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예술가들은 좋은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의 최선의 감정들은 작품으로 가고,
실제 삶에 남은 것은 찌꺼기뿐이다.
2011년 명동예술극장 한국 초연, 2009년 영국 로열국립극장 초연
“내가 죽었소? 난 일합니다. 난 예술하는 습관을 갖고 있어요.”
당대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 앨런 버넷의 희곡으로 2009년 영국 로열국립극장 초연 당시 평론가와 관객 모두에게 두루 호평을 받은 수작이다. 극중극 구조의 희곡으로 작가 특유의 익살스럽고 통렬한 문체와 서사를 유감없이 드러내면서도 따듯한 인간애를 놓치지 않았다. 날카로운 비판 중에도 예술과 예술가, 특히 연극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느껴진다. 또한 예술은 삶과 마찬가지로 이어지는 습관이라는 통찰을 놓치지 않는다. 2011년 명동예술극장에서 한국 초연을 올린 박정희 연출은 “작가 앨런 버넷은 노회한 극작술로 인물이 가지고 있는 비속함과 성스러움, 고상함과 비천함, 비범함과 평범함, 무지와 깨달음, 무자비함과 친절함을 세밀하게 직조해냈다”고 극찬했다.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 앨런 버넷의 극중극 형식의 희곡
시인 W.H. 오든과 음악가 벤저민 브리튼의 만남을 그린 극중극 〈칼리반의 날〉의 리허설이 진행되는 연습실. 당대 영국 최고의 예술가로 추앙받는 오든과 브리튼이지만 연극에서의 그들은 세계적 명성의 위대한 예술가의 모습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창의력은 점점 쇠퇴하고 평범한 사람들처럼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인물일 뿐이다. 오든 역의 피츠와 브리튼 역의 헨리의 대사에서 엿보이는 두 예술가의 미묘한 갈등과 질투 그리고 훗날 두 예술가의 전기 작가가 되는 카펜터, 남창 스튜어트와의 관계를 통해 예술가들의 위대한 업적 뒤에 숨겨진 충격적인 사실들이 밝혀진다. 《예술하는 습관》은 그들이 창조하는 위대한 작품이 아닌 인간적인 면모에 집중하며 예술가들의 업적과 사생활 사이의 괴리, 끝없는 경쟁, 자기 검열과 욕망, 나아가 연극에 관한 다양한 생각들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나는 위대한 인간들의 결점에 대해 듣고 싶은 겁니다. 그 사람들의 두려움과 실패에 관해서.
그 사람들이 가진 비전이라든가, 그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꿨는지에 대해서는 벌써 충분히 들었습니다. 우린 그 사람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우리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본문에서
〈칼리반의 날〉에서 오든을 연기하는 배우 피츠는 평생 주연만 맡아 왔지만 이제는 종종 대사로 잊어버리는 한물간 배우다. 피츠에 비해 주목 받지 못한 브리튼 역의 헨리는 오든에게 왠지 모를 예술적 열등감을 가진 브리튼의 이야기가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듯 연기지만 실제 동성애자인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없는 소수자일 뿐이다. 카펜터 역의 도널드 역시 중심에 서고 싶지만 남의 일생을 대신 기록하는 전기 작가일 뿐이고 대가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떠나는 남창 스튜어트 역의 팀은 콜보이 역할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진지하고 인문학적이다. 《예술하는 습관》의 인물들은 이처럼 어딘가 조금씩 자신의 역할과 어긋나면서 갈등하고 중심에 서고 싶지만 주변에 머물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난 판단하고 싶어요. 오든 선생님은 편안함이니, 영국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계속 말하죠. 하지만 영국이 편안한 게 아녜요. 편안하게 해주는 건 예술이고, 문학이고, 그 사람이고, 당신이고, 당신들 패거리예요. 그 바깥에는 항상 누군가가 남겨져 있어요. 나한테는 지도가 없어요. 나는 내가 뭘 모르는지조차 모르고 있어요. 나도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요, 합류하고 싶어요. 나도 알고 싶어요.” -본문에서
극중극의 제목인 〈칼리반의 날〉의 칼리반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에 나오는 괴물의 이름이다. 칼리반은 자신의 섬을 점령한 프로스페로에 대항해 반란을 계획하지만 실패하고 프로스페로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의 노예가 된다. 극중극인 〈칼리반의 날〉에서 남창 스튜어트가 바로 그 ‘칼리반’이라고 말하는 작가 앨런 버넷은 오든과 브리튼의 세계로 들어가 중심에 서고 싶지만 끝내 바깥에 남겨진 스튜어트를 통해 진실을 대면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 떠나는 수많은 칼리반들에게 따듯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당대의 위대한 두 예술가 W.H. 오든과 벤자민 브리튼
《예술하는 습관》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예술가는 1930년대 젊은 지성을 대표하는 시인 와이스턴 휴 오든(Wystan Hugh Auden, 1907~1973)과 영국 음악의 자존심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Edward Benjamin Britten, 1913~1976)이다. 브리튼은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어떤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독창적인 작품으로 음악의 자유주의자로 통한다. 그는 왕립음악원을 졸업한 후 4년 동안 라디오, 다큐멘터리, 영화를 위한 음악을 작곡했는데, 이 무렵 오든을 만나면서 영시가 갖는 아름다움과 시와 음악의 미학적 관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고 또한 예술가의 사회적 정치적 책임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이후 오든이 미국으로 망명했을 때에도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머물렀다. 브리튼은 1945년 런던에서 오페라 〈피터 그라임즈Peter Grimes〉 를 발표해 명성을 떨친 이래 다수의 오페라 작품을 쓴다. 《예술하는 습관》에서는 그의 마지막 오페라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창작과정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