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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살리는 표현 교육
지난달 하순,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열네댓 살짜리 아이들에게 돈을 빼앗기고 협박을 당하여 자살한 일이 있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든지 한 번은 죽음이라는 문을 지나 다시 저 세상으로 가게 되어 있지만, 모처럼 태어난 세상을 어느 정도의 목숨을 누리지 못하고 어린 나이로 죽는다는 것은, 우리 산 사람으로 볼 때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이제 겨우 땅속에서 햇빛을 바라보고 올라오는 노오란 새싹이 무지한 발에 짓밟혀 자취도 없이 사라지다니!
그런데 이번에도 이 아이의 죽음을 사회문제로 삼는 어른이 없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띄지 않았다. 온갖 장사꾼들의 광고가 실리는 신문과 잡지가 있지만 그런 문제를 논의한 글은 보지 못했다.
그 죽은아이는 돈을 빼앗긴 것이 원통해서 자살한 것이 아니다. 너 이놈, 이걸 부모한테 말하면 죽인다! 아침저녁 골목에서 만나야 하는 깡패 소년들에게 이런 협박을 받았으니, 그 답답하고 억울한 심정을 세상천지 아무 데도 호소할 길이 없는 그아이는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기표현이 어라나 중요한가를 이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표현 교육의 중요함은 지금으로 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
그런데 우리의 학교는 말하기고 그리기고 글쓰기고 물을 것
지금, 대통령 후보 네 사람이 가는 곳마다 온갖 무지개빛 꿈
교육 운동을 하는 여러 교육자들의 단체에서도 이런 근원이
민주주의가 언론의 자유로 태어나듯이, 아이들이 사랍답게 자라나게 하고 앞날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주는 일은 자유로운 표현을 가르치는 교육이다. 27-29쪽
자유로운 표현을 가르치는 일이다.
"그 답답하고 억울한 심정을 세상천지 아무 데도 호소할 길이 없는 그아이는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무 데도 호소할 곳이 없는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과거 사람들이 했던 나쁜 일을 없애겠다는 사람은 자신의 행실이 올바르고 도덕적인 사람이 앞에 나서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뒤로 물러나서 응원을 해야할 것입니다. 그런 기본이 지금 지켜지지 않아서 이런 사단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혹시나 글을 잘 쓸 수 있는 비법이 담겼을까 하고 중고 서점에서 건져온 책이다. 사 온 지는 한 달쯤 됐을까. 책 읽기를 어영부영 미루다 이제야 다 읽었다. 책에는 내가 원했던 글 잘 쓰는 기술 같은 건 없었다. 그것보다 중요한 아이들의 글쓰기 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난감했다. 내가 글쓰기 교육과 관련 있는 사람도 아닌데, 이 책이 나에게 유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우선 읽어보자 마음먹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기존에 내가 생각했던 글쓰기에 대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가끔 쓰는 글은 책에 관한 글인데, 정작 나에 대한 글은 없었다. 내가 살면서 생생하게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쓰는 글 말이다. 그간 생생한 삶이 없는, 죽은 글만 쓰고 있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웠다.
중학교 때, 교내 백일장에 참가한 적 있다. 말이 참가자지, 전교생들이 모두 반강제적으로 참가해야 하는 행사였다. 반강제적으로 참가하는 탓에 다들 글 쓰는 것보다 친구들과 노는 데 정신이 팔렸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시를 써내야 했다. 내용은 대충 쓰고, 글자 수를 비롯해 시의 형식을 맞추려 낑낑댄 기억이 난다. 내 또래 친구들은 다들 이런 기억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과연 올바른 글쓰기 교육 방식이었을까. 아무튼 저 날 이후로 '시 쓰기'는 나에게 머리 아픈 일이 되어버렸다.
이 책을 읽는 데 이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책에서 그려진 글쓰기 교육의 환경이 갖는 온갖 어두운 면이 내가 겪었던 현실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과연 지금은 얼마나 바뀌었을지 궁금하다.
책에서 저자의 '아이들'과 '글'에 대한 사랑이 그대로 전해졌다. 위선적이기보다는 진심에서 우러나온다는 느낌이었다. 늘 아이들의 입장에서 말한다고나 할까.
책에 수록된 아이들의(현재는 나보다 나이 많은 어른이겠지만) 천진난만한 글들이 읽기에 좋았다. 자극적인 글과 영상이 판치는 오늘날에 읽기 딱 좋았다. 물론 아이들의 글에서 배울 점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거나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입장이라면 꼭 일독 권하고 싶다.
사람이 숨을 쉬는 것은 코로 하지만 마음의 숨은 표현으로 쉰다. 더구나 아이들의 표현은 아이들의 생명을 이어가고 생명을 키워 가는 귀중한 수단이 된다.
p30
글쓰기 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을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키우는 데 있다. 곧, 아이들의 삶을 가꾸는 것이다. 글을 쓸거리를 찾고 정하는 단계에서, 쓸거리를 생각하고 정리하는 가운데서, 실지로 글을 쓰면서, 쓴 것을 고치고 비판하고 감상하는 과정에서 삶과 생각을 키워 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p55
글쓰기는 국어과의 한 작은 갈래가 아니다. 글쓰기는 모든 교과와 삶에 이어지고, 모든 교과와 삶을 하나로 모으는 중심교과다. 따라서 글쓰기 교육은 국어 시간이나 글쓰기라는 특정 시간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간에, 아이들을 만나는 모든 자리에서 한다고 보아야 옳다.
p83
삶의 글은 삶의 말로 써야 한다. 삶의 말은 나날이 쓰는 정다운 우리들의 말, 나 자신의 말이다. 빌려온 말, 유식을 자랑하는 말, 남의 말이 아닌 쉬운 우리 말이다. 사실을 보여주는 말, 진실을 느끼게 하는 말, 가슴에 바로 와닿는 말이다.
p115
'수업'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학업을 가르쳐 준다는 말, 곧 어른의 처지에서 하는 말이다. 배우는 아이들의 말로는 학습이라거나 공부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학교의 선생님들이 공부니 학습이니 하는 말보다는 수업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아이들에게도 예사로 수업이라고 한다. 이것은 단지 말 하나를 옳게 쓰지 못한다는 문제가 아니고 교육을 한다는 어른들이 얼마나 아이들을 잊어버리고 자기중심으로 하고 있는가를 말해 주는 보기가 된다.
p226
아무리 좋은 생각을 말하더라도 그 말 자체가 어렵고 공중에 뜬 말일 떄는 그 생각이 죽은 관념으로 되어 버린다. 흉내를 잘 내는 우등생은 삶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죽은 관념을 재빨리 암기하는 재주를 보인다. 바로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p230
글을 쉬운 말로 쓰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터인데 도리어 부끄럽게 여긴다. 그리고 아이들이 읽을 수 있게 써 놓은 글은 가치가 없는 글이라 생각한다.
p389
올바른 글쓰기 지도법을 이오덕 선생님께 배울 수 있는 책이다. 일단 글은 쉽게 말하듯이 써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삶이 드러나야 한다.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경험한 것 그대로 써야 한다. 교사도 쓰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쓰라고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의 글을 예로 들며 삶을 이야기해 주신다. 일본, 중국의 흔적이 담겨진 문예대회, 백일장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주장한다. 동시라는 것도 아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어른들이 쓴 글임을 강조한다. 아동문학도 마찬가지다. 이오덕 선생님은 아이들은 아이들이 쓴 글을 읽어야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길들어진 아이들은 글을 쓸 때 어른 흉내를 낸다. 그 글에는 어른 맛 뿐이다.
글쓰기 교육은 생명 구원의 길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표현해야 한다. 말로든 글로든 자유롭게 표현해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글쓰기의 목표는 아이들을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키우는 데 있다. 아이들의 삶을 가꾸는 것이다.(55)
아이들은 죽은 말을 쓰기 좋아한다. 왜? 자기의 삶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기의 말로 자신의 삶을 쓰도록 해야 한다. 거짓으로 글을 짓는 교육(글짓기)은 멈춰야 한다. 살아있는 아이들의 글은 어른을 가르친다. 교사를 변화시킨다.
교사는 아이들의 살아있는 글을 통해 아이들을 이해해야 한다. 교육은 전문지식과 교양을 요구하며 높은 인격을 갖추어야 해 낼 수 있는 직업이다. 이오덕 선생님은 존경받는 교육자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평생 해 오셨다. 아이들의 글 속에서 삶을 본다. 사랑으로 가르친다. 글을 쓰게 하면서 아이들의 상처를 치료한다. 이게 글쓰기 지도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