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작년 출판된 책 중에서 추천하고 픈 책으로,
법륜 스님의 '야단법석 2'책을 꼽아봅니다.
책에선 여러 시민들의 풀기 힘든 고민과 고충들을 접해볼 수 있었는데,
스님의 지혜와 혜안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쉽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아픈 마음을 바로잡아 힐링할 수 있게 도움받을 수 있었고,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을 올바르게 제시해 주는 것 같아 적극 추천해 봅니다.
내가 기대했던 대로 1권에 비해 더 와 닿았다. 외국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니 더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지가 가까워지면 감정이입도 더 짙어지는 것 같다.
스님의 충고는 앞서 읽은 책의 내용과 근본적으로 다르지는 않았다. 구체적인 상황은 조금씩 달라도 해결하려는 마음가짐은 별로 달라지는 게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의 문제로 보면 대수롭지 않아 보여도 내 문제로 보면 크고 깊어지고 절실해진다.
법륜 스님의 이력이 살짝 궁금해졌다. 굳이 알아내겠다는 것까지는 아니고, 말씀하시는 내용으로 짐작하자면 예상 외의 경험을 하신 듯하다. 고등학교 때 과학자가 되겠다고 과학을 공부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설법을 하시는 것을 보면서, 그때부터 이미 평범을 벗어나신 뛰어난 분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는 도로 통한다고 했던가, 불교를 말씀하시면서 다른 종교와 다른 학문까지 아우르는데 감탄은 저절로 일었다. 게다가 행동력은 또 어떠하신가.
현재의 우리에게 이런 어른이 계셔서 참 다행스럽고 고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남편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지고, 아직은 불안정한 애들에 대해서도 여유가 생겨나고, 힘들다 싶었던 학교 생활도 풍요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블로그, 고맙다. 스님 덕분이어서 더 고맙다.
'야단법석'이란 불교의 전통적인 법회방식으로, 법당에서 점잖게 하는 법회가 아니라, 법상을 마당에 내어 놓고 누구나 참여해서 무슨 이야기든 마음껏 할 수 있는 법회이다. 법륜 스님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강연 즉 야단법석을 진행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014년에는 세계각지에서 115회에 달하는 법회를 열었고, 그 강연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모아 [야단법석]을 출간했었다. 당시 그 책에서 법륜 스님은 행복한 삶이란 시간상으로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아야 하며, 공간적으로 너도 좋고 나도 좋으면 그것이 곧 진리이고 행복이라며, 인생을 이렇게 혹은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때 스님의 즉문즉설을 읽으면서 대부분의 문제가 내 안에서, 내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란 걸 깨닫기도 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야단법석 2]가 출간되었다 기에 기다리고 있었던 양 읽었다.
이
책 [야단법석 2]는
2015년에 행한 100여 회의 강연을 모아 놓은 것이라고 한다. 스님의 강연은 언제나처럼 말 그대로 즉문즉설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기 때문에 어떻게 살든 자기가 알아서 살면 되는데 물으니까 대답을 한다는 것이다. 주제는 어김없이
행복이다. 마음의 봄을 맞이하는 것을 이름하여 행복이라 말하는 스님은,
깨달음이라는 것은 선사들의 말씀이나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오늘 하루도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 오늘이 아닌 내일을 이야기하고, 여기 이야기가 아닌 저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자유로운 삶이 곧 행복임을 거듭 말한다.
과거이야기도 미래이야기도
저기 이야기도 아닌 지금 여기의 이야기, 그리고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가 사실은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 여기 나에게 깨어 있기가 행복으로 가는 길 입니다. (207쪽)
우리는
흔히 행복을 말하면서 지금을, 그리고 여기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하면 행복할 것이다' 혹은 '저곳에
가면 보람이 있을 것이다' 라는 마음으로 현재를 그리고 이곳을 부정하곤 한다. 그러기에 행복을 찾는다고 여기가 아닌 저기에서, 지금은 이러하니
안되고 내일은 저렇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시간상이나 공간상에서 헤매기 일쑤다. 그러나 스님은 우리가
현재를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행도 그렇고 행복도 그렇다. 아무리 멀리 보고 가더라도 내가 발을 딛고 서있는 여기를 인정하고 여기서부터 출발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다. 지금을 인정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지금으로 인해 일어나는 내일을 결코
인정할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스님은
또 왜 남의 자유를 간섭하느냐고 말한다. 말하고 평가하는 것은 그들의 생각이고 자유이다. 나는 내 생각대로 내 의지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남이 나를 평가하는
것에 전전긍긍하면 죽을 때까지 남의 노예생활을 해야 하는 겁니다. 그들에게 생각할 자유와 평가할 자유를
줘야 해요. 그걸 간섭하려고 하면 안되고 그건 그 사람에게 맡겨야 합니다.
(259쪽)
행복은
타인이 뭐라 말하고, 어떻게 평가하든 내가 생각하는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서 자유롭다면 말 그대로 나 자신이 자유로울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타인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할 것이다. 요즘 내가 실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회사에서 어떻게 불리었든 간에, 그리고 내가 어떤 일들을 하며 살았던
간에 그것은 그 당시의 일이고, 그 일을 하던 때의 일이지 지금의 나는 아닌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 당시의 틀과 시선과 평가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고,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면 자유를 포기하면 된다. 그렇지만
나에게 자유가 없다면 그것은 타인의 삶이지 나의 삶은 아닌 것이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봄이 깊어져 간다. 때로는 비가 오고 아침저녁으론 쌀쌀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봄볕은 따뜻해져 가기만
한다. 내 마음도 그런 봄볕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쉽게
남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있다. 그렇게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타인의 말에 대해선
서운해하고 또 자신의 말과 행동을 후회하기도 한다. 스님은 그런 것들 모두가 또 다른 집착이라고 말한다. '잘난 나'라는 생각이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으면서도, '잘난 나'를 생각하며 지금 여기에 서있는 나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책들이 범람한다. 아픈 마음을 다독여주고, 세상은 다 그렇지만 희망을 갖고 살라고 주문한다.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마음에 위안을 얻고, 상처가 치유된다면 세상은 애초부터 그렇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읽는 그 당시야 치유가 된 것 같지만 상처는 근본적인 치료를 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덧난다. 스님의 즉답은 어찌 보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넘어졌다면 울기보다는 일어서서 다시 걸어야 하고, 상처를 입었다면 왜 상처가 생겼는지 따지기보다는 먼저 병원을 찾아야 하기에 스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는 더 아프기만 하다. 남에게 욕하고 손가락질만 하는 자신은 늘 책임에서 빠져버리는 우리가 아닌지.. 모든 문제는 내 안에서 내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것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