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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

신정일 | 상상출판 | 2019년 8월 12일 리뷰 총점 8.8 (9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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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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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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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왜 조선의 천재들은 기축옥사를 일으켰는가?”

16세기 조선에서는 수많은 천재들이 활동했다. 이 시기는 우리 역사에 새로운 기운을 일으켜 기회가 될 수도 있었지만 절체절명의 위기이기도 했다. 임금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했고, 갈래 갈래 나뉜 선비들 역시 자신들이 속한 당파를 위해 죽음을 불사한 전쟁을 벌였다. 사화인지 역모 사건인지 불분명한 기축옥사와 임진왜란 때문에 백성들은 전대미문의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역사는 정여립이라는 사내를 잊으라고 했고 그는 족보에서도 말끔하게 지워졌다. 그리고 호남 지방은 조선 왕조 내내 반역의 고향으로 낙인찍힌 채 오늘날에 이르다.

조선천재 1000여명이 죽음으로 내몰린 사건의 시작점에는 정여립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이었던 기축옥사를 재구성한다. 기축옥사는 기축년(1589년)에 생긴 정여립의 모반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정여립의 모반사건의 연루자를 색출해 나가는 과정에서 서인에 의해 동인들이 탄압을 받은 사건을 말한다.

이 책은 기축옥사라는 역모 사건을 두고 조선에서 벌어졌던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선비들의 개혁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선조,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는 유성룡과 이항복, 당리를 위해 정적을 죽이는 정철과 정의로움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최영경, 그런 다툼 속 역모로 목숨을 잃게 된 수많은 이들이 16세기의 역사 속에 되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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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_ 조선 천재들은 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는가?
제1부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
1. 한 통의 비밀 장계 _ 눈물을 흘린 이유로 죽은 자들, 조대중과 김빙
2. 선비들의 시대, 대격돌의 시대 _ 승려들의 희생, 서산대사와 사명당
3. 천재 중의 천재, 정여립 _ 그를 천거한 두 사람의 비극, 노수신과 백유양
4. 돌이킬 수 없는 배신 _ 그가 배신한 두 스승, 이이와 성혼
5. 선조의 두 얼굴 _ 선조의 왼팔과 오른팔, 유성룡과 이항복
6. 상소 공방전과 대동계의 비밀 _ 죽이는 자와 죽는 자, 정철과 최영경
7. 얼굴 없는 주인공 _ 얼음과 불의 엇갈린 운명, 송익필과 이발
8. 죽음의 고발자 _ 최대의 피해자들, 정언신과 정언지
9. 선조가 지시를 내리다 _ 당의 운명을 걸고 맞서다, 이산해와 조헌
10. 정철의 몰락 _ 사제 간의 비참한 말로, 박순과 정개청
제2부 비망록 - 기축옥사의 숨겨진 진실을 찾아서
1. 실패한 혁명인가 억울한 옥사인가
2. 논쟁의 불꽃이 튀다
3. 반역의 고향에 관한 이야기들
4. 아름다운 꿈, 대동
부록
1 정여립의 발자취
2 천재들의 각축장, 조선 궁궐
3 동인들
4 서인들
5 조선의 천재들

상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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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저 : 신정일 (辛正一)
작가 한마디 웰빙을 추구하는 삶에서 '어디에서 살 것인가'를 따지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이다. 문화사학자 신정일은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의 대표로 현재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걷기 열풍을 이끈 선구자다. 40여 년간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의 현장을 종횡무진으로 걸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걸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도보 여행가이자 현대판 김정호, 현대판 김삿갓, 현대판 이중환, 방외지사 등으로 불리며 역사와 문화 관련 저술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작가이다. 1981년 가을 간첩 혐의를 받아서 안기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우리 국토를 걷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발족하여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문화사학자 신정일은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의 대표로 현재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걷기 열풍을 이끈 선구자다. 40여 년간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의 현장을 종횡무진으로 걸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걸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도보 여행가이자 현대판 김정호, 현대판 김삿갓, 현대판 이중환, 방외지사 등으로 불리며 역사와 문화 관련 저술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작가이다. 1981년 가을 간첩 혐의를 받아서 안기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우리 국토를 걷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발족하여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을 펼쳤다.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으며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사업회에 참가했다. 또한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였던 김개남, 손화중 장군 추모사업회를 조직하여 덕진공원에 추모비를 세우는 데 노력하기도 했다. 한국의 10대 강과 조선시대의 옛길 도보 답사를 기획해 답사 후 책을 펴냈다. 소백산 자락길과 변산 마실길 등을 만드는 데 기여했으며, 서해안과 남해안, 휴전선 길을 걷고 500여 개의 산을 올랐다. 다음 카페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에 지속적으로 글을 올리면서 우리나라 옛길의 재발견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저자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과 산림청 국가 산림문화자산 심의위원을 지내며 대기업과 지자체 등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저서로 『신정일의 신 택리지』(전 11권)와 『왕릉 가는 길』, 『길을 걷다가 문득 떠오른 것들』, 『나는 그곳에 집을 지어 살고 싶다』 1~2권, 『조선의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 『천재 허균』, 『그토록 가지고 싶은 문장들』, 『지옥에서 보낸 7일』, 시집 『꽃의 자술서』 등 107여 권이 있고, JTV 전주방송에서 〈신정일의 천년의 길〉을 오랫동안 진행했다.

출판사 리뷰

“왜 조선의 천재들은 기축옥사를 일으켰는가?”
정여립과 천재들의 시대 조선의 16세기

16세기 조선에서는 수많은 천재들이 활동했다. 이 시기는 우리 역사에 새로운 기운을 일으켜 기회가 될 수도 있었지만 절체절명의 위기이기도 했다. 임금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했고, 갈래 갈래 나뉜 선비들 역시 자신들이 속한 당파를 위해 죽음을 불사한 전쟁을 벌였다. 사화인지 역모 사건인지 불분명한 기축옥사와 임진왜란 때문에 백성들은 전대미문의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역사는 정여립이라는 사내를 잊으라고 했고 그는 족보에서도 말끔하게 지워졌다. 그리고 호남 지방은 조선 왕조 내내 반역의 고향으로 낙인찍힌 채 오늘날에 이르다.

조선천재 1000여명이 죽음으로 내몰린 사건의 시작점에는 정여립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이었던 기축옥사를 재구성한다. 기축옥사는 기축년(1589년)에 생긴 정여립의 모반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정여립의 모반사건의 연루자를 색출해 나가는 과정에서 서인에 의해 동인들이 탄압을 받은 사건을 말한다.

문화사학자 신정일 선생은 기축옥사에 얽힌 음모와 정여립과 그 모반사건에 개입되어 죽어간 천 여 명의 선비들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여립은 16세기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를 두고 싸우던 틈바구니 속에 천하공물설과 하사비군론 등을 주창한 혁신적인 사상가였지만, 또 다른 일각에서는 『정감록』의 참설을 퍼뜨려 왕조를 전복시키려 한 반역가라는 극단의 평을 들어야 했다.

또한, 기축옥사로 조선 선비 1000명이 죽은 후 3년 만에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평양성을 비우고 철수하던 병조판서 황정욱은 조선이 왜 허무하게 무너져야 하는지 한탄하며 “기축옥사 때 정언신만 살았어도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절규할 만큼 기축옥사는 많은 젊은 천재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조선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

동인과 서인을 막론하고 뛰어난 천재로 평가했던 정여립, 서인 측의 송익필, 알성 급제를 했던 이발 그리고 정철. 그들은 당파나 서로 간의 입장 차이가 너무 커서 공존하기 힘들었다. 결국 그러한 시대 상황이 피의 역사인 기축옥사를 불러오게 만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기축옥사는 16세기 조선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당쟁은 기축옥사 이전부터 시작되었지만 선비들이 서로를 죽이는 지경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축옥사부터는 선비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당쟁으로 비화되었다. 선비들만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니었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모집해 혁혁한 전과를 거둔 서산대사 휴정과 사명당 유정마저도 모진 국문을 받은 후에 살아남았다.

기축옥사를 계기로 동인과 서인에서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기축옥사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고 마무리되기도 전에 미증유의 국난인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문화사학자 신정일 선생은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설립하여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사업을 펼쳤다.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길 위의 인문학’을 진행하고 있다.

신정일 선생이 처음으로 시작한 일들이 많다. 정여립을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대동사상에 대해 연구하고 동학을 발로 찾아다니며 연구했다. 오늘날 대학교에서 열리는 ‘대동제’라는 말도 처음 사용하고 퍼트린 사람도 신정일 선생이다. 그는 정여립과 기축옥사에 대한 연구를 수십년동안 천착하면서 조선의 역사를 역으로 재조명하는 일을 계속해오고 있다.

대동세상을 꿈꾸던 혁명가 정여립

정여립은 의혹의 이름이고, 아직도 명예가 회복되지 못한 혁명가다. 조선 역사상 신원되지 못한 천재가 두 명 있다. 허균, 그리고 정여립. 당대에 문사철을 고루 갖춘 아름다운 선비라 불렸으면서도 족보에서조차 지워져야 했던 비극적 인물. 역사는 어떻게 그를 왜곡해 왔던가? 이제 그 진실을 만날 때가 됐다.

정여립은 본관은 동래이고, 자는 인백(仁伯)이다. 전라북도 전주에서 첨정(僉正)을 지낸 희증(希曾)의 아들로 태어났다. 통솔력이 있고 명석했으며, 경사와 제자백가에 통달했다. 1570년(선조 3)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1583년(선조 16) 예조좌랑을 거쳐 이듬해 수찬(修撰)이 됐다. 처음에는 이이와 성혼의 문하에 있으면서 서인에 속했으나, 이이가 죽은 뒤 동인에 가담하여 이이를 비롯하여 서인의 영수인 박순·성혼을 비판했다. 이로 인하여 왕의 미움을 사자 관직에서 물러났으나, 인망이 높아 낙향한 뒤에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

이후 진안군의 죽도에 서실을 세워 활쏘기 모임을 여는 등 사람들을 규합하여 대동계를 조직하고 무력을 길렀다. 이때 죽도와의 인연으로 죽도선생이라고 불렸다. 1587년(선조 20)에는 전주부윤 남언경의 요청으로 대동계를 이끌고 손죽도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쳤다. 이후 황해도 안악의 변숭복, 해주의 지함두, 운봉의 승려 의연 등의 세력을 끌어 모아 대동계의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했다. 1589년(선조 22) 황해도 관찰사 한준과 안악군수 이축, 재령군수 박충간 등이 연명하여 정여립 일당이 한강이 얼 때를 틈타 한양으로 진격하여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고발했다. 관련자들이 차례로 잡혀가자 정여립은 아들 옥남(玉男)과 함께 죽도로 도망했다가 관군에 포위되자 자살했다. 이 사건의 처리를 주도한 것은 정철 등의 서인이었으며, 동인인 이발, 정언신, 백유양 등이 정여립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처형되는 등 동인의 세력이 크게 약화됐다. 이를 기축옥사라고 한다.

이 책은 기축옥사라는 역모 사건을 두고 조선에서 벌어졌던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선비들의 개혁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선조,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는 유성룡과 이항복, 당리를 위해 정적을 죽이는 정철과 정의로움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최영경, 그런 다툼 속 역모로 목숨을 잃게 된 수많은 이들이 16세기의 역사 속에 되살아나고 있다.

기축옥사의 비밀이 풀릴 것인가?

역사를 모른다. 모순된 말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하물며 이미 지나간 역사, 그 당시도 해석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해석이 불분명한 역사들을 후세의 사람들이 해석하고자 한다고 해서 그 비밀이 풀릴 것인가?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말이 많은데, 역사는 입을 봉한 채 아무런 말이 없는 경우가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해되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역사, 가장 드라마틱하면서도 사람들에게 풀리지 않는 의문점으로 남아 있는 역사가 1589년에 일어난 기축옥사일 것이다.

신정일 작가는 방송 촬영차 르네상스의 산실 이탈리아 피렌체를 갔었다. 당대의 천재들인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그리고 『신곡』을 쓴 작가 단테와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등 수많은 천재들이 활동했던 시대가 15세기였다. 수많은 천재들이 왕성하게 활동하여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냈는데, 그때 그들을 지원했던 가문이 메디치가문이었다. 그런데 조선은 어떠했는가? 그렇게 수많은 천재가 나타났던 시대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당쟁과 임진왜란 그리고 병자호란이라는 국난을 맞아 천재들이 제 역할을 할 수가 없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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