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부터 엉덩이까지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내 몸 구석구석
저자는 유수의 대만 문학상을 휩쓴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의사이다. 작가 출신의 의사로서 환자와 몸과 질병을 대할 때 감성을 얹고, 의사 출신의 작가로서 독특한 경험과 이성이 가미된 시선과 화려한 지식이 강점으로 적용된다. 이 책 《내 몸 내 뼈》는 저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유쾌하게 듬뿍 담겨 있다.
첫 번째 책 《닥터 노마드》에서 의대생, 임상 실습, 인턴을 거쳐 군의관으로 ‘성장’하는 에피소드와 사색을 기록했다면, 두 번째 책 《내 몸 내 뼈》에선 병원 이야기를 재현하기보다는 신체를 부위별·기능별로 가지런히 분류하는 구성으로 자아를 드러내면서 사회를 관찰하고자 했다. 하여, 해부학의 이야기이자 임상의 이야기이자 생활의 이야기로 완성되었다.
저자는 우리 몸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혀로 맛보고, 피부로 접촉하며 인생을 다채롭고 굴국지게 장식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더 많은 신체 기관을 통해 세상과 부대껴야 한다. 머리카락, 얼굴, 어깨, 허리, 엉덩이, 발가락, 배꼽, 자궁, 포피 등 몸 구석구석을 말이다.
“변덕맞은 몸, 섬세한 내장, 우직한 뼈”
책은 신체 부위별로 챕터를 나눠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다. 크게 머리와 목, 가슴과 배, 몸통과 사지, 골반과 회음으로 나뉘었고 다시 32가지 부분으로 분류했다. 머리카락부터 엉덩이까지 종횡무진 가로지르면, 변덕맞은 몸과 섬세한 내장과 우직한 뼈가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내’ 몸이지만 몸은 변덕스럽기 짝이 없다. 예민하고 상처받기 십상인데, 콧속은 아주 미세한 환경 변화에도 이랬다저랬다 하고 피부는 내적 상태를 언제 겉으로 분명하게 드러낼지 알 수 없으며 머리카락은 지 멋대로 자라거나 자라지 않아 속을 애태운다.
몸속에 있는 내장은 섬세하다. 여러 영역에 발을 걸친 중요한 기관이지만 위장 뒤에 숨어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췌장, 윤상주름 위에 돋은 점막 돌기에 돋아 있는 미세융모로 흡수 면을 최대한 넓히고자 하는 소장.
뼈는 우직하게 몸을 지탱한다. 인체에서 가장 큰 뼈인 넓적다리뼈, 굵고 단단한 정강이뼈, 뇌를 보호하는 만큼 단단한 두개골, 근육이나 인대에 매장되어 있어 팔 힘을 증가시키고 다른 뼈의 기능을 높이는 종자골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제 이야기가 있다”
저자는 내 몸 내 뼈의 신체 기관을 직접적으로만 전하진 않는다. 몸을 통해 삶과 사회와 세상을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이성과 감성, 신체와 일상이 두루두루 빛을 발하는 인문학적 가치를 여기서 발견한다.
남자는 모르는 여성을 처음 볼 때 5초간 입술을 응시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고, 산후 2분 후에 탯줄을 잘라 낸 아기가 철분 결핍성 빈혈 발병률이 낮으며, 대장 환자의 장에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이식하는 수술도 있다.
20세기 초 화가 모딜리아니의 여성 누드화 속 길게 늘어진 목으로 모딜리아니 삶을 추측해 보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담배를 피우게 된 사연으로 타인과 인생을 나누는 ‘폐’라는 장기에 대해 생각해 보며, 짝퉁 손목시계를 성실하게 파는 군 시절 후배 샤오구이의 이야기로 진짜배기 인생이란 게 뭔지 불현듯 깨닫는다. 신비하고 미묘한 몸과 일상다반사가 이어진다.
“내 몸 구석구석을 알아야 내가 산다”
이 책의 모든 에피소드는 저자가 레지던트 시절에 집필했기 때문에 실제 진료 이야기가 다수 포함되었다. 의사로서 환자를 만나며 관찰하고 느낀 바를 전하고, 때론 환자가 되어 우리네와 다를 바 없는 경험을 전한다.
한때 새 생명을 키울 젖이 흘렀고 부푼 꿈을 품었지만 삶을 파멸시키고 만 가슴의 환자, 20대 초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궁을 통째로 들어내고 싶어 하는 환자, 신출내기 레지던트 의사를 믿어 준 할머니 환자.
치통이 심해 치과 의원을 찾았다가 의사라는 신분을 감추기로 한 사연, 군대 시절 시작되어 그 어떤 방법으로도 헤어 나오기 힘들어진 음습하고 시끌벅적한 발의 무좀, 목에 유난히 선명하게 번지곤 하는 두드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