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르 파티 Amor fati
철학자 중의 철학자, 유럽의 붓다로 불리는 니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매번 도전할 때마다 큰 숨을 들이쉬고 첫 장을 펼쳐 들지만, 철학에 관심만 많았지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않은 나에겐 도대체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모르는 책 중 하나다. '신은 죽었다.', '위버멘쉬Ubermensch', '영원 회귀' 정도만 단편적으로 알고 있을 뿐!
그런데,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로 시작하는 <대추 한 알>의 장석주 시인의 삶을, 철학자 니체가 흔들었다는 책을 내셨다니. 안 읽어볼 수가 없지. 니체의 철학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흔들어 놓을지 궁금해졌다.
스무 살 청년 장석주의 말랑한 뇌에 꽂힌 니체의 철학은 내 앞에 펼쳐진 전쟁 같은 삶을 회피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법을 알려주고, 삶을 긍정하고 기쁨을 얻는 법을 배웠단다. 그래서 세계와 불화하는 자들, 길고양이처럼 하염없이 떠도는 자들, 세계에 대한 환멸로 괴로워하는 자들에게 한 움큼의 위로와 용기, 꿈의 작은 조각을 건네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책이다.
주의사항 : 이것은 사유의 유격전을 위한 교본으로 두개골을 부수는 벼락이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문을 일단 날리고, 니체 철학의 정수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자신을 다이너마이트라고 선언하는 철학자 니체는 춤의 리듬을 격려하고, 웃음의 화관을 쓰라고 가르친다. 체화해 내면서 음악같이 즐겨야 한다. 니체 입문자를 위한 기초 정보가 담겨있는 안내서로 제1부를 시작한다.
니체는 정신의 세 단계 변화를 얘기한다. 노래할 줄도, 춤출 줄도 모르고 무거운 짐깨나 지는 짐승인 낙타의 삶과 자신의 욕망과 성공을 위해서 살아가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은 사자의 삶에서 남들에게 속박 받지 않고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주체의 삶을 사는 어린이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사자 꿈을 꾸는 대목이 나온다. 고기를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날이 84일이었지만 노인은 또다시 바다로 다시 나가고, 청새치를 잡아 돌아오지만 상어떼를 만나 앙상한 청새치의 뼈만 남게 된다. 하지만 노인은 느긋한 잠을 자며 사자 꿈을 꾸고 있다. 낙타의 삶에서 어린이의 삶으로 나아간 노인의 모습인 것 같다.
매일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 현대인의 삶이 니체가 말하던 삶과 죽음의 영원 회귀보다는 작은 일상의 영원 회귀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고, 모두들 낯선 곳으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는 주말 나들이 차량으로 항상 정체다. 난 지금은 낙타의 삶을 살고 있나 보다.
1883년에 탄생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니체는 당시 사람들에게 이해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백 년 후의 독자에게 기대를 걸어보기로 한 니체의 기대 때문에 10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니체 철학이 지금 더 활짝 날개를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춤추고 웃어라!
항상 떠나라, 익숙한 곳에서 낯선 곳으로!
날마다 '낡아진 나'에서 탈피하며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라!
시인은 생각이라는 섬광에 기대어 세계와 논재를 직관한다. 철학자느 머리를 짜내어 '정리(定理)' 를 세우고,'명제'를 제시하고,'정리' 와 '명제' 를 통해 대상을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철학은 서로 마주칠수 없는 것들을 접목하고, 그 내부로 삼투하며, 상호적으로 융합하는 사유의 방식! 철학은 대상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하고, 철학자는 사건과 현상의 발견자가 되어야 한다. 철학은 사유의 내용이 아니라 사유 그 자체에 바글거리며 발현되는 것이다. 철학이 자명한 것, 즉 상식, 대화,지혜 너머로 나아가려는 사유의 도약 속에서 뜨겁게 달아올라 빛을 내는 행위라면, 그 본질에서 논쟁술이 아니라, 사유의 약동이자, 도약이다. 이때 사유의 내용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사유의 내용이란 늘 사유의 형식 자체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오로지 생각함에서 치르는 사유의 유격전이고 야전술 교본이어야 한다. (-13-)
세계가 존재하려면 동일한 것의 영원한 회귀가 있어야 한다. 우리 삶도 동일한 것의 영원한 회귀 속에 사라졌다 돌아오기를 거듭한다. (-33-)
시인이자 니체 철학 전공자인 진은영은 "영원 회귀는 우연을 강요하는 필연의 숨결이며 신들의 창조적 능력이 발휘되는 주사위 놀이이다. 주사위 놀이의 비유를 통해서 먼저 영원 회귀는 차이의 반복 운동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니체, 영원 회귀의 차이의 철학』 ) 라고 말한다. (-85-)
독수리는 고고한 동물이다. 독수리는 군집 생활을 마다하고 저 혼자 살며 높은 허공을 나는 크고 강한 새다. 니체는 독수리가 두려움을 아는 자, 그러면서도 그 두려움을 제어하는 자, 긍지를 갖고 심연을 바라보는 자라고 그 용기와 지혜를 예찬한다." 독수리는 눈으로 심연을 응시하고 있는 자, 독수리의 발톱으로 심연을 움켜잡고 있는 자렸다." (-176-)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스스에게 거짓말하지 말고 항상 성실해야 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습성을 갖고 있으며 어떤 반응을 보이는 사람인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사랑을 사랑으로 느낄수가 없다.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스스로를 정확히 하는 것으로 시작하라. 자신조차 모르면서 상대를 알기란 불가능하다. " ( 니체, 『아침 놀』) (-254-)
니체(F. W. Nietzsche)는 1844년에 태어나 1900년 8월 25일 사망하게 된다. 그가 쓴 대표작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가 있으며, 허무주의 영원회귀의 개념을 말하였던,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부르곤 한다. 그래서 그의 철학을 안다는 것은 위선이며, 그의 철학의 완벽함을 그 누구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철학을 독학으로 익힌 장석주의 철학 신념이 돋보이고 있었다. 철학자의 철학자라고 말하는 니체에 대한 경외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즉 니체의 철학은 고통 속에 잉태하였다. 그의 절대적 고독감과 외로움이 없었다면,그의 철학은 미완성이었을 것이다. 물론 저자도 니체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여전히 탐구하는 학생으로 나기를 바란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있었으며, 이 책에서, 니체의 철학의 정수, 본질을 알고자 한다면, 책을 덮으라고 미리 말하고 있다. '신에 대한 부인' 신은 죽었다고 말하였던 니체 이전의 유럽 사회는 절대적인 신의 존재가 현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신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전환됨으로서, 인간의 허무주의는 극대화하는 부작용을 잉태하게 된다. 소위 인간에게 부모가 없는 것이나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며, 신의 부재는 나의 존재의 부재와 일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니체는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목적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신에 의지하였던 인간은 ,의지할 대상이 사라짐으로서, 니체를 원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니체는 목적없는 삶을 견뎌내지 못하는 인간의 속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진리를 탐구하고, 길을 만들어 나갔으며,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 노력하고자 하였다. 즉 동물의 삶이 본성과 충동에 의존하였다면, 인간의 삶은 새로운 삶을 완벽하게 구축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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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학을 잘 모른다. 하지만 니체는 안다. 아니 니체라는 유명한 철학가가 있다는 것을 안다.
니체 같은 유명한 사람의 책은 한번쯤 읽고 싶은 법. 니체의 아주 유명한 책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읽기에 도전한 적이 있다. 조금 읽고 든 생각은 나는 이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비유와 현학적인 표현이 나에게는 너무 어렵게 다가왔다. 맨날 철학적인 표현을 달고 사는 친구도 어려워서 포기했다고 하니 결코 읽기 쉬운 책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우연히 어쩌다 니체가 내 삶을 흔들었다는 책의 제목을 보았다. 사실 니체의 책을 다시 도전해 볼 자신은 없었기에 니체의 책을 풀어놓은 책을 읽어보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솔직히... 작가의 말에서 포기할 뻔했다. 작가는 20살 때 니체에게 열렬히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작가의 말은 그 젊은 나이에 니체에게 심취한 사람답다. 뭐라고 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철학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겐 작가의 말조차 너무 어려웠던 것이다...! 무슨 말인지 대충 읽다가 지쳐서 본문으로 넘어갔다. (참고로 변호하자면 나는 멍청하지 않다. 교양 과학서적은 꽤 어려운 것도 잘 읽는 편이다.)
본문은 다행히 작가의 말보단 쉬웠다. 물론 곱씹어야하는 부분이 꽤 있었지만. 나처럼 철학 초보자는 작가의 말을 뛰어넘고 본문부터 읽기를 권한다. 철학 초보자의 입장에서 작가는 니체의 철학에 대해 니체보다는 쉽게 풀어 이야기를 해 준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니체는 정말 새로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기독교가 주류였던 사회에서 신은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 이미 죽어있었다고 말하는 사람. 신은 이미 죽었는데 그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천둥과 번개가 전해지는 시간처럼, 별빛을 보기까지 걸리는 시간처럼, 행위를 보고 인식하기 위한 시간처럼.
또한 죽음은 죽지 않는다는 점에서 거의 유일한 불멸이란 표현이 소름 끼쳤다.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하지?
솔직히 이 책을 읽고 니체에 대해 아주 약간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철학적 수준은 아기 수준이므로... 나중에 다시 한번 읽어볼 생각이다. 또 이 책처럼 철학자를 친절하게 소개해주는 책이 있다면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