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호 저 저
토니 포터 저/김영진 역
최은창 저
조지 오웰 저/김영진 역
허유선 저
모치즈키 이소코 저/임경택 역
지금의 역사는 남성들의 역사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보다 더 활약했던 사람이라할지라도 성별이 여성이라면 기록에서 배제되고, 결국 남성 위주의 편향된 역사가 후대로 전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당연하게 배웠던 역사에서마저도 여성이 지워져 있다는 사실이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여성을 지워내지 않은 역사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었다. [100가지 물건으로 다시 쓰는 여성 세계사]를 읽게된 것도 이 궁금증 때문이다.
[100가지 물건으로 다시 쓰는 여성 세계사]에서는 여성들과 관련된 물건을 통해 시대에 따른 여성의 삶을 짚어나간다. 그리고 누구나 예상 가능하듯 그 중 대부분의 물건은 여성에게 가해졌던 억압과 차별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여성에게만 씌워졌던 굴레와 잣대들이 어쩜 이렇게나 많은지, 이런 세상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갔을 삶들에 내가 다 원통하고 마음이 아팠다. 여성의 역사는 말 그대로 억압과 차별, 그리고 투쟁의 역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말을 보면 물건 100가지를 추리는 과정에서 후보에 들었다가 탈락한 물건이 여럿 있다고 되어있는데 그 물건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여성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진 물건이었을지 궁금하다. 후속작이 나온다면 좋을 것 같다.
"신용을 얻고자 하는 여성은 사생활, 결혼 생활, 자녀들에 대한 상세한 질문들에 직면했다."
여성 세계사란 결국 여성이 어떻게 억압당하고 차별받아왔는지, 그리고 그러한 부조리에 어떻게 맞서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여성의 역사와 경험을 100가지 사물을 통해 다채롭게 풀어나가는 책. 물건에 얽힌 일화뿐만 아니라 당시 시대상과 통념 같은 사회적 분위기까지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덕분에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다. 여성을 고정관념이라는 틀 안에 가두기 위한 물건, 그들을 구제하기 위한 물건 등 그 종류는 저마다 달랐는데, 잔소리꾼 굴레처럼 노골적으로 여성을 통제하고 억압하기 위한 도구에 얽힌 에피소드를 읽을 적에는 당시 사회에 얼마나 여성을 대놓고 멸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을지 생각하니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여성은 언제나 정숙하고, 조용하며,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도 집안을 항상 깔끔하고 청결하게 유지해야 하는 존재다. 테두리 바깥의 여성은 어떤 형태로든 모욕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에피소드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빨래 방망이에 얽힌 이야기였다. 매번 가족이 먹을 음식을 요리하고 더러운 바닥의 먼지를 쓸어 청소하는 것도 물론 고된 일이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일은 역시 빨래가 아니었을까. 각종 먼지와 흙이 잔뜩 묻은 빨래를 물에 적신 뒤, 방망이로 쉼 없이 두드려 때를 빼고, 그러고 나면 축축한 빨래를 건조한 곳에 널어 말리기까지 해야 했으니 말이다. 내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었다면 세탁기의 발명에 그야말로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엄청난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다른 집안일'을 하는 데 비슷한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는 점이 무척 인상깊었다. 세탁기의 등장 이후 청결함과 개인위생에 대한 기대 또한 그에 상응하여 상승했기 때문이라고 책에서는 설명한다. 물론 집안일은 여성의 몫이라는 관념이 현대까지 이어져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진정으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날은 언제쯤 오게 될까. 오늘날에도 대놓고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은데, 당시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발벗고 나섰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 우리 사회의 여성들을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여성의 시선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들여다본다
『100가지 물건으로 다시 쓰는 여성 세계사』는 여성의 역사를 오래도록 연구해 온 두 명의 영국 여성학자가 세심하게 골라낸 여성사의 100지 상징들을 8가지 분야로 나눠 여성들의 삶에 영향을 끼쳤거나, 여성에 의해 만들어졌거나, 오늘날까지도 여성을 억압하고 있는 물건들을 중심으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발달해온 과정을 기록한다.
전 세계적인 역사를 보면 여성은 언제나 2등 시민이었다.
1등에 대항할 수 없는, 1등을 길러내야 하는 2등.
여성에게 주어진 짐들은 너무 많았고, 대항하려는 여성들을 끊임없이 억압한다. 반면 여성이 도움을 받거나 직접 그 발달에 기여한 기술들로 인해 해방을 맛보기도 하고, 살아남기 위해 불의에 억압에 대한 투지를 불사르기도 한다.
수많은 제약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이어온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과거에서 배우고 변화한 미래를 꿈꿀 수 있고, 지금 우리는 여전히 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숨 쉬고 있다.
이 책은 영국 여성의 참정권 획득 100주년을 기념하여 쓰여진 만큼 단순히 페미니즘을 넘어 흥미로운 테마 역사서이자 여성사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균형있는 시각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100가지 물건으로 다시 쓰는 여성 세계사> 단권. 100가지 물건을 제시하고 그에 연관된 여성의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으로 쓴 인문교양서다.
100종이나 되다 보니 각 물건에 할애한 지면이 길지 않아서, 세계사 흐름을 어느 정도 안 뒤에 보면 좋다. 각 물건을 시대순 혹은 지역순으로 늘어놓지 않았기 때문에 순서대로 읽지 않고 중간중간 원하는 부분만 골라서 읽어도 된다는 점이 장점이다. 여러 물건을 통해서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세계사'라고 하기에 이 책은 지나치게 서구적이고 지엽적이다. 그 중에서도 영국과 미국의 비중이 높다. 이 책은 주요한 흐름을 영국과 미국에 두고 있어서 세계사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색하다. 아프리카, 중동, 인도, 아시아, 남미에 대해서는 잊을 만 하면 짧은 한 단락으로 언급할 뿐이다.
예를 들자면, '구두와 전족' 항목에서 저자는 전족을 언급하며 한 단락만을 할애한다. 저자는 전족이 생긴 이유를 '11세기 기형적인 발을 타고 태어난 황후 타키의 아버지는 작은 발만이 진정 여성스럽고 바람직하다 했다고 한다'라고만 언급한다. 어째서 중국인이 그 작은 발에 매력을 느끼고 관습으로 굳어졌으며, 여성들이 언제부터 어떤 식으로 전족을 하지 않게 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는 생략한다. '그들은 그저 남편이나 가족의 지위를 상징하는 노리개였다.'라고 더없이 신랄하게 평가할 뿐이다.
전족이 기괴하고 여성억압적인 물건이라는 점은 동의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중국의 높은 신분 여성부터 평민 여성까지 대부분 전족을 했는데 그럼 그들의 삶이 다 노리개라고 퉁칠 수 있는 건가? 이 말을 동양 사람이 해도 기분 이상할텐데, 서양 사람이 얼마 할애하지도 않은 지면에서 떡하니 말해놓으니 기분이 아주 이상했다.
재미있는 것은 저자는 바로 뒤의 '코르셋' 항목에서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코르셋이 여성의 행동을 제약하고 신체를 왜곡한다는 점은 전족과 비슷한데도 '빅토리아시대와 에드워드시대의 코르셋은 신체를 감싼다는 측면에서 기품을 상징했다.'라거나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코르셋을 입는 여성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여성해방을 위해 싸울 때 코르셋을 착용함으로써 부여되는 품위를 이용하고 옹호했다'라고 말함으로써 부정적 느낌을 줄인다.
전족과 코르셋에 대한 저자의 이와 같은 시각 차이는 읽는 동양인 여성으로서 묘한 기분이 들게 한다. 역사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여성들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책에서, 마찬가지로 영국과 미국, 유렵 이외의 여성들에게 지면을 거의 할애하지 않고 설명을 뭉뚱그리면서 '그 외 지역' 여성들을 소외시키는 기분이었다.
서양, 특히 영국과 미국 쪽에서 여성들에 대한 인식과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특히 18세기 이후) 알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 책은 세계사라는 단어는 떼는 쪽이 좋을 듯하다.
p.s.
100가지 물건들을 몇 개의 카테고리로 묶었는데, 이북에서는 각 카테고리를 설명하는 내용을 이미지로 처리해서 글씨 크기를 조절할 수 없다. 더구나 흰바탕에 검은 글씨가 아니라 회색 배경에 흰 글씨라 읽기 불편해서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