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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를 대표하는 범죄 소설 작가 요 네스뵈와 스티그 라르손을 잇는 신예 작가가 나타났다는 홍보 문구에 혹해 구입한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요 네스뵈와 스티그 라르손보다는 '노르웨이의 길리언 플린(<나를 찾아줘>의 작가)'라는 평가가 더 적절한 듯하다. 소설의 초점이 범행을 분석하고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 자체에 있지 않고 시간 경과에 따른 중심인물의 심리 변화를 묘사하는 데 있다는 점, 고학력 중산층 계급의 가족 관계, 특히 부부 관계가 내포하고 있는 갈등과 모순 등을 예리하게 그려냈다는 점 등이 그렇다.
오슬로에 사는 30대 여성 사라는 프리랜서로 독립한 지 얼마 안 된 심리치료사다. 건축가인 남편 시구르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저택 2층을 상담실로 개조해 환자들을 받고 있다. 어엿한 집 한 채도 있고, 안정적인 직업도 있고, 능력 있는 남편도 있고, 무엇 하나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사라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진다. 친구들과 놀러 간다며 아침 일찍 집을 나간 남편이 실종된 것이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남편으로부터 '헤이, 러브'라는 문자까지 받은 사라는 이 상황을 믿기조차 힘든데, 경찰은 비밀 유지 의무를 이유로 환자 목록을 공개하지 않는 사라를 용의자로 의심한다. 대체 남편은 어디에 있고, 사라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
이 소설을 쓴 작가 헬레네 플루드는 2016년 오슬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심리학자다. 그래서인지 심리치료사인 사라가 환자들을 상담하는 과정에 대한 묘사가 매우 자세하고 현실적이며(상담할 때 앉을 의자를 고르는 순간에도 성격이 드러난다니!), 한 사람의 감정과 의식 등을 형성함에 있어 어떤 요인들이 중요하게 작용하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스포일러 주의!!) 최종적으로 경찰이 지목한 범인과 진범이 다르다는 점도 신선했다. 경찰한테 안 잡힌 진범이 과연 '한 번만' 범행을 저질렀을까? 진범의 전사 혹은 후사가 궁금해지는... 후속편 나오면 읽어야지.
북유럽 심리학자가 쓴 심리스릴러다. 북유럽 스릴러가 최근 장르 소설에서 크게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소설도 그런 연장선에 있다. 일단 북유럽 스릴러라고 하면 먼저 눈길이 간다. 요 네스뵈와 스티그 라르손을 비롯한 몇 명의 작가가 일으킨 붐이다. 여기에 노르웨이의 길리언 플린이란 조금은 상투적인 홍보 문구도 시선을 끈다. 나보다 먼저 읽은 독자들의 서평도 상당히 좋아 선택을 미룰 이유가 없었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가독성이 아주 좋고, 읽으면서 이전에 읽었던 작품들의 설정을 이 이야기에 대입시키면서 작가가 만들어낸 결론에 의심의 눈초리를 들이밀면서 재밌게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사라는 심리치료사다. 결혼한 후 남편의 조부가 죽었던 집을 상속받아 그곳에 산다. 죽은 할아버지를 발견한 것도 이들이다. 이 집은 콩클레베이엔 거리에 있다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 낯선 도시의 지명은 머릿속에서 그 어떤 실체도 가지지 못한다. 소설을 읽다 보면 오슬로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란 것을 알지만 외딴 곳임에는 틀림없다. 할아버지가 살 때는 큰 문제가 없었을지 모르지만 이 부부에게는 이 집을 수리해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샤워실에서 추워하는 사라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수리에는 상당히 많은 돈이 들어간다. 더 많은 일을 해야 그 돈을 쉽게 마련할 수 있다. 흔한 부부의 작은 갈등처럼 보인다.
사라는 차고 위층을 개조해 환자를 만난다. 집 수리 계획은 몇 번이나 뒤로 밀렸다. 더 많은 환자를 만나 수익을 올려야 하지만 사라는 그럴 마음이 없다. 그 추위가 못 참을 정도도 아니다. 남편인 시구르가 친구들과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아침 일찍 떠났고, 친구들을 만나 잘 보낸다는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그 사이에 환자를 몇 명 만난다. 그런데 만나기로 한 친구들이 남편이 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과거의 경험에 의해 짓궂은 장난 정도로 생각하고 무심히 넘어간다. 남편에게 전화를 해도 받질 않는다. 친구들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뭐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지만 화가 난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지운다. 아주 큰 실수다. 언니를 만나 이 일을 이야기하고 실종신고를 한다. 시구르처럼 보이는 인물이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경찰이 그녀를 찾아와 이 사실을 알려주지만 이상하게도 신원확인을 요청하지 않는다. 며칠이 지난 후에야 사라는 시구르임을 확인한다. 그 사이에 경찰은 가장 먼저 사라를 의심한다. 당연한 수순이지만 늘 불편한 장면이다. 남편과 함께 사라진 도면통이 돌아오고, 냉장고 자석의 위치가 바뀌고, 늦은 밤 집에 누군가가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경찰은 이런 그녀의 말에 그렇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혹시 사라의 착각이나 환상이 아닐까 의심을 품는다. 이런 전개 속에서 사라는 시구르와의 만남과 결혼과 일탈 등의 과거를 회상한다. 이 회상은 현실의 흐름 속에 끼어들어 이 부부가 얼마나 아슬아슬한 상태에 놓여 있는지 보여준다.
남편이 총격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사망 소식에 바로 기절하는 등의 행위도 없다. 집이 안전한 곳이 되어야 하는데 낯선 누군가가 침입한 흔적이 보인다. 경찰은 그녀에게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이 눈초리는 내가 다른 소설들의 설정들을 머릿속에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가장 쉬운 의심은 사라의 시점이 거짓으로 꾸며진 것이다. 이 거짓은 또 다른 공범의 가능성과 연결된다. 이 부분은 마지막에 떠오른 생각이다. 사라가 불안한 심리와 결혼한 두 사람의 뒤틀린 시간 등을 떠올릴 때 아주 작은 단서가 흘러나온다. 이 소설의 재미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행복하고 안정적으로 보였던 부부의 살짝 벌어진 틈새로 드러나는 불안정한 관계를 그려낸 것 말이다.
살인 사건이 발생했으니 당연히 범인을 찾아야 한다. 동기도 흉기도 찾아내야 한다. 남편이 죽은 후 집에 몰래 들어온 인물이 누구인지도 밝혀내야 한다. 일반적인 형사물이라면 이런 수사 과정이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겠지만 이 소설은 그런 부분들이 지엽적이다. 피해자 아내의 심리를 따라가면서 그들의 과거를 복기하고, 삶의 한 순간을 돌아본다. 이젠 돌이킬 수조차 없는 과거의 순간들이다. 가독성 있는 문장과 현실과 과거가 교차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드러내는 구성이 잘 연결되어 있다. 사라의 혼란스러운 심리 묘사가 아주 멋지다.
홀로서기라는 말은 어찌나 빛나보이는지... 대부분 못하는 일이니 그럴것이다. "내가 잘나서 이런 일을 했어","나 지금 힘들어"라고 말을 전할 이가 반드시 우리는 필요하니 말이다. 물론 그럴때 필요한 건 내가 겸손하게 아무렇지 않은 일인양 말해도 "대단해"를 연발해주고 내가 못나보일까하는 걱정없이 울거나 뒷담화를 해도 변함없이 안아줄 수 있는 든든한 벗일것이다. 인생에 몇 안되는 벗, 그런 이를 가족으로 가지고 있는 이라면 너무 든든할것이다.
심리치료사로 사랑하는 남편 시구르와 둘이 집 재건축을 해가는 사라는 슬슬 지쳐가는 중이다. 몇 안되는 청소년 환자들과 심리상담을 해가는 것도, 시구르에게 이런 저런 눈치를 봐야하는 자신의 입장도 애매하기때문이다. 심리로 직업을 삼은 이라면 남의 마음 조정도 자신의 마음 조정도 좀 쉽지않을까 했는데 일과 실생활은 다르구나 싶다.
그런 그녀에게 시구르는 친구들과의 시간을 보내겠다며 아침일찍 나갔는데 몇 가지 그의 말과 안맞는 걸 발견하게 된다. 사소한 일이라 넘기려하는데 친구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전화를 한 시구르가 도착하지 않았다는 그의 친구들 전화를 오후 늦게 받게 된다. 남편의 뻔뻔한 거짓말??? 평상시 그의 행동을 분석해보지만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는 사라는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며칠후 경찰은 남편이 살해됐다는 연락을 해오게 된다. 하지만 뭔가 미묘하게 달리진 집안은 그나 그를 잘 아는 누군가가 그녀 주변에 있다는 걸 보여주며 그녀를 불안에 떨게 한다.
어쩌면 보이는 사건이다. 거짓말을 하는 남편, 불안한 부부관계, 그리고 사건. 범인은 누구나 생각하는 바로 그... 하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의심스러운 점은 발견할 수 없고 사건은 미궁에 빠지게 된다.
심리학자인 저자 헬레네 플루드는 마치 자신이 봤던 사건일까 싶게 침착하게 사건을 기술해가고 있다. 도와주는 사람도, 도움을 받고싶은 사람도 자신만의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다른것이지 명확히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눌 수 있는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면서 말이다.
"그래도 나는 어둠 속에 앉아서 잠시 세상을 지켜보면 배울 수 있는게 많다고 생각해. 그런 행위는 꼭 필요한 것 같구나. 나중에 그 어둠에서 빠져 나올 거라고,거기에 갇히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기만 하면 된단다."-229
심리분석을 볼수 있다. 사라가 자신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을 분석해가기때문이다.객관적으로 보면서 그들 각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고 극도로 불안함을 보이는 사라는 변한 자신의 기억과 그것에 대한 진실을 찾아가며 자신이 경찰도 찾지 못한 답을 찾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인생의 든든한 벗이 진범일지 모른다 생각되면 나 역시 그녀처럼 질문을 하지 못할거같은데.. 그렇담 그녀가 생각한 것이 맞는것일까..결코 던지지 못해 미궁에 빠지게 될 하나의 질문과 답. 극적인 사건은 없음에도 사랑이란 눈으로 보는것과는 완전 다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어딘가 조이는 듯한 느낌을 우리 모두에게 주는 마지막 결말까지... 그래서 심리 스릴러인가보다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