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두통』은 올리버 색스의 다른 책과는 다른 류이다.
물론 신경학적인 질병에 대한 얘기이지만, 다른 것들이 주로 환자가 중심이라는 이건 ‘편두통’이라는 질병이 중심이다. 모도 환자와 질병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환자를, 혹은 사람을 이야기하기 위한 질병과 질병을 이야기하기 위한 환자의 정도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편두통』은 일반 독자들에게는 난감할 구석이 적지 않은 책이기도 하다. 올리버 색스는 세 부류의 독자를 가정했고, 나는 다른 두 부류의 독자는 전혀 아닐테니 ‘무엇이든 깊이 성찰하는 습관을 가진 일반 독자들’에 속해야 할 터이다. 하지만, 몇 번의 개정을 거치면서 일반적인 독자에 대한 고려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이 책은 원래 편두통에 관심을 갖는 의사들, 학생들, 연구자들을 위한 책이다. 더군다나 ‘깊은 성찰’이라는 조건에서 먼 나 같은 독자에게는 그리 녹록치 않은 책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일반 독자’가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히 갖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올리버 색스의 다른 책과 비슷한 이유다. 다른 책들과 다르다고 했으면서도 같은 이유로 읽을 만하다는 것이 좀 모순되어 보이지만, 접근 방식이 다르다 뿐이지 올리버 색스라는 이는 그대로이기 때문인 듯하다. 즉, 질병을 통해서 인간 삶의 근본적인 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질병이 무엇의 결핍이든 과잉이건 간에 그것을 파악한다는 것은 (그것을 더 넣거나 빼면) 인간의 본질에 더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핍 혹은 과잉이라는 것이 또 다른 측면에서는 다른 과잉과 결핍을 보충해주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편두통』에서 보자면, 편두통을 통해서 인간의 몸과 정신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아간다는 점이 그렇고, 편두통이라는 병이 일종의 강제 휴식 같은 것이라고 보는 시각과 같은 것이다.
나는 편두통을 ‘두통’의 일종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지만) 감기와 독감의 관계와 비슷한 것 같다. 편두통의 한 증상으로서 두통이 있을 뿐 편두통이 있지만 두통을 갖지 않을 수도 있고, 두통 이외의 엄청나게 다양한 신체적, 생리적 반응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이 책을 통해서 알았다. 전문적인 방식으로 이해하자면, 편두통이라는 것은 대뇌에 있는 뉴런이 어떤 신경의 지나친 감수성으로 인해 말단의 다양한 신경 세포들이 비정상적으로 흥분해서 활성화되는 상태이다. 그 비정상적 흥분, 활성화 상태가 다양한 증상들 (예를 들어, 두통, 욕지기, 열, 발작 등등)이 되는 것이고.
또 다른 편두통에 대한 정의 방식은 구조적인데, 하부 구조는 일반적이며 상부 구조는 특수하다. 즉, 일반적인 정신생리학적이고, 진화적인 적응 반응으로서는 모든 편두통이 일치하지만, 환자 개개인마다 서로 다른 상황에 놓여져 있고, 필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표출되는 방식은 아주 다양하다는 것이다. - “고정적이고 포괄적인 속성으로 보면 선천적, 변화가 심하고 구체적이라는 속성으로 보면 후천적”
하지만 이런 신경학적인 정의보다 더 가깝게 다가오는 편두통에 대한 설명은 다른 것이다. 편두통은 처음 시작될 때는 신체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 병이 진행되면서는 점점 정서적인 것이 되고 상징적인 것이 된다. 즉, 생리학적인 요인으로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오는 것이 편두통이지만, 그 병이 오래 지속되면서는 내면적이든 외부로든 정서적인 표출이 되고, 무엇을 의미하는 표현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편두통이 어떤 것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병을 강제로 치료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대로 두는 것이 그 환자에게는 더 적절한 방편이 될 수 있다는 통찰, 혹은 해법이 나온다.
우리는, 적어도 나는 ‘편두통’에 대해서 이렇게 깊이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편두통’과 같은 질병을 통해 인간의 몸과 정신, 삶을 들여다볼 수는 있다. 그것으로『편두통』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고 본다.
(2012. 10)
올리버 색스는 옥스퍼드대학교 퀸스칼리지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이어 색스는 편두통성 신경통, 반신마비 편두통, 눈마비 편두통, 가성 편두통 등 다양한 편두통의 증상과 사례를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편두통은 정서적으로 강한 스트레스와 요구가 있을 때 나타날 수 있으며, 심할 경우 정기적으로 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 편두통은 ’정신-신체적 질병‘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편두통을 관리하는 일반적인 방법 중에 발작을 촉발하는 상황을 피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또한 편두통 환자나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관계를 시작하면서 의사소통을 제대로 해야 완화되거나 치유될 수 있다.
발작 초기에 진한 차와 커피를 연달아 마시는 것은 언제나 추천할 만하다고 하니 참고하자. 골치가 아픈 일이 있으면 ‘커피 한 잔!’하고 외쳐볼 일이다.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할 경우에는 의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옮긴이 강창래 선생은 《편두통》 원문이 색스의 다른 책과는 달리 명료하지 않아 번역하는 동안 어려움이 많았고,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 의학 전문 사이트를 끝없이 뒤져야 했다고 토로한다. 가히 전문 서적에 가까운 원서를 우리말로 옮기는 고충이 어떠했을지 어림하기 어렵겠다.
선생은 비록 비전공자이지만 뇌 과학에 공부할 기회도 있었고, 평소 관심도 많아 선뜻 번역을 맡았다고 하니, 그 직업 정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뇌 전문가 안승철 교수의 감수를 거치고, 편집부의 수개월에 걸친 노고 덕분에 수려한 미문으로 탄생했다. 올리버 색스의 열정과 필력의 진면목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올해 2판이 나온 지 꼭 22년이 되는 해이니 3판을 기대해도 좋을까? 하지만 벌써 그의 나이 80세를 넘겼으니 좀 어렵지 싶다. 내심 후학들이 색스의 노고를 이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크다.
편두통을 앓아본 적이 없다. 하여 편두통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그나마 통증을 견뎌내는 것이라면 조금 안다고 말할 수 있다. 몇 차례의 수술 이후 어떤 통증에 대해 미련한 참을성을 지녔다. 정말이지, 말 그대로 미련함이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통증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건 오로지 잠 뿐이었다. 참을 수 없는 통증은 잠드는 일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해서 한 때 수면유도제를 복용하기도 했다. 여전히 통증은 존재한다. 다만, 그 강약에 따라 나름대로 대처할 수 있다는 게 달라졌을 뿐이다. 내가 아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건 어렵다. 그저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곁을 지켜주는 게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건 환자를 돌보는 의사에게도 가장 필요한 자세는 아닐까. 특히 편두통을 앓는 환자에게는 말이다.
책은 모두 5부에 걸쳐 편두통의 증상과 발생, 학설, 치료법, 치료약 등 편두통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가장 놀란 건 그저 단순한 두통이라 여겼던 편두통의 다양한 증상이었다. 심한 경우, 토하거나 실신하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죽음을 경험할 만큼의 고통을 수반하고, 때로 마비 증상이 오거나 끔찍한 환상을 경험한다는 게 정말 놀랍다. 편두통으로 인한 발작으로 인해 사물이나 공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특정한 시간에 어김없이 통증이 시작된다니, 도대체 우리가 모르는 사이 뇌는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 걸까. 또한 이러한 고통을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니 환자들이 겪는 절망감은 얼마나 컸을까. 심지어 경련을 일으키고, 환자가 경험한 증상을 듣고 정신이상자 취급을 했다니.
놀라운 점은 환자들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편두통으로 인해 활력을 찾기도 하고, 그 고통 뒤에 찾아오는 평안함을 기다리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건 대부분의 환자들이 극심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고 있었고 편두통을 앓는 시간만큼 그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편두통은 우리 몸이 스스로에게 휴식을 취하라는 명령의 메시지는 아닐까. 때문에 편두통 환자를 대하는 의사는 환자에 대해 더 각별하게 신경써야 할 것이다(모든 환자에게 마찬가지로). 이에 대해 ‘올리버 색스’는 이렇게 말한다.
‘의사는 무슨 말을 하든, 무엇을 하든 환자를 위한 치료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의사는 환자를 한 번 볼 수도 있고, 여러 번을 볼 수도 있다. 정신과 의사라면 천 번쯤 봐야 할지도 모른다. 의사가 조언하고 치료하고 또는 분석하고,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언제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환자와의 관계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의사의 권위, 공감, 무형의 무의식적인 유대감 같은 것들은 의사의 말이나 행동만큼이나 중요하다. 이런 관계는 특히 기능적인 질병을 가진 환자를 치료할 때 무척이나 중요하다.’ p. 432~ 433
‘중요한 규칙은 단 하나뿐이다.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그러니 가장 큰 잘못은 환자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어떤 치료를 시작하든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것이다. 환자와 좋은 관계를 시작하면서 의사소통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환자와 의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완전히 수동적이거나 순응하지 않는 관계에서 의사가 말하는 대로 믿거나 하라는 대로 하고 '요구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관계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함께하는 관계여야 한다.’ p. 470
‘병이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을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는 비록 질병, 약, 생리학, 약물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전문가가 되어야 하지만, 의사의 궁극적인 관심은 환자 그 자체여야 한다.’ p. 474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뮤지코필리아』로 올리버 색스를 만났다. 두 권의 책은 전문적인 의학 지식보다는 환자를 대하는 그만의 배려가 담겨 있었다 기억한다. 아마도 같은 이유로 이 책『편두통』을 선택한 이가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한데, 이 책은 이 전에 만난 두 권의 책과는 조금 달랐다. 전문 용어가 대부분이고, 편두통을 앓는 환자들의 사례와 치료 과정 이외에 편두통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수록한 부분에서는 많이 힘들었다. 1970년에 출간된 이 책이 그의 첫 책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사례를 통해 만난 편두통 환자들은 정말 다양했다. 그러니까 편두통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것이다. 심한 두통을 경험했거나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편두통 환자라면 이 책이 아주 반가울 것이다. 더불어 올리버 색스의 바람대로 편두통에 대해 잘 모르는 나 같은 독자와 환자의 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