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을 너무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움베르토 에코에 대한 엄청난 기대로 프라하의 묘지를 읽었습니다만, 무슨 내용인지 기억조차 없습니다. 독후감을 올렸나 몰라서 찾아보니 2013년에 짧게나마 모호하게 올린 게 있긴 하네요. 줄거리 언급을 최대 한 억제하려 노력하기도 했을 거고, 기억나는 것이 거의 없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장미의 이름과 같은 탁월한 느낌과 흥분을 전해주는 책은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막연하게 기억나는 것은 방금 읽었던 푸코의 진자와 프라하의 묘지를 비교해 어떤 책을 선택할지 고민했던 상황인데, 선택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내 책읽기가 부족한 것인지...
이 책의 핵심 소재는 카발라(cabala), 즉 중세 유대교 신비주의인 것으로 보이며, 그와 관련하여 카발라를 신봉했던 성전기사단의 후예들과 관련한 사건을 주인공이 실제 목격한 내용과 그 목격과 관련한 상황까지 주인공이 접근하게 되는 회상 내용을 허구의 창작으로 서술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주인공이 과거의 내용을 회상하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실제로 주인공이 배경으로 취하는 시간적 범위는 2일 정도인 거 같습니다. 소설이 핵심인물은 주인공 카소봉, 동료 벨보 및 디오탈레비입니다. 출판사 편집인인 벨보와 디오탈레비는 주인공 카소봉과 어떤 주제 관련한 책의 출간으로 인연을 맺게 된 것으로 보이고, 그들의 출판사 사장의 제안으로 카발라와 성전기사단 관련 책의 출판을 준비하는 데 그 과정에서 점차 성전기사단의 핵심 핵심 사상으로 근접하게 되고, 결국 그들이 수 많은 시간을 들여서도 파악하지 못했던 지자기류에 대한 거짓정보를 제공하게 되면서 발생한 사건을 구성한 내용입니다. 책에서 말하는 [계획]이란 명칭으로 말이죠. 책의 제목 푸코의 진자는 그러한 지자기류 관련 사실을 확정하는 데 측정장비 역할로만 사용되어 엄밀히 따지면 책의 제목으로는 조금 어울리지 않을 듯 한데, 아무튼 그것은 책을 다 읽어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니 독자의 흥미를 유발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구의 자전을 측정하는 푸코의 진자는 프랑스 국립공예원에 설치된 것으로 소설에 설정되어 있어 회상 내용을 제외한 핵심 공간적 배경은 따라서 국립공예원입니다. 나머지는 주인공 카소봉이 사라진 벨보의 행적을 찾아내기 위해 찾아간 벨보의 작업실 또는 집이 될 거 같습니다. 카소봉이 벨보의 행적을 찾아내는 결정적 단서를 벨보의 컴퓨터에서 벨보가 작성한 문서를 통하여 확보하는데, 그 과정에서 벨보의 글을 매개로 카소봉이 과거의 회상내용이 복잡하게 시점 구분없이 등장하게 되면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카발라, 은비주의, 성전기사단 등 다양한 내용이 등장하여 내용이 헷갈려 따라가기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러한 유대교 신비주의 관련한 세피로트의 나무로 소설의 장을 구분한 것인데, 그래서 소설의 처음 시작은 세피로트 나무의 최 상단 항목인(세피라) 케테르(왕관)가 되고 마지막은 말후트(왕국)이 됩니다. 각각의 세피라와 관련한 내용으로 내용 구성이 된다고 보는 게 맞을 거 같습니다만, 배움과 지식이 부족하여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합니다.
각각의 세피라로 구분되는 장은 또다시 소절로 구분되는데, 각각 절의 시작은 반드시 어떤 책들의 인용구로 시작되며 그 인용구는 각 절의 소설내용을 핵심으로 요약하는 내용으로 선정되어 있습니다. 책이 상중하로 나뉘어 총 10개의 세피라로 구성되므로 각 세피라에 포함된 많은 절에 맞는 책이 인용되어 있어 저자의 탁월한 기억력 또는 구성력을 느끼게 되는데, 인용구의 선정이 먼저인지 내용을 서술하고 맞는 인용구를 찾은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인용구의 원저는 수백년 전의 책도 있고, 근래의 책도 있으며 소수의 중복이 있지만 거의 다른 책에서 인용되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책의 전체적 구상을 세피로트의 나무로 구성하고, 소설의 내용에 맞는 인용구를 기억해 붙였다면 정말 대단한 기억력 아닐까요? 아니면 각각 인용구를 찾아 넣은 것이라면 엄청난 노력과 독서량이 필요했을 것이고요. 무엇이든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는 탁월함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겠지만 말이죠. 결말로 치달아가는 저자의 탁월한 서술력도 대단합니다. 책은 공예원에 카소봉이 잠복하는 상황묘사로 시작해 결국 하이라이트는 카소봉이 목격하는 어떤 사건을 묘사하는 내용이며, 마지막은 결국 그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절망적이라고 봐야 할 듯 한데)에 대한 서술로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199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퇴마록이 생각났습니다. 수준차이야 하늘과 땅차이겠지만, 구성방식이 많이 흡사한 것이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저자가 관련한 엄청난 자료를 바탕으로 끌어다 인용한 것이나, 유럽의 유대교와 한국의 불교의 밀교적 요소를 내용으로 구성한 것이나 미스테리 추리적 서술 등이 그런 거 같습니다. 국내에서 퇴마록은 단기간 소모되고 말았지만, 푸코의 진자는 고전으로 끝까지 살아 남을 것은 너무도 커다란 차이일것이니다만...
마지막으로 주인공 카소봉을 비롯한 세명의 주연이 만들어 낸 그 [계획]에 대하여 카소봉의 연인인 리아가 평가한 부분을 원문 그대로 옮겨봅니다. 저자 에코가 말하는 내용이겠다 싶었고, 벨보는 결국 이런 내용을 몸으로 품어 죽음으로 실천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또한 마지막에 카소봉이 읽어냈다고 봅니다.
‘당신네 계획은 전혀 시적이지 못해. 못 봐줄 정도로 그로테스크하다고. 호메로스를 읽는다고 해서 트로이아에 불을 지르러 가는 사람은 없어. 호메로스와 더불어 트로이아의 불길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어떤 의미를 획득했어. 그럼에도 일리아스는 세월을 견디면서 불후의 명작 노릇을 할거야. 왜? 일리아스는 명쾌하고 투명하니까. 그러나 당신네 장미 십자단 선언문은 명쾌하지도 투명하지도 않아. 악의 과장이 난무하는 밀약에의 초대일 뿐이지. 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찾아내고 싶은 것을 여기에서 찾아내면서 이 밀약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린 까닭이 여기에 있어. 호메로스에게는 비밀이 없지만 당신네 계획은 비밀과 모순투성이야. 바로 이 때문에 당신네들은 이 비밀과 이 모순과 자기네들을 동일시할 준비가 되어 있는 불건전한 사람들을 무수히 찾아낼 수 있었던 거라고. 제발 이제 그만 던져 버려. 호메로스는 속임수를 쓰지 않았는데 당신네 삼총사는 무수한 속임수를 써왔어. 속임수를 조심해야 해. 자꾸 쓰면 사람들이 믿어 버린다고. 사람들이 발모 고약 장수를 믿는 거 당신도 알지? 그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발모 고약 장수가 앞뒤가 안 맞는 진실을 줄줄이 꿰어 맞추고 있다는 것, 논리적이지 못하는 것, 솔직하게 떠들어 대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아. 하지만 사람들은 신은 신비롭다, 신의 뜻은 측량할 길 없다는 말을 자꾸 들으면 모순을 신과 가장 가까운 것으로 믿게 돼. 당치도 않는 것을 두고 기적과 가장 가까운 것으로 믿게 돼. 그런데 당신네 삼총사는 발모 고약을 발명했어. 싫어. 고약한 장난이라고...’
제목을 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문이 들었는데 마침 첫 장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 '푸코의 진자'란 지구가 자전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물리학자 '장 베르나르 레옹 푸코'가 만든 것의 이름이다. 이 글을 읽고 어떤 내용인지 전혀 가늠하지 않고 펼쳤고 초반 이 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설명하는 것과 한 남성이 파리에 국립 공예원의 박물관에 들어가기 위한 내용이 펼쳐진다. 여기서 이미 화자인 나(카소봉)과 야코보 벨보,디오탈레비 세명의 인물이 소개되고 왜 카소봉은 이곳에 오게 되었으며 <그들>이 누구인지 모르나 이들이 이곳에 어떻게 들어오려는 것인지 카소봉은 의문을 던진다. 그로부터 이틀 후 카소봉은 벨보로부터 의문을 전화를 받는데 놈들이 자신을 미행하며 '그 계획'은 사실임을 말하고 다급하게 전화를 끊으면서 자신이 그동안 내용을 기록한 디스크를 꼭 읽어보라고 한다.
카소봉은 벨보의 집에 도착해 기록한 내용을 읽고 자신이 어떻게 벨보와 디오탈레비를 만나게 되었는지 과거로 돌아간다. 카소봉은 성전 기사단을 논문을 준비하던 학생이었다.우연히 술집에서 출판사을 운영하던 벨보를 만나게 되었고 성전 기사단으로 벨보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도대체 성전 기사단의 존재는 무엇인가? 카소봉은 자신이 논문으로 준비한 내용들을 벨보에게 들려주는데 이 기사단이 실재로 존재했는지 그렇다면 무엇을 했고 어떤 임무를 맡았는지 등 한편의 기록된 역사처럼 카소봉은 설명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의 존재는 확인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종교로 이들은 만들어졌고 점점 세력이 커져나가는 것이 두려워 황제는 이들의 힘을 약화시키려고 했으며 이에 또 다른 권력이 만들어지는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복잡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건 단지 가설 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들 앞에 성전 기사단과 관련해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아르덴티 라는 대령이 나타난다. 당시, 카송봉,벨보 그리고 디오탈레비가 그 자리에 있었고 대령은 기사단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은 120년을 넘어 어떤 계획을 준비하고 있음을 설명하는데 이 또한 확인할 수 없는 자료일 뿐이다. 그러나 너무 당당하게 자신이 이 책을 냄으로써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다짐하는 대령의 의견에 누구도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물론, 벨보도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령이 호텔에서 시체로 아니 실종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의문만이 더 증폭 될 뿐이다. 그렇다고 딱히 경찰이 무엇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 대령이 도망자라는 사실과 다른 이름을 가진 자라는 것을 알려 줄 뿐이었다.
대령이 사라짐으로써 카소봉과 벨보는 딱히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들은 각자 시간을 보냈고 카소봉이 연인인 임파루와 브라질에 가게 되었는데 그때 벨보에게서 편지를 받게 되면서 성전 기사단이 다시 수면에 오르게 되는데 여기에 장미 십자단도 등장한다. 더 나아가 임파루와 브라질에서 어떤 의례에 참가하게 되면서 연인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나게 된다. 이 일이 카소봉이 연구하던 성전 기사단과 연결이 되는 것일까? 그저 기록일 뿐 어떤 것도 확실치 않는 성전 기사단의 존재는 무엇을 위한 것이며 벨보는 왜 두려움에 떨어야 했을까? 종교와 관련된 부분이라 생소하면서 낯설지 않는 [푸코의 진자]. 첫 번째 책은 모든 것을 의문을 남긴 채 끝났는데, 다음 권에서는 어느 정도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지 그리고 벨보와 재회가 되는지 궁금할 뿐이다.
로마의 황제가 상반신만 잘려 석고상이 된 토르소가 눈을 돌리면 차가운 기운을 느끼게 만든다. 프랑스의 위대한 과학자 라부아지에의 숨결이 느껴지기도 한다. 전 세계의 온갖 희귀한 동물과 식물을 헤쳐 나가면 하늘이 아니라 지구가, 그저 창백한 푸른 점 하나일 뿐인 지구가 돌아간다는 사실을 그토록 입증하고 싶었던 사그락사그락 모래 위를 흩어 지나는 거대한 쇳덩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푸코의 진자는 자신의 무거운 몸뚱이를 지탱하고 있는 튼튼한 사슬의 꼭대기에서 선을 하나 더 뻗어 하늘로 나아간다.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그 선은 지구처럼 우주의 한 공간에 박혀 회전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라면 문자 그대로 중심이 되는 절대적인 한 점과 하나의 짝을 이루는 존재일까.
신이 인류에게 선물한 지성이라 불렸던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이라는 역작 외에도 수많은 문화유산을 남겼다. <푸코의 진자>는 저자의 방대한 철학적, 인문학적 지식과 사유를 한껏 담아놓은 또 하나의 역작이다. 읽는 이의 사유 능력이 턱없이 부족해 많은 부분에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고, 몇 번씩이나 미묘한 문장들을 곱씹어야 했으며, 그럼에도 여전히 책의 절반 이상을 의문으로 남겨놓게 만든 어려운 책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성전 기사단'이라는 내밀한 음모로 둘러싸인 존재를 통해 종교, 인종, 성별, 문화라는 뛰어난 철학가라도 쉽사리 대답할 수 없는 주제들에 대해 다양한 사유를 던지는 점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특히 에코 특유의 '쏟아내는' 듯한 필체 속에서도
때로는 희미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흐름을 표현하는 기법은 놀랍다. 성전 기사단에 얽힌 수백 년의 역사를 카소봉와 아르덴티 대령의 입을 통해 꺼낼 때는 픽션에 익숙하지 않았음에도 에코의 소설만큼은 생이 끝날 때까지 탐닉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반대로 유럽 대륙의 반대편으로 훌쩍 날아가 '피'로서 다양함과 혼합, 뒤섞임을 상징하는 암파루의 입으로 문화, 종교, 그리고 '믿음'이란 까다로운 이야기를 꺼낼 때는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그를 쫓는 수상한 자들의 깔끔한 솜씨와 함께 사라져버린 벨보. 벨보와 벨보의 친구 디오탈레비에게 '그' 계획, '그' 이야기, '그' 성전 기사단의 오랜 밀담을 카소봉은 하룻밤에 모두 풀어냈다. 가난한 자들이 정신적으로도, 그리고 물질적으로도 구원받기 위해 몸을 던졌던 성전 기사단. 후에 성전 기사단은 유럽의 중요한 국가들은 물론 세계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이름만 '지배자', 또는 '권위자'라 불리는 자들의 뒤에서 세계를 손에 쥐었다고 '전해져' 내려오곤 했다. 120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그들이 완수하고자 했던 '그' 계획은 대체 무엇일까. '성(聖)'이라는 징표를 달고선 온갖 성스럽지 않은 일들을 행하고, 그 뒤의 궁극적인 목적지에는 '성(聖)'을 다시금 붙이게 만든 그들의 믿음은 무엇일까. 벨보의 내밀스러운 파일을 여는 것부터 성전 기사단의 전설, 현실 세계의 이념 갈등, 브라질에서의 신앙까지 인류가 품을 수 있는, 최소한 그저 한 명의 평범한 독자로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책을 덮은 순간, 단 하나 떠오르는 평생의 소원이 있다면, 에코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 그의 방대한 사유 세계가 너무나 탐난다.
* 본 리뷰는 열린책들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