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라 거스 저/지여울 역
낸시 크레스 외저/로리 램슨 편/지여울 역
김선영 저
어딘(김현아) 저
전은경,정지선 공저
고영리 저
요즘 영화 유튜브 <무비건조>를 즐겁게 보고 있다. 출연하는 네 분(김도훈, 이화정, 배순탁, 주성철) 모두 입담이 대단한데, 그중에서도 김도훈 기자님의 영화 초이스가 너무나도 취향 저격이라서 이 분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마침 김도훈 기자님이 쓰신 책이 있길래 구입해서 읽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책도 좋았다.
에세이집인 만큼 개인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항구에서 보낸 어린 시절 이야기, 대학 졸업 후 영국 브리스틀에서 보조교사로 일한 이야기, 영화 기자가 된 후 다양한 감독과 배우들을 인터뷰한 이야기 등 다른 저자의 에세이집에서는 접하기 힘든 이야기가 대부분이라서 흥미로웠다. 음악과 패션 취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도 재미있었다. 좋아하는 뮤지션과 디자이너 이야기도 재미있었고, 맥시멀리스트라서 겪는 고충이나 윤리적 소비에 대한 고민 등도 공감이 갔다.
동거묘 한솔로와의 만남에 대해 쓴 대목도 감동적이었다. 첫 만남부터 나를 엉겨 붙는 고양이가 있다면, 억지로 떼어놓아도 매달리고 멀리 갔다가 다시 와도 귀신같이 나를 알아보고 안기는 고양이가 있다면 나라도 반한 것 같다. 누구보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 했던 사람이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정착을 결심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 이것이 인생의 묘미(猫미?)가 아닐까. 부디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이책을 알게된건 인스타의 누군가가 김도훈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둔 글 댓글에 "이분이 혹시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의 작가분이 맞나요? 글 재미나게 잘 쓰시던데" 라는 댓글을 보고서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아무런 사전 정보나 지식도 없이 댓글과 제목이 책을 구매하게 만들었다. 사실 이책이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그냥 사람사는 이야기고 김도훈이란 사람의 생각과 이야기를 엿보는 책이다. 대단히 거창하고 화려한 글과 주제로 사람들을 현혹하지 않는다. 도란도란 그의 어린시절과 현재를 오가면서 인간 김도훈을 엿보는거다.
https://blog.naver.com/mate3416/222115540005
< 책방 하고 싶은 면서기 >
You are a romantic person.
“그래, 난 비오는 날이 좋아. 커피가 더 맛있잖아.” 답을 하자 전화기 넘어 먼 나라의 강사가 말한다. “너 낭만 있구나.”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내게 낭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 없는 사람은 어쩐지 초라해 보이니 말이다.
‘낭만’이라면 일제의 잔재가 먼저 떠오른다. 나는 국민학교에 입학해 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애국, 민족, 우리, 자긍 같은 것들을 주입받는 시절이었고, 어른들이 힘주어 강조할수록 그것들의 부재가 또렷해지는 것 같아 어린 마음에도 씁쓸해지곤 했다.
‘낭만’은 romance의 잘못된 일본식 발음이니 사용해선 안 된다던 선생님, 그럼 낭만을 무어라 불러야 하는지 진지하게 물었던 아이, ‘로맨스’라 답하던 선생님의 주저를 여전히 기억한다. 낭만을 로맨스라 해야 한다니.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낭만스러운 걸 로맨틱하다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때 뭘 안다고 그런 생각을 했는지 새삼 민망하지만 어쨌든 초등교육은 길게도 남아 낭만을 말하고 싶을 때면 로맨스라 해야 하나 여전히 멈칫한다. 일제의 잔재라니 낭만이라 하면 안 될 것 같고, 대체어로서 적확하지 않아 로맨스라고도 하지 못하다 결국 나는 낭만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버렸다. 사실, 낭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 쑥스럽기도 하고…
“우리는 이제 낭만을 이야기해야죠.”
배우 정우성에게서 얻은 문장을 제목으로 쓴 김도훈의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읽었다. 해묵은 찝찝함을 벗고 낭만의 감성은 낭만으로서만 불리울 수 있다는 것을 이제 그만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여름 반팔 티, 스니커즈 운동화, 겨울 코트 그리고 생수에까지 확실한 취향을 가진 저자의 라이프스타일은 나의 방향과 아주 많이 다르다. 허나 그에게 낭만이란 마음에 드는 무엇을 사는 것만이 아니다. 꼬마시절 보았던 (이제 보니 순엉터리인) 영화를 여름마다 찾아보며 마지막 장면에서 매번 눈물을 흘리는 것, 생전 처음 라떼를 테이크아웃해 캐나다의 길을 걸으며 오드리 헵번이 된 듯 기뻐했던 추억, 일상의 작은 허영이 삶을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 쓸모 있는 것들로만 채워진 삶은 냉정하지 않느냐는 반문, 젊어 보이려 애쓰며 늙는 것도 혹시 괜찮지 않을까 조심스런 소망. 이런 것들이 그의 낭만이다.
누구도 나의 낭만을 궁금해 하지 않듯, 나 역시 그의 낭만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일상 어디쯤에 낭만을 두고 사는지, 자신의 낭만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이 얼마나 따스한지를 훔쳐보고 싶기는 하였다. 일종의 벤치마킹이랄까?
낭만이라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로맨스는 아니다) 내게도 무엇이 있기는 하다. 바퀴 크기와 충격 완화장치와 변속기어를 포기하고 민트색 작은 자전거를 사 작은 나무 바구니를 달았다. 히말라야나 파푸아뉴기니나 온두라스 커피콩이어야 한다. 단 여섯 병만 누일 수 있지만 마음에 드는 원목 와인렉을 두었다. 밤이 오면 꼬마들과 작은 독서등 아래 누워 책을 읽는다. 비 내리는 아침이라면 우산을 펴 산책을 한다. 노랑나비가 날면 외할아버지를, 흰나비가 날면 외할머니를 그리워한다. 해 맑은 아침 출근길, 하늘과 구름과 산을 보며 파랑과 하양과 초록에 감격한다. 종이책을 읽고 종이신문을 읽고 연필을 쓴다. 내내 그럴 것이다.
사람과 동물, 숲과 들, 작은 내와 하늘에 아픈 흔적을 긋는 게 아니라면 낭만적으로 사는 것도 좋겠다. 조금쯤은 자신에게 낭만을, 스스로를 낭만에 허하는 것이 좋겠다.
올 겨울 크리스마스엔 서른여덟의 낭만을 살 생각이다. 단정한 버건디 니트를 입고, 루돌프가 아주 작게 그려진 양말을 신고, 캐롤이 알맞은 카페에 앉아 따뜻한 소설을 읽어볼 요량이다. 계절이 지나면 봄꽃낭만을, 한여름밤 맥주낭만을, 코스모스낭만을, 다시 크리스마스낭만을 때마다 살 생각이다.
이제 나는 당신과 낭만을 이야기 할 준비가 되었다. 기왕이면 정우성과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