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 밀러 저/정지인 역
로렌 그레이엄 저/이종식 역
올리버 색스 저/양병찬 역
스튜어트 리치 저/김종명 역
도널드 커시,오기 오거스 저/고호관 역
양젠예 저/강초아 역/이정모 감수
2020년 05월 29일
2018년 03월 14일
지난번 모임에서 템플 그랜딘이 쓴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를 읽었는데 그 책의 서문은 신경과학자인 올리버 색스가 썼다. 아마도 그와 저자인 템플 그랜딘은 꽤 긴밀한 관계를 주고받은 것 같다. 그 책의 연장선으로 이번 모임에서는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던 올리버 색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의식의 강>을 읽어보기로 했다. (참고로 이 책을 끝으로 당분간 모임에서 과학책은 그만 읽기로 했다... 나에게는 너무나 멀기만 한 과학ㅋㅋㅋ)
첫 번째 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찰스 다윈에 관한 고전적인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스물 두 살에 비글호를 타고 세계 일주 여행을 하다 파타고니아를 방문했다는 것."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깨달았다. 아, 잘못 골랐다. 이 책을 가벼운 에세이로 생각한 게 착각이었다. 첫 번째 장에서 색스는 다윈이 어떻게 식물 연구를 하게 되었는지, 식물을 속속들이 살피며 그의 역작 <종의 기원>보다 더 심도 있게 특성들을 파악했는지 말한다.
그가 수십 페이지에 걸쳐 다윈 이야기를 한 이유는 "다윈을 통해 나의 생물학적 독특성, 생물학적 내력, 다른 생물 형태와의 혈연관계를 알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다. 색스는 우리에게 대표작인 <모자를 아내로 착각한 사내>를 쓴 신경과학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과학 전반에 걸쳐 관심을 둔 연구자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음 장에서는 속도에 관한 실험들을 소개하며 인간의 시간 감각과 실제 시간의 괴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다음에는 식물과 하등동물(단세포동물, 군소 등)에서 보이는 신경세포와 시냅스에 대해서, 그리고 다음에는 정신분석 이외에도 두각을 나타낸 프로이트에 대해서 설명한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의 반의 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한다거나 추천하지 않는다는 평은 무의미하다. 다만 내가 읽은 곳까지 겨우 붙잡은 하나의 깨달음은,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전문 영역이 아닌 곳에서도 호기심을 느낄 수 있고, 그 관심이 빛을 발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 모든 지식과 경험이 머릿속에 남지 않아도 괜찮다. 어떤 일을 행한 순간의 짜릿함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을 테니.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은 경험을 그의 말을 빌려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인간의 기억은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취약하며 불완전하지만 굉장히 유연하고 창의적이다. ... 덕분에 우리는 타인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있고, 타인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도 있으며, 예술, 과학, 종교가 포함된 문화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 기억은 개인의 경험뿐만이 아니라 많은 개인들 간의 교류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 순간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시간이었다.(하지만 과학책은 당분간 금지!)
올리버 색스의 마지막 에세이. 올리버 색스라고 하면 기대되는 내용과 문장들이 있다. 예리한 통찰력을 발휘하면서도 따뜻하고 흡인력 있는 글 솜씨. 마지막 에세이라면 역시 그의 지난 삶이 담겨 있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번에는 어떤 새롭고 경이로운 세계로 안내받게 될지 기대하며 책을 들었다.
미리 짐작했던 것과 달리 책은 다윈, 프로이트 등 올리버 색스가 흠모했던 학자들의 이야기와 신경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갔다. 여러 개념과 과학적 발견, 색스가 발견하고 찾아내고 연구한 사유의 기록들이 가득했다. 어떤 개념과 과학적 발견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지만, 어떤 것들은 여러 번 읽어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해도로 따지자면 이 책을 절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흐름으로 흘러가는지만 겨우 따라잡은 느낌. 이번에 처음 접한 개념들도 앞선 지식과 경험이 그러했듯, 시간이 흐르면서 더 다양한 정보와 함께 섞이고, 마침내 나름대로 온전히 이해하게 되겠지. 물론 영원히 정확한 이해에 다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올리버 색스가 말하는 생명 각각의 고유성, ‘불완전하지만 유연하고 창의적인’ 각 존재들의 개성에 대해 새삼 뚜렷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왜 남의 것을 차용하거나 모방하거나 베끼거나 영향받는가’가 아니라, ‘차용하거나 모방하거나 베낀 것을 갖고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다. 다시 말해서, ‘남의 것을 완전히 소화시켜 자기 것으로 만든 다음, 자기 자신의 경험·생각·느낌·입장과 혼합하여 얼마나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모방과 창조
모든 생각들에는 소유권이 있고, 소유자의 상표가 붙어 있다. 제임스의 말을 빌리면, 모든 생각들은 과거의 생각들을 소유하고 태어나, 미래 생각의 소유물로 죽는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아로서 깨달은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나중의 소유자에게 전달된다.
-의식의 강
어떤 일에서든 계보가 존재한다. 첫 번째로는 ‘인간’이라는 종으로서 지식과 경험을 전수받는 것. 올리버 색스는 다윈부터 시작해서 프로이트, 기억의 오류, 무의식적 표절 등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고 촘촘하게 글을 전개하며 기억(경험과 지식)의 생생한 (간접) 체험 효과와 아이디어를 차용하고 모방하면서 마침내 터져 나오는 창의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의 경험과 지식을 내가 체험한 것처럼 흡수하면서 종의 진화를 이어온다는 게 경이롭게 느껴졌다. 원시의 사냥 본능이 어떻다는 거친 설명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일상적으로 직접 겪었던 일들을 증거로 확인할 수 있는 쪽이 더 명쾌하지 않은가. 표제를 염두에 두면서 ‘의식의 강’이라는 말의 의미가 한 존재의 인식 단계에서 엿볼 수 있는 ‘의식의 강’을 나타내는가 싶었다. 하나의 종 안에서 각각의 생명체로 이어져 흐르는, 불완전하지만 끊임없이 흐르는 경험과 지식의 강.
다른 하나는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모든 개념들의 발달 과정을 표현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이 책에서는 과학계에 존재하는 암점을 언급한다.
신경과학자들은 세부 사항들을 다시 취합하여 일관된 전체(coherent whole)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노력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경생리학적 수준에서부터 심리학적 수준, 나아가 사회학적 수준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준의 결정요인(determinant)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한 다양한 결정요인들 간의 지속적이고 흥미로운 상호작용도 고려해야 한다.
-암점―과학계에 비일비재한 망각과 무시
이것을 보고 페미니즘의 현재 단계와 잊혀진 계보(암점)를 떠올렸다. 그러나 이건 거의 모든 것에 적용될 수 있다. 과학계에 암점이 존재하듯 우리 주변에 수많은 암점들이 존재한다. 암점을 찾아내 밝히고, 계보를 끊임없이 파헤치고 연구했던 올리버 색스를 떠올린다. 잊혀지는 것은 너무나 쉽고, 그럼에도 우리는 이어가야 한다. 단절이 있음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들이 있다. 모든 것들이 우연히 맞아떨어져 시대의 흐름을 타고, 번쩍 하고 새로운 진보를 일으켜 내기도 한다. 끊임없이 흐르며 변화하는 강처럼.
우리는 과학사를 살펴보면서 과거를 되짚어볼 수도 있고 앞날을 내다볼 수도 있다.
-암점―과학계에 비일비재한 망각과 무시
암점을 설명하는 장의 첫 문장을 다시 읽어 본다. 안에서 바깥으로. 그리고 다시 나 자신에게로 돌아와 내 안에 흐르는 의식의 강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훗날 다시 이 책을 읽었을 때,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생각들을 발견하길 바라면서.
<의식의 강>은 2015년 세상을 떠난 올리버 색스의 마지막 책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다방면에 걸친 세상을 향한 호기심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에 경외감을 느꼈다. 의도한 건 아니었으나 구입 후 오래도록 묵힌 탓에 종이가 누렇게 바란 상태였다. 여전히 신작 출시 소식이 들려올 것만 같은데 이리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한 개인의 업적을 특정 단어안에 가두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름을 언급할 때면 그의 대표작을 떠올리며 그 이상은 나아가질 않곤 한다. 이미 충분히 위대하다는 사고의 발로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무지로부터 비롯됐지 싶다. 나에게는 물론이거나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찰스 다윈은 진화론의 아버지 즈음으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그 덕분에 이름도 낯선 갈라파고스 제도는 살면서 한 번 즈음은 꼭 방문하고픈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인류와의 교류가 극히 드문 그곳에는 이제껏 우리가 보고 듣고 배운 것과는 전혀 상이한 생명체들이 가득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다윈이 주목한 건 인류가 어떠한 과정을 걸쳐 지금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는 동물이었다. 어디서도 다윈이 오로지 동물만을 연구했다고 하진 않았으나 난 내 멋대로 그리 사고했고 믿어버렸다. 올리버 색스는 다윈이 실은 식물에도 조예가 깊었단 사실을 언급했다. 대개의 꽃에는 암술과 수술이 함께 있는데, 그 전까지 학자들은 자가수분의 방법에 식물이 의존하고 있다고 보았다. 다윈은 특유의 치밀한 관찰력을 발휘한 끝에 이에 반하는 근거를 발견했다. 종의 다양성은 식물에게도 중요했다. 진화는 결코 동물에게만 국한된 기이한 현상이 아니었다.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프로이트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던 면모를 엿봤다. 한 때 그가 심취했던 건 신경학이었다. 괴혈병과 관련된 뇌출혈로 사망한 소년, 급성 다발성신경염에 걸린 열여덟 살짜리 제빵공 도제, 척수공동증이라는 희귀 척수질환에 걸린 서른 살짜리 남성 등이 프로이트의 관심사였다. 그는 장마르탱 샤르코와 한때 입장을 같이 했다. 샤르코와 마찬가지로 히스테리를 신경학적, 생리학적인 관점에서 파악하고자 들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 샤르코를 뛰어넘어 정신의학의 새 장을 열었다. 당시 지배적이던 사고의 틀을 허물었다는 점에서 그건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신이 창조한 인간이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존재라고 사람들은 믿길 희망했다.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이에 반하는 증거가 널렸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인류가 행하곤 하는 오류다. 어떤 이유에선지 인류는 오류를 생성하고 이를 진리라고 철썩 같이 믿기까지 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상대의 언어를 잘못 알아들어 벌어진 헤프닝을 다룬 부분이었다. 만일 나에게 비슷한 일이 벌어졌더라면 아마도 난 나이가 들어 청력이 떨어진 탓이라며 풀이 죽고야 말았을 테지만, 올리버 색스는 학자답게 자신이 어느 순간 무엇을 잘못 알아들었는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는 내가 마치 글을 검수하면서 끝끝내 틀린 단어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과도 흡사했다. 아예 얼토당토 않는 단어가 잘못 들어간 경우에는 손쉽게 어느 부분이 틀렸는가를 인지할 수 있었던데 반해, 현실에 존재하고 모두가 사용하는, 그러나 엄연히 틀린 단어가 사용된 것에 대해서는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뿐만 아니라 표기는 틀리게 돼 있음에도 나는 이를 옳은 단어로 인지하고 읽기까지 했다. 잘못 듣기가 환청이 아니듯 잘못 읽기 또한 환시는 아니다. 어쩌면 이 또한 세상이 순식간에 일그러드는 걸 방지하기 위한 나라는 존재의 독특한 항상성 유지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인간은 오묘한 존재였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에 경도될 경우, 특정인의 행동은 오로지 병리적으로만 비춰진다. 그러나 남들보다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혹은 느리게 행동하는 이들에게도 손상되지 아니 한 의식은 존재했다. 그들은 자신이 지닌 모든 감각을 동원해 자신의 자아를 보존하고, 더 나아가 세상을 재구성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우리의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은 개개인의 노력이 일궈낸 위대한 역작이다. 이런 경이로운 세상을 떠나는 올리버 색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그의 저서 중 처음으로 접했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생각이 난다. 제목만을 보고 기이한 소설 정도일 거라며 대수롭지 않아 했던 나에게 올리버 색스는 신세계를 선보였다. 오늘 따라 이 대학자에 대한 그리움이 크다. 시간이 날 적마다 아직 읽지 않은 그의 책을 찾아 읽어야겠다.
올리버 색스의 마지막 에세이. 기대한 만큼 좋았다. 그리고 더이상 볼 수 없음이 안타까울뿐이다.
" 모든 과학은 일종의 다락방을 갖고 있으며 , ' 당장 쓸모없어 보이는 것 ' 과 ' 별로 적당하지 않아 보이는 것 ' 들을 거의 반사적으로 그 속에 집어던진다 . 우리는 수많은 보물들을 사용해보지도 않고 끊임없이 다락방에 쳐넣어 , 결국에는 과학의 발달을 가로막게 된다 ."
그립고 아쉬운 이름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정말 재밌게 읽어서 작가의 작품을 하나씩 구매중이다. 표지가 넘 이뻐서 이북으로 산 게 아쉬운 의식의 강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함께하는 에세이라서 에세이를 좋아하는 나로선 정말 좋은 책을 내가 들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더 좋은 작품을 써주시기 바랐는데 ㅠㅠ 아쉽고 아쉽지만 다른 저작들을 읽으면서 그리워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