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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 저/최민 | 열화당 | 2018년 10월 5일 한줄평 총점 9.0 (44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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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대중문화 >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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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존 버거(John Berger)를 미술평론가로 널리 알려지게 한 작품으로, 1972년 초판 발행 이후 미술전공자들의 필독서이자 일반인들의 교양서로서 꾸준히 사랑을 받아 온 『Ways of Seeing』. 국내에서도 이미 다른 출판사 세 곳을 통해 소개되었으나 번역상의 오류 또는 여러모로 미진한 부분이 많았다. 이 책은 곰브리치(Gombrich E. H.)의 『서양미술사』의 역자로 정평이 나 있는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 최민(崔旻)의 번역으로 새롭게 단장한 것이다.

역자는 존 버거의 간결한 언어에 담긴 난해함을 텍스트와 이미지에 대한 깊은 이해로 친절히 풀어내며 독자들을 이미지의 세계로 안내한다. 무엇보다 이미지도 하나의 텍스트로 읽히기를 바랐던 원작자의 의도를 살려 원작과 거의 같은 순서로 이미지와 텍스트가 흐르도록 편집했다.

전통적인 미술사나 미술평론에서는 보통 미술작품을 볼 때 작품을 감상하는 이상적인 방식이나 태도가 있다고 가정한다. 마치 어떤 정답과도 같은 감상법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존 버거는 이러한 감상법이 어딘가 잘못된 또는 편협한 방식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바탕이 된, 1972년 방영된 같은 제목의 BBC 텔레비전 시리즈 강의에서 존 버거는 기존의 아카데믹한 보는 방식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청한다.

저자 소개 (2명)

저 : 존 버거 (John Peter Berger, John Berger)
미술비평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처음 미술평론으로 시작해 점차 관심과 활동 영역을 넓혀 예술과 인문, 사회 전반에 걸쳐 깊고 명쾌한 관점을 제시했다. 중년 이후 프랑스 동부의 알프스 산록에 위치한 시골 농촌 마을로 옮겨 가 살면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농사일과 글쓰기를 함께했다. 저서로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 『예술과 혁명』, 『다른 방식으로 보기』, 『본다는 것의 의미』, 『말하기의 다른 방법』, 『센스 오브 사이트』,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모든것을 소중... 미술비평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처음 미술평론으로 시작해 점차 관심과 활동 영역을 넓혀 예술과 인문, 사회 전반에 걸쳐 깊고 명쾌한 관점을 제시했다. 중년 이후 프랑스 동부의 알프스 산록에 위치한 시골 농촌 마을로 옮겨 가 살면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농사일과 글쓰기를 함께했다.

저서로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 『예술과 혁명』, 『다른 방식으로 보기』, 『본다는 것의 의미』, 『말하기의 다른 방법』, 『센스 오브 사이트』,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모든것을 소중히하라』, 『백내장』, 『벤투의 스케치북』, 『아내의 빈 방』, 『사진의 이해』, 『스모크』,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초상들』, 『풍경들』, 등이 있고, 소설로 『우리 시대의 화가』,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G』, 『A가 X에게,』 『킹』, 삼부작 ‘그들의 노동에’ 『끈질긴 땅』, 『한때 유로파에서』, 『라일락과 깃발』이 있다.
역 : 최민 (崔旻)
최민(崔旻, 1944-2018)은 함경남도 북청군 신포읍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문리대 고고인류학과 졸업 후 동 대학원 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파리 1대학 팡테옹-소르본에서 「영화가 회화에 미치는 영향: 1960-1970년대 신구상회화의 경우(L’influence du cine-ma sur la peinture: le cas de la nouvelle figuration des annees 1960-1970)」로 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진보적 미술을 지향한 ‘현실과 발언’의 창립동인으로 활 동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원장,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을 역임... 최민(崔旻, 1944-2018)은 함경남도 북청군 신포읍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문리대 고고인류학과 졸업 후 동 대학원 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파리 1대학 팡테옹-소르본에서 「영화가 회화에 미치는 영향: 1960-1970년대 신구상회화의 경우(L’influence du cine-ma sur la peinture: le cas de la nouvelle figuration des annees 1960-1970)」로 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진보적 미술을 지향한 ‘현실과 발언’의 창립동인으로 활 동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원장,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비평가, 교육자, 기획자, 번역가, 시인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며, 한 종목에만 집착하는 칸막이 사고에서 벗어나 예술 분과 사이의 경계를 넘어서고자 노력했다. 시집으로 『부랑(浮浪)』(1972), 『상실(喪失)』(1974), 『어느날 꿈에』(2005), 편저로 『 미켈란젤로 』 (1975), 공동 책임편집으로 『 시각과 언어 1: 산업사회와 미술 』 (1982), 『 현실 과 발언: 1980년대의 새로운 미술을 위하여 』 (1985)가 있으며, 공역서로 『 미술비평사 』 (1976), 번역서로 『 인 상주의』(1976), 『서양미술사』(1977), 『동서미술론』(1982), 『요하네스 베르메르』(1994), 『다른 방식으로 보기』(2012) 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존 버거의 대표적 미술비평서
존 버거(John Berger)를 미술평론가로 널리 알려지게 한 작품으로, 1972년 초판 발행 이후 미술전공자들의 필독서이자 일반인들의 교양서로서 꾸준히 사랑을 받아 온 『Ways of Seeing』. 이 책은 국내에서도 이미 다른 출판사 세 곳을 통해 소개되었으나 번역상의 오류 또는 여러모로 미진한 부분이 많았다. 이번에 열화당에서 출간하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는 곰브리치(Gombrich E. H.)의 『서양미술사』의 역자로 정평이 나 있는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 최민(崔旻)의 번역으로 새롭게 단장한 것이다. 『시각과 언어 1』(열화당, 1982)에서 「광고 이미지와 소비문화」라는 제목으로 원작의 일부를 소개한 바 있는 역자는, 존 버거의 간결한 언어에 담긴 난해함을 텍스트와 이미지에 대한 깊은 이해로 친절히 풀어내며 독자들을 이미지의 세계로 안내한다. 무엇보다 이미지도 하나의 텍스트로 읽히기를 바랐던 원작자의 의도를 살려 원작과 거의 같은 순서로 이미지와 텍스트가 흐르도록 편집했다. 또한 존 버거는 복제 기술로 인해 이미지가 어떤 식으로 변용되었는지, 누드화에서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시선의 정체가 무엇인지, 실제처럼 보이는 유럽의 유화에 담긴 소유관계와 무의식적으로 노출되어 온 광고 이미지의 본질 등을 톺아보며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들을 던지고 있다.

어떻게 볼 것인가
전통적인 미술사나 미술평론에서는 보통 미술작품을 볼 때 작품을 감상하는 이상적인 방식이나 태도가 있다고 가정한다. 마치 어떤 정답과도 같은 감상법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존 버거는 이러한 감상법이 어딘가 잘못된 또는 편협한 방식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바탕이 된, 1972년 방영된 같은 제목의 BBC 텔레비전 시리즈 강의에서 존 버거는 기존의 아카데믹한 보는 방식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청한다. 그는 영국의 제도화된 강단 미술사학의 암묵적 전제들을 거의 난폭하다 할 정도로 공격하고 있는데, 그러면서 기존의 표준적인 보는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 있고, 또한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적극적으로 제안한다. 이는 하나의 표준적인 방식(The Way of Seeing)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대로의 타당성이 있는, 여러 가지 방식(Ways of Seeing)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존 버거의 이 BBC 연속 강의는 기존의 지배적인 미술사 담론에 대해 전복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급진적 비판의 시각을 보여 줌으로써 방송 당시부터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기존의 미술사학과 미술평론에 미친 그 충격과 파장을 한마디로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오랫동안 강단 미술사학의 주류였던 양식사 중심의 형식주의적 미술사학의 틀에서 벗어난, 다방면의 새로운 연구 방향의 모색이 그의 문제 제기 이후 활발하게 논의된 점은 분명하다. 즉 그 이전에는 미술이나 미술사의 논의에서 흔히 배제했거나 또는 덜 중요하게 생각했던 계급, 인종, 성차(gender)의 문제, 그리고 작품의 소유나 후원과 연관된 정치적 경제적 차원의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을 미술을 이야기할 때 함께 고려해야만 한다는 논점들이 새롭게 제기되었다.

‘누드’에 드러난 남성적 시선
특히 남성적 응시를 중요한 의제로 제시함으로써 시선과 젠더가 연관된 권력의 문제를 처음으로 분명하게 제기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유럽 회화의 누드화 속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여자이다. 누드화에서 주인공은 절대로 그림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그림 앞에 있는 관객이며, 여전히 옷을 걸친 남자로 상정된다. 유럽의 누드 예술형식에서 화가와 관객(소유자)은 보통 남자이며 대상으로 취급받는 인물은 대개 여자다. 이런 불평등한 관계는 문화 전반에 아주 깊이 각인되어 있어 지금까지도 많은 여자들의 의식을 형성한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요구하는 일을 여자들 스스로도 자신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남자들이 여자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자신들의 여성성을 살펴본다.

오늘날 이 누드가 포함하고 있는 태도나 가치들은 광고, 저널리즘, 텔레비전과 같은 좀 더 다양한 미디어 속에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여자를 보는 본질적인 방식, 여자들의 이미지가 사용되는 본질적인 용도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여자들은 남자들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여성성이 남성성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이상적인’ 관객이 항상 남자로 가정되고 여자의 이미지는 그 남자를 기분좋게 해 주기 위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존 버거는 회화 양식의 하나였던 누드화에 그려진 여성을 단순한 감상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캔버스 너머의 남성적 시선을 읽어냈을 뿐만 아니라 그 시선에 한정된 여성을 밝혀낸 것이다.

1985년 뉴욕에서 결성된 페미니스트 예술가 그룹인 게릴라 걸스(Guerrilla Girls)는 존 버거가 제기한 남성적 시선을 아주 직설적으로 표현해냈다. 그들은 앵그르(J. A. D. Ingres)의 유명한 누드화인 〈그랑드 오달리스크(La Grande Odalisque)〉를 ‘왜 여성들은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벌거벗어야 하는가?(Do women have to be naked to get into U.S. museums?)’라는 포스터로 패러디했다. 원작의 여성은 포효하는 고릴라의 머리를 가진 여성으로 뒤바뀌어 있고, 그 옆에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작품의 여성 화가는 3% 미만인 반면, 83%의 누드가 여성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광고 이미지로 본, 백일몽에 저당잡힌 현재

과거, 소유자가 진짜 물건을 소유하거나 소유한 것 같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했던 유화의 자리는 현대에 와서 광고로 대치되었다. 이 두 가지 매체는 모두 고도로 촉각적인 수단으로서, 그 이미지들이 보여 주는 실제의 사물들을 획득하였다는 느낌을 보는 사람에게 주지만, 그 기능은 꽤 다르다. 유화는 흔히 소유주가 자신의 소유물 또는 생활방식을 통해 이미 향유하고 있던 무엇인가를 보여 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이 가치있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더욱 확고하게 갖도록 한다. 반면 광고의 목적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딘가 자기의 현재 생활방식이 만족스럽지 못한 느낌을 갖도록 만드는 데 있다. 광고에서는, 만일 그가 광고하는 물품을 구입한다면 그의 생활이 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얘기한다. 광고는 그의 현재 상태가 아닌, 그보다 더 나은 미래를 느끼게 한다.

이렇듯 광고는 미래 시제로 얘기하지만, 그 미래의 달성은 끊임없이 연기된다. 그럼에도 광고가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광고가 내건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는가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광고가 주는 환상이 그 광고를 보고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품는 환상에 얼마나 적절하게 들어맞느냐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광고는 본질적으로 현실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백일몽에 적용된다. 광고는 계속 연기되는 미래에 근거를 두기 때문에 현재를 배제하고, 그럼으로써 모든 생성과 발전의 여지를 아예 없애 버린다. 광고에서는 획득될 수 있는 능력 이외에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물건을 살 때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환상을 뿌리로 삼아 자본주의는 성장해 왔다. 과거 유화가 특정 계층이나 소유자에게 한정되었다면, 현재의 자본주의 문화는 광고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저자는 광고가 불특정 다수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중을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광고 이미지의 사회적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지속 가능한 담론을 위하여
이 책은 차례 없이 번호가 매겨진 일곱 편의 에세이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네 편은 글과 이미지가 함께 흐르고 있고, 세 편은 이미지만으로 채워져 있다. 여성을 보는 방식 및 유화 전통에서의 다양한 모순적 측면들을 드러낸 이미지들로만 구성된 에세이들은 글로 쓴 에세이들만큼 여러 가지 다양한 질문들을 제기하기 위한 것이다. 이 이미지들로만 구성된 에세이들에서는, 때로는 복제 도판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정보를 곁들이는 것이 제기된 논점을 벗어나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판에 관한 정보는 이 책 마지막 부분에 수록된 도판 목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존 버거의 이러한 주장과 논의들은 소략하고 단정적인 발언들로 이어져 있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도 있다. 그러나 기존의 미술사 논의와는 문자 그대로 ‘전혀 다른’ 방식의 획기적 문제 제기라는 점과 미술사와 미술비평의 새로운 담론적 차원을 여는 하나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이의 제기는 출간된 지 사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신선하며, 시각 문화 연구의 새로운 차원을 선구적으로 전개시킨 지적 촉매로서의 역할이 돋보이는 역작이다.

종이책 회원 리뷰 (35건)

신미술사학의로의 입문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능* | 2022.12.29

* 작은따옴표 안의 문장들은 모두 인용구입니다.

 

 

ⓘⓝⓣⓡⓞ

‘예술’의 사전적 의미는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표준국어대사전)’이다. 더 쉽게 생각하면 흔히 ‘미술’로 환유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우리에게 ‘예술’이 꼭 필요한가?

이는 창작인, 관람자, 수집가 등의 입장을 편가르거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가와 같은 원초적인 질문이 아니다. 자연에서 파생되지 않고 인간이 특별하게 마련해야 가치가 생기는 이 ‘예술’이 때론 너무 거대하거나 우습게 느껴지곤 한다는 게 문제다. 유행을 좇아 전시회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보이곤 한다. 해외 여행 계획을 짤 때 너나 할 것 없이 유명 미술관 방문 일정을 2시간 정도 넣는 것도 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사전에 정의된 ‘아름다움’을 온전히 흡수하기에 충분치 않단 걸 공감할 것이다. 거대한 유화 작품 앞에, 혹은 의미 불명의 행위 예술가 앞에 서 있을 때마다 스스로의 지식 혼은 존재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몇 번이나 있던가?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을 기존과 다른 영역에서 분석하며 새롭게 (비록 1972년에 소개 되었지만) 주장한다. 역자의 말에 따르면 작가의 관점은 '미술의 영역과 그 여타의 다른 삶의 영역과의 복잡한 관계를 보다 자세하게 검토하려는 것'으로, 이것은 이른바 신미술사학이 일반적으로 지향하는 목표이다. 이에 따라 본 서적은 정체를 알 수 없고 추상적으로 다가오는 ‘예술’을 우리 사회 안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총 7 챕터에 걸쳐 설명한다.

 

1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어떤 대상을 ‘보는 행위’에 대해 역설하며 그 의미를 읽는 방식이 얼마나 주관적인가에 대해 ‘동시성’이란 키워드 아래에서 설명한다. 하나의 작품에, 혹은 여러가지 작품들의 배열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담겨 있는 동시성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살펴보며 기존에 미술을 간주하던 시각을 깨뜨린다.

예를 들어 어떤 미술관에 유화 작품 A가 걸려있다고 가정할 때, 인간 P와 Q는 객관적 사실보다는 본인의 관심을 끄는 것에 우선 초점을 맞춘다. P가 전체적인 색감에 감탄할 때, Q는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듯한 구도를 생각하는 식이다. 즉, 감상 체계는 보는 이의 의식이 지대하게 포함된 채 이루어지며, 따라서 예술을 감상하는 관점은 여러가지로 분화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림의 모든 요소들은 동시에 보이도록 그려’져서 저마다 ‘결론을 다시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유화 작품 B와 C가 A를 사이에 두고 걸려있다면 동시성은 다른 종류의 것이 된다. ‘한 이미지의 의미는 바로 그 옆에, 또는 바로 그 다음에 무엇이 오느냐에 따라서 변하게 된다’. 이는 내가 도서나 영화는 좋아하지만, 정적인 미술 작품이나 공연 혹은 연극 따위의 장르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이유를 대신 피력해준다. 잘 편집된 순서에 따라 특정 장면을 연속해서 따라가도록 설계된 작품보다 정보가 많음에도 한 눈에 이해해야 하는 작품들의 피로감이 더 큰 것이다.

존 버거는 또한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시간의 변화가 미술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에 대해서도 논한다.

‘과거의 미술은 특권을 지닌 소수가 지배계급의 역할을 정당화할 수 있는 어떤 역사를 새로 꾸며내려고 하기 때문에 신비화’되는 것이었다. 예술의 권위가 ‘역사 내내 그 보호영역이 가지는 특정한 권위와 분리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미술’로 인식하는 작품들은 대게 아주 오래된 것인 까닭은 우리가 당시의 ‘사회와 어느 정도 유사한 성격을 지닌 사회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공적인 교육도 대부분 검증되었다 할 수 있는 고전 작품들로 이루어지기 일쑤이다. ‘역사는 항상 현재와 과거 사이의 관계를 구성한다’. ‘작품이 보여주는 역사적 순간이 말 그대로 우리 눈앞에 있’기 때문에 세월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어 우리는 시점에 구애받지 않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짝수번의 챕터에서는 오로지 이미지의 나열만으로 해석의 여지를 열어놓는다. 2장에서는 3장에서 소개될 벌거벗음(nakedness)과 누드(nudity)에 대한 예고로 가득한 이미지들이 산재해있다. 헐벗고 꾸며진 여자를 지켜보는 남자들과 관객의 시선. 정물과 여성을 대조 시키며 상품 혹은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서의 인식을 미리 본다.

 

3장을 읽는 순간 어찌 (G)I-DLE (이하 아이들)의 신곡 Nxde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존 버거는 ‘벌거벗은 몸은 있는 그대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지만, 누드는 타인에게 보여지기 위한 특별한 목적에서 전시되는 것’이라며 둘 사이의 명백한 차이에 선을 긋는다.

한 K-POP 여자 아이돌 그룹의 온전한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고자 쓰인 이 곡의 주요 가사도 다음과 같다.

 

♬ Why you think that 'bout nude? / 'Cause your view's so rude / Think outside the box / Then you'll like it (… ) 아리따운 나의 누드 / 아름다운 나의 누드 / I'm born nude / 변태는 너야

♬ 야한 작품을 기대하셨다면 / Oh, I'm sorry 그딴 건 없어요, 환불은 저쪽 / 대중은 흥미 없는 정보 (… ) 행복과 반비례 평점 but my 정점 / 멋대로 낸 편견은 토할 거 같지

 

왜 미술관에는 그토록 많은 여자들이 걸려 있을까? 그것도 발가벗겨진 채로? 남자 관객들은 그것들을 어떻게 감상하고 받아들이는 지 알 겨를이 없지만, 내가 각종 유럽 미술관에 방문할 때마다 항상 들었던 의구심이었다. 페미니즘이 2010년 초반에 한국 여성들을 말 그대로 강타했고, 여자라고 해서 ‘거의 계속해서 스스로를 늘 감시하고 감독해야’ 할 필요가 없단 걸 자각했음에도 각종 누드화가 불편한 이유를 정확히는 몰랐다. 보다 깨어있을 서구권 공기관에 누드화들이 주렁주렁 걸려있으니 잘못된 것들은 아닐텐데, 같은 생각만 했다.

이전의, 어쩌면 지금까지도 동일하게 표현되는 누드화들은 ‘성적인 것을 감추지 않고 평범하게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직접적인 목적이나 동기가 어떻든 간에 여자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는 그녀가 어떤 식으로 대접받기를 원하는지를 말해주는 일종의 표지(標識)로 읽을 수’ 있으며, ‘. 여자는 그림 바깥에 있는, 자기 자신이야말로 그 여자의 진짜 애인이라고 생각하는 남자, 즉 관객(소유자)을 쳐다본다’. 특히 누드화 속 여자들은 유독 다른 방식으로 묘사된 경우가 많은데, ‘이는 여성성이 남성성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이상적인' 관객이 항상 남자로 가정되고 여자의 이미지는 그 남자를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내가 불편했던 이유는 관객과 소유자를 위한 시선 처리 때문이었다.

Nxde를 작사·작곡한 아이들의 리더 전소연이 이 책을 읽었는 지는 미지수지만(오히려 마릴린 먼로의 일화에서 따온 게 명백한 오마주들이 가사와 뮤직비디오에 점칠되어 있으나), ‘누드가 언제나 관습에 의해 정해지며, 이러한 관습의 권위는 특정한 미술전통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K-POP의 현주소에서 깨부수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크게 칭찬할 일이다.

 

4장에는 유사한 구도와 주제로 표현된 작품들이 수두룩하다. 성녀, 죽음, 정물, 누드, 큐피드와 사랑, 초상화. 그것들이 이제껏 어떻게 그려져 왔는지, 어떤 식으로 변화해 왔는지, 각 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 의미는 뭐가 있을지 짚어보았다.

 

5장에서는 유화의 기본적인 상식들을 언급하며 부와 미술의 유착 관계에 대해서 파헤친다.

전통적으로 ‘그림은 금전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바람직하고 탐나는 물건인가 하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어야만 했다’. 다시 말해 그림은 ‘소유자의 재력과 일상의 생활방식이 실제로 어떠한지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풍경화도 예외가 아니었다. 자연이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다해도 ‘유화와 소유 재산 사이의 특별한 관계는’ 유지된다. 한 예로 토머스 게인즈버러의 <앤드루스 부부>는 ‘자신들의 땅을 실제처럼 보이게 했던 유화의 능력‘ 덕분에 ‘지주로서 자신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즐거움’을 배가시킬 수 있었다. 그렇다. ‘액자 안에 든 유화’는 ‘세상을 향한 상상의 창’이라기 보다는 ‘벽 안에 소중하게 박아 놓은 금고에 더 가깝다’.

이와 반대로 때론 서민의 삶을 그린 민화도 종종 발견할 수 있는데, 그림 속에서 떠들고 웃고 즐기는 ‘가난뱅이들은 행복하다는 것, 그리고 잘살 수 있다는 기대가 희망의 원천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규범을 타파하기 위해서 몇몇 예외적인 예술가들은 기존의 것과 ‘정반대되는 작품들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했다. ‘화가가 장인으로서 그가 존중해야 한다고 배워 온 전통적 회화기법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에 갈등하고 싸움에 나서게 마련’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예술가들이 오히려 이 전통을 가장 잘 대표하는 뛰어난 예술가로 칭송’된 이유는 ‘문제의 예술가들이 죽고 나면 전통은 그의 작품에서 몇몇 기술적인 요소들만 받아들인 후, 마치 원칙 자체는 전혀 흔들리지 않은 것처럼 계속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흥미롭고도 슬픈 이 비화는 ‘위대한 예술가’를 ‘평생 투쟁을 해 온 사람’으로 정의내린다.

일전에 정세랑 작가의 신작과 관련한 낭독회에서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작가의 주관이나 가치관이 작품에 뚜렷하고 또 빠듯하게 차고 있다. 이 비율을 어떻게 조정하고 있으신지.”

이에 대한 작가의 답변으로 이 챕터를 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다.

“불편한 사람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고전으로 칭송받는 작품들을 보면 항상 작가의 주장이 강한 편이다. 그런 사람들이, 그런 작품들이 살아남는 것이다. 그럼에 나는 굽히지 않고 계속할 것이다.”

 

부와 가난을 비교하는 작품들. 생활 양식, 옷, 생활 방식, 인종, 동물, 배경이 되는 자연.

 

마지막 장에서는 근·현세대에서 새롭게 펼쳐지는 예술 양상에서 우리가 읽어야 할 지침을 제시한다. 가장 크게 비트는 부분은 바로 ‘우리는 정적(靜的)이고 광고는 동적(動的)’이란 것이다. 우리가 광고를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광고가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는 것. ‘광고는 현재 상태가 아닌, 그보다 더 나은 다른 상태를 제시’하며 ‘우리가 비록 돈을 써 버려서 전보다 가난하게 되더라도 우리가 조금 더 사들인 바로 그것들이 다른 면에서 우리를 부유하게 해 줄 것이라고 얘기한다’. 어쩌면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자신감의 고독한 형태다. 그것은 정확히 말해, 당신을 부러워하는 사람들과 당신의 경험을 나눠 갖지 않음으로써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백일몽 속에서 피동적인 남녀 노동자는 능동적인 소비자로 바뀐다. 노동하는 자아는 소비하는 자아를 선망하는 것이다’.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에서도 밝혔듯 ‘광고는 소비를 민주주의의 대체물로 만들어냈다’.

이러한 관념은 주로 마케팅에 이용하는 작품들과 기법들에서 발견해낼 수 있는데, 이 책에서 권장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사진, 화보잡지를 들추어 보거나, 거리로 나가 상가의 진영창들을 구경한 다음 도판이 실린 미술관의 전시 카탈로그를 들추어 보고 이같은 두 종류의 매체를 통해 얼마나 비슷한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는지 주목’해보는 것. 작가는 '충격적일 정도로 유사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을 것이라 자신하며, '이같은 상호 연관성’은 ‘사용된 기호체계의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로 하여금 ‘진짜 물건을 소유하거나 소유한 것 같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느낌은 5장에 걸쳐 얘기한 유화의 특징을 떠올리게 한다. 아래 문장을 살펴보자.

‘유화는 자연히 현재 시제로 그려져 있다. 화가는 실제에서건 혹은 상상에서건 그가 현재 눈으로 보는 것을 그렸다. 반면에 순간적인 쓰임새 때문에 만들어진 광고의 이미지는 미래 시제만을 사용할 뿐이다.’

이 부분은 캐널라인 냅의 <욕구들>에서도 읽을 수 있다. '만약에 내가 ~했다면'이란 생각으로 거식증을 앓거나, 더 많은 화장품을 사거나 하는 등 동경하는 모델을 따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인 소비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또한 1장에서 논의한 한 공간에 있는 여러 작품의 ‘동시성’에 대한 인식도 광고에 대입해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콘트라스트’라는 말로 ‘광고의 본질에 대해’ 드러내보인다.

‘광고에서는 본질적으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광고는 그것 이외에 아무 일도 생겨나지 않을 때만 효력이 있다. 광고에서 모든 진짜 사건들은 예외적인 일이고 남들에게나 생기는 일이다. 방글라데시의 사진을 볼 때 그 사건은 비극적이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만일 그 사건들이 데리(Derry)나 버밍엄(Birmingham)과 같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일어났다면, 그 콘트라스트는 그에 못지않게 상당히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콘트라스트는 반드시 그 사건이 비극적이라는 점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사건이 비극적이라면, 그 비극은 그러한 콘트라스트에 대해 우리의 도덕적 감각을 일깨워 줄 것이다. 또한 만일 그 사건이 기쁜 일이었고, 직접적이고 상투적이 아닌 방식으로 찍혔다면 그 콘트라스트 역시 상당한 것이 될 것이다’.

아무리 내 나이의 학생들에게 벌어진 세월호 사건을 실시간으로 보며 충격을 받았고, 얼마전의 열차 탈선 사고가 당장 친한 친구에게 일어난 사고라 해도, 이태원에서 직접 겪었던 참사는 큰 트라우마가 되어 나에게 덮쳤던 걸 생각하면 집단 뿐만 아니라 한 개인에게 콘트라스트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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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짧은 개인사 공유를 끝으로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 대한 독후감을 마무리할까 한다.

성인이 되고 서울에 살게 되면서부터는 곧잘 미술관이나 전시회에 가는 편이었다. 친구들이 같이 가자고 꼬드겨셔였을지, 아니면 무의식중에 모름지기 상경한 자의 특권은 문화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이란 걸 증명하기 위해서였는지, 그 여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해외 여행을 가면 인근 유명 미술관엔 꼭 방문했기에 아마 후자가 그 목적에 더 가까운 이유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미술을 잘 모른다. 작품을 어떻게 보면 되는지 ,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인지, 그게 회화 작품이 됐건, 설치 작품이 됐건, 영상물이 됐건 잘 몰랐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고집은 세서 오디오 가이드나 도슨트는 거르기 일쑤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진정한 예술이란 내 방식대로, 내 마음대로 받아들이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200쪽이 채 되지 않는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알게된 건 개뿔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는 정확하다. 과거의 내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단 것. 예술은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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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예술에 걸쳐진 통념을 내려놓고 보기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엠*이 | 2022.12.19

 최근 몇 년간, 난해하게만 여겨졌던 현대미술을 향한 거부감이 많이 줄어든 모양이다. 주말마다 도심 곳곳에서 전시회가 열리고, 자기 취향에 맞는 작품을 찾는 이들이 만원사례를 이루고 있다. 그 문턱을 낮춘 요인으로는 무엇보다 다양한 전시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소규모 화랑과 아트페어를 중심으로 작품을 구경하고 직접 구매하려는 소요가 크게 늘었다. 과거에는 미술품 보유가 상류사회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직접 발품을 팔아서 자기 취향에 맞는 작품을 구매하기도 한다. 이처럼 예술을 적극적으로 누리는 대중의 기호에 맞게 미술을 즐기는 방식을 탐구하는 책들도 덩달아 관심을 받고 있다. 오늘 소개할 책은 미술을 감상 방식에 관해서 얘기하는 책이다. 

 보통 서양미술사를 학술서로 공부하는 것이 제대로 된 예술 감상 방식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읽고 나면 예술을 즐기는 방식이 전혀 달리 보인다. 존 버거는 미술을 즐기는 데 있어 부자유스럽다는 것을 제일 먼저 불편해한다. 그가 보기에 대중은 가장 자유로워야 할 미술마저도 누군가의 가르침 아래에서 무척이나 부자유스럽게 학습해온 것이다. 그는 기존의 통념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심미안을 재고하기를 바란다.

 

 미술평론가 존 버거는 1972년에 이 책을 썼는데, 이후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갖게 되었다. 그는 난해한 미술에서 어떻게 맥락을 끄집어낼 수 있는지 살피는 데 주력한다. 대중은 이미지에서 어떤 느낌을 받지만, 그것을 텍스트로 정리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전통적인 미술사 책을 보면 작품에서 교훈을 찾아내려는 강박을 엿볼 수 있다. 마치 감상하는 방식이 정해져 있다는 식으로 따분하게 대중을 오도한다.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미술이 기능할 때 예술은 시시해진다. 그래서 존 버거는 "그린다는 것은 단순히 대상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러 관계 사이의 화음을 포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존 버거는 완전히 새롭고 누구와도 다른 고유한 방식의 텍스트 해석을 강조한다.

 

 책의 후반부로 다가서면 복제 기술이 미술사에 끼친 영향을 점검하고, 나체화에 잠재된 여성이 대상화, 유럽 유화의 계급성, 매일 텔레비전을 틀면 나오는 광고의 상품성과 예술의 관계까지 다루는 범위를 확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술이 계급과 인종, 성차별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데, 이는 현재 전 인류가 여전히 고민거리임을 생각해볼 때 <다른 방식으로 보기>가 얼마나 선험적인 책이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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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버*꼬 | 2022.11.29

본인 특: 띵작들 원서 그대로 읽고 싶어서 맨날 사놓고 숙성만 시킴

독서모임 이번 달 책이라길래 부리나케 끼워달라고 했다. 드디어 읽었다.

 

이 책은 목차가 따로 없고, 텍스트와 이미지가 한 챕터씩 번갈아 나오는 형식이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텍스트. 말 이전에 보는 행위가 있다. 본다는 것의 특징(다양성, 관심에 따라, 상호적)

2. 이미지.

3. 텍스트. 전통적 회화에서의 누드. 남자/여자가 여자를 보는 방식

4. 이미지.

5. 텍스트. 유화의 목적: 사유재산의 과시, 예외적인 작품들

6. 이미지.

7. 유화와 광고 - 수단과 목적의 측면에서

 

의미있게 읽은 구절들을 묶어서 얘기해보려고 한다.

 

p. 14 "과거는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려고 했을 때 필요한 결론들을 이끌어내는 일종의 샘물과 같은 것이다."

p. 21 "우리가 현재를 아주 분명하게 볼 수 있다면, 우리는 과거에 대해 올바른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p. 40 "스스로의 과거와 단절된 개인이나 계급은 역사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개인이나 계급에 비해, 선택이나 행동을 함에 있어 훨씬 덜 자유롭다."

 

과거를 신비화하는 행위에는 의도가 있고 이를 통해 계급화와 불평등이 발생한다. 예술작품이 종교 신비화의 증거로 쓰였던 것처럼, 과거 신비화의 결과들은 계속 답습될 가능성이 높다. 미술에 국한되지 않고 역사적 측면에서도 '다른 방식으로 보기'가 필요하다.

 

p. 54 "그러나 그 대가를 치르기 위해, 그녀의 자아는 찢겨 두 갈래로 갈라진다. 즉, 여자는 거의 계속해서 스스로를 늘 감시하고 감독해야 한다는 말이다."

p. 55 "직접적인 목적이나 동기가 어떻든 간에 그 여자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는 그녀가 어떤 식으로 대접받기를 원하는 지를 말해주는 일종의 표지로 읽을 수 있다."

p. 75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여자들 스스로도 자신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남자들이 여자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자신들의 여성성을 살펴본다."

p.76 "여자들은 남자들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여성성이 남성성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이상적인' 관객이 항상 남자로 가정되어 있고 여자의 이미지는 그 남자를 기분좋게 해주기위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전이 불편했던 경우는 수도 없이 많았다. 안 읽는 방법 말고 건강하게 읽는 방법이 있을까 고민했었는데 이 책에서 어떤 점들이 불편하게 만드는지 객관적으로 서술되어있는 점이 좋았다. 앞으로도 이렇게 작품들을 소화하면 좋을 것 같다. 빡치긴 하겠지만 ... 

 

p. 130 "... 전통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이에 적합한 작업 방식을 공부했던 도제나 학생이 예외적인 화가가 되려면, 자기 나름의 독자적인 시각이 중요함을 깨닫고 전통적인 관습이 요구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독특한 시각을 키워나가야만 한다. 혼자 힘으로 자기가 이제까지 배워온 예술의 규범에 맞서야만 하는 것이다."

 

어깨너머 알고 있는 훌륭한 작가들이 이런 관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처절한 노력을 했다는 사실이 새삼 감동적이다. 어떤 의미에서 나도 이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극이 된다.

 

p. 154 "광고가 약속하는 것은 쾌락이 아니라 행복이다. 즉 다른 사람들에 의해 외부적으로 판단되는 행복이다. 선망받는 행복이 곧 매력(glamour)이다.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자신감의 고독한 형태다. 그것은 정확히 말해, 당신을 부러워하는 사람들과 당신의 경험을 나눠 갖지 않음으로써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p. 155 "광고 이미지는 있는 그대로의 그녀 자신에 대한 애정을 슬쩍 훔쳐내어선 광고 상품의 구입 대가로 그 애정을 주인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다."

p. 161 "유화란 무엇보다도 사유재산에 대한 찬양이었다. 그것은 당신이 소유한 것들이 곧 당신이라는 원리에서 나온 미술형식이다."

p.172 "백일몽 속에서 피동적인 남녀 노동자는 능동적인 소비자로 바뀐다. 노동하는 자아는 소비하는 자아를 선망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무심코 본 자극적인 광고들이 갑자기 보기 힘들정도로 부정적으로 느껴졌다. 사진의 구도나 자세가 담고 있는 명확한 의도, 이 의도가 수백 년간 반복되어 온 특정 그룹의 시선이라는게 느껴져서. 광고에 의한 소비가 얼마나 덧없는 지도 다시 한 번 느낀다. 삼성페이 지문 입력 전에 이 메시지 좀 띄우게 해주세요(....) 

 

함께 할 때 목표 달성에도 도움되고 나누는 이야기의 폭과 깊이도 더 넓어짐을 늘 느낀다. 좋은 책들을 앞으로도 함께 읽으면 좋겠다. 다음 책은 마찬가지로 예술을 다루고 있는 <달과 6펜스>를 읽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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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p*****a | 2019.12.26

예술을 보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공해준 책.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도판이 같이 실려있어서 보는 즐거움과 바로 확인해볼 수 있는 편리성이 있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도판이 전부 흑백이었다는 점. 전자책단말기에서 봐서 그런가 했는데 pc로도 확인해본 결과 원래 그런 것으로... 컬러랑 흑백 인쇄 단가가 다른 종이책도 아니고 전자책인데 도판은 컬러로 실어줬어도 되지 않았을까. 

그래도 전체적으로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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