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분야
분야 전체
북클럽 허브

장애의 역사

침묵과 고립에 맞서 빼앗긴 몸을 되찾는 투쟁의 연대기

킴 닐슨 저/김승섭 | 동아시아 | 2020년 11월 16일 한줄평 총점 10.0 (21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  종이책 리뷰 (18건)
  •  eBook 리뷰 (2건)
  •  한줄평 (1건)
분야
인문 > 인문학산책
파일정보
EPUB(DRM) 45.88MB
지원기기
iOS Android PC Mac E-INK

이 상품의 태그

카드뉴스로 보는 책

책 소개

몸의 정의, 정상의 정의, 그 투쟁의 연대기
“이제 우리의 몸은 우리 스스로 정의할 것이다”


“당신을 직접 만나보니, (장애가 있음에도) 포용적이고 유쾌한 사람이네요”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배복주 장애여성공감 전 대표(현 정의당 부대표)는 이 말이 칭찬의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편견의 말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하나의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바로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다. 배복주는 자신의 장애를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고 경계하는 긴장점이라고 말하며, 사회의 환경과 인식은 장애를 배치하는 기준이 된다고 말한다. 킴 닐슨(Kim E. Nielsen) 역시, 이 책 『장애의 역사(A Disability History of the US)』(2012)를 통해 ‘장애’의 개념이 고정불변의 개념이 아닌 변화하는 개념이라고 말한다. 톨레도대학교에서 장애학, 역사, 여성학을 연구하는 킴 닐슨은 장애를 중심에 두고 미국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기술한다. 사회에 따라 장애란 무엇이었고 어떻게 정의해왔는지를 보여준다. 그 과정은 시민과 비시민,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이 변화한 역사이기도 한 까닭에, 지금 우리 사회의 통념들을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치료받아야 하는 의학의 문제로 장애를 바라본다. 이러한 시선에서 신체적 결함이 있는 사람은 ‘장애인’이 되고, 그러한 결함이 없는 사람은 ‘비장애인’이 된다. 킴 닐슨은 장애를 몰역사적이고 고정불변하는 개념으로 여기는 이러한 관점이 수많은 장애인의 다양하고 풍성한 삶을 지워버린다고 말한다. 『장애의 역사』는 장애라는 프리즘을 통해 미국 역사를 다시 바라보고 읽으며 몸의 정의, 정상성의 정의에 대해 질문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 책은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 몸이 세계라면』으로 몸을 통해 건강한 사회를 사유해온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가 그 노력의 일환으로, 번역한 책이다. 장애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온전한 시민의 자격을 갖춘 “Able-Bodiedness”라는 표현을 “능력 있는 몸”으로 번역하는 등 이 책의 문제의식과 메시지를 또렷이 전달하기 위해 고심했다. 역자 주를 고루 배치해 읽을거리 또한 더했다. 배복주(정의당 부대표, 장애여성공감 전 대표), 김원영(『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이 추천사를 썼다.

목차

옮긴이의 말
들어가며
차례

1장 영혼은 자신이 머무를 몸을 선택한다
: 북아메리카의 토착민들, 1492년 이전

2장 가난한, 사악한, 그리고 병약한 사람들
: 식민지 공동체, 1492~1700

3장 가여운 이들이 바다로 던져졌다
: 후기 식민지 시기, 1700~1776

4장 비정상인 자와 의존하는 자
: 시민의 탄생, 1776~1865

5장 나는 장애가 있어서 중노동이 아닌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해
: 장애의 제도화, 1865~1890

6장 저능아는 삼대로 충분하다
: 진보의 세기, 1890~1927

7장 우리는 양철컵을 원하는 게 아니다
: 토대를 다지고 무대를 만들다, 1927~1968

8장 난 운동가인 것 같다. 운동은 마음을 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 권리와 부정된 권리, 1968년 이후

에필로그

찾아보기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저자 소개 (2명)

저 : 킴 닐슨 (Kim E. Nielsen)
아이오와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위스콘신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했고, 2012년부터는 톨레도대학교에 재직 중이다. 현재 장애학 프로그램의 학과장이다. 장애, 여성, 정치를 키워드로 미국의 역사를 재해석하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특히 헬렌 켈러와 그의 스승인 앤 설리번의 정치적 삶에 주목했고, 집필한 책으로 『헬렌 켈러의 급진적 삶(The Radical Lives of Helen Keller)』(2004)과 『기적을 넘어: 앤 설리번 메이시와 헬렌 켈러(Beyond the Miracle Worker)』(2009)가 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학술지... 아이오와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위스콘신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했고, 2012년부터는 톨레도대학교에 재직 중이다. 현재 장애학 프로그램의 학과장이다. 장애, 여성, 정치를 키워드로 미국의 역사를 재해석하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특히 헬렌 켈러와 그의 스승인 앤 설리번의 정치적 삶에 주목했고, 집필한 책으로 『헬렌 켈러의 급진적 삶(The Radical Lives of Helen Keller)』(2004)과 『기적을 넘어: 앤 설리번 메이시와 헬렌 켈러(Beyond the Miracle Worker)』(2009)가 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학술지 《계간 장애학(Disability Studies Quarterly)》의 공동 편집자였고, 2018년에는 옥스퍼드대학교 출판사의 『장애학 핸드북(The Oxford Handbook of Disability History)』을 공동 편집했다.
역 : 김승섭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하버드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지워싱턴대학교 보건대학원과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보건정책관리학부에서 일했고, 2022년부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부교수로 재임 중이다. 2016년과 2017년에는 고려대학교 최우수 강의상인 석탑강의상을, 2018년에는 최우수 연구상인 석탑연구상을 수상했다. 의학과 역학을 이용해, 차별 경험과 고용불안 같은 사회적 요인이 비정규직 노동자나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지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천안소년교도소에서 공중보건의사로 ...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하버드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지워싱턴대학교 보건대학원과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보건정책관리학부에서 일했고, 2022년부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부교수로 재임 중이다. 2016년과 2017년에는 고려대학교 최우수 강의상인 석탑강의상을, 2018년에는 최우수 연구상인 석탑연구상을 수상했다.

의학과 역학을 이용해, 차별 경험과 고용불안 같은 사회적 요인이 비정규직 노동자나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지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천안소년교도소에서 공중보건의사로 일한 이후, 재소자 인권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구금시설 건강권 실태조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2014년 ‘인턴·레지던트 근무환경 연구’, 2015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건강 연구’, 국가인권위원회의 ‘소방공무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 2016년 ‘한국 성인 동성애자·양성애자 건강 연구’, 세월호 특조위의 ‘단원고 학생 생존자 및 가족 대상 실태조사 연구’, 2017년 ‘한국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 2018년 ‘천안함 생존자건강 연구’, ‘백화점·면세점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 근무환경 및 건강 연구’, 2021년 ‘소방공무원의 COVID19 관련 근무환경과 건강’ 연구를 진행했다. 삼성 반도체 직업병 소송, 동성결혼 소송,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 소송, 군형법 위헌 소송, 성폭력 생존자 PTSD 소송에서 법정 증언을 하거나 전문가 소견서를 제출하며 참여한 바 있다. 현재 지체장애인, 발달장애인, 발달장애인 가족의 삶과 건강에 대한 장기 추적 관찰 연구와 이주 노동자를 비롯한 취약계층 노동자의 건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큼 사람들이 아프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자기 삶에 긍지를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회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지은 책으로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 몸이 세계라면』,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오롯한 당신』(공저)이 있고 『장애의 역사』를 번역했다.

출판사 리뷰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 몸이 세계라면』
김승섭 고려대 교수 번역·해설!
몸을 사유하며 건강한 사회를 질문하는 세 번째 여정

독립은 좋은 것이고, 의존은 나쁜 것일까?
장애인은 의존적이고, 비장애인은 독립적일까?
“의존은 모든 인간의 삶 한가운데 존재한다”


유능한 시민인 우리는 “자신의 두 발로 서 있어야” 하고 “스스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의 저자 킴 닐슨은 이러한 서사에서, 독립은 좋은 것이고 의존은 나쁜 것이 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의존은 타인에게 기대는 연약함을 의미할 뿐이고, 독립과 자치로 대표되는 미국의 이상적 가치에 반하는 의미를 갖는다고 말이다. 독립에 긍정의 의미를, 의존에 나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한국사회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장애를 의존과 동일시할 때, 장애는 낙인이 된다. 장애인은 ‘열등한 시민’으로 호명된다. 그렇다면 의존은 나쁜 것일까? 비장애인은 독립적인가?
킴 닐슨은 말한다. 민주주의 본래 모습이 그러하듯, 우리 모두는 타인에게 의존하며 살아간다고, 의존은 장애를 가진 사람만의 것이 아니며, 우리 모두는 상호의존(Interdependent)하는 존재라고 말이다. 그는 개인주의라는 미국적 이상을 지적하는 역사학자 린다 커버(Linda Kerber)의 말을 인용한다. “실제 삶에서 스스로 만들어진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온전히 혼자인 사람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킴 닐슨은 “의존은 모든 인간의 삶 한가운데 존재”하며, “의존이 공동체와 민주주의를 만든다”고 말하며, 의미를 전복하고 가치를 확장한다. 이렇듯 『장애의 역사』에서는 역사적 사례를 보여주고 질문하며, 기존에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통념들에 질문을 던진다. 전복적인 상상으로 이끌고, 제안한다.

비장애중심주의 사회가 강요하는
수치와 침묵, 고립에 맞서
“우리의 몸을 되찾고 세상을 바꾸는 용감하고 시끌벅적한 이야기”


비장애중심주의적 태도는 장애인 고용차별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스탠딩 콘서트장에서 모두가 두 시간 동안 서 있을 수 있다고 가정하는 행사에서처럼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킴 닐슨은 이 같은 비장애중심주의가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동성애 혐오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 구조 속에 축적된다고 말한다. 이 책은 비장애중심주의가 강요하는 침묵, 수치, 고립에 맞서 투쟁해온 역사를 말하고 있기도 하다. 추천사를 쓴 김원영(배우, 변호사,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은 이렇게 말한다.

“질병이나 사고를 겪은 나의 몸이 어느 날 ‘장애’라고 규정됨을 자각한 날, 우리는 기억을 잃고 낯선 땅으로 추방당했다고 느낀다. 이 책은 북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역사의 진실은 그 반대라고 말한다. 유럽에서 북아메리카로 건너간 ‘독립적이고 능력 있는’ 몸들의 지배와 그에 대한 저항 가운데서, 식민주의·인종주의·젠더차별·비장애인중심주의의 억압과 폭력의 논리 속에서, 장애가 구성되고 제멋대로 동원되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장애인이 된다는 말은 당신 혼자 새로운 세상에 살게 되었음을 의미하지 않고, 새로운 억압과 차별의 역사가 당신이(우리가) 사는 세계에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책이 마지막 장에 이르러 장애를 ‘자부심’이라 여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이 자부심이 그저 정신승리가 아닌, 우리가 사는 바로 이 세계의 오랜 계보와 연결된 단단한 마음임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 책에서는 구조가 개인을 어떻게 정의하고 억압하는지 보여주다, 종국에는 그 억압에 맞서 싸운 사람들의 투쟁과 쟁취에 이른다. 가령, 1988년 미국 농인학교인 갈로뎃 대학의 농인 학생들은 ‘지금 당장 농인 총장(Deaf President Now)’을 외치며 시민 불복종 운동을 한다. 그 투쟁으로 청인이 아닌, 첫 번째 농인 총장 임명이라는 승리를 쟁취한다. 이러한 역사의 장면들은 한국어판에 추가된 사진 자료를 통해서도 볼 수 있어, 읽는 재미에 보는 재미를 더했다.

종이책 회원 리뷰 (18건)

장애의 역사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u***8 | 2021.01.14

장애의 역사Neil MarcusDisabled Country라는 시를 인용하면서 펼쳐진다. 우리말로 옮기면 장애라는 나라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다.

 

In my life's journey

I am making myself

At home in my country.

 

내 인생의 여정에서

나는 내 집으로 삼으려 하고 있어

내 나라를.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을 때는 장애라는 나라가 단순히 장애인의 정체성을 소재로 삼은 시인가보다 싶었는데, 책을 덮을 때가 되어서야 그것은 나의, 우리의, 당신의 집이다.”라는 저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장애의 역사는 북아메리카 대륙에 선주민(*인디언)이 주로 살던 때부터 20세기 말까지의 역사를 장애(disability)에 초점을 두어 서술한다. 기존의 정치·사회·문화적 서술과는 달라서 미국의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집중하며 읽을 수 있다.

 

북미 선주민(토착민)들에게는 유럽인들이 세운 장애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다. 자연에서 살아가며 신체적 손상을 입은 사람들은 빈번하게 존재했지만 그들 모두가 손가락질 당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예컨대 나바호족 토착민은 신체적, 인지적 결함을 가지고 있더라도 공동체의 호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면 낙인 없이 잘 살 수 있었다. 태생적 장애의 원인에 대해서는 부모가 금기를 위반하면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금기로 여겨지는 행동이나 장소를 매번 피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항상 낙인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런데 유럽인들이 북미로 이주하고 식민지를 건설하면서부터 장애와 관련한 사회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유럽인들은 전염병과 멸시를 가져왔고,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끌고 왔으며,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나라를 세웠다. (청교도적 가치관과 민주주의 위에 미합중국을 세웠다고는 하나, 적어도 내가 보기엔 자본주의가 더 세다.) 돈에 따라 계급을 나누고 인종과 젠더에 따라 위계를 공고히 했다. 그 과정에서 장애는 노동능력의 부재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미국 초기에 참정권을 가진 시민과 참정권을 가질 자격이 없는존재를 나누면서 빈자, 유색인종, 여성은 민주주의에서 배제되었다. 정치에 참여하기엔 부족한, 달리 말하자면 장애를 가진 것으로 취급된 것이다.

 

103

노예제의 근간을 이루는 인종차별 이념에 따르면, 북아메리카로 온 아프리카인은 그 자체로 장애인이었다. 노예 소유자들과 노예제 옹호자들은 노예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이 정신적·신체적으로 열등하게 태어났고 그들의 몸이 비정상적이고 혐오스럽다고 가정했다.

 

페미니즘과 관련해서 여성 참정권 문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고통당한 노예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내 주변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없어서 피부로 와닿지 않았는데, 이 책을 통해 차별의 근원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나는 장애가 없고 너는 장애가 있으니까 나는 너보다 우월하다- 라는 논지의 비장애중심주의는 미국사회의 전면에 스며들어서 교묘하게 차별을 더욱 조장했다. 그 편견 어린 시선을 타파하려는 노력은 많은 발전을 일구어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책에서 기독교가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기독교 정신 위에 세워진 나라가 저토록 장애인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에 대해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오늘날에도 종교라는 미명 하에 포용이 아니라 배제를 정당화하는 미국을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구어주의자들 때문에 수어를 금지당하고 오히려 더 낙인 찍인 농인들의 사례와 Oralist(구어주의자)라는 시를 읽으며 그 기분을 직접적으로 느꼈다.

 

190(시의 일부만 발췌, Google Scholar에 검색하면 원문을 볼 수 있다)

구어주의자여, 너의 고개를 돌려라, 당신 같은 이들의 죄를 위해 죽어간 가엾은 예수를 알고 있는가

Oralist, O oralist, turn your head aside, Know you not the pitying Christ for sins like yours has died?

 

장애의 역사를 읽으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낀 점은 장애 개념이 시대의 이념에 따라 변화한다라는 것이었다. 과거에는 당연시했던 수용소와 단종수술 등이 폭력임을 깨닫고 장애인을 연민과 혐오로만 대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라는 나라우리 모두의 집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분명 우리나라도 미국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이식 받으면서 장애에 대한 편견도 함께 수입했을 것이다. 내 나라를 장애라는 렌즈로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아직은 나도 비장애중심주의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공동체를 위해 계속해서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접어보기
쟁취해낸 장애인 인권의 역사 - 미국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골드 r******3 | 2021.01.07

1. 본 책은 미주대륙에 청교도 이주 전 원주민들이 장애인과 몸에 대해 어떻게 보았는지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 그 관점이 본격적인 식민지 시대-저자가 현대 미국인으로서 원주민이 유럽 이주민에게 지배당한 시기를 식민지라고 표현하는 것이 신기하다-를 거치며 장애인과 몸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3장까지 전개된다.

2. 이후 미국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을 거치며 올바른 몸을 지닌 시민 개념과 '자율:비장애 의존:장애' 개념이 어떻게 장애인과 소외계층을 배제했고 이주민, 장애인 등에 대한 극단적인 단종정책 및 탄압의 역사가 이루어졌는지 6장까지 서술된다. 마지막 7, 8장에서는 장애인들이 단체를 만들고 투쟁을 통해 비장애중심주의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하는 주체로서의 장애인을 조망한다.

3. 올바른 몸을 가지지 않았던 원주민,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노인, 소아 등이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사회적인 차별 뿐만 아니라 무차별적인 폭력과 성적 학대가 이루어진 역사가 적나라하게 써져있어서 읽는 중에 많이 불편했다. 현대 자유와 인권의 상징인 미국이라는 나라가 좋게 말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느꼈고 나쁘게 말하면 그러한 이미지와 거의 반대가 되는 추악한 역사를 지닌 위선적인 것인지 동시에 느꼈다.

4. 하지만 책을 읽다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서론부터 저자는 몬트리올 학술대회에서 만난 맹인과의 일화를 소개하는데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하는 몬트리올에서는 소위 비장애인인 저자가 프랑스어에 능한 맹인보다 장애에 가깝지 않은가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는데 장애라는 단어의 외연을 굉장히 넓게 생각하는 오류가 아닌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물론 동시에 모두가 장애인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장애로 인한 고통을 덮는 행위라고 저자 또한 지적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장애에 대한 사회적, 시간적 맥락이 없는 고정된 정의와 이념은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과 학대로 나타났기 때문에 정의를 유동적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말하긴 했다만..)

5. 책에 있는 대부분의 내용은 잔인했던 차별의 역사를 다루기 때문에 쉽게 분노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의 자자가 생각하는 대로 현실에서 대부분의 소위 정상인을 '비장애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보다는 훨씬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견 성적 지향성 스펙트럼에서 소위 대다수의 일반인을 이성애자라고 칭하는 것과 비슷해보인다) 마치 의료계에서 비주류인 한의사가 자신을 기본으로 두고 (양)의사를 비한의사라고 칭하면 과연 국민 대다수가 납득할 수 있을까?

6. 물론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개념들이 많은 사람들이 투쟁을 통해 이뤄낸 결과고 투쟁할 당시에는 나같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했지만 현재는 당연해진 만큼 '비장애중심주의' 또한 앞으로는 보편적으로 쓰일 개념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물음표를 붙이는 것조차 굉장히 공격받을 수 있는 걸 보면 인권분야는 무조건 배우고 납득해야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일종의 백래시로만 이해되야하는지 조금 의아하다.

7. 그럼에도 장애는 또 하나의 현실이기도 하다. 많은 장애인들이 지하철 리프트 추락사고에서 이동권을 부르짖어서 생긴게 지하철 엘레베이터의 보편화이다. 비록 정작 장애인보다는 어르신들이 주로 많이 타긴 하지만.. 인지 못한 사이에 세상이 빨리 바뀐다.

8. 아쉬운 점도 있다. 미국 장애의 역사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벌어졌던 지하철 이동권 투쟁처럼 먼나라의 일이 아니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로 인해 불편감을 겪었고 의아함을 느낄 수 있는 소재를 다루는 책이 있다면 보다 우리 삶에 와닿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동아시아 #김승섭 #장애의역사 #비장애 #비장애중심주의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접어보기
'장애의 역사' 서평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p********k | 2021.01.07


 

제목: 장애의 역사

저자: 킴 닐슨 / 옮긴이: 김승섭

출판사: 동아시아

 

가독성 ★★★★☆

유익함 ★★★★★

흥미도 ★★★★☆

난이도 ★★★★☆(비전공자 기준)

 

동아시아 출판사 서포터즈 3기 활동- 2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흔히들 미국의 역사는 짧다고(실제로 짧다) 이야기하는데 그 짧은 역사 속에 이토록 복잡한 역사가 또 하나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소 학술적인 책이고 내용도 쉽지 않아 흥미도는 살짝 떨어지지만,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 말해주듯, ‘장애라는 렌즈를 통해 미국 역사를 기술한 책이다. 정말이지, 흥미로운 역사적 사례가 무진장 많이 등장한다. 다양성 존중을 기치로 내세우는 미국에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그토록 큰 억압, 차별, 편견 등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특히, 어떠한 몸이 장애가 있는지 규정할 수 있는 권력이 규정당하는 몸을 가진 이들이 경험했던 예속과 억압을 정당화하는데 기여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저자는 헬렌켈러 정치 연설을 10년 전에 우연히 접하면서, 장애의 역사 연구에 뛰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헬렌켈러의 활동들이 역사 기록에서 누락되었음을 알게 되면서 장애학 연구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리고 정말 흥미롭게도(물론 상당히 아쉽고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을 쓰기로 계약서에 서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십 대였던 딸이 심각한 병에 걸려 장애 여성이 되었다. 저자에게 이 책은 특별할 수밖에 없고, 책을 접하는 독자에게도 이 책은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장애는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고, 우리가 사랑하는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더 나아가 국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 책이 놀라운 점은 저자가 기술한 내용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데에 있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정상적인 몸을 가진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법적, 경제적 혜택과 오랜 낙인 때문에 장애인이 겪는 법적, 경제적 차별은 오늘날까지도 생생한 현실이자 개념으로 살아있다.

 

마지막으로 옮긴이는 이 책을 번역하는데 1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옮긴이의 말에 나오듯, 옮긴이는 저자가 활용한 단어의 미세한 차이를 분석하고 특히 당시 시대상을 반영해 단어를 번역하느라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옮긴이가 번역과정에서 특별히 노력을 기울인 부분이 곳곳에 묻어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쉬운 내용은 아니지만, 끈기를 가지고 끝까지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접어보기
  •  종이책 상품상세 페이지에서 더 많은 리뷰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eBook 회원 리뷰 (2건)

구매 장애의 역사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로얄 a*****8 | 2021.04.22
김승섭교수님을 존경해서 그 전작도 다 읽어본팬으로써 선생님이 번역하셨다는 이책도 관심이가서 읽어보게 되었다. 킴 닐슨이 미국역사와 유럽역사 그리고 원주민역사를 되짚어보며 장애인들이 어떤삶을 살았고 지금은 어떠한가 담담한 문체로 서술하는데 오히려 그게 마음을 울렸다(김승섭교수님은 번역하며 단어하나하나에 신경을 쓰셨단다) 옛날 원주민들은 장애가 있더라도 뭘 잘하는 한가지 능력만있으면 개의치않았다는이야기에 작금의 현실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접어보기
구매 빼앗긴 몸을 되찾는 투쟁의 연대기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로얄 b*****3 | 2021.01.02

존경하는 학자

 

나는 강자의 축에도 들지 못하면서 늘 강자의 논리로 살아왔다.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폄훼하고 차별한 일은 없지만 나도 모르는 가운데 일상 속에서 많은 이들을 차별하고 그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러면서도 그런 사실을 깨닫지도 못했고, 깨닫지 못했으니 불편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김승섭 교수를 알게 되었다. 그가 발표하는 글과 그의 책을 읽으면서 사회에 수많은 차별이 만연하고 있는데도 대부분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고 있으며,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그의 연구를 통해 그들에게 향했던 혐오에 가까운 내 감정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고, 판매직 노동자가 겪는 어려움을 들으면서 인권이 생존권인 것을 알게 되었다. 기독교인으로서 동성애를 죄악으로 여겼을 뿐 아니라 그런 이들을 만나면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지만, 그의 글을 찾아 읽으며 그것이 얼마나 무지한 일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차별금지법이 발의되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작은 자를 귀하게 여긴다는 교회에서 누구보다 먼저 반대하고 나선 것을 보면서 기독교인으로 부끄럽다 못해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여파가 우리교회라고 비켜갈 것이 아니어서 그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그날부터 차별금지법에 대한 견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법적인 관점에서, 의학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성서적인 관점에서 두 달에 걸쳐 열두 편의 글을 썼다. 그 출발은 김승섭 교수가 발표한 글이었고, 오랜 시간 그가 보여준 소수자 보호를 향한 집념이 내게 큰 격려가 되었다.

 

이 책의 번역자인 김승섭 교수는 2019년 미국에서 연구년을 보내면서 만난 이 책에서 그동안 가져왔던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찾았다고 했다. 그의 학문적 집요함은 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도 예외 없이 드러났다. 책의 의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저자를 만나 문장 뒤에 숨어 있는 문화적 맥락을 확인하고, 장애학과 영문학 연구자들을 만나 번역의 완성도를 높였다. 거기서 더 나아가 무의식적이라도 장애인에 대한 비하나 혐오의 의미가 들어가지 않도록 적절한 번역어를 찾기 위해 씨름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 장애인에 대한 비하의 뜻이 담겨 있는 것이 적지 않다.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길에 비춰 볼 때 그가 이런 용어를 가려내기 위해 씨름한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관점이나 시각과 같은 말을 비하의 뜻 없이 사용하지만 그것이 장애를 가진 당사자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그를 대체할 말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때로는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해 좌절하는 그의 모습은 감동을 넘어 존경받아야 할 모습으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글 쓸 때마다 단어 고르는데 신중을 기하고 있다. 장애인 비하로 들릴 수 있는 표현은 당연히 사용하지 않고, 혹시라도 그들에 비해 내가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표현은 없는지 몇 번씩 살피곤 한다. 최근에는 연민이라는 말을 대체할 수 있는 게 뭐 없을까 생각하고 있다. ‘연민이란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시혜의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당분간 공감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만족스럽지는 않다. ‘사회적 약자라는 표현도 마음에 걸린다. 그건 스스로 강자라고 여기는 사람이 쓸 수 있는 말이 아닐까 해서이다.

 

내게 일어난 이 모든 변화는 김승섭 교수로부터 비롯되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고 바다가 갈라지는 것이 기적이라고 하지만, 정말 기적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 아닐까 한다. 그는 훌륭한 학자이기보다는 성실한 학자이기를 꿈꾼다. 그러나 강퍅하기 이를 데 없는 내 생각을 기적처럼 바꿔놓은 그는,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어느 누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훌륭한 학자이다. 자식 또래의 젊은이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나는 망설임 없이 그를 존경한다.

 

의도하지 않은 차별

 

나는 저자인 킴 닐슨이 장애를 다루는 의학자일 것으로 생각했다. 뜻밖에도 그는 역사학자로서 장애와 여성의 관점에서 미국 역사를 재해석하고 있고, 특히 헬렌 켈러와 그의 스승인 앤 설리번의 정치적 활동에 초점을 맞춰 연구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로 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열여섯이던 저자의 딸이 갑작스럽게 심각한 병에 걸렸고 결국 장애 여성이 되었다. 그로 인해 집필이 늦어지기는 했지만, 저자는 그 경험 때문에 질문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더 나은 책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당초 집필을 시작했을 때와는 다른 책이 된 것은 딸의 장애로 인해 자기 가정이 달라졌고, 자신이 그 일을 겪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장애를 연구하는 학자였으면서도 장애인 가족이 생기기 전까지 장애의 어려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학자도 장애인 가족이 생긴 것만으로도 생각이 이렇게 바뀔 수 있다면, 하물며 일반인이 장애에 대해 이해하는 것과 장애인 본인이 느끼는 것 사이에는 얼마만한 간극이 있을까 

 

저자는 상당수의 차별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비장애중심주의적 태도 때문에 일어난다고 말한다. 이런 태도 때문에 장애인을 향한 혐오가 일어나고 그것이 차별과 무지와 편견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그리고 장애가 있는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 눈에 드러난 차별, 스탠딩 콘서트를 계획하면서 모두가 두 시간동안 서있을 수 있다고 가정하는 무지, 그리고 미디어에 장애인이 나오지 않거나 나오더라도 불쌍하고 슬픈 모습으로 그리는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그들을 아예 사회로부터 배제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편견은 인종주의성차별주의동성애 혐오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구조 속에 축적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그렇게 축적된 편견이 장애인의 가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고 말한다. 물론 장애인들은 고등교육을 받을 가능성이 낮고 가난하게 살아갈 가능성이 높기는 하다. 그러나 저자는 남성보다 여성이, 백인보다 유색인종이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은 자연스럽거나 불가피한 일이 아니며, 이는 역사법 집행세금 구조이념그 밖의 여러 요인들이 작용한 사회구조가 원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는 모든 이들에게 같은 기회를 주는 것이 평등이고 그 이후의 결과는 개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진정한 평등은 모든 이들이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이들이 같은 출발점에 설 수 없는 것은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개인의 문제 때문이 아닌 역사법 집행세금 구조이념과 같은 여러 요인들이 작용한 사회구조의 문제 때문이다. 그것을 깨닫고 나서 작은 실천이라도 할 생각으로 페이스북의 프로필 사진을 이렇게 바꿨다.

 

 

장애의 역사에 대한 저자의 서술

 

민주주의의 선진국이고 어느 나라보다 인권이 존중받는 나라인 미국도 처음부터 장애를 이해하고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유럽의 식민지로 있었던 때로부터 독립하고 나서 2차 대전이 끝나도록 노예와 여성은 존재 자체로 장애인으로 취급되었으며, 노예와 여성과 장애인이 부정당한 권리를 되찾고 사회 구성원으로 동등하게 대우 받기까지 지난한 투쟁이 필요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콜럼버스가 북미대륙에 발을 내딛은 1492년 이전까지는 토착민에게 장애의 역사가 존재하지 않았다. 사냥과 채집이 생업의 주요수단이었던 당시로서는 신체적인 강건함이 필수적이었을 텐데, (따라서 지금 우리 사고방식으로는 그를 감당할 수 없는 신체적 장애는 사회에서 도태되는 것이 당연했을 것 같은데) 그들에게는 오늘날 장애에 해당하는 단어나 심지어는 개념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혹시 장애에 가까운 개념이 있었더라도 그것은 신체적 상태가 아닌 사회적 관계에 따른 것이었다. 신체적인 결함이 있더라도 그로 인한 인지적신체적감정적 역량과 관계없이 구성원으로 공동체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 한 그들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다만 공동체에서 축출되거나 공동체의 활동에 참여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그렇게 취급되었을 뿐이었다. 물론 매사에 그런 기준이 통용되지는 않았다. 농인이나 맹인처럼 움직이는데 제한이 있는 사람들은 추장이 될 수 없었는데, 이것은 낙인 때문이 아니라 그 자리가 요구하는 책무 때문이었다. 추장으로 일하는 동안 장애를 입게 되면 지도자의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부추장들이 그를 보좌해서 임무를 끝내게 했다.

 

전기 식민지시대에 유럽계 정착민들은 생산성을 기준으로 장애를 정의했고, 따라서 노동이 가능하다면 신체적 결함은 장애로 여기지 않았다. 노예제가 만연했던 후기 식민지시대에는 북미대륙으로 온 아프리카인은 그 자체로 장애인 취급을 받았다. 인종차별이라는 부끄러운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노예주인과 노예제 옹호자는 노예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이 정신적 신체적으로 열등하게 태어났고 그들의 몸이 비정상적이고 혐오스럽다고 가정했다. 그리고 노예주인은 자신이 부리는 노예가 몸과 정신에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오히려 노예제가 돌봄이 필요한 노예에게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1848년 세니커플스 여성권리회의에서 여성운동가들은 자신들이 시민으로서 적합한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동등한 시민권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우월한 인종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동등한 시민권을 요구한 것이었을 뿐,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따라서 모든 인간에게 동등한 시민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노예출신인 노예폐지론자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권리의 진정한 기반은 개인의 능력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노예 출신조차 같은 노예 안에서 차별을 주장한 것이다.

 

노예제와 인종차별은 북미에 거주하는 아프리카인과 그 후손이 공동체와 시민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지적신체적 능력, 심지어는 인간성도 백인과 동등하지 않다는 이념을 전제하고 있었다. 노예주인, 의학자, 신학자, 미국 헌법의 초안을 작성한 사람, 특히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인물이자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 그리고 유럽과 미국 사회의 주류에 속하는 거의 모든 사람이 노예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정신적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장애의 개념은 노예제와 인종주의를 정당화시켰고, 심지어 많은 백인으로 하여금 노예제가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아프리카인에게 이득이 된다며 스스로를 기만하게 만들었다.

 

미국 독립전쟁이 끝나고 나서 장애에 대한 이해가 크게 변화했는데, 광기(狂氣)를 신학적이고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던 데서 점차 생물학적인 현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1825년 이전에 광기를 신의 손길이 닿아 초래된 끔찍한 불행이라고 판단했던 대법원은 그 이후 질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남북전쟁 퇴역군인이 집으로 돌아오고 도시가 확장되고 산업재해가 증가하면서 미국의 도시들은 Ugly Law라고 불리는 법을 통과시켰고, 그 결과 장애인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1867년 샌프란시스코는 병에 걸렸거나 신체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었거나 몸이 훼손된 사람, 혹은 어떤 형태로든 신체가 기형이거나 보기 흉하거나 역겨운 존재를 거리와 공공장소에서 추방했다. 포틀랜드는 불구나 신체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은 사람이 공공장소에서 구걸하는 것을 금지했고, 1911년 시카고는 병들었거나 불구이거나 또는 기형인 신체부분이 노출되는 것을 금지하도록 주법을 개정했다. 공무원과 이 법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추한 모습으로 구걸하는 장애인들이 도시의 공공장소를 점령했다고 주장하며 자신을 정당화했다. 길에서 구걸하거나 물건을 파는 것이 유일한 생계수단인 사람을 처벌했고, 장애인들을 대중의 뇌리에서 지우려고 했다.

 

오늘, 우리의 상황은

 

저자는 이런 부끄럽고 쓰라린 장애인 차별의 역사를 지닌 미국이 어떻게 지금과 같이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 손색없는 인권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7장과 8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저자가 서술한 바와 같이 이런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이 뒤따랐다. 그러나 내 관심은 그를 극복해온 과정보다는 장애인이 그런 상황에서 여성이나 노예와 더불어 얼마나 차별받고 혐오의 대상이 되었는지, 그들이 당시에 받았던 차별이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적 약자에게도 동일하게 가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살피는데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현재 우리 사회는 차별금지법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법안이 발의된 6월말부터 내 관심은 온통 거기에 쏠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이 책이 미국에서 일어난 장애의 역사적 사건을 서술하고 있지만, 읽으면서 상당한 기시감(旣視感)을 느꼈다.

 

유럽인들이 북미대륙에 진출하기 전까지는 토착민 세계에서는 장애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 전기 식민지시대에는 생산성을 기준으로 장애를 정의했기 때문에 노동이 가능하다면 신체적인 결함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후기 식민지시대에 들어서면서 장애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오히려 확장되어 아프리카인을 존재 자체로 장애인 취급해 노예제를 정당화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신적신체적으로 결함이 있는 노예에게 오히려 도움이 되는 제도라고 주장하고, 그런 주장에 스스로 세뇌되어 그것을 사실로 믿기에 이르렀다. 미국이 독립하고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는 Ugly Law를 만들어 장애인을 추방하고 아예 대중의 뇌리에서 지우려고까지 했다.

 

우리도 장애인을 천형으로 여겼던 때가 있었고, 장애를 가진 가족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으며, 그들에게 유형무형의 차별이 가해졌다. 그러나 적어도 법을 만들어 그들을 추방하려 한 일은 없었고, 그들을 대중의 뇌리에서 지워버리려 한 적은 더욱 없었다. (장담은 못하겠지만 내 기억에는 그렇다.) 그 후로 세월이 많이 흘렀다. 주변을 돌아보면 예전에 비해 장애인을 배려한 시설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시정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 그런데 과연 장애인들도 그들에 대한 차별이 시정되고 있으며 편견이나 차별이 해소되고 있다고 생각할까 

 

그렇지 않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눈에 보이지 않게 숨어들었을 뿐 더 치밀하고 집요하게 확산되어가고 있다. 더 절망적인 것은 차별과 혐오, 그리고 배제의 대상이 날로 확장되어 간다는 것이다. 성소수자이슬람난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문명국이기를 포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차별과 혐오를 신념이요 신앙으로 여기기까지 한다. 그것을 차별과 혐오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희생해서라도 기어코 막아내야 하는 사회악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성소수자는 그것이 존재의 문제임에도 전환치료를 통해 기어코 그들이 말하는 본래의 성으로 돌려놓는 것이 성소수자를 위한 길이라는 사명감으로 여긴다. 그것이 노예제는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아프리카인을 위하는 길이라는 인종주의자의 주장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저자는 북미 토착민 사회에서 장애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지만 자리가 요구하는 책무 때문에 농인이나 맹인이 추장이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서술하면서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조화를 이상으로 추구했지만, 그 이상대로 살아가기는 힘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정도라면 이상을 달성하고도 남은 것으로 봐야하지 않겠는가. 어느 누가 그것을 차별로 받아들이겠는가.

 

저자는 여성들과 노예들이 이런 부당함에 맞서는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서술하고 있지만, 내 눈에는 차별받는 여성이 차별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이의 시정을 요구하면서 다른 인종을 차별하고, 노예였던 사람이 능력이 있어야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다면서 무능력한 노예를 차별하는 모습이 매우 아이러니하게 보인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 또 다른 모습의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고 혐오를 가하는 지금 우리 모습과 겹쳐 보인다.

 

역자에 거는 기대

 

그런 가운데 그나마 역자와 같은 학자들의 헌신으로 차별의 부당함을 알리는 주장이 동력을 잃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 고맙기 이를 데 없다. 내게는 역자가 쓴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 몸이 세계라면과 이의 연장선상에서 읽게 된 숙명여대 홍성수 교수의 말이 칼이 될 때>, 강릉원주대학교 김지혜 교수의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그동안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귀한 지침이었다. 그래서 누가 내게 인생서적을 꼽으라면 서슴없이 이 책을 꼽겠다.

 

오늘 아침 그렇게 소중한 책을 쓴 위의 저자 중 한 분이 널리 알려진 것과 다르게 판매부수가 4만 부에 불과하다는 글을 올렸다. 이 책들로부터 큰 깨달음을 얻었던 내게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나마 그 분은 다른 이들에 비해 책을 쓸 수 있는 매우 이상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런 상태에서 이런 양서를 다시 보기를 기대하는 게 욕심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역자에게, 그리고 홍성수 교수, 김지혜 교수에게 크게 기대를 걸고 있다. 더욱 정진하여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을 수 있는 중요한 지침이 되는 글을 계속 발표해주기를 기대한다. 물론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독자의 반응 없이 저자의 의욕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들이 펴내는 책을 열심히 사서 읽고 형편 되는 대로 주변과 나누는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도저히 그런 기대를 접을 수 없다.

 

어쩌다 보니 페이스북에서 출판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을 많이 알게 되었는데, 그들의 글을 통해 출판시장의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는 점과 신간을 펴내게 하는 동력은 수익보다는 의무감과 사명감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도 아울러 깊은 감사를 전한다.

 

역자인 김승섭 교수가 천착하고 있는 연구주제에 대한 소식도 듣고 현안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읽고 싶어 오래 전부터 페이스북에서 관계를 맺어왔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의 글을 읽을 수 없었다. 활동이 뜸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는데 검색도 되지 않았다. 다른 이에게 물으니 여전히 글이 올라온다고 했다. 차단당한 게 아닌가 싶다. 댓글을 몇 번 달기는 했어도 결례가 되었던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내가 올리는 글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 아직도 차단한 이유를 모르겠다.

 

하는 수 없이 생각날 때마다 일일이 김 교수의 이름으로 검색해서 소식을 듣고 있다. 혹시 누군가 페이스북 말고 그의 근황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면 고맙겠다. 차단을 풀어주도록 김 교수께 말이라도 넣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맙겠고.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접어보기
  •  eBook 상품상세 페이지에서 더 많은 리뷰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한줄평 (1건)

0/50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