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사내들만의 미학
저자: 프로스페르 메리메 외
출판사: 무블
이문열 세계명작 산책 세번째 도서를 만났다. 앞 두 권을 읽으면서 독서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열심히 읽는다고 하는데도 이렇게 명작만을 모아둔 책을 볼 때면 아직도 읽은 게 많구나 라고 말한다. 20년의 세월이 무성할 만큼 오늘 만난 [사내들이 미학]은 낡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제목에서 알듯이 이번 작품은 '남성'에 대한(?) 작품이다. 그렇다보니 읽기도 전에 강인함과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아니었다. 남성과 여성을 떠나 그저 한 인간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되었고 동시에 이해가 안되더라도 '사람' 이구나 하면서 책을 읽었다.
소개 된 소설은 단편과 중편이 섞어져 있다. 나에게 낯선 작가들이 등장했는데 그마나 헤르만 헤세 이름이 튀어나와 반가웠다. 또한, 책에 실린 작품들은 각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올곧은 사람이라고 마을에 알려진 '마테오 팔코네' 남자의 마지막 선택은 순간 종교가 인생에 우선순위였던가? 라고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으며, 죽음을 받아들이고 할복을 하는 무사들, 악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상대를 죽여버린 '두 소몰이꾼'과 왕이 되고 싶은 사람이 진정 왕이 되었을 때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순간들 등 여러 인간상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 싶나?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아마, 그들(?)만의 세계에선 이해가 되는 것일까? 그래도 작품 중 [그냥 비누 거품]은 다른 작품보다 페이지수가 적었지만 다 읽고도 머리속이 복잡했다. 반란군을 돕는 이발사에 적군의 대장이 나타났다. 쉽게 죽일 수 있는 상황임에도 이발사는 그러지 못했고 동시에 그 남자는 이발사를 시험하듯 목숨을 내놓았다(?). 분명 이발사가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심신이 약했고 반대로 적군은 본인의 목숨을 시험할 만큼 강했다. 여기서 난 아군이나 적군을 떠나 '남자'라는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짧은 단편이지만 확실히 작가의 전달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다.
다른 작품보다 이 작품이 정말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남성하면 강함을 먼저 떠오르게 되는데 [사내들만의 미학]은 한 성향만이 아니라 여러 모습을 보여주었다. 낯선 작품이 많아 어색하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단편으로 여러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는데 다음 명작은 어떤 소재를 가지고 출간이 될지 기대가 된다.
'악당이라 할지라도 사내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강건미'
-작품 해설 중-
‘사내’라는 말을 참 오랜만에 들어보았다. 사실 ‘사내’라는 말은 남자, 남성이라는 말에 비해 좀 더 야생스럽고 강한 느낌이 난다. 이 책 <사내들만의 미학>은 이제는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드는 사내들을 다루는 이야기 10편을 묶은 책이다. 또, 20여년만의 전면 개정판으로 이번에 개정하면서 더할 건 더하고 뺄 건 뺐다. 또, 작가 이문열이 엮어 그 재미를 배가시킨다. 작가 이문열은 ‘진지한 문학에서는 자취를 감춘 사내라는 소재를 다룬 이야기’를 ‘아직은 씩씩함과 엄격함을 잃지 않은 사내들의 이야기’를 엮었단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가장 큰 수확은 바로 몰랐던 작가들을 10명이나 알게 되었다는 것! 특히 10편의 중단편중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은 작품은 <그냥 비누거품>이었다. 이 작품을 지은 사람은 에르난도 테예스로 콜롬비아의 언론인이면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단다. 이 작품은 그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라고 한다. 주인공은 이발사다. 마을의 이발사인데 반란군, 군인이 등장하는 것으로 전시에 준하는 체제인 것 같다. 이발소에 토레스 대장이 면도를 하러 오게 되고 이발사는 사실 비밀리에 반란군을 돕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면도칼을 가죽에 문지르면서 날을 세우던 때부터 면도가 끝날 때까지 내적 갈등을 겪는다. 과연 이 군인대장을 죽여 죽기로 되어 있는 반란군들을 살리는 것이 맞는 일인가... 아닌가. 이 대장을 죽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등등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발사를 갈등하게 한다.
이런 갈등은 사실 면도를 하는 짧은 순간에 이루어진 일이다. 그의 갈등하는 속마음을 가감없이 묘사하고 있는 부분은 마치 살인사건의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이 작품은 내가 주목하는 번역가인 안정효 작가가 진행했다. 제1회 한국번역문학상을 받은 실력있는 번역가이자 <하얀전쟁>이나 <은마는 오지 않는다>의 소설 작품으로 유명해진 소설가이기도 하다. 긴장감 넘치는 아슬아슬한 면도의 순간을 잘 묘사했던 것 같다. 칼을 들고 있는 누군가가 무방비 상태에 있는 사람을 두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내용의 작품들을 그동안 많이 있어왔다. 일본 스릴러 소설에서도 보았고 우리나라 스릴러 영화에서도 본 기억이 난다.
또다른 작품 헤르만 헤세의 <기우사>라는 작품도 인상깊었다. 헤세의 작품들은 거의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은 처음 읽어 본 내용이었다. 사내들만의 미학을 나타내기에는 굉장히 아름다운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다. 주인공인 크네히트가 보여주는 비장미가 헤세의 작품인가 하는 의아함을 주기도 했지만 나름 이 책의 구성으로 어울리기도 했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평소같으면 그냥 찾아 읽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하나의 주제로 모아두어 읽을 수 있게 한다는 것! 누군가가 주제에 맞춰 모아둔 이야기를 하나씩 야곰야곰 읽는 즐거움을 누려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색다른 독서가 되었다. 특히 모든 작품마다 작가와 번역가가 달라 종합선물세트를 보는 것처럼 한 작품을 읽어갈때마다 다른 분위기를 느끼고 기대감이 생겼던 독서가 되었다.
무려 20년 만에 개정된 이문열 작가의 세계명작산책 시리즈. 그중 『이문열 세계명작산책-사내들만의 미학』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 속에서는 사내들이 강인함, 그리고 단결, 일종의 숭고함을 보여주는 비장미가 느껴진다.
'미학'이라는 표현은 이런 의미에서 바라보면 될것 같다. 사실 현대적 감각으로 보면 다소 이해하기 힘든 심리일수도 있다. 당장 프로스페로 메리메의 「마테오 팔코네」만 봐도 그렇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내와의 사이에서 어렵게 얻은 귀한 아들을 자신이 외출한 사이에 숨겨준 사람을 밀고했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스스로 죽이는 스토리는 사실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그와 동시에 만약 애초에 아들이 함께 가기를 원했을 때 데려갔다면 이런 비극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스무 명이 넘는 사내들의 죽음에 있어서 간혹 일본의 시대물 영화에서 봄직한 자결이라는 소재와 연결지어 그려내는 점이 인상적인 모리 오가이의 「사카이 사건」도 있고 이와는 비슷하지만 다른 결을 보이는 신앙이란 이름의 광기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우상숭배자들」도 있다.
왕이 되고자 했던 남자가 결국 왕이 되었으나 진정한 왕으로서 거듭나는 순간은 정작 죽음을 앞둔 상황 속에서 당당하고 의연하게 그 순간을 맞이한다는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는 다소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 무사로서의 위험이 과연 외국인 작가의 시선에서는 어떻게 묘사되는지를 보여주는 「무사의 혼」도 흥미롭다.
어떻게 보면 허세스럽고 또 한편으로 보자면 이렇게까지 자신과 소중한 이를 희생시키며 지켜야 할 명예인가 싶기도 하지만 애초에 이 책의 제목이 그러하듯 남성성, 남성미를 최대한 끌어내려는 작품들의 모음집이자 남성으로서의 비장미를 보여주겠다는 취지로 엮어진 시리즈라는 점에서는 확실히 부합하는 이야기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전반적으로 낯선 작가들이고 이런 작품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경우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점을 고려하면 20여 년 전에 출간되었다는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을 나는 읽지 않은게 확실한것 같다.
게다가 이전의 시리즈 두 권과는 확연히 다른 주제의 작품이며 남성성이든 여성성이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감성보다는 둘을 아우르는 감성이 중시되는 시대에 오히려 사뭇 결기까지 느껴지는 사내들만의 미학을 담아낸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던 사실만큼은 분명 흥미로운 대목이였다고 생각한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