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단편소설의 창시자 모파상,
인간의 희로애락을 응축시킨 그의 보석처럼 빛나는 명단편들
근대 단편소설의 창시자 중 한 명이자, 세계 단편소설의 역사에 우뚝 솟은 거대한 봉우리 모파상의 단편선이 현대문학의 세계문학단편선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국내에 그동안 모파상의 단편들이 소개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비곗덩어리」 「목걸이」 등 몇몇 널리 알려진 작품들 위주로 중복 출판되어 왔고 300여 편에 달하는 모파상의 단편 세계 전모를 이해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기 드 모파상〉에는 거장의 단편 세계 전모를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분량을 담았고, 책에 실린 63편의 다채로운 단편들은 모파상이 왜 세계 최고의 단편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지 독자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모파상은 극히 짧은 시기 동안 엄청난 양의 작품을 집필했다. 10여 년에 걸쳐 300여 편의 단편과 6편의 장편소설, 3편의 기행문과 1편의 시집을 남겼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출간과 동시에 기록적인 판매를 기록했고 비평가들로부터도 격찬을 받았다. 투르게네프와 톨스토이, 니체 등이 모파상의 작품을 애독했고, 오 헨리와 서머싯 몸 같은 작가한테는 직접적인 창작의 모델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섬세하고 예리한 관찰력으로 삶의 단면을 포착하는 그의 냉정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작품들을 통해 이후 단편소설을 쓰려는 모든 후배 작가들이 한 번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작가로 자리매김되었다. 예술적 성취와 영향력 면에서 단편소설의 역사는 모파상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단편들은 아직까지도 단편소설이라는 장르에 짙게 영향을 드리우고 있다.
다채로운 모파상의 작품들은 그 소재와 주제에 따라 대략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전쟁과 관련된 단편들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비곗덩어리」를 비롯해 셀 수 없이 많은 가작들은 19세기의 보불 전쟁에서 직접적으로 소재를 취한 것들이다. 모파상이 전쟁을 다루는 방식은 독특하다. 그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전투 상황을 묘사하지 않는다. 그리고 전쟁의 주위에서 피어나는 손쉬운 휴머니즘에 대한 묘사도 거부한다. 그는 평범한 인물들이 전쟁이라는 상황에 휘말리면서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비정하다기보다는 무정하다고 하는 편이 맞을 전쟁의 실상을 가감 없이 묘사한다. 여가를 즐기기 위해 낚시를 갔던 두 친구는 적군에 의해 스파이로 몰려 총살 당하고, 진주군과 사이좋게 지내던 나이 든 여인은 자신의 아들이 전사했다는 통지서를 받고 그가 돌봐주던 적군의 젊은이들을 처참하게 불태워 죽인다. 징집 당하기는 했지만 도무지 군대에 적응할 수 없는 어느 군인은 어떻게 하면 적국 시민들의 보복을 피하고 무사히 적군의 포로가 될 수 있을지 염려한다. ‘왕이 있으면 밖에서 전쟁을 하고, 공화국을 세우면 안에서 전쟁을 하지’라는 어느 등장인물의 탄식은 전쟁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신랄한 야유다.
두 번째는 파리에 사는 사람들의 평범한 삶의 단면을 다룬 작품들이다. 니체가 ‘파리라는 도시의 심층을 섬세하고 꼼꼼하게 파악했다’고 한 이 부류의 작품들은 도시 생활이 요구하는 속물성과 위선, 체면치레 등 인간 본연의 순수함과는 거리가 먼 문명 속에서의 인간들을 그리고 있다. 보석에 집착하는 여성들과 훈장에 집착하는 남성들은 그러한 도시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상징적인 존재이다.
세 번째는 도시 이야기와 대조적인 시골 생활의 삶을 다룬 이야기들이다. 모파상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방의 자연과 그곳 사람들의 성정이 짙게 투영된 이 계열의 작품들은 도회의 삶과는 다소 거리를 두고 원시적인 본능에 충실한 인간들과 그들이 몸담고 있는 풍요로운 자연을 묘사한다. 시골 사람들은 거칠고 순박하지만 그러한 그들의 성품은 무지와 짝을 이루고 있다. 무지해서 안타깝고 답답한 삶을 사는 그들이지만 그들의 불행한 삶은 독자들을 묵직한 감동에 젖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네 번째는 문학의 영원한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을 다룬 작품들이다. 모파상은 죽기 전에 직접 적어 남긴 자신의 묘비명에 ‘인생의 온갖 것들을 탐했으나 그 어떤 것에서도 즐거움을 얻지 못했다’는 말을 남겼다. 그의 묘비명은 찰나적인 욕망의 충족 외에는 환멸을 안겨주기 일쑤인 사랑에 대한 솔직한 그의 시각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사랑의 감정으로 남자는 지루해하고 여자는 상처받는다. 시간이 지나 옛사랑을 떠올리며 회한에 젖기도 하고 아무런 보답도 받지 못하고 희생에 가까운 사랑을 하기도 한다. 사랑에 닳고 닳은 사람들은 짐짓 계산적인 태도를 취하려 하지만 그러한 경계심도 헛되이 사랑에 휩쓸리고 만다. 모파상의 사랑에 관한 단편들은 진정한 사랑의 정의를 추구하는 데 있어 꼭 살펴보아야 할 중요한 사례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위대한 문학 작품에는 현실을 환기시키는 힘이 있다. 모파상이 남긴 백수십 년 전 프랑스 사회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시공을 초월해 21세기인 지금 우리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서로의 삶이 많이 닮아 있음을 깨닫고 깜짝 놀라게 된다. 삶의 불합리와 아이러니는 외피만 바꿔 두른 채 계속해서 되풀이될 뿐이다. 모파상의 날카로운 관찰이 지금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인간과 인생의 본질은 여전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