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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의 건축가들

식민지 경성을 누빈 ‘B급’ 건축가들의 삶과 유산

김소연 | 루아크 | 2017년 4월 28일 한줄평 총점 0.0 (8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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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인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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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경성을 사랑한 건축가들, 그들이 남긴 또다른 이야기
대한민국 건축 1세대들의 자취를 따라서


암살, 밀정, 경성 스캔들, 모던보이 같은 일제강점기를 다룬 시대극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배경이 있다. 바로 근대건축이다. 일본은 죽도록 싫어하면서도 미쓰코시백화점 앞에서는 입이 딱 벌어졌던 사람들, 암울한 현실을 비관하면서도 경성역에서 들려오는 문명의 소리에 들떴던 사람들, 카페와 살롱에서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서구를 동경했던 민족주의자들…. 이들에게 식민지의 근대건축은 이상과 현실, 이성과 감성의 불협화음이 요동치던 장소였다.

『경성의 건축가들』은 일제가 세운 학교에서 건축을 배우고 건축가로 성장했던 일제강점기 조선인 건축가들과 비주류 외국인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수탈을 위해 만들어지는 건축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개인적 이상 사이에서 이들은 어떤 길을 택했을까?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 건축 1세대들의 삶과 그들이 남긴 유산을 오롯이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그나마 자료가 있어 이야깃거리를 남긴 사람들이다. 자료가 없어서 아예 잊힌 사람도 많다. 지은이 김소연은 시대를 풍미했던 혹은 그러지 못하고 안타깝게 저물었던 이들의 삶과 그들이 남긴 건축물이라는 유산을 이제 한번쯤 되돌아볼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아울러 그들을 통해 그 시대의 또다른 이야기들을 알게 된다면, 개발에 대한 관점과 건물의 보존 방식 그리고 언젠가 역사가 될 이 시대 건축가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는다.

목차

들어가는 말
1장 탄생과 성장, 경성고등공업학교와 조선총독부
2장 최초이자 최고 건축가의 이면, 박길룡
3장 불꽃 대신 선택한 건축, 박동진
4장 국립묘지의 애국지사, 강윤
5장 디아스포라의 섬, 박인준
6장 건축구조의 달인, 김세연
7장 장관직만 다섯 번, 김윤기
8장 만주국으로 간 수재, 이천승
9장 시인 이전에 건축가, 이상 혹은 김해경
10장 우리말 건축용어를 찾아서, 장기인
11장 동학 교주가 왜? 나카무라 요시헤이
12장 식민지 조선에서 인생 역전을, 다마타 기쓰지와 오스미 야지로
13장 한 알의 겨자씨, 윌리엄 보리스
14장 틈새시장 속으로, 전통건축 장인의 변신
15장 청년 건축가의 반격, 청와와 젊은 그들
나가는 말/주/사진 출처

저자 소개 (1명)

저 : 김소연
김소연은 연세대학교에서 철학과 건축공학을 전공했다. 미국 텍사스A&M대학교(Texas A&M University)에서 건축학석사, 부산대학교에서 건축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과 미국 서배너, 뉴저지에서 건축설계와 리서치를 했고, 중국 칭다오이공대학 국제학부 건축학과 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건축스토리텔링연구소 ‘아키멘터리’ 대표를 맡고 있다. 좋아하는 글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김소연은 연세대학교에서 철학과 건축공학을 전공했다. 미국 텍사스A&M대학교(Texas A&M University)에서 건축학석사, 부산대학교에서 건축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과 미국 서배너, 뉴저지에서 건축설계와 리서치를 했고, 중국 칭다오이공대학 국제학부 건축학과 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건축스토리텔링연구소 ‘아키멘터리’ 대표를 맡고 있다.

좋아하는 글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출판사 리뷰

일그러진 근대에서 ‘일그러진’ 건축가들을 만나다

암살, 밀정, 경성 스캔들, 모던보이 같은 일제강점기를 다룬 시대극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배경이 있다. 바로 근대건축이다. 일본은 죽도록 싫어하면서도 미쓰코시백화점 앞에서는 입이 딱 벌어졌던 사람들, 암울한 현실을 비관하면서도 경성역에서 들려오는 문명의 소리에 들떴던 사람들, 카페와 살롱에서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서구를 동경했던 민족주의자들…. 이들에게 식민지의 근대건축은 이상과 현실, 이성과 감성의 불협화음이 요동치던 장소였다.

경성의 근대건축은 한국전쟁과 개발 논리에 따라 대부분 사라졌지만, 서울 시내를 걷다 보면 고층건물 사이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남아 있는 몇몇 건물은 아직 만날 수 있다. 경교장, 명동예술극장, 딜쿠샤, 중명전, 간송미술관, 덕수궁 현대미술관, 서울도서관 같은 건물이 대표적이다. 최근 몇 년간 ‘역사적 의미’가 깃든 근대건축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증가했다. 그 관심에 걸맞게 건물 보존에 관한 대중의 의식도 높아져 자칫 철거될 위기에 처했던 근대건축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역사 교육의 장으로 이용되는가 하면, 원래 형태를 일부 보존하는 형식으로 리모델링해 공공건물로 사용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근대건축의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현상이다. 근대건축의 ‘역사성’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건물의 ‘역할’이고, 다른 하나는 ‘건물’ 그 자체다. 이 책 『경성의 건축가들ㅊ은 우리가 재평가하고 기억해야 할 후자의 이야기, 곧 그 ‘건물’을 설계하거나 시공했던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중에서도 동경제국대학을 나와 총독부에서 근무한, 당시 건축계의 실세이자 주류였던 일본인 건축가들이 아닌, 조선인 건축가와 비주류 외국인 건축가들의 삶을 조명한다. 일제가 세운 학교에서 건축을 배웠던 조선인 건축가들, 또는 꿈을 좇아 조선으로 온 외국인 건축가들은 수많은 차별과 편견 속에서도 실력을 쌓아나갔다. 결국 일제강점기 후반 민족자본가의 등장으로 백화점, 공장, 학교, 주택, 병원, 극장 같은 건물을 자신만의 색깔로 설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들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라는 또다른 벽을 마주한다. 건축이라는 이상과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현실 사이의 간극을 이들은 어떻게 줄여나갔을까

친일 논란에서도 배제된 건축가들,
그들은 단지 ‘짝퉁’을 만드는 ‘B급’ 기술자들이었을까


일제가 세운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나온 조선인 건축가들이 취직한 곳은 대부분 총독부나 경성부청 같은 관청이었다. 그들이 그곳에서 했던 일은 일제의 지배와 수탈을 위한 건물을 짓는 것이었다. 부업으로 했던 설계도 건축주가 해방 직후 반민특위에 회부된 사람들의 것이 많았다. 이쯤 되면 친일 논란이 일어날 만하다. 그런데도 건축주만 논란의 대상이었을 뿐 건축가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건축가는 단지 기술자로 인식된 탓이다. 기술자는 가치중립적 존재라는 단순한 도식이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편견일 뿐 그 시대 건축가들도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며 식민지라는 현실과 마주했다. 잠시 건축을 내려놓고 항일운동에 뛰어든 이들도 있었고, 민족과 조국의 이름으로 일본을 극복하기 위해 건축에 매진한 이들도 있었으며, 현실을 뒤로 하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만주나 미국 혹은 일본으로 떠돈 이들도 있었다.

그들 작품의 색깔도 다양했다. 유행하던 모더니즘 건축만을 지향했던 사람, 옛것과 새것을 조화시키려 했던 사람, 전통의 정통성을 어떻게든 살려보고자 노력했던 사람…. 친일 혹은 저항이라는 이분법적 꼭짓점이 아닌 그 사이의 무수한 회색지대를 살았던 사람들처럼 그 시대 건축가들도 타협과 저항, 동경과 콤플렉스 사이에서 갈등하고 싸우고 변화하고 좌절했다. 일제가 급하게 모방했던 서구건축을 흉내만 내는 이른바 ‘짝퉁의 짝퉁’을 만든 ‘B급’ 기술자들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건축 1세대들의 자취를 따라서

조선인 최초로 총독부 건축기사가 되었고, 역시 조선인 최초로 종로구에 건축사무소를 연 박길룡, 3 1운동에 연루되어 만주를 떠돌다 돌아와 이후 고려대학교 여러 건물군을 남긴 박동진, 보리스건축사무소 경성출장소 일원으로 교회, 학교, 병원, YMCA, 복지시설 같은 선교 관련 건축을 주로 맡아 진행했던 강윤, 조선인 최초로 미국에서 정규 건축 교육을 받은 박인준, 최고의 구조계산 전문가로서 미쓰코시백화점, 화신백화점, 조지아백화점, 경성제국대학 본관 들을 구조계산한 것으로 알려진 김세연, 해방과 전쟁이라는 공백기에 후배 건축가들이 모일 수 있는 조직을 세우는 등 보다 큰 틀에서 역할을 수행한 김윤기, 만주의 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 입사해 일본인과 함께 다롄역사, 신징역사, 투먼철도공장 들의 설계와 감독에 참여한 이천승,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로 근무하면서 문학에 눈을 뜬 이상, 우리말 건축용어 정리에 평생을 바친 장기인, 그리고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연 나카무라 요시헤이, 다마타 기쓰지, 오스미 야지로, 개신교 건축선교사 윌리엄 보리스….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그나마 자료가 있어 이야깃거리를 남긴 사람들이다. 자료가 없어서 아예 잊힌 사람도 많다. 지은이 김소연은 시대를 풍미했던 혹은 그러지 못하고 안타깝게 저물었던 이들의 삶과 그들이 남긴 건축물이라는 유산을 이제 한번쯤 되돌아볼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아울러 그들을 통해 그 시대의 또다른 이야기들을 알게 된다면, 개발에 대한 관점과 건물의 보존 방식 그리고 언젠가 역사가 될 이 시대 건축가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는다.

종이책 회원 리뷰 (7건)

[교육진담TV 수요독서] 김소연 / 경성의 건축가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박*진 | 202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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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억 속으로 책을 배달해드리는 2분 퀵서비스!

 

1910년, 우리에겐 뼈아픈 역사로 기록되는 해입니다. 이후 36년 동안 한반도는 일본 제국의 통치 아래 놓이죠. 하지만 그 와중에 살 사람은 살아야 하고, 일본이 가져온 신식 근대 문화는 일본 통치와 함께 우리 삶 곳곳에 녹아들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살고 일하는 공간을 만드는 건축도 예외는 아니어서, 조선 곳곳엔 예전엔 볼 수 없었던 소재와 공법을 이용한 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섭니다.

 

그 중심에는 경성고공, 경성고등공업학교가 있습니다. 조선에 근대 건축물을 세우는 현장에서 일할 실무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총독부가 세운 교육기관입니다. 재학생 상당수는 일본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인도 섞여 있었죠. 이들은 졸업 후 총독부에 취직해 관 주도의 프로젝트에 대거 참여합니다. 이런 프로젝트, 그리고 여기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 일부는 한국 근대건축의 선구자로서 두각을 나타냅니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문화콘텐츠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 건물들. 그들의 이름은 낯익지만, 그 건물을 만든 사람들의 이름은 낯섭니다. 바로 그 이름들을 다루는 책, 김소연의 경성의 건축가들입니다.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꼽은 키워드는 경성고등공업학교, 줄여서 경성고공입니다.

 

경성고공은 1916년 경성공업전문학교라는 이름으로 총독부가 만들었고, 1922년에 경성고공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고 우리나라가 광복되기 직전 잠깐 경성공전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긴 했지만, 경성고공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오래 유지됐습니다. 이 학교의 설립 목적은 분명한데, 이른바 ‘근대’적인 서양 건축물들을 조선 곳곳에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스펙터클’을 전시하며 일본의 통치를 선전하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고, 한반도의 전통적인 ‘전근대적’ 건축문화를 바꿔 근대 문화를 이식하려는 목적도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경성고공에 진학해 공부한 조선인들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과연 우리가 이 학교에서 배우는 그 건축 기술과 방식과 문화가, 한반도에 적합한가? 사람들이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죠.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사람들이 찾지 않는 인기 없는 건축물이 될 것이고, 반면 전통을 너무 고수하면 합리적이지 못한 결과물이 나오죠.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건축가들은 이 고민의 결과를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합니다. 큰 건물에서 마당을 없애버리고 복도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근대적 전환’을 추구하는가 하면, 철도 역사에 한옥 지붕을 도입해 멋을 내기도 합니다. 서양의 역사에서 유행했던 온갖 건축 양식을 뒤섞어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시기에 ‘근대 학문의 수입처’ 역할을 담당했던, 특히 서울 지역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등학교나 대학 건물들에 이 실험의 흔적들이 진하게 남아있습니다. 일본의 세력 확장에 따라 이들의 손길은 조선을 넘어 지금의 중국 동북부 지역, 우리가 흔히 만주라고 부르는 곳에 지어지는 건축물에까지 배어있습니다.

 

이런 실험으로서의 건축이 지니는 다양성만큼이나, 이 책에 등장하는 건축가들의 삶 속에도 다양한 요소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에게 동시에 의뢰를 받았지만 본인은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 있는 건축가 박길룡이라든가, 조선 민족운동의 중심이었던 종교인 천도교의 본당을 설계한 일본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라든가, 경성고공 출신은 아니지만 선교사 인맥을 통해 맨몸으로 건축을 시작해 이름을 남긴 강윤 등,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건축가들은 침략자 일본 대 저항자 조선이라는 단순한 시각에서 벗어나 더 넓은 시각에서 일제강점기를 바라보는 데 도움을 줍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이 책과 함께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종로 걷기입니다. 현재 종로는 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여 있고 옛날 건물이 이미 많이 사라진 상태이지만, 개발이 덜 된 지역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이색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 소개된 여러 건물들 중에 상당수는 종로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들 중 일부는 원형을 거의 유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건축가 김세연이 설계한 미츠코시 백화점과 조지아 백화점은 각각 지금의 신세계 본점과 롯데 본점이 대표적이겠네요. 건축가들이 자기 사무실을 내고 주로 활동했던 종로 일대 조계사 쪽 건물들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재개발되지 않고 그 형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옥마을이라고 부르는 북촌이나 서촌, 익선동에 있는 건물들 상당수도 사실은 이때 지어진 ‘한양절충형’ 한옥이고요. 요즘 트렌드는 복고라는데, 진정한 복고는 이른바 ‘모던 보이’ ‘모던 걸’ 아닐까요? 종로를 거닐면서 직접 되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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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 경성에서 활약했던 건축가들 이야기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벤*****북 | 2021.02.15

‘경성의 건축가들’은 철학과 건축공학을 전공한 김소연의 책이다. 박길룡, 박동진, 강윤, 김해경, 나카무라 요시헤이 등을 다루었다. 부제는 ‘식민지 경성을 누빈 B급 건축가들의 삶과 유산‘이다. 당시 조선인은 학교(경성고등공업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차별을 받았다. 신무성은 총독부의 방침은 내선일체라고 부르짖었지만 구역질이 날 정도로 못마땅하기만 했다고 증언했다.

 

직장에서도 차별은 이어졌다. 승진이 어려웠고 건축 청부업자들도 조선인이 공사 감독을 하면 얕보았고 월급도 일본인이 조선인보다 50퍼센트 정도 더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조선인의 관청 취업률이 높았던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였다. 조선인 건축가들에게 기회가 온 것은 회사령이 철폐된 1920년대 후반부터였다.

 

당시 건축가는 가치중립적인 의미를 가진 기술자로 여겨졌을 뿐이다. 경운동 민병옥 가옥, 화신백화점 등을 설계한 박길룡은 조선인 최초 경성공업전문학교 졸업, 조선인 최초 조선총독부 건축기수였다. 당시 화두는 민족이었다. 박길룡이 설계한 화신백화점의 주인인 친일 자본가 박흥식은 민족을 내세워 소비자를 끌어들였다. 박길룡은 안타깝게도 43세의 나이에 뇌일혈로 세상을 떠났다.

 

박동진은 해방 이후 영락교회, 고려대학교농과대학 본관 및 서관 등을 신축한 건축가다. 박길룡과 박동진은 한 살 차이다.(박길룡; 1898년생, 박동진 1899년생) 박동진은 3.1 운동에 가담한 대가를 심하게 치렀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6개월 옥고(獄苦)를 치르고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경성공업전문학교에서는 퇴학을 당했다가 5년이 지난 1924년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박길룡이 건축가 입장에서 온돌만을 절대 유지합시다라고 했을 때 박동진은 온돌 폐지론을 주장했다. 박길룡은 절충적이고 타협적이었고 박동진은 급진적이고 비타협적이었다. 물론 온돌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는 온돌은 심각하게 삼림을 훼손했다. 당시 온돌 망국론까지 등장했다.

 

온돌은 바닥면에서 직접 열을 받기 때문에 움직임이 둔한 좌식생활을 초래했고 그로 인해 조선인은 게을러져서 망국의 빌미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특히 1920년대에 조선에 온 일본인들이 심하게 온돌을 비판했다. 하지만 조선의 추운 겨울을 몇 번 겪은 뒤에는 ”온돌은 한겨울에 따뜻할 뿐 아니라 취사까지 할 수 있다. 여름에는 바위에 누운 듯 시원하다. 다다미보다 청소가 쉽고 먼지도 없어서 더 위생적이다.“란 말을 했다.

 

일본인들의 온돌 수요가 늘자 일본 민간업자들은 개량 온돌을 만들었다. 박길룡과 박동진 둘 다 좋아했던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온돌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일본의 제국호텔 욕실과 미국 주택에 온돌을 설치했다.(두 건축가가 라이트를 좋아한 것은 라이트가 설계한 건축이 형태와 기능이 지역의 자연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88 페이지)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박동진은 온돌을 무기력한 국민성과 구태의연한 주거문화의 상징으로 여겼다. 박동진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건축은 전통과 인습에 얽매인 건축에 반항하는 모더니즘 건축이었다. 그런데도 박동진의 대표작은 고딕 양식으로 지은 석조 건축인 지금의 고려대학교 본관인 보성전문학교 본관과 도서관이다.(박동진이 보성전문학교 도서관을 설계하며 민족의식 운운하자 건축주인 인촌 김성수는 기술자가 도면이나 잘 그리지 무슨 인생관이냐고 말했다. 그러자 박동진이 발끈해 기술자에게도 조국이 있고 민족이 있다고 받아치자 김성수가 사과했다고 한다.: 109 페이지)

 

영락교회도 고딕 양식이다. ”박동진에게 고딕 양식의 석조 건축은 우리 민족의 민족성을 높일 수 있는 건축물이었다. 박동진이 주로 사용한 석재인 화강암은 조선에서 풍부하게 나오는 양질의 재료이면서 전통 건축의 문제점인 비내구성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재료였다. 고딕 양식 또한 일본인들이 주로 사용한 르네상스양식과 다른 서양의 건축 양식이었다“(민현석 지음 ’서울감성여행2‘ 73 페이지) 물론 박동진은 아무리 일본기관에서 밥을 벌어먹지만 결코 민족의식에 배치되는 일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강윤(姜沇)은 일제강점기 태화기독교사회관을 신축한 건축가다. 독립운동 공훈으로 2002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받고 2006년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박인준(朴仁俊)은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공학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한국인 건축가다. 가회동 윤치왕 주택이 박인준의 대표작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김세연은 건축 구조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은 건축가다. 경교장이 대표작이다.

 

박길룡과 김세연은 환상의 파트너였다. ’설계는 박길룡, 구조는 김세연’으로 통했다. 김세연이 구조 계산한 것으로 알려진 건물은 미쓰코시백화점, 화신백화점(종로구 공평동 종로타워 자리에 있었던 건물로 현재는 철거되었다.), 조지아백화점(丁子屋.; ちょうじ; 현재 롯데영플라자), 경성제국대학본관(현재 예술가의 집) 등이다. 김윤기는 조선인 최초로 와세다대학에 입학한 사람이다. 1960년대에 다섯 번이나 장관을 역임했다.

 

이천승은 ”만주국으로 간 수재”라는 평을 듣는다. 해방 이후 우남회관, 조흥은행 본점 등을 설계한 건축가다. 김해경은 ‘시인 이전에 건축가, 이상 혹은 김해경’이란 제목으로 편성되었다. 저자는 이상의 삶과 작품 모두 살아서는 몰이해, 죽어서는 신화가 되기에 딱 좋았다고 말한다. 이상에 대한 해석은 다양해도 공통분모가 하나 있었다. 모더니스트라는 것이다. 그냥 모더니스트가 아니라 최초의, 최고의. 이상은 돌연변이 시인 취급을 받기 전까지 멀쩡한 건축가였다.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나오고 조선총독부 건축기수로 일했다. 건축과를 수석 졸업한 이상은 건축 일을 하면서도 그림, 시, 소설을 쓴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고희동이 이상의 학교 미술 교사였다. 이상은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백부(양아버지)가 반대했다. 이상이 건축을 전공한 것은 백부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김해경이 이상이라는 필명을 처음 쓴 것은 경성고등공업학교 졸업 앨범에서였다.

 

김세연이 구조계산한 미쓰코시백화점이 준공되었을 때 이상은 의주통 공사현장에서 썼던 첫 장편 소설 ‘12월 12일’을 ‘조선‘이란 잡지에 연재했다. 박길룡이 설계한 경성제국대학 본관이 완공되었을 때 이상은 일본어로 쓴 시 ’이상한 가역반응‘과 ’조감도‘를 ’조선과 건축‘에 발표했다. 같은 해 자상(自像)을 그려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해 입선했다. 1933년 이상은 스물네 살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총독부 건축기수 자리에서 사직했다.

 

1933년 건축계를 떠나 1937년 도쿄에서 사망할 때까지 4년간의 삶은 일탈과 기행(奇行)으로 일관했다.(김해경이 일본에서 하도 이상한 행동을 해서 이상하다는 의미에서 이상이라 불렸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1936년 10월 이상은 탈출구를 찾아 일본으로 더났다. 그가 도쿄에서 얻은 것은 환멸이었고 잃은 것은 건강이었다. 1937년 2월 이상은 일본 경찰에게 불령선인으로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다가 병보석으로 겨우 풀려났다.

 

이상은 1937년 4월 17일 동경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화장되어 귀환했고 미아리 공동묘지에 묻혔으나 한국전쟁 뒤 공동묘지가 사라지면서 유해마저 유실되었다.

 

장기인은 우리말 건축용어 정리에 평생을 바친 분이다. 필동 한국의 집을 설계한 분이다. 나카무라 요시헤이는 천도교중앙대교당을 설계한 건축가다. 다쓰노 긴코의 제자였던 요시헤이는 조선은행의 현장감독으로 이름을 남겼다. 1912년 조선은행이 준공된 뒤 나카무라는 일본으로 귀국하지 않고 황금정(을지로)에 나카무라 건축사무소를 열고 독립했다. 윌리엄 메렐 보리스는 YMCA 회관을 설계한 건축가다. 저자는 건축은 사물이 아니라 사연이라는 말을 한다. 책처럼, 내 상태와 마음에 따라 매번 다르게 읽히고 다르게 와닿는다는 것이다.(26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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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경성의 건축가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B**********r | 2019.05.08

명동예술극장

 

 

서울에서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 명동에 대한투자금융이라는 금융회사가 있었다. 나는 내가 다니던 회사가 발행한 융통어음을 그때 용어로는 와리(わり), 즉 할인(割引)해서 자금을 차입해오는 용무로 대한투자금융 건물에 출입을 했는데 그 건물은 당시 명동 주변에 흔했던 개발독재시대에 대충 지어 올린 철골 콘크리트 건물들과는 사뭇 다른 고풍스러운 멋을 풍기고 있었다. 당시 투금으로 불리던 투자금융회사들은 급여를 쎄게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나처럼 상경계를 전공한 대학 졸업자들에게는 취업하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었고 그 고풍스러운 건물을 사무실로 쓰던 ‘대투’의 거래 창구마저 근사하게 보이던 기억이 생생하다. 부러웠으리라. 다른 한편 대투 건물에 출입할 때마다 나는 이 멋진 건물이 곧 사라질 것 같다는 아쉬운 감정을 느끼곤 했다. 아마 그것은 건물 자체로는 멋있으나 주변의 건물들과는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이를테면 이 건물 역시 주변 건물과 평준화의 길을 걷게 되리라는 예감 같은 것이 아니었나 한다. 내 그 어설픈 예감과는 별개로, 부도가 날 것을 알고 융통어음을 찍어 돈을 빌리던 기업들과, 부도가 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 어음을 할인하여 돈을 빌려 주던 투자금융회사들은 IMF시대에 세트로 정말 부도가 나버렸으며 그 바람에 나도 직장을 옮긴 후 더 이상 명동 출입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25년 세월을 넘어, 최근 『경성의 건축가들』이라는 책을 읽다가 25년 전 내가 사라질 것 같다는 예감을 하며 출입하던 대투 건물의 사연과 행방을 알게 되었다. 그 건물은 일제시대인 1937년 다마타 기쓰지(玉田橘治)라는 일본인 건축가의 설계로 당시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던 명동에 메이지자(明治座)라는 극장 건물로 세워졌다 한다. 해방 후 건물은 서울시 등으로 소유권이 이전되며 국립극장으로 사용되다가 1975년 대투가 인수하여 사무실 건물로 사용하였으며 1997년 IMF 시절 대투의 도산으로 헐릴 위기에 처하자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건물의 역사성을 알아보고 보존 운동을 벌여 2004년 문화관광부가 건물을 매입, 복원 공사를 거쳐 2009년에 국립극단 소속 명동예술극장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25년전 내 예감의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던 셈이다. 책 『경성의 건축가들』들은 일제시대와 해방 후 우리 땅에서 활동한 건축가와 건축업계 인물들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저자 김소연이 머리말에 밝히기로 책을 처음 기획할 때 주변 반응이 거기 “뭐 볼 게 있다고!”였다 하며 YES24의 추천에 혹 하여 책을 구매한 나조차도 충동구매를 한 것이겠거니, 그래 뭐 볼 게 있겠냐 이왕 산 책이니 볼 거 없다는 것을 확인이라도 해보자 펼친 책인데 거의 단숨에 다 읽었다. 현재의 우리는 역사라는 시간과 한반도라는 공간의 토대 위에 오늘을 살고 있다. 『경성의 건축가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고민과 과제들의 시공간적 기원을 찾는 작업의 일부라는 점에서 - 때로 ‘일그러진 시대’ 운운하는 오바가 살짝 거슬린다는 점만 빼면 - 확실히 볼 게 있는 책이었다. 

http://blog.daum.net/oalbat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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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경성의 건축가들-김소연] 잘 몰랐던 이야기를 알아가는 즐거움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검* | 2020.04.08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유현준 교수는 사람과 건축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말하며, “건축과 사람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상호 영향을 주면서 의미를 규정한다.(p.7)”고 말했다. 또한 건축물은 시대정신을 반영(p.119)” 하기 때문에, “건축 공간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비춰볼 수 있다. (p.21)”고 말했다. 여기에 비춰볼 때 김소연 대표의 경성의 건축가들은 우리나라 근대 건축의 시작을 알아보기에 가장 적합한 책이다. 제목 그대로 사람과 건축물을 한 번에 살펴 볼 수 있다. 사람을 통해서, 그들이 세운 건축물을 통해서 그 시대를 상상케 한다.

이 책이 재미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일제강점기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사농공상이라는 구체제의 위계질서가 살아있지만, 일제에 의해 모든 것이 바뀌고 있던 혼란한 시기. 게다가 당시에 지어진 대부분의 대형 건축물은 식민통치를 위해 설치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건축가라는 개인 역시 혼란스러웠을 테다. 국가와 민족, 조국의 현실을 고민하지만, 일본을 통해서 신기술을 배워야 했던 그 시절의 복잡한 감정을 떠올려 본다. 저자가 박길용씨를 저자가 평가 한 말은 건축가를 떠나 당시의 시절을 관통해 살았던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몸은 친일이라는 환경에 있었고, 마음은 조선인의 염원을 품었다. 의식은 제국을 향한 동경과 식민지의 콤플렉스에 흔들렸다. 식민 교육, 식민 권력, 식민 자본을 바탕으로 성장한 그 시대 건축가의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내면이었다. 자본과 권력은 가까이 있지만 정작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는 식민지 건축가의 운명이기도 했다. p.55”

 

이렇게 방황하는 건축가를 살펴보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결국은 혼란기, 나라를 잃은 시기에 누구나 겪었을 일이다. 만약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고민해 본다. 건축가는 기술인으로서 차별받던 인식이 오히려 친일의 궤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근거가 되었던 아이러니까지 생각해보면 단순하게 친일과 반일, 민족과 반민족의 범위는 협소해 보인다. 자기들만의 폐쇄적인 구조가 오히려 성역을 만든 걸까. “건축 바깥의 문제를 끌어안으며 사회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속도는 느(p.153)”렸다는 날선 비판에 이어, 저자가 소개한 임화의 이야기가 인상 깊다. 우리는 어쩌면 친일을 너무 단선적으로만, 당위적으로만 생각하고 있는지 고민해 본다. 내가 그 자리, 그 순간에 있었다면 어떤 모습으로 그 시절을 살았을까.

 

가령 이번 태평양 전쟁에 만일 일본이지지 않고 승리를 한다, 이렇게 생각해보는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했고 어떻게 살아가려 생각했느냐고. 나는 이것이 자기비판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남도 나쁘고 나도 나쁘다 이게 아니라, 남은 다 나보다 착하고 훌륭한 것 같은데 나만이 가장 나쁘다고 감히 긍정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자기를 비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임화. p.377

 

개인적으로 한국 근대사와 일제 강점기에 관심이 많다. 아픈 손가락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대기 때문이다. 서구 신식문화를 수용하며 새로움을 배워나가는 설렘과 식민지인으로서 좌절할 수밖에 없는 시기. 이 양가적인 감정 속에서 우리 조상들은 아주 가끔의 희극과 수많은 비극을 썼다. 그리고 내가 모르던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해 준 저자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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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용은 앞과 뒤가 달랐다. 앞에서는 일본인이든 조선인이든 두루두루 인정을 받고 인맥을 쌓은 성공한 건축가였다. 뒤에서는 격렬하지는 않지만 그 나름의 방식으로 조선인의 정체성을 끌고 나갔다. 그것이 3.1운동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인지, 종로에서 일본인과 대치하며 삶을 버(p.54)텨온 조선인의 근성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 몸은 친일이라는 환경에 있었고, 마음은 조선인의 염원을 품었다. 의식은 제국을 향한 동경과 식민지의 콤플렉스에 흔들렸다. 식민 교육, 식민 권력, 식민 자본을 바탕으로 성장한 그 시대 건축가의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내면이었다. 자본과 권력은 가까이 있지만 정작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는 식민지 건축가의 운명이기도 했다. p.55

내가 생각하는 박길용의 최고 업적은 이런 것이다. ‘최초유일의 신화가 아니다. 그는 최초유일이라는 영향력으로 차별받던 조선인 건축가들을 품었다. 그들과 함께 건축 안과 밖을 넘나들었다. p.56

사농공상의 관념이 존재하던 시대에 건축가를 미장이로 알던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인식이 건축가에게는 오히려 보호막이 되었다. 양날의 칼처럼 건축가도 그 보호막 뒤에서 과학과 기술의 중립성이라는 함정에 빠지곤 했다. 건축 안의 문제는 예민했지만, 건축 바깥의 문제를 끌어안으며 사회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속도는 느렸다. p.153

시대상은 보여도 시대의식은 보이지 않는 삶은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p.204

장기인은 용어가 지식이고 사상이라고 믿었다. 건축용어는 설계, 시공, 구조, 설비, 재료, 법규, 전통건축 등을 모두 포함한다. 그만큼 여러 분야의 건축 지식을 섭렵하게 된다. p.243

자기비판이란 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고 근본적인 문제일 것 같습니다. 새로운 조선 문학의 정신적 출발점의 하나로서 자기비판의 문제는 제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기비판의 근거를 어디에 두어야 하겠느냐 할 때 나는(p.376) 이렇게 생각합니다. ... 가령 이번 태평양 전쟁에 만일 일본이지지 않고 승리를 한다, 이렇게 생각해보는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했고 어떻게 살아가려 생각했느냐고. 나는 이것이 자기비판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남도 나쁘고 나도 나쁘다 이게 아니라, 남은 다 나보다 착하고 훌륭한 것 같은데 나만이 가장 나쁘다고 감히 긍정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자기를 비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임화. p.377

건축은 사물이 아니라 사연이라는 것을. p.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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