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연 저
안데르스 한센 저/김아영 역
조원재 저
천선란 저
오카다 다카시 저/이정환 역
정승규 저
소설은 프랑스의 한 작은 시골마을에서 살고 있는 90세의 할머니 잔의 일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편은 일찍이 세상을 떠났고, 물려받은 저택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지만, 그녀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알차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설 속 잔이 뭔가 엄청난 모험을 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90세라는 나이는 그런 것들을 하기에는 조금 무리일 테니까. 대신 잔은 이웃집에 사는 노부부나 마을에 사는 친구들과 만나 식사를 하고, 카드게임을 하고, 수다를 떤다. 일요일마다 성당에 가는 것도 잊지 않았고.
정원에서 가꾸고 있는 텃밭을 관리해 주는 정원사와,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집안일을 도와주는 가정부, 종종 찾아오는 자식들과 손주들도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이다. 여전히 스스로 운전도 할 줄 알고,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조금씩 해서 냉장고에 저장해 두는 건 중요한 소일거리다.
봄부터 시작해 겨울로 끝나는 이 지극히 평온한 어떤 할머니의 일기를 보며 묘한 편안함이 느껴진다. 오래된 생활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는 잔에게는, 쉴 새 없이 울리는 휴대폰의 알람도, 별 공감이 되지 않는 다른 사람의 글과 사진에 좋아요를 눌러야 한다는 압박도, 끊임없이 나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없다. 그저 날씨에 따라, 몸 컨디션에 따라 하루하루 하고 싶은 일을 해 나갈 뿐.
문득 전에 봤던 일본 영화(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김태리 배우 주연으로 리메이크를 했었던) “리틀 포레스트”라는 작품도 떠오른다. 시골 마을에 내려온 젊은 여성이 혼자 생활하면서 주변에서 나는 재료로 음식을 해 먹는 이야기일 뿐이었는데도 보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었던.
요샌 이런 걸 힐링이라고도 부르지만, 사실 그런 걸 본다고 뭔가 치유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 안에 있는,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일깨울 뿐. 현대인의 삶이란 너무 많은 것을 신경 써야 하고, 그러다 보면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시간이 손에서 빠져나간다. 우리는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그렇게 흘려보낸 날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곤 한다.
물론 잔의 모습이 우리 모두가 따라가야 할 삶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너무 각박하게, 여유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만들어준다. 잘 산다는 건 하루하루를 뭔가로 꽉꽉 채우는 것과는 좀 다르다는 걸 깨다는 건 중요한 일인 것 같다.
곳곳에서 발견되는 노인의 통찰도 인상적이고, 노인 특유의 고집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해 내는 부분도 재미있다.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 아, 왜 책 제목이 “체리토파토파이”냐면... 할머니가 파이에 넣을 체리를 냉동실에서 꺼내려다가 실수로 작은 체리토마토(방울토마토)를 꺼내 넣어버렸던 에피소드에서 나왔다. 토마토 파이라니...ㅋ
내 이름은 잔이다. 나이는 아흔 살이다. p.11
아흔 살의 잔 할머니의 일상은 어떨까? 프랑스의 작은 시골마을에 살고 계시니 나와는 사는 곳도 또 환경도 달라 낯설지는 않을까? 책표지가 눈길을 끌어 구입하긴 했는데, 막상 400페이지가 넘는 할머니의 일기장을 받아들고 보니 조금 염려스러워졌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웬걸 잔 할머님 너무 귀여우신거 아니야?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하나, 둘 떠나가는 사람들과 변해가는 환경을 마주하며 마음 아파하거나 새로운 기계들에 짜증을 내기도 하는, 또 그러다가도 어쩔 수 없지, 하며 하루를 씩씩하게 시작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만나니, 몇 해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도 나고, 또 신문물(!)에 종종 한숨을 내쉬시는 엄마도 떠올랐다.
나의 작은 세상은 서서히 횅해진다. 주의 사람들이 하나둘 저세상으로 떠나고 빈집이 늘어난다..(중략)..몇 년 전에 영감들이 하나둘 먼저 떠났다. 이제 혼자 살던 노파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한다. p.33
페르낭과 마르셀이 떠나는 날이 오면 내 인생에서도 한 부분이 완전히 멎어버릴 것이다. 삶은 죽음과 함께 어느 날 갑자기 멎어버리는 게 아니다. 삶은 훨씬 일찍부터 한 조각 한 조각씩 우리를 떠나간다. p.335
우리는 마치 두 갈래 강 사이에 사는 것 같다. 산 자들의 강이 한 갈래, 죽은 자들의 강이 또 한 갈래. 어쩌면 떠나간 사람은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다. 저 멀리 어딘가에 그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아주 멀지만은 않은지도 모른다. 우리도 차례가 오면 그 사람에게로 갈 것이다. pp.151-152
나의 청춘이 흐려지고 색이 바랜다. 나의 지난날은 물이 쏟아진 수채화 같다. 그렇게 어떤 이름이 나에게서 도망가고 어떤 추억이 사라진다. 어떤 날짜, 어떤 나이...... 바로 이런 순간에 세월의 무게가 여실히 느껴진다. p.289
미치겠다. 오븐이 작동이 안 된다..(중략)..나는 버튼이란 버튼을 죄다 눌러본다. 삐삐삐 소리는 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계속 0000만 깜박거리고 작동은 안 된다..(중략)..바보 같지만 울고 싶다. 그래서 주방 식탁 앞에 앉아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엉엉 울어버렸다. pp.42- 43
그렇게 잔 할머니가 일기장에 빼곡하게 적어내려간 일상을 읽으며, 삶과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공존하고 있는지 또 그렇기에 지금 내 앞에 놓인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어찌보면 작년 이맘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새해 첫날도, 봄이 와서 꽃망울을 터트리는 들꽃들도 그리고 알록달록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물들인 단풍과 또다시 시간이 지나 만날 첫눈까지, 매년 반복되는 듯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새롭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자갈들은 아직 낮의 온기를 머금고 있었지만 바람이 한결 상쾌했다. 나는 6월의 기나긴 저녁을 좋아한다. 낮이 길어서 하늘이 아직 환한데도 첫 별이 보이곤 하는 저녁. p.114
늘 보는 경치인데도 지팡이를 짚고 주위를 둘러보면 경치에 싫증 날 틈이 없다. 바다처럼 새파란 하늘 아래 자연이 불타오르는 것 같다. 이 아름다운 광경도 오래가지 않을 테니 지금 즐겨야 한다. p.235
매년 시월은 풍경을 새로 그린다. 매년 나는 이렇게 고운 색을 전에도 본 적이 있었나 싶다. p.236
어느밤 운전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 속상해 하면서도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십자말 풀이를 좋아하는 잔할머니의 이야기는 그렇게 잔잔한 여운으로 한동안 내게 남을 것 같다. 이 책의 제목이 왜 <체리토마토파이>가 되었는지 갸웃거리던 나의 궁금증을 풀어준 할머니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아, 이건 스포일 수 있으니, 이 책을 읽으실 분이라면 눈을 감아주세요^^)
파이는 금갈색으로 잘 구워졌고 체리도 탱글탱글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나는 늘 하는 대로 “조심해서들 먹어, 혹시 체리씨가 남아 있을지도 몰라.”라면서 파이를 내놓았다. 모두들 큼지막하게 한 조각씩 가져갔다. 우리는 파이를 먹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표정이 확 변했다. 아주 희한했다. 사실, 파이는 전혀 맛있지 않았다. 내가 냉동실에서 토마토를 체리로 착각하고 꺼낸 것이었다. 우리 정원에서 자라는 알이 아주 작은 토마토, 일명 체리토마토 말이다. p.252
그렇게 체리와 체리토마토를 헷갈린 잔 할머니이시지만, 어깨를 으쓱하며 덧붙인 한마디가 나를 웃음짓게 만들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마음을 달래본다. 어차피 옛날에도 없던 정신, 이제 와 잃을 일은 없겠구나. p.252
*기억에 남는 문장
우리 나이가 되면 사람이 고목(古木) 같다. 노인네들도 날씨가 좋으면 슬슬 되살아나고 조금은 푸릇해진다. 한 해 한 해가 예전 같지 않지만 말이다. pp.20-21
나는 의식을 일단 놓아버린 후에 죽음을 맞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아무 자각도 없이 그냥 웃다가 혹은 잠든 사이에 이승을 하직하면 좋겠다. p.33
질베르트와 나는 모든 것을 함께 했다..(중략)..이 친구도 에드몽드처럼 나보다 먼저 가버리면 어떡하나? 나에게 그런 몹쓸 운명을 남기고 간다면? 60년 추억이 이렇게 사라져버리면 그 어마어마한 빈자리를 어찌하라고 p.39
남의 죽음은 필연적으로 우리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p.153
아름다운 음악이 있는 장례 미사였으면 좋겠다. 슬프고 처지는 분위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바이올린보다는 첼로가 듣기 좋으면서도 약간 진중함이 느껴질 것 같다. 오르간만 아니면 된다. 오르간은 소리가 침울해서 싫다..(중략)..관은 뭘 쓰든 상관없다. 외장재는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을 생각해 너무 조악하지 않은 목재를 쓰더라도 안쪽을 누가 들여다보겠는가? 안쪽에 호박단을 대든, 새틴이나 면을 대든, 무에 그리 중요하랴. 좋은 천을 푹신하게 대어봤자 내가 아는 것도 아닌데 쓸데없는 낭비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p.154
마땅히 읽을 만한 책이 없으면 애거서 크리스티를 다시 펼쳐든다.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아서 늘 범인 이름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다시 읽어도 괜찮다. 가끔은 막바지로 갈수록 범인이 생각나지만 그래도 긴박감은 어디 가지 않는다. pp.175-176
별을 쳐다볼수록 마치 허공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온몸이 스르르 풀어지고 정신이 빠져나가 저 혼자 방황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중략)..막막한 우주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가 비워진다. 흡사 내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이제 시간도, 공간도, 두려움도 없다. 접이의자에 누워 여름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처럼 내가 ‘거대한 전체’에 속해 있음을 절감한 적은 없었다. p.180
나는 여기 시골 생활이 여름은 여름답고 겨울은 겨울다워서 좋다. 아들은 낯익은 풍광에서 벗어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갈수록 낯선 곳이 싫어진다. 나에게는 내게 익숙한 지표들이 필요하다. 내가 아는 장소를 알아보고, 내가 아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게 마음 편하다. p.182
휴대전화가 없던 옛날에도 다들 잘만 살았다. 지금은 언제 어느 때고, 아무 데서나, 전화 건 사람이 누구든, 당장 전화를 받아야만 한다. 이 빌어먹을 휴대 장치 때문에 우리는 이제 자유롭지 않다. 우리의 자취가 언제라도 추적당할 수 있다니 끔찍하다. p.243
이따금 저녁에 불을 끄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오늘 밤 잠들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내일은 내가 세상에 없는 하루가 될지도 모른다. p.298
나는 소액이나마 매년 빈민 구제, 학술 연구, 기아 문제에 힘쓰는 단체나 재단에 기부를 하고 있다...... 영원히 만날 일은 없겠지만 지구 반대편에 내가 후원하는 어린아이들도 있다. 그 아이들은 내 덕분에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편지를 보내곤 한다. 그런 편지를 받으면 정말로 기쁘다. 내가 아직도 조금은 쓸모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 늙은이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노인은 사회의 짐이다, 이런 소리를 얼마나 자주 듣는지 모른다. 그래서 내 딴에는 가급적 가벼운 짐이 되려고 애쓴다. p.299
파리에는 계절이 없다. 그들은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외출하고, 모임에 초대하고, 쇼핑하고, 공연을 관람한다. 하지만 시골 사람들은 낙엽이 떨어질 때부터 봄에 새싹이 돋을 때까지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p.316
아무라도 “안녕하세요!”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아무 일이라도 일어났으면. 여기저기 전화를 돌릴 핑계라도 있었으면. 놀라운 모험담, 재미있는 우스갯소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상대가 없다. p.391
나는 결국 생드니 성당을 보지 못할 것 같다......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너무 많이 흘려보냈다. p.397
산들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간다. 창문을 열어두었나 보다. 눈을 감는다. 잠의 안개가 나를 감싸기 싲가한다. 나를 맡긴다. 어느새 나는 배에 올라와 있다. 아주 작은 돛단배다...... 갑판에 누워 구름 없는 하늘로 솟은 돛대를 바라본다. 바람은 상쾌하고 소리 없이 서서히 움직인다. 나는 겨울과 함께, 나의 마지막 겨울과 함께 잠들리라. 계절의 끝에서, 햇살을 받으며, 종려나무 가지를 높이 든 채로. 르네가 나를 보고 미소 짓는다. p.427
숲노래 책읽기 2021.10.12.
인문책시렁 185
《체리토마토파이》
베로니크 드 뷔르
이세진 옮김
청미
2019.3.20.
《체리토마토파이》(베로니크 드 뷔르/이세진 옮김, 청미, 2019)는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할머니가 어떠한 마음과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는가를 찬찬히 옮겼다고 할 만합니다. 할머니가 손수 이녁 삶자취를 글로 적을 수 있고, 할머니를 좋아하는 젊은이가 할머니 삶길을 눈여겨보거나 귀여겨듣고서 글로 옮길 수 있습니다.
우리 곁에는 늘 할머니가 있습니다. 아기도 아가씨도 아저씨도 할아버지도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르게 맞이하는 하루를 다 다르게 노래하면서 살아갑니다. 푸른돌이가 할머니처럼 살지 않고, 할아버지가 푸른순이처럼 살지 않습니다. 아줌마가 어린돌이처럼 안 살고, 어린순이가 아저씨처럼 안 살아요.
모든 이야기는 삶자리에서 태어납니다. 다른 사람 삶이 아닌, 우리 삶을 들여다보기에 비로소 이야기를 얻고 펴면서 누립니다. 스스로 아팠기에 이웃이 아플 적에 어떻겠구나 하고 어림합니다. 스스로 자전거를 타며 바람을 갈랐기에 동무가 자전거를 타며 휙 바람을 가를 적에 어떻겠구나 하고 헤아립니다.
느긋이 살아가기로 해요. 서두르지 않아도 아기는 어린이로 크고, 푸름이로 자라며, 시나브로 철이 들면서 어른이라는 길에 섭니다. 서둘러 죽어야 할까요? 빨리 늙어야 할까요? 시골에서나 서울에서나 숱한 분들이 먼저 버스나 전철을 타려고 우르르 달려들거나 새치기를 하더군요. 아이를 툭툭 밀치면서 새치기하는 분 뒷통수에 대고 “빨리 죽고 싶어서 빨리 타야 하니 아이를 막 밀치고 다니시는군요?” 하고 으레 한마디를 합니다.
시골에서는 시골버스를 타는 사람이 뚜벅이랑 어린이·푸름이하고 할매할배하고 이웃일꾼(이주노동자)입니다. 시골버스를 타며 가만히 보면 어린이·푸름이가 자리를 내줄 적에 “고맙다”고 말하거나 “그대로 앉으렴” 하고 말하는 할매할배는 아주 드뭅니다. 예전에는 제법 있었으나, 갈수록 이처럼 말하는 할매할배가 자취를 감춥니다. 우리 삶터에서 ‘어른스러운’ 길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나이만 먹은 사람인지, 철이 들며 생각이 깊어 가는 사람인지, 언제라도 찬찬히 생각하면서 오늘을 지을 노릇이라고 봅니다.
ㅅㄴㄹ
살짝 걱정스러운 심정으로 애들을 지켜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아직 자전거를 탈 수 있으려나? (63쪽)
혼자 살아도 심심할 겨를이 없다. 할 일은 늘 있다. (172쪽)
살 만큼 살아 봤고 허다한 고뇌와 번민을 겪어 본 우리도 끝은 아직 모르기에. 우리의 끝, 이승을 떠나 빛으로 나아간다고 믿더라도 죽음은 늘 어둠과 결부된다. (216쪽)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이제 나는 나 아닌 사람들의 괴로움을 살피려고 충분히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274쪽)
애들은 오늘 저녁을 먹고 올라갔다. 애들은 파리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밤참을 먹을 거다. (354쪽)
심각한 갈등이나 흥미진진한 사건이 없이 잔잔한 일상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있어서 누군가에겐 다소 심심한 책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읽으면서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고 잔잔한 가운데 웃게되는 부분들도 있어서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읽었습니다. 중간중간 시간이 날때마다 조금씩 읽었는데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런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들을 조금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런 소설이 생각보다 마주치기가 쉽지 않은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