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저/양윤옥 역
전건우 저
윌리엄 린지 그레셤 저/유소영 역
오세영 저
헨리 제임스 저/조기준,남유정 공역
2권의 시작은 1권에 이어 배를 타다 난파한 배가 동남아에 흘러가게 되고, 그곳에 타고 있던 청년 고사문의 해외 탐방기 같은 내용이 그려진다. 그는 그곳에서 힘닿는 대로 열심히 일해 그곳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고 돈도 벌게 된다. 그리고 인연이 있어 여인도 만나게 되고 사랑도 하게 된다. 그런데 그는 흑산도에서 결혼을 한 후 바로 배를 타다가 그런 상황이 되었다. 처음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애를 태웠으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시간이 3년이 넘어 흘러버렸다. 아마 고행 흑산도에서는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고향의 아내가 친구 희영과 좋게 지낸다고 한다. 결혼도 마음에 두고 있는 듯한데, 무슨 방해가 있는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고사문은 어떻게든 고향에 한 번은 들러야 하겠다는 생각에 중국의 상선을 타고 몰래 들어온다. 들어와 친구 창대와 약전을 우선적으로 만난다. 그리고 마을의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아내가 자신은 죽은 줄 알고 희영과 좋게 지내는 사이인 것을 안다. 고사문은 자신은 이미 그들에게는 죽은 사람인데, 그들 앞에 다시 나타나 상황을 어렵게 만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약전과 친구 창대에게 의논해 지난은 다시 안남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결정을 한다. 친구를 위하고 안남의 식구를 위하며 아내를 위한 길이라 생각한다.
폭넓은 마음들이 보인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맺어 지는 인연들이 뜻하지 않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고사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연찮게 해외로 나가게 되고, 그곳에서 삶의 터전을 잡게 되면서 세계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된다. 고사문은 안남의 생활들을 정약전에게 자세히 알려 그가 안남의 기록물을 남기게 만든다. 약전에게는 고사문도 무척 중요한 사람이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약전이 있기에 흑산도에 학당이 들어선다. 물론 창대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섬에 초시 한 분이 있어 강의를 맡아 주면서 학당의 일은 훨씬 수월하게 된다. 그런데 학당에 낯선 똑똑한 인물들이 대거 참여한다. 그들은 기본적인 책들은 이미 다 읽었다. 그들은 얘기한다. 정약전이 있기 때문에 나오게 되었다고. 선비님이 잘 알고 계시는 실학을 배우고 싶다고. 정약전은 그들에게 실학을 가르치기로 마음을 먹는다. 수리, 지리 등을 중심으로 신학문을 가르친다. 물론 중국을 거쳐 들어온 학문들이다. 이것을 잘 따라오는 학동들은 육지와는 다른, 모두 학습을 하기엔 나이가 든 사람들이다. 하지만 실학이라면 언제 배워도 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실학을 배우면서 차츰 세상에 대해 눈을 떠가기 시작한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 바다를 끝없이 항해하다 보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최종문이 정곡을 찌르고 나섰다. 그의 말대로다. 역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산학과 천문학 지식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완고한 사대부들과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배짱과 신념이 필요했다. 날카롭지만 어딘지 모르게 냉소가 섞여 있는 듯한 최종문의 눈, 재기를 타고난 서출의 전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약전은 최종문이 우수한 역관이 되기 위해서는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안목이 먼저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 비뚤어진 심성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도 비뚤어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최종문에게는 산학과 천문학 외에도 올바른 인성을 심어주는 것이 급선무이리라. p71
서원의 민폐가 그려진다. 서원이 가지고 있는 갖은 권력이 악행으로 나타나고 그래서 서원 철폐령까지 내려지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하지만 이때까지 흑산도는 서원이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숭양서원의 박성태는 그런 사람이었다. 최용우의 서자 최종문은 똑똑한 사람으로 정약전이 연 사촌서당으로 와서 실학을 배우던 젊은이다. 그런데 최용우는 적자를 서울 성균관으로 보내기 위해 최종문을 박성태에서 보낸다. 박성태가 최종문을 자신의 서원으로 보내주면 성균관으로 가는 것을 힘써 보겠다고 한 것이다. 최종문은 박성태에게 가면서 괴리감을 많이 느낀다. 그리고 결국은 실학을 배우겠다고 얘기하면서 사촌서당으로 다시 돌아온다. 정약전은 이 똑똑한 인재를 역관으로 키우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약전이 가르치는 실학이 천주교 교리로 오인되어 나주목에 고발이 들어가고 나주목에선 탄압이 나온다. 약전이 이 일로 귀양을 살고 있는데, 이곳에서 다시 거론되니까 마음고생이 삼하다. 하지만 약전은 당당하다. 그리고 사촌서당을 지속적으로 운영해 나가고 실학을 가르친다. 그것이 크게 빛을 볼 날을 만난다.
약전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허송세월을 하지 않으려고 어보를 만들고 표류기를 정리하고 또 서당을 열며 바쁘게 살아왔다. 그런데 번잡스러운 세상사는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기 않았다. 답답하지만 그렇다고 한숨만 내쉰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약전은 모진 꼴을 당하게 되더라도 끝까지 의연하게 대처하리라 마음먹으며 방으로 들어섰다. p123
흑산도에 태풍이 불어오고 산성이 붕괴되는 일이 일어난다. 나주목에서는 축성에 마음을 쏟게 되고 많은 인력을 동원한다. 하지만 인력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다. 약전은 성을 지어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인부들을 통원해 유형거, 거중기 등을 만들고, 그것으로 산성을 보수하는데, 큰 힘을 보태게 된다. 실학의 효용이 제대로 인정된 것이다.
홍경래의 난이 일어난다. 민중이 나라의 혼란에 무기를 들고 일어선 것이다. 북쪽 정주를 정심으로 세력을 크게 떨친다. 하지만 부하들의 배반으로 홍경래가 죽자 지리멸렬하고, 민란이 끝을 맞이하게 된다. 이 난의 후일담이 책 속에 소개되고 있다. 안창학, 이소담 부부는 정주성에서 살아남은 반란군 잔당들이다. 그들은 나주에까지 도피를 하면서 해외로 나갈 것을 꿈꾼다. 부부는 귀티가 나서 어디서든 잘 드러난다. 한편 정달현과 창대는 복어를 직접 팔기 위해 나주로 나온다. 파시와 같은 결과를 생각하며 직접 상인을 만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중간 상인인 임성량이란 사람의 농간에 놀아난다. 그러면서 안창학은 임성량이 악하다는 것을 알고 복어를 이용해 죽인다. 그런데 창대가 범인으로 몰리게 된다. 그것을 서울에서 안창학을 따라 내려온 추포사가 범인을 잡기 위해 오히려 창대를 풀어주고, 창대는 안창학, 이소담을 도우기 위해 노력한다. 이소담이 어려운 상황이 될 때마다 나타나 도와주는 복면괴한 손달이라는 사람도 나온다.
결국 축성, 민란의 잔당 이야기, 고기잡이, 표류 이야기 등 흑산도와 관련해서 일어나는 일들을 표현하고 있다. 자세하게 표현되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당시의 사람들의 마음까지 다가오는 듯하다. 그러면서 ‘자산어보’를 완성한다. 어려운 삶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다양한 일을 해낸 정약전의 삶이 잘 보인다. 이런 지난한 시간을 살던 섬 생활이 11년이 지나도 육지에선 오라는 전언이 없다. 차츰 몸도 마음도 쇠약해져 간다. 서울로 가면 창대와 그의 처는 따라가서 모시겠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있는 마당인데, 결국 섬을 떠나지 못하고 정약전은 죽는다.
실학으로 백성들을 지극히 사랑한 학자. 정약전의 삶은 그렇게 거문도라는 섬에서 한양을 그리워하면서 마지막을 맞았다. 그곳에 살 동안 고결한 인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 소기의 목적을 이행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 고맙게 여겨진다. 흑산도에 가면 정약전이라는 분을 마음에 떠올릴 듯하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절해고도에서 막막함과 절망감을 이겨내고 섬사람들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간 정약전의 유배생활을 소설화한 이 책 2권에서 작가가 다루는 에피소드는 세 가지이다. 그 중 섬사람들이 바다에서 겪는 표류를 그린 에피소드는 1권에서 이어지며 계속된다. 문순득이 돌아오는 길에 오문(마카오)에서 칠년 전 파도에 휩쓸려가 죽은 줄만 알았던 고상운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창대에게 한다. 고상운과 창대, 그리고 허회영은 한 마을 친구이다. 고상운이 행방불명이 되고 칠년이 지난 지금 허회영은 고상운의 아내였던 이씨와 혼인을 하기로 했는데, 고상운이 살아 있다는 소리를 들은 창대의 눈앞이 캄캄해진다. 고상운은 흑산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허회영은 이씨 처자와 혼인을 할 수 있을지,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그네들의 사랑에 가슴이 시리기도 한다. 이 에피소드 역시 한편의 드라마처럼 한없이 빠져들게 만든다.
약전은 흑산도의 서리마을에 서당을 차렸다. 이 또한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이 터를 닦고 기둥을 올리고 지붕을 얹어 완성된 서당을 약전은 복성재라 불렀다. 학동들에게 천자문과 동몽선습을 가르치고, 어한기에는 어민들에게 간단한 글을 가르치겠다고 마음 먹는다. 진리사람 한시학이 접장을 맡아 학동들을 가르치고, 약전은 통감을 강의하기고 한다. 약전에게 통감을 들으러 오는 사람 중에 예리의 향반가문 서출출신 젊은이 다섯 명이 있다. 그들은 서학과 실학에 관심이 있었다. 그들에게 역법을 가르치고 천문서적과 천체관측도구를 보여주며 강의를 한다. 그중에서도 특출난 기량을 선보이는 최종문에게 마음이 간다. 그를 더 가르쳐 관상감 취재에 응시하게 만들고 싶었다.
흑산도에는 예리에 서원이 하나 있다. 숭상서원의 동주인 박성태는 서얼출신들을 서원으로 끌어들여 돈을 모을 생각에 최종문의 아버지 최용우를 움직이지만 최종문은 단칼에 거부한다. 이에 박성태는 약전이 서당에서 서학을 가르친다고 고발하고 나주에서 관헌들이 기찰을 하러 들이닥친다. 박성태와 예리의 향유들은 작당을 하고 약전을 천주교로 엮어가며 최종문을 증인으로 내세우려 한다. 불려간 최종문을 박성태가 윽박지르지만 최종문은 의연하게 맞서고 기찰사로 나온 동첨절제사 구상복이 판결은 자신이 내리는 것이라고 제지한다. 밤새 쏟아진 폭우에 마을이 난장판이 되었고, 산성이 무너져 내렸다. 흑산도에 나와 있던 구상복은 축성도감의 감관을 맡아 마을 사람들에게 축성부역을 명한다. 자신들의 집을 보수하고 조기잡이 시기에 출어하기도 바쁜 마을 사람들에게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축성부역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이 때 박성태가 나타나 약전에게 실학이 실사구시의 학이고 이용후생의 술이라면 축성을 보름 안에 끝내보라고 말한다. 무너져 내린 돌들을 산꼭대기까지 올려놓는 것만 해도 두 달은 족히 걸릴 것이다. 박성태는 출어시기를 들먹이며 어민들을 선동하고, 어민들의 기대어린 눈을 바라보던 약전은 그러겠다고 답한다. 창대가 반대하며 나섰지만 약전은 물리치고, 화성 축성의 기억을 더듬어 유형거와 거중기를 제작하여 축성 공역에 투입할 생각을 한다. 유형거는 쉽게 만들었지만 거중기를 만들기 위한 정밀한 치수와 각도를 약전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것의 해를 최종문에게 구하라고... 우여곡절 끝에 거중기가 완성되면서 축성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약전은 실학이 백성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학문임을 증명해 보였을 뿐만 아니라, 최종문이란 뛰어난 인재를 얻었다. 작가는 이 에피소드를 통해 외딴섬에서마저 성리학을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서원의 행태와, 입으로만 백성을 위하는 성리학의 병폐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그런 보수지배층의 이율배반적인 태도가 조선의 국운을 갈라놓았을 것이다.
작가가 그려내는 마지막 에피소드는 도주하는 홍경래난의 잔당들을 다룬 것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작가는 노비의 신분이었지만 은인과 정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이야기를 통해 봉건적 신분제사회의 한계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어민들이 잡은 물고기를 거래하는 과정을 묘사함으로써 당시 어촌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이처럼 작가는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정약전이 구현하고자 했던 실사구시와 애민사상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자산어보>를 기록해 나가면서도 섬사람들에게 닥친 어려움을 정약전은 외면하지 않았다. 처음 절해고도인 흑산도에 발을 디뎠을 때 그에겐 절망뿐이었다. 오죽했으면 흑산(黑山)을 자산(玆山)이란 바꿔 불렀을까?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약전은 그들의 삶속에 뛰어들었고 자신이 그토록 펼쳐보고 싶었던 실학을 그곳에서 실천했다. 아마 작가는 이 소설에서 정약전의 삶을 통해 정치인 혹은 지식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작가가 그리는 정약전은 삶은 지금의 시대 우리가 바라는 리더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지만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적절한 조합이 여느 소설 못지않게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다시금 작가를 다른 작품에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