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권 448쪽, 하권 446쪽(이야기만) 합계 894쪽의 장편 <모비 딕>을 읽기 전 지루하거나 어렵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내 이름은 이슈마엘." 하고 시작하는 첫 줄부터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식인종 퀴퀘그가 등장하면서 이 둘이 어떤 이야기를 펼쳐나갈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 둘이 딱히 뭔가를 하지는 않는다. 이야기의 마지막 피쿼드가 난파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슈마엘이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네이버에 향유고래를 검색하면 지식백과에 이렇게 소개된다. "향유고래는 이빨고래 중 가장 큰 종으로 ...... 전체적인 몸 색깔은 어두운 회색 계열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흰색에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으며, ...... ." 그러니까 모비 딕은 하얗게 태어났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나이를 먹은, 어쩌면 죽을 때를 넘어선 흰 향유고래인 것이다. 소설 속에서 모비 딕에 대한 이야기가 전설처럼 떠도는 것처럼 전설같은 동물인 것이다.
"오오, 에이해브!" 스타벅이 소리쳤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셋째 날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단념할 수 있어요! 보세요! 모비 딕은 선장님을 노리는 게 아니에요. 미친 듯이 놈을 노린 건 선장님, 당신이라고요!"(하권 444쪽)
이 죽을 때를 넘어선 모비 딕은 충분히 피쿼드에게 기회를 준다. 우리나라에서 쓰여졌다면 영물이라는 표현을 썼을 것이다. 영물이 된 모비 딕은 자신을 쫓는 보트는 돌아보지도 않고 본선 피쿼드를 부숴버린다. 모든 것이 그 소용돌이로 빨려들어가 목숨을 잃는다. 생존자는 단 한 명 이슈마엘뿐이다.
에이해브에겐 나이 어린 젊은 아내도 있고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도 있다. 다리 한 쪽을 잃었다고 해서 가족과 자신의 목숨과 바꿀만큼 모비 딕에게 복수하는 것이 중요했을까?
이 책을 읽게 하는 것은, 이 책을 진행시키는 것은, 에이해브의 증오심이다. 증오심으로 모비 딕을 쫓고 그를 쫓는 것이 이 이야기다. 하지만 증오의 끝은 완전한 패배뿐이다.
<모비 딕>의 구조상 이슈마엘이 첫 줄에 등장하는 반면에 퀴퀘그의 등장도 에이해브의 등장도 뜸을 들인만큼 모비 딕의 등장은 거의 끝에 배치돼있다. 나머지는 모비 딕에 대한 소문과 향유고래를 쫓고, 잡고, 해체하는 이야기로 채워져있다.
머리에서부터 뽑아내는 기름은 향유고래의 자신에게 어떤 것일까? <모비 딕>은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지 다시 알게 되는 이야기다. 멸종위기에서야 포경을 그만 두게 된 게 아니던가. 또 에이해브 개인의 욕심으로 피쿼드에 탄 선원을 수장시키고 만다는 것이 얼마나 한심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인지.
우리는 이야기를 읽으며 착각할 때가 있다. 이것은 단지 이야기일 뿐이라고. 하지만 나의 증오심이, 개인적 욕심이 배를 가라앉히는 일이 현실에서 과연 없을까? 드라마나, 영화, 소설 속의 이야기가 이야기만으로 끝나기를 바라지만, 막장같은 소재가 삶에 불현듯 끼어든다.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내가 나의 욕심으로 배를 가라앉히지는 말자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가 아닐까. 조금씩, 조금씩 현명함을 배워나가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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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페이지 남은 줄 알고 잔뜩 긴장했는데
다행히 뒤에는 빈 페이지들이 많아서 빨리 끝낼 수 있었다.
속도감 있게 빨리빨리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어떤 집단이든 우두머리를 잘 만나야 고생을 안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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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은 싸움도 못하면서 왜 이렇게 까부는지 모르겠다.
퀴케그 분량 갑자기 실종되어서 아쉽다. 그렇게 튼튼하던 키퀘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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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이 자꾸 나서는데 그럴때마다 나는 모비 딕을 응원했다.
모비 딕 모비 딕!
모비딕을 읽다.
읽을 책은 구입하는 편인데 이번엔 도서관 자료실을 이용해 바로 읽었다.
지출이 없는 장점은 있었지만 의미 있는 부분에 마킹을 하지 못하고 필기하느라 진도가 늦는 단점이다. 하여 이후 책 읽기에는 책값을 지불하고 손때를 묻히는 것이 맞다.
허만 멜빌, 작가의 포경선 생활은 1년 남짓. 그럼에도 고래와 포경에 관해 무척 박식하다.
책 절반 정도는 고래와 포경에 관한 개론서에 가깝다. 세밀하고 꼼꼼한 사전지식 없이 글은 쓰는 게 아니란 거다.
일전 지인은 이런 이유를 들어 유명세에 비해 꽤 지루한 책이라 평했다.
일말 정도의 인내심을 가지고 상 하로 나뉜 책을 완독하게 된다.
에이해브 선장은 오직 복수심으로 모비딕이란 향유고래를 잡으려 한다.
낸티컷에서 출항할 때 선주와 투자자, 선원들의 바램은 뭔가.
40명의 선원이 48개월을 운항하여 40마리 분의 고래기름을 가득 싣고 귀로에 오르는 것인데 50줄에 들어서야 결혼하고 자녀까지 둔 에이해브는 안중에 없다.
가족을 그리며 안전운항을 바라는 1등 항해사 스타벅과 대척점에 선 인물이다.
삶의 목적이 곧 모비딕에 대한 복수뿐이다. 선원들의 리더는 이렇기에 본선으로 돌진하는 모비딕에게 모두는 침몰하여 저 세상 사람들이 된다. 한가지 에이해브에 대한 위안이라면 그가 탐욕과는 무관하다는 것. 대신 광기로 찬 인간의 전형으로 이성적인 상황대처의 공간이 전혀 없다. 하지만, 뒤틀려있지만 가식이나 속임수 없이 저돌적으로 모비딕에 맞서는 에이해브의 용기는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보트를 내리며 스타벅과 악수를 나눈다. “내 영혼의 배가 세 번째로 항해를 시작하네.” “~나는 지금 가장 높은 물마루로 일어선 파도 같은 심정일세. 스타벅, 나는 늙었어. 자, 악수를 하세.”
에이해브는 그가 염원하던 모비딕과, 바다와 맞선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전심전력이다.
“고래를 잡든가, 뒤집어 지든가!”
이 귀절이 가장 인상 깊다.
에이해브 선장의 선동과 술에 절어 일심동체가 된 선원들의 합창이 알싸하다.
사는 게 뭔가. 세월 한복판을 차고 앉아 능력껏 해보다가 아니면 가고말지.
식인종으로 지칭되는 퀴퀘크.
“신심이 없는 남자의 지표이자 상징인 퀴퀘크는 절망의 한복판에 앉아 절망적으로 희망을 쳐들었다.” 희망과 절망이 이렇게 배합되며 희열을 느낄 수 있을까.
사족으로, 유일한 생존자인 화자와 퀴퀘크는 친구가 되어 함께 피쿼드호에 오르는데 선상에선 둘 사이의 일이 언급되지 않는 게 아쉽다.
잡은 고래와 놓친 고래 편에서 위트 있는 이야기.
북해에서 고래를 발견하고 작살을 꽂았으나 위태로운 상황에서 밧줄과 보트까지 포기. 다른 포경선이 이 고래를 포획하고 이전 배의 작살, 밧줄, 보트까지 노획. 애초 작살 꽂은 배가 소송제기 하였으나 패소. 고래가 최종적으로 포획되었을 때 놓친 고래였고, 작살과 밧줄은 고래가 매단 채로 도망감으로써 고래가 해당 물건의 소유권을 획득한 것이고, 나중에 그 고래를 잡은 배는 그 물건들에 대해서도 권리를 갖는다는 판결.
또한 당시 어떤 간통사건과 결부시켜 여자와 고래를 동일시한 부분이 있는데 요즘 시대에선 페미니즘의 공격으로 소설의 존립이 위태로울지도 모르겠다.
멜빌은 주홍글자의 작가 너대니엘 호손에게 이 작품을 헌정한다고 했다.
커피 하면 떠오르는 스타벅스가 1등 항해사 스타벅의 이름을 차용했다는 사실도 이제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