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분야 전체
크레마클럽 허브

너의 계절에 눈이 내리면

릴리리 | 북닻 | 2019년 11월 1일 리뷰 총점 9.3 (4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  종이책 리뷰 (0건)
  •  eBook 리뷰 (1건)
  •  종이책 한줄평 (0건)
  •  eBook 한줄평 (3건)
분야
소설 > 한국소설
파일정보
EPUB(DRM) 28.24MB
지원기기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일부 기기 사용 불가) PC(Mac)

책 소개

다소 거칠지만, 담백하고 소박하게 쓰여진 필체로 독립 출판물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만 초판 완판 된 소설 《너의 계절에 눈이 내리면》.
삶과 죽음과 사랑에 관한 4편의 연작소설 《너의 계절에 눈이 내리면》 은 각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4명의 사랑 이야기다. 작가는 사랑과 죽음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덤덤하고 간결한 필체로 담아내어,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 인 듯 우리 주변에서 찾아낸 듯 작고 평범한 삶에 얽힌 사연들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눈이 내리면 생각나는 사랑이 나에게도 있었던가? 각각의 단편 소설을 읽는 것 같으면서도 가느다랗게 연결된 그들의 이야기는 복숭아의 쌉싸래한 뒷맛처럼, 그리움의 뒷맛을 남기는 평범하면서도 조금은 특별한 사랑 이야기다.


* 독립출판물 화제작을 이제 전자책으로 만나보세요. 북닻은 전자책 브랜드입니다.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1부 현주
2부 다진
3부 혜진
4부 지훈

출판사 리뷰

"죽은 사람을 이길 수는 없어."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현주는 같은 학교의 수학교사 지훈을 좋아한다. 지훈은 젊은 나이에 아내와 사별했다. 친구인 혜진은 현주에게 ‘죽은 사람은 이길 수 없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인 다진은 지훈의 처남이다. 다진은 죽은 누나 다영의 남편인 지훈과 둘이서 살고 있다.

“차라리 국어 쌤이 정말 못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다진은 누나의 빈 자리를 차지하려는 현주와 그것에 동조하는 지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현주의 친구 혜진은 세계일주를 하다 호주 호바트의 한 펍에서 일을 시작하고, 현주는 그곳에서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 유학생 다진을 만난다. 지훈은 다영을 살리고 싶어 한다. 그는 자신이 가진 ‘특별한 능력’을 이용해서 다영을 살리고 싶어 하지만….


<책속으로>
P.13 차를 타고 출근하는 이십 분 남짓한 시간 동안 두 사람은 많진 않지만 여러 가지를 공유했다.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날씨,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 사소한 버릇 같은 것들. 그건 평범한 직장 동료 사이에는 알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현주는 지훈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좋았다.
고백을 한 것은 여름방학을 앞둔 종업식 날이었다. 빨간 불이라 차는 신호등 앞에 서 있었다. 지훈이 손가락으로 운전대를 톡톡 두들기고 있었다. 현주는 조수석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이제 방학 동안 지훈을 볼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시큰했다.
고백을 해야지, 하고 아주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니었다. 그 말은 전혀 예기치 못하게 튀어나왔다.
선생님. 현주가 입을 뗐다. 저, 선생님 좋아해요.

P.19 윤아가 불쑥 현주 남자친구 얘기를 꺼냈다. 이제 서른인데, 글쎄 이미 한 번 결혼했던 사람이래. 수영은 커피 위에 올라간 휘핑크림을 빨대로 휘휘 저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다 한때의 불장난인 거지, 뭐. 현주 별로 연애해본 적 없잖아?
카페에서 나와 모두와 헤어졌다. 같이 가자. 혜진은 버스를 타겠다며 현주와 같이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혜진의 집으로 가는 버스가 먼저 도착했다. 안 타? 현주가 물었다. 나 집에 가는 버스 많아. 너 먼저 가는 거 보고. 이럴 때면 현주는 혜진이 꼭 남자친구 같다는 생각을 했다.
둘은 나란히 벤치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 타려고 일어나는데 혜진이 불러 세웠다. 현주야. 현주는 가방을 어깨에 메며 혜진을 돌아보았다.
“죽은 사람을 이길 수는 없어.”

P.43
다진은 눈을 떴다. 그는 의식적으로 발가락을 움직였다. 고개만 살짝 들어 이불 밖으로 내민 발을 보았다. 발가락이 꼼지락 꼼지락 착실히 움직이고 있다. 다진은 왼손을 눈앞에 들어 쥐었다 폈다 해보였다.
살아있다.
다진은 선천적인 심장기형을 가지고 태어났다. 의식하고 산적은 없었다. 격렬한 운동이 무리가 될 수 있다고 했지만 애초에 운동선수도 아닌 데다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십육 년을 살아오면서 심장이 힘들다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누나의 죽음은 크게 다가왔다. 열두 살이 많은 누나는 다진과 같은 심장기형을 가지고 있었다. 겉보기엔 연약해 보여도 언제나 씩씩하고 건강하던 누나는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서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 때서야 알았다. 저도 몸속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산다는 것을.

P.49 “솔직히 결혼해서 부부로 산 것보다 그 후로 너랑 둘이 산 기간이 더 길잖아.”
진상은 빨대로 커피우유를 죽 빨아먹으며 말을 이었다.
“수학 쌤은 젊은데다 마스크도 괜찮고 직업도 안정적이니까 재혼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거라구. 굳이 널 책임져줄 필요는 없잖아. 따지고 보면 이제 남남인데.”
그랬다. 고작 두 달이었다. 다영과 지훈이 결혼을 해서 부부로 산 시간은.

P.65 “그래도 싫어요. 그래도 안 돼요.”
다진은 혼잣말처럼 말하고는 다시 얼굴을 두 팔 사이에 푹 묻었다.
“우리 누나를 제발 잊어주세요, 할 때는 언제고.”
“진심일 리가 없잖아요…”
웅얼거리는 말소리가 팔 안에 갇혀 떠돌았지만 그 말은 틀림없이 지훈의 귀에 닿았을 것이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가 환영처럼 멀리서 들려왔다.
“차라리 국어 쌤이 정말 못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다진이 말했다.
“그러면 마음 놓고 싫어해도 될 텐데.”

P.71 지훈은 빈손을 다시 새우깡 봉지에 넣었다.
“내 인생의 모든 아름다운 장면에는 네 누나가 있었어.”
인생의 모든 아름다운 장면. 다진은 숨을 들이마셨다. 다영이 종종 해주었던 당근이 들어간 햄버그, 함께 걷곤 했던 시장 갔다 오는 길, 갈매기를 쫓으며 놀았던 여름날, 환하게 웃던 다영의 얼굴 뒤로 펼쳐진 황금빛 모래밭,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따뜻한 손바닥의 온기. 다진은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P.94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담배 연기가 하늘 높이 올라가면 구름이 되지 않을까 하는. 문과생은 이래서 안 돼. 누군가 그렇게 핀잔을 줬던 게 기억났다. 예전 남친이었나?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나질 않는데, 그 말만이 기억에 남았다. 기억이란 참 우습지.
혜진이 속으로 키득키득 웃었다. 왜 웃어요? 다진이 물었다. 혜진은 고개를 숙이고 담배를 손가락으로 두드려 재를 바닥에 떨었다. 그냥. 딴 생각 했어. 혜진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있잖아요. 다진이 입을 뗐다. 응? 다시 태어난다면 뭐가 되고 싶어요? 다진이 물었다. 혜진은 담배를 톡톡 두드리며 생각해 봤지만 별다른 게 떠오르지 않았다.

P.121 다영은 자주 다음을 얘기했다. 다음에 하자, 다음에 가자, 다음에 먹자. 다음에, 다음에. 다영이 이렇게 자주 다음을 말하는 사람이었던가? 그건 다영이 말하는 다음이 오지 않을 것을 지훈이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슬픈 스물일곱의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 해 가을 루 리드가 죽었다. 다영은 휴대전화로 인터넷을 하다가 그 기사를 발견했다. 되게 기분 이상하다, 얼마 전에, 네가 그랬잖아. 루 리드 죽었다고. 근데 진짜로 죽어버렸어. 다영은 아무 것도 모르고 그렇게 말했다. 달리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러게. 지훈은 그렇게만 대답했다. 다영이 눈을 들어 지훈의 얼굴을 쳐다봤다.

P.124 있잖아, 지훈아.
다영이 입을 열었다.
다음엔 말이야.
다영이 다음을 말하고 있었다. 그건 영원히 오지 않을 다음이 아니었다.
좀 더 일찍 날 만나러 와줄래?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젖은 모래밭 위로 뚝뚝 떨어졌다. 다영이 손을 뻗어 지훈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지훈은 다영의 품 안에서 울었다. 지훈아. 고마워. 언제 날아온지 모를 갈매기가 모래밭에 모여 앉아 푸른 바다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늘은 완전히 밝아 있었다.
그 해 7월 22일, 다영이 죽었다.

회원 리뷰 (1건)

한줄평 (3건)

0/50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