 비가오나 눈이오나 안정된 환경에서 발굴작업을 진행한다. 서울의 몽촌토성과 석촌동 고분군도 일반인이 방문하면 언제든지 발굴현장을 관람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됐다. p 171

 

 

몽촌토성은 88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간단한 발굴조사만을 거친 채 성급하게 올림픽공원으로 변모했다. 그 결과 과거 백제의 수도는 오늘날 펜싱장과 사이클 경기장, 수경 경기장, 조각공원으로 변모했다. 뒤늦게나마 백제 초기의 역사를 규명할 귀중한 유산을 제대로 조사하지 못했음을 반성하며 최근 정밀한 학술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p 183

 

요즘은 유적지 발굴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발굴작업을 할때 무조건 ‘속전속결’ 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발굴작업의 원인은 대게 도로나 아파트건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도로공사든 아파트공사든 뭘 하기전에 매장문화재가 있는지 확인을 해야하는데, 매장문화재가 있더라도 공사는 진행해야하므로 최대한 발굴작업을 빨리 끝내야만 했다. 빠르게 사진찍고, 빠르게 유물옮기고, 빠르게 유적지 파괴! 그 위에 도로를 건설하거나 아파트 건설! 심지어는 발굴작업으로 인해 공사기간이 늘어나는 것을 우려하여, 문화재가 출토된 것을 감춘 채 공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게 바로 과거 우리나라 유적지 발굴의 미학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변하면서 문화재 발굴작업에 대한 패러다임도 바뀌었다. 지금은 속전속결이 아니라, 최대한 ‘문화재의 보존’과 ‘안정’을 목표삼아 발굴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전과는 달리 발굴작업을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되었는데, 더 놀라운 사실은 발굴작업을 일반인에게 공개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경주 쪽샘지구 발굴작업은 일반인이 언제든 들어가서 볼 수 있기에, 나 역시 가보았는데... 하필 점심시간에 걸려서 못들어갔다는 슬픈 이야기T_T

 

 

조금 슬픈 사실은 이미 수 많은 고대사의 흔적들이 파괴되어 도로 밑에, 혹은 아파트 단지 밑에, 또는 빌라 주차장 아래에 잠들어버렸다는 점이다. 비교적 많은 고분들이 남아있는 웅진/사비 백제나 신라를 제외하면, 한성백제 및 가야의 왕릉급 고분, 심지어 삼한시대의 지도자 고분들이 파괴되어 아파트 단지가 되거나 도로, 심지어 누군가의 논밭이 되어버렸다. 뿐만인가? 한국  최대 규모의 신석기+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대규모 유적지가 발굴된 춘천 중도. 고고학의 한 획을 그은 중도 유적은 다시 파괴되어 땅 아래로 묻혔다. 춘천에서 자랑해 마지않는 ‘레고랜드’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 ‘레고랜드’는 올해 개장을 앞두고 있다. 아무리 유물 발굴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해도, 땅속에 다시 묻혀버리는 유물은 계속해서 생겨난다.

 

 

1988년 일본은 공단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팠다가, 대규모 신석기 유적이 발견되었다. 정부는 이 유적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공단 조성을 포기하고 유적공원으로 탈바꿈했다. 그곳이 바로 일본 요시노가리 역사유적지다. 우리나라는 그때나 지금이나 막대한 돈이 오가는 도로건설, 아파트건설, 공단 조성이 더 중요하여 유적지를 땅속에 묻어버리는데 말이다. 참으로 대비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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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범*샘 | 2022.01.29

고대사, 그 가운데서도 삼국시대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정복 전쟁, 율령 체제, 불교의 수용과 전파, 일본에 건너간 한반도 문화...

학생들 입장에서는 첫 장부터 진이 빠진다. 지나칠 정도로 도식적이어서 어느 정도 훈련을 받아 익숙해진 나조차도 기운이 턱, 하고 빠져버린다. 어찌저찌 해서 삼국시대라는 큰 강을 건너고 나면 이미 학생들의 마음 속에 한국사를 재밌게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사라지고, 어딘가 혼이 빠진 것처럼 수업 시간을 때우게 된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를 두고 흔히들 '사실을 나열하고, 그 사실들을 암기하도록 강요하는 주입식 교육의 대표'라는 혹평을 하곤 한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우선, '사실의 나열'이라는 전제부터 잘못됐다. 적어도 한국사 과목에서만큼은 사실의 나열이 아닌, 사실과 그 사실을 구성한 인간의 목소리와 자취가 결여되어 있다. 한국사 교과서, 그리고 그것을 수업을 통해 해설하는 교사의 텍스트는 수많은 사실들로부터 추출해낸 이론과 구조에 대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컨대, '고구려, 백제, 신라는 정복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고, 율령을 통해 체제를 정비하였으며, 불교를 수용하여 인민을 정신적으로 통합함으로써 중앙 집권적인 고대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라는 서술은 사실이 아니다. 여러 역사책에 기록된 사실들을 종합한 결과 발견한 어떤 역사적 관점과 이론을 '최대한 단순하게 설명'한 것이다. 교사는 그 설명을 가지고 이해를 돕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구조화하여 다시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학생은 고도로 추상화된 결론만을 접하게 된다. 다양한 자료를 늘어놓고 이리저리 뜯어보며 상상해보는 즐거움을 누릴 기회가 박탈되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즐거움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되찾아주려는 시도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높이 평가할 만한 책이다. 저자는 한국 고대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나, 전통적인 문헌 연구보다는 직접 고고 발굴에 참여하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업적을 쌓아온 분이다. 책에서도 짧게 언급되어 있지만, 풍납토성이 백제의 왕성이라는 것을 밝혀내는 데 공헌한 '젊은 고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하다.

저자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처럼 잘 알려진 문헌 자료에 담긴 이야기 대신 해방 이후, 특히 1980년대 이후 축적된 고고 발굴의 성과, 최근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학제간 융복합 연구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 고대사를 새로운 면모를 밝히고 있다. 이러한 방법론적 혁신을 통해 저자는 교과서와 개설서에서 배제된 고대인의 목소리와 발자취를 효과적으로 복원해냈다. 틈틈이 등장하는 일본과 중국의 고고 발굴 성과는 새롭게 복원해낸 한국 고대사의 특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 발 더 나아가 저자는 한국 고대사의 범위를 한국 내지는 동북아시아에 스스로 한정짓지 말고, 중앙아시아나 동남아시아의 고고 발굴 성과를 참조하고 때로는 거기에 적극 참여하면서 더 넓은 시야로 재구성해나갈 것을 당부한다. 요컨대 시대의 흐름에 맞게 역사 연구도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여 더 넓은 시각과 다양한 관점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고고 발굴은 현재 진행형이다. 천천히 그리고 켜켜이 쌓이고 있는 고고 발굴의 성과를 통해 밝혀낸 고대인의 생활상과 그로부터 도출해낼 수 있는 사회, 경제적 현상과 환경적 요인을 그동안 문헌을 통해 밝혀낸 정치사 중심의 서술과 결합한다면 고대사의 이해는 한층 더 깊어지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고대사 서술의 가능성은 더욱 넓어질 것이다. 앞을로도 이러한 성과가 대중에게 더 널리 알려지고, 과거를 상상할 수 있는 자료가 더욱 풍부해지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이러한 자료들이 AR이나 VR과 같은 기술을 만나 언제, 어디서나 역사를 체험하고 상상할 수 있는 콘텐츠로 구축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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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자란?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스*류 | 2021.06.27

서울대 권오영교수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그분의 책은 처음이다. '서가명강'이라는 시리즈가 있는 줄도 몰랐다. 삼국시대 책을 찾다가 우연히 집어들었는데, 말 그대로 '럭키'다. 최근 읽은 역사책 중 최상위권에 랭크돼도 아깝지 않은 책이다. 이렇게 좋은 책은 뜬금없이 나타나고 찾아온다.   

 

책이 주는 정보가 많고 값진 것이어서 추천하는 건 절대 아니다. 저자의 주장이 내 생각과 딱 맞아떨어져서 감동받은 것도 아니다. 그건 이 작은 책 속에 담긴 저자의 땀방울 때문이다. 그리고 연구에 대한 끝없는 열정 때문이다. 1960년생이니 환갑을 넘긴 나이임에도 그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도 종횡무진이다. 연구실과 책 속에만 갇혀있지 않기에 그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옛 돌궐의 이동로를 따라 중앙아시아 가로지르고, 백제의 사신을 따라 동남아시아를 넘나든다. 

 

한국의 사학이 극복하지 못했던, 그래서 비판받는 부분에 대해서 그는 겸허하게, 솔직하게 반성한다. 그리고 좀더 넓은 시각과 개방적인 사고로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 보고, 이웃국가와 민족들을 둘러보자고 제안한다. 나이가 젊음과 늙음을 증명하지 않는다. 그가 구상한 프로젝트들이 멋진 결실을 맺기를, 그래서 또 다른 책에서 좋은 지식을 얻게 되길 기대해 본다. 

 

마지막에 드는 생각, 고고학과를 갈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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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회원 리뷰 (1건)

구매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권요영] 역사가 흥미로운 이유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검* | 2021.02.11

개인적으로 대학교 시절을 회상하면, 두 교수님의 강의가 떠오른다. 장교수님과 전교수님의 강의다. 장교수님의 강의에서는 역사에 대한 기본 전제를 배웠다면, 전교수님에게는 역사에 대한 시야를 배웠다. 전교수님의 한민족과 다문화라는 강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문화에 경기를 일으킨다. 과거의 유물들과 사료들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한민족은 허구일지 모른다고. 우리의 지난 역사는 단일민족이거나 폐쇄적인 문화를 가졌던 게 아니다. 반대로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살던 개방적인 한반도였는지도 모른다. 시야를 넓게 봐야한다고 배웠다. 마찬가지로 권오영 교수의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는 두 교수님의 강의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야를 보여준다. 우리가 알던 역사적 사실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역사는 생물과 같다. 모든 학문이 그렇지만, 역사는 살아 움직인다. 과거에 박제된 망령이 아니다. 변화한다. 고정된 진리나 법칙은 비교적 중요하지 않다. 증거에 기반 한 경향성과 가능성을 바탕으로 합의한다. 그 합의가 어떤 방식, 어떤 방법이냐에 대해서 논쟁이 있겠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상호간 검증하교 정교하게 다듬는다. 중요한 것은 증거, 즉 사료다. 역사는 사료를 바탕으로 과거의 세계를 구축한다. 이 세계는 어떤 인식을 가지고 만들어졌는가(사관)에 따라 그 범위는 무한히 확장하기도 하고, 반대로 한없이 쪼그라들기도 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역사는 범위를 설정하면서 시작한다. 모든 학문이 그렇겠지만, 역사는 구분과 범위 설정에 민감하다. 그래서 역사를 시간의 범위에 따라 고대, 중세, 근대, 현대로 나눈다. 지역별로도 나누고, 국가별로 나누기도 한다. 근래에는 이런 범위를 붕괴시키고 미시사나 빅 히스토리처럼 마치 역사가 아닌 범학문적인 역사도 많지만, 기본은 범위를 설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권오영 교수의 책은 이 범위 설정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 고대 한국사는 우리의 잘못을 알아가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부족한 문헌 사료, 식민지 경험으로 인한 오류, 긴 시간의 경과에 따른 망각 속에서 우리는 역사적 진실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 시야를 넓혀보면 다르게 보인다.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민족 (...) 실상, 그런 민족은 지구 어디에도 없다. (p.223)” 한민족이라는 허구성, 폐쇄적인 문화는 조선 하반기 격동의 시기에 발생한 반동이었을 뿐, 길고 긴 한반도의 역사는 열린사회, 다문화 사회였는지도 모른다. 그 증거는 아직도 땅속에 머물러 있다. 또한 한반도가 아닌 이역만리의 타 지역에도 숨겨져 있다. 그렇기에 시야를 확장해야 한다. 저자의 말처럼 외국에 대한 발굴 지원과 학술 연구는 우리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이자, 우리 스스로를 더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저자는 후배 사학자들에게 조언한다. 고대사를 연구하는 사학자의 엉덩이가 더 가벼워져야 한다.(p.72)”.

역사는 흥미롭다. 우리가 우리 세계를 어디까지 바라보느냐에 따라, 어디까지 범위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그 경계가 변화한다. 단순히 한반도, 한민족에 머무를 수도 있다. 하지만 고대 한국은 이미 다문화 사회를 경험했다.(p.249)” 조금만 넓혀서 본다면 동아시아에서의 한반도, 나아가 세계 속의 한반도, 인류속의 한국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넓은 세계를 바라보는 통찰력과 시각(p.226)”한국인에 대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역사는 그저 과거에 집착하고 매몰된 죽은 학문이 아니다. 과거의 해석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과정을 통해 역사는 그런 질문과 대답하고 시작되고 이어미래로 나아간다.(p.77)”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는 거기에 대한 실마리를 안겨준다. 좀 더 범위를 넓게 보자. 우리의 미래는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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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파려면 넓게 파라는 말처럼 역사학 중에서도 문헌 사료가 가장 부족한 고대사 연구를 위해서라면 고고학적 발굴조사를 통해 생산된 빅데이터의 활용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p.27

가야 고분의 고고학적 조사와 연구는 임나일본부설을 분쇄하는 일등 공신으로 평가된다. 앞으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유라시아 차원에서 전개된 원거리 교류에서 가야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힐 것이다. p.57

2004년에는 용두산 정혜공주묘 주변을 조사하다가 3대 문왕의 부인인 효의황후와 9대 간왕의 부인인 순목황후의 무덤을 발견했다. 여기에 세운 묘비에서는 왕비가 아닌 황후라는 호칭이 사용됐다. 발해인들이(p.62) 자국을 황제국가로 인식한 확실한 증거인 셈이다. 하지만 이 귀한 자료의 전모는 발굴조사 이후 여태껏 공개되지 않고 있다. 발해사를 말갈족이 세운 당나라의 지방정권으로 깎아내리려는 중국 당국의 공식 입장과 정면으로 상충하는 자료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 고대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외부적으로 싸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고학적 실물자료 없이 정치적인 의도로 작성된 당시의 문헌 자료로만 역사 연구를 시도한다면 얼마나 큰 왜곡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경고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p.63

백문이 불여일견이 진리이듯 백기록이 불여일유물인 경우가 자주 있다는 사실 p.64

땅에(p.71)서 새롭게 출토되는 자료에 의해 기존 정설은 붕괴되며 새로운 연구 과제가 지속적으로 창출되고 있다. p.72

1부의 결론은 고대사를 연구하는 사학자의 엉덩이가 더 가벼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정된 문헌 자료만 가지고 연구실에 틀어박혀 씨름하던 시대는 지났다.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 답사가 필수인 시대다. p.72

역사학자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역할을 맡아야 한다. 고고학자가 발굴한 유물을 가지고 화학자와 함께 분석하기도 하고, 토목공학자와 함께 공학적 원리를 규명하는 식으로 새로운 연구 방법론을 개발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역사 연구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p.74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역(p.76)사는 과거의 역사가가 사실을 선택하고 재구성한 결과다. 사학자라면 과거의 해석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역사는 그런 질문과 대답으로 시작되고 이어지며 미래로 나아간다. p.77

중국의 사례를 보아도 그렇고 한국사에서도 순장이 본격적으로 실시되던 때와 소멸되던 때를 확인 할 수 있으며 그 사이에 일어난 사회적 변혁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순장은 단순한 장례 풍습의 의미만이 아니라 계층분화 현상과 신분제 사회의 실체를 규명하는 실마리라 할 수 있다. p.112

대형 고분의 시대에서 불교 사원으로의 이행은 다시 말해 고대 사회에서 중세 사회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p.140

수도유적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면 고대 국가들이 주고받은 문화적 교류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래저래 수도유적은 고대 국가의 다양한 면모를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소재다. p.154

역사학자는 시세를 따라가며 연구해서도 안 되지만, 홀로 성을 쌓고 안주해서도 안 된다.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 교육이 우리의 고대 사회를 단일민족이라 표현하며,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민족으로 그려온 이미지를 정정하기 위해서다. 실상, 그런 민족은 지구 어디에도 없다. p.223

동쪽의 조용한 은자의 나라혹은 순수한 단일민족이라는 우상은 물론 고대시대, 우리의 교섭 상대는 중국과 일본뿐이라는 잘못된 프레임을 깨야 한다. 쇄국을 국시로 삼던 19세기 말도 아닌데, 21세기에 태어난 우리의 후손들에게 이런 역사관을 심어주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는 없다. / 21세기를 주도할 후손들에게 넓은 세계를 바라보는 통찰력과 시각을 전해줘야 한다. 앞으로 코리안이란 정체성은 태어난 장소와 얼굴 형태, 핏줄을 통해 정해지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코리안의 인종적 스펙트럼은 훨씬 넓어질 것이다. ... 이들에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겨야 한다. p.226

몽골족과 스키타이, 무굴 등 우리가 제국이라고 부르는 모든 국가는 사실 다문화 사회였다. p.233

국제관계학을 전공하는 분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이다. 국익을 위한 이합집산이 무궁무진하게 반복되는 외교 무대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으려면 항상 우리 편을 들어주는 국가가 셋 이상은 있어야 하는데, 가장 유력한 후보는 단연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이라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초강대국 주변에서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우리와 비슷한 입장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p.244

고대 한국은 이미 다문화 사회를 경험했다. p.249

지금까지 소개한 유적들은 모두 우리 역사와 관련성을 갖기에 당연히 한국인 연구자들의 연구 대상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까지 우리 역사와 직접 관련성이 있는 것들만 연구해야 할까? 우리와는 무관하더라도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보존하는 데 뛰어든다면 국고 낭비가 아니지 않을까? 이제 대한민국도 민족사를 넘어 세계사 연구에 공헌할 때가 되었다.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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