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름 저
사와무라 이치 저/오민혜 역
2018년 08월 31일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시선에 지친 우리들의 이야기
2017년 11월 08일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며 내 외모에 대해 생각하던 최초의 시기를 기억한다. 초등학생 때는 그러지 않았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거나 흙장난을 하거나 학원에 가거나 재밌게 책을 읽던 순간은 기억하지만, 거울을 보던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거울 속의 내 외모가 나 자신의 눈에 띄기 시작한 때는 중학생 무렵이었다.
거울에 비춰 외모를 본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내 외모를 본다는 뜻이다. 그렇게 나는 나를 사회적 기준으로 대상화하기 시작했다.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 삶은 좀 더 낭비되고, 떨쳐내기 힘든 족쇄를 달고 살게 되었다. 내 외모가 누군가에 비해서 잘났는지 못났는지, 내 신체의 어떤 부분이 아름답거나 추한지 평가하는 내부의 심판관 말이다.
아름다움의 자기 심판에서 때때로 승리한다고 해도 나는 기쁠 수가 없었다. 세상은 한 부위의 패배를 전체의 패배로 규정했다. 아무리 얼굴이 예뻐도 뚱뚱하면 소용이 없어. 아무리 몸매가 예뻐도 피부가 안 좋으면 말짱 헛거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체의 모든 부위에 심판관이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그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드물게 누군가가 전승한다 해도 그에게는 나이라는 장벽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예뻐도 나이는 못 이기네, 라는 식으로.
외모 대상화는 패배할 수밖에 없도록 짜인 구조다. 너무나도 거대하고 굳건하며 오래된 구조. 그 구조를 여성이 사회 변방에서 외모에만 신경쓰며 살기를 바라는 쪽에서 만들고 유지해왔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사회경제정치적 권리에서 여성을 배제시킴으로써 여성이 외모 이외의 자원을 갖지 못하도록 차단시켰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저자는 '그들'에 관해 적극적으로 토로하지는 않는다. 책 대부분이 여성들의 생각과 행동, 반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이야기한다.
외모에 신경쓰다가 사회에 관여할 힘을 잃을 수도 있다고. 사회를 바꾸려면, 개인을 강압하는 거대구조에 맞서려면 외모에 낭비되는 힘을 아껴서 비축해야 한다고.
'우리는 거울 앞에서 한 발짝 물러설 필요가 있다. 치마가 잘 맞는지, 머리스타일이 괜찮은지 걱정하느라 산만해지면 회의실을 장악하지 못한다. 체중이 몇 킬로그램 늘었다고 해서 스스로 가치 없다고 여긴다면 권력 구조에 도전할 수 없다. 외모 강박에 시달릴 떄 우리의 배터리는 방전 상태이므로.'
이 책은 정말 너무 최고로 좋았다. 이런 책을 이제야 읽다니.
근거를 제시하며 (행동과학적 접근)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방식의 책을 참 좋아한다. 요즘 특히 행동과학이 유행하고, 행동과학적 접근이 설득력이 높다. 나는 내 석사논문 마저도 행동과학자 타일러의 넛지 전략을 언급하였다는 사실과, 올해 초에 <해빗>을 읽으면서 행동과학에 반감이 들고 인식론적 접근이 더 좋았던 것때문에 혼란스럽다. 이원론적 생각보다 상호보완 또는 비율을 달리하여 수용하는 쪽이 나은 것이겠지만, 사람의 행동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세심한 실험 설계와 결과 해석에 있어서 행동과학은 매우 명쾌하다. 여성을 대상화하고 외모강박으로 인해 여성들이 겪어온 피해를 논리적으로 설명해 준다. 무엇보다도 외모지상주의는 이제 외모강박(성형, 과도한 다이어트, 노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을 초래)이 여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린이와 남성에게도 피해를 주는 지경까지 초래했다. 결국 모두 피해자가 되었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인가?
꾸밈노동에 관해서 이야기한 책이었다. 읽으면서 외국인이 쓴거라 외국여성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하고 그래서 문화가 다른데 뭔가 좀 공감은 안되지 않을까 생각했던것도 잠시, 내가 고민했던것들, 내가 어렸을때부터 생각해본 것들을 똑같이 하고있는 여성들의 인터뷰와 이야기가 너무 공감이 되었다. 더불어 좀 억울했다. 내가 다이어트걱정, 피부걱정하면서 집중하지 못했던 공부와 일들이 생각났고 화장을 해야한다고 일찍 일어났던것들, 중요한 일이 있을때 화장도 공들여 했었는데 그시간에 차라리 일을 한번더 생각했으면 좋았을걸 일 외에 다른것에 집중한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졌다. 책에서 이걸 짚어주기전까지 정말 당연하게 하고있었던거라 이상하게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걸 모아놓고 글로 읽고보니 너무 이상했다. 문화권이 다른데도 같은 여성이라는이유로 외국인여성들의 사연과 고민이 공감이 안되는게 없었다. 그중에는 나도 분명히 했었던 고민들이 있다는게 너무 놀라웠다. 이책을 읽고나니 내가 손해보는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졌다. 같은시간인데 똑같이주어지는시간에 다른것에 신경쓰느라 내 일에 집중을 못하고 내가 즐거운시간을 놓친다면 너무너무 억울할것같다. 그걸 몰랐을땐 모르지만, 알았으니 충분히 다른것들에 허비하는시간을 줄여나갈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