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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저/이윤기 | 열린책들 | 2011년 6월 1일 한줄평 총점 9.6 (249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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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러시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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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20세기 문학의 구도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 준 작품으로, 호쾌하고 농탕한 자유인 조르바가 펼치는 영혼의 투쟁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려 내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 조르바는 실존 인물로서,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힌두교도들은 '구루(사부)'라고 부르고 수도승들은 '아버지'라고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한 사람 선택해야 했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을 것이다……. 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오랜 세월 책으로부터 빨아들인 영양분의 질량과, 겨우 몇 달 사이에 조르바로부터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이켜 볼 때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메토이소노' 즉, '거룩하게 되기'의 개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의 임계 상태 너머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다. 포도가 포도즙이 되고 포도주가 되는 것이 물리적, 화학적인 변화라면, 포도주가 사랑이 되고 성체(聖體)가 되는 것은 바로 '메토이소노'인 것이다. 카잔차키스는 바로 이 책에서 조르바의 거침없이 자유로운 영혼의 투쟁을 통해 '삶의 메토이소노'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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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그리스인 조르바
20세기의 오디세우스
개역판에 부치는 말
니코스 카잔차키스 연보

저자 소개 (2명)

저 : 니코스 카잔차키스 (Nikos Kazantzakis)
작가 한마디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불리는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1883년 크레타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터키의 지배하에서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 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상적 특이성을 체감하고 이를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과 연결시킨다.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호메로스와 베르그송, 니체를 거쳐 부처, 조르바에 이르기까지 사상적 영향을 고루 받았다. 그리스의 민족 시인 호메로스에 뿌리를 둔 그는 1902년 아테네의 법과대학에 진학한 후 그리스 본토 순례를 떠났다. 이를 통해 그...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불리는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1883년 크레타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터키의 지배하에서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 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상적 특이성을 체감하고 이를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과 연결시킨다.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호메로스와 베르그송, 니체를 거쳐 부처, 조르바에 이르기까지 사상적 영향을 고루 받았다. 그리스의 민족 시인 호메로스에 뿌리를 둔 그는 1902년 아테네의 법과대학에 진학한 후 그리스 본토 순례를 떠났다. 이를 통해 그는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업적은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임을 깨닫는다.

1908년 파리로 건너간 카잔자키스는, 경화된 메카니즘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를 창출하려 한 앙리 베르그송과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신의 자리를 대체하고 '초인'으로서 완성될 것을 주장한 니체를 접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적 인간상"을 부르짖었다. 또한 인식의 주체인 '나'와 인식의 객체인 세계를 하나로 아울러 절대 자유를 누리자는 불교의 사상은 그의 3단계 투쟁 중 마지막 단계를 성립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의 오랜 영혼의 편력과 투쟁은 그리스 정교회와 교황청으로부터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그의 대표작 『미칼레스 대장』,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그리스인 조르바』가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파문당하기도 했지만, 그는 1951년, 56년 두 차례에 걸쳐 노벨 문학상 후보에 지명되는 등 세계적으로 그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다른 작품들로는 『오뒷세이아』,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 『성 프란치스코』, 『영혼의 자서전』, 『동족 상잔』 등이 있다.
역 : 이윤기 (Lee Yoon-ki,李潤基)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탁월한 번역가 이윤기. 1947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하였다. 중학교 2학년 때 학비를 위해서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책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인문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경북중학교, 성결교신학대 기독교학과를 수료하였다. 국군 나팔수로 있다가 베트남전에 참가하기도 했었다. 그리스·로마신화를 비롯해 오랫동안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뒤 신화에 관한 저서를 내 크게 성공했다. 1976년 첫 번역서 『카라카스의 아침』을 펴냈고 그 이듬해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하얀 헬리콥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1...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탁월한 번역가 이윤기. 1947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하였다. 중학교 2학년 때 학비를 위해서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책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인문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경북중학교, 성결교신학대 기독교학과를 수료하였다. 국군 나팔수로 있다가 베트남전에 참가하기도 했었다. 그리스·로마신화를 비롯해 오랫동안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뒤 신화에 관한 저서를 내 크게 성공했다.

1976년 첫 번역서 『카라카스의 아침』을 펴냈고 그 이듬해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하얀 헬리콥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종교학 초빙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번역을 생업으로 삼아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그리스인 조르바』, 『변신 이야기』 , 『신화의 힘』, 『세계 풍속사』등 20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번역가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에 한국번역가상을 수상했다. 1999년 번역문학 연감 『미메시스』에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이윤기는 한국 최고의 번역가로, 『장미의 이름』은 해방 이후 가장 번역이 잘 된 작품으로 선정됐다.
2000년 첫 권이 출간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전 5권)는 ‘21세기 문화 지형도를 바꾼 책’이라는 찬사와 함께 신화 열풍을 일으키며 200만 명 이상의 독자와 만났다.

번역과 동시에 작품활동도 이어갔다. 1994년 장편소설 『하늘의 문』을 출간하며 문단으로 돌아온 그는 중단편과 장편을 가리지 않고 활발한 창작 활동을 했다. 1998년 중편소설 「숨은 그림 찾기」로 동인문학상을, 2000년 소설집 『두물머리』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소설은 풍부한 교양과 적절한 유머, 지혜와 교훈을 두루 갖추고 있어 ‘어른의 소설’ 또는 ‘지성의 소설’로 평가받았다.

장편소설 『하늘의 문』, 『뿌리와 날개』, 『내 시대의 초상』 등과 소설집 『하얀 헬리콥터』, 『두물머리』, 『나비 넥타이』 등을 펴냈고, 그 밖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등의 교양서와 『어른의 학교』, 『꽃아 꽃아 문 열어라』 등의 산문집을 펴냈다. 2010년 8월 27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종이책 회원 리뷰 (225건)

[그리스인 조르바]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b*****9 | 2022.11.28

"행복이란 얼마나 단순하고 소박한 것인지 다시금 느꼈다. 포도주 한 잔, 군밤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 소리. 단지 그뿐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행복이 있음을 느끼기 위해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만 있으면 된다."

무식하고 거침없고 단순하고 괴팍해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현명하고 확고한 가치관이 있는 조르바. 매순간에 진심이고 모든 감정에 충실한 조르바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되묻게 되는 순간들이 참 많았다. 이 세상 일은 너무도 간단하다. 간단한 걸 가지고 자꾸 복잡하게 만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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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포토리뷰 그리스인 조르바_ 한 번뿐인 인생! 한 번뿐인 인생!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2****a | 2022.11.10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오늘, 바로 지금 현재를 살라는 이 60대 노인의 가르침은 이토록 생생하다!

조르바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캐릭터로 내내 기억될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우연히 읽은 한 조사 결과 때문이었다. 교보문고 소설 전문 팟캐스트 낭만서점에서 2008년부터 2017년에 이르기까지 주요 10개 세계문학전집 브랜드의 연령대별 판매 선호도를 분석한 결과였다. 흥미롭게도 1020대는 데미안, 30대는 위대한 개츠비, 50대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가장 많이 사 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데미안이야 워낙 청춘의 애독서로 손꼽히는 고전인 데다 위대한 개츠비역시 꿈과 이상, 뒤틀린 열정의 초상을 담은 고전으로 30대의 호응을 얻을 만한 작품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난데없이 그리스인 조르바라니이 작품이 유독 50대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

 

 

  그도 그럴 것이 20대 후반쯤에 이 책을 4분의 1 가량 정도 읽고 나서 덮어버린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색한에 여성을 비하하는 언어를 아무렇지 않게 일삼는 조르바라는 노인과 먹물 먹은 젊은 부르주아가 철학을 운운하는 모양새가 적잖이 불쾌감을 주었다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 그런 작품이 여전히 위대한 고전으로 불리며 회자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그것도 한창 무르익어 원숙해진 50대라는 시기에 이 작품의 어떤 부분에 영감을 받는 것인지 사뭇 궁금했다. 그렇게 나는 20대 후반에 마주했던 조르바는 잠시 잊기로 하고, 조금씩 자신의 다른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한 조르바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지금, 현재를 중요시하는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작중 화자인 는 항구 도시 피레에프스에서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던 도중, 그곳에서 알렉시스 조르바를 만난다. 움푹 들어간 뺨, 튼튼한 턱, 튀어나온 광대뼈, 잿빛 고수머리에 헌털뱅이 같은 이 60대 노인은 대뜸 에게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왜 당신을 데려가야 하냐고 묻는 에게 조르바는 “<왜요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 하는 건가요? 가령, 하고 싶어서 한다면 안 됩니까?” 하고 도리어 공갈 비슷한 태도와 격렬한 말투로 쏘아붙인다. 뜻밖에도 는 근심 걱정이 없는 곳에서 산투르를 연주하기 위해 가족을 떠나고, 도자기를 만드는 데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왼손 집게손가락을 도끼로 잘라버렸다는 이 노인의 기이한 행동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심지어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오?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 보는 버릇 말이오.” 하고 스스럼없이 이성을 물레방앗간 집 마누라 궁둥짝 취급하는 조르바의 거침없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마침 는 사랑하는 친구가 그리스의 민족주의 혁명에 동참하여 떠난 뒤 홀로 남아 스스로를 삼류글쟁이라는 한 마리 구더기’ ‘책에 파묻혀 지내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자라 비난하며 원고를 내팽개치고 행동하는 인생에 뛰어들기로 결심하던 차였다. 그런 의미에서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인 조르바야말로 자신이 오랫동안 찾아다녔던, 그러나 만날 수 없었던 자일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어쩌면 자신과 가장 반대되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본능적으로 이끌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는 과거에 광부로 일했다던 조르바를 자신의 탄광사업을 지휘하는 일을 맡기기로 하고 크레타섬으로 함께 들어간다.

 

 

 

사랑하는 친구여,

나는 지금 크레타의 외로운 해변에서 이 편지를 쓰네. 여기서 몇 달 머물면서 나는 운명과 맞붙어 놀이를 해보기로 했네. 내가 자본가 노릇을 하는 놀이일세. 이 장난이 성공하면, 나는 이것이 장난이 아니라 일대 결단을 내려 내 삶의 양식을 변혁한 것이라고 말하겠지.

떠나면서 나더러 책벌레라고 했던 말 기억할 걸세. 그 말이 적잖게 마음에 걸렸던 나는 종이에다 끼적거리는 버릇을 한동안 ? 아니면 영원히? - 집어치우고 행동하는 삶 속에 뛰어들기로 결심을 했다네. 나는 갈탄이 매장된 산 하나를 빌렸네. 나는 여기에서 인부를 고용하고 직접 곡괭이, , 아세틸렌 램프, 소쿠리, 손수레를 쓰고 다루네. 내 손으로 갱도를 열고 들어가기도 하지. 자네 말을 무색하게 하려고 이러는 것이야. 갱도를 타고 땅속에다 길을 내는 것으로 책벌레는 두더지가 된 셈이지. 자네는 나의 이 변신을 인정해 주었으면 하네. / 132p

 

 

 



 

 

 

 

  두 사람은 한때 크레타에 모여든 네 강대국(영국,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의 제독을 상대했다던 카바레 여가수 오르탕스 부인의 여인숙에서 머무르기로 한다. 그곳에서 는 낮에는 탄광을 돌보고, 밤에는 육체라는 이름의 짐승을 실컷 먹이고 포도주로 목을 축이며 조르바가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에 흠뻑 빠져든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는 온갖 관념과 형이상학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왔던 자신과 달리 육신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자신이 춤을 추고 싶을 때는 자유롭게 춤에 몸을 맡기고, 여인을 향한 자신의 욕망에 항상 충실하며 신성을 모독하는 일마저도 거리낌이 없는 조르바의 행동에서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깨달아간다.

 

 

 

  조르바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조르바가 딴것들보다 나아서가 아니오. 나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요. 조르바 역시 딴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그러나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그놈이 유일하게 내가 아는 놈이고, 유일하게 내 수중에 있는 놈이기 때문이오. 나머지는 모조리 허깨비들이오.” 그는 자기 자신이 경험한 것을 믿고, 오로지 현재에 집중하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데 주저함이 없다.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이 노인의 언어에는 그 어떠한 이미지도, 체면도, 양식도 없다. 때문에 저 조르바 앞에서 스스로 미적지근하고 모순과 주저로 점철된 몽롱한 반생이었다던 의 고백은 곧 나 자신의 것이자 우리 모두의 부끄러운 고백이 되고 만다.

 

 

 

마음이 내키면, 알죠? 마음이 내키면 말이오. 일이야 당신이 바라는 만큼 해주겠소. 거기 가면 나는 당신 사람이니까. 하지만 산투르 말인데, 그건 달라요. 산투르는 짐승이오. 짐승에겐 자유가 있어야 해요. 마음이 내키면 칠 거요. 또 노래도 할 거요. 제임베키코, 하사피코, 펜토잘리도 추고. 그러나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 놓겠는데, 마음에 내켜야 해요. 분명히 해둡시다. 나한테 강요하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이런 문제에서만큼은,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24p

 

 

집이 열리면서 나비가 천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어진 순간의 공포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비의 날개가 도로 접히더니 쪼그라들고 말았다. 가엾은 나비는 그 날개를 펴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는 내 입김으로 나비를 도우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번데기에서 나오는 과정은 참을성 있게 이루어져야 했고, 날개를 펴는 과정은 햇빛을 받으며 서서히 진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때늦은 다음이었다. 내 입김은 때가 되기도 전에 나비를 날개가 온통 구겨진 채 집을 나서게 강요한 것이었다. 나비는 필사적으로 몸을 떨었으나 몇 초 뒤 내 손바닥 위에서 죽고 말았다.

나는 나비의 가녀린 시체만큼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 177p

 

 

 

  동네 청년이 과부에게 마음을 표현했다가 거절한 일을 계기로 자살하면서 마을 일대가 소란했던 날, 과부를 죽이려 달려드는 사람들을 막아 세운 건 조르바였다. 그는 온마을이 여자 하나를 죽이려고 몰려다니는 비인간적인 태도에 분노하며 그들을 꾸짖는다. 하지만 이들은 과부를 기어코 죽이고, 오르탕스 부인이 죽을 때에도 내내 그 앞에서 죽기만을 기다리다 그녀의 물건들을 죄다 제 것처럼 쓸어간다. 이때 그들을 바라보며 이놈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같이 불의, 불의, 불의입니다!” 하고 외치는 조르바의 음성은 여느 때보다 처절하고 날카롭게 의 가슴을 파고든다. “그리스인이든 불가리아인이든 터키인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이냐, 나쁜 놈이냐? 요새 내게 문제가 되는 건 이것뿐입니다.”던 조르바였기에, 인간을 대상화하지 않고 그 자체로 사랑하려 했던 이였기에 이 사건은 현실과 이상의 간극만 더욱 뚜렷이 확인한 채 조르바와 모두에게 극복하기 어려운 상처로 남는다.

 

 

 

열정과 광기로 싸우는 자가 행복하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자네 식으로 말하면, 나는 행복을 내 키에 맞게 재단했는지 어쩐지 잘 모르겠네. 용케 그렇게 했다면, 그렇다면 나는 위대한 사람일 것일세. 나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에 맞추어 키를 늘이고 싶네. 그리스의 가장 먼 변경까지 말일세. 그러나 말이 쉽지……. 자네는 크레타 해안에 드러누워 바다 소리와 산투르 소리를 듣고 있으리. 자네에겐 시간이 있는데, 내게는 그것이 없네. 행동이 나를 삼키고 말았네만, 나는 이게 좋아. 친구여, 행동하기 싫어하는 내 스승이여. 행동, 행동…… 구원의 길은 그것뿐이네./ 206p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하고는 했다. 모든 문제가 일을 어정쩡하게 하기 때문이에요. 말도 어정쩡하게 하고 선행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다 그 어정쩡한 것 때문입니다.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겁니다. 못을 박을 때도 한 번에 제대로 때려 박는 식으로 해나가면 우리는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악마 대장보다 반거들충이 악마를 더 미워하십니다!/ 331p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 사람, 고가선, 수레를 모두 잃었다. 우리는 조그만 항구를 만들었지만 실어 내보낼 물건이 없었다. 깡그리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그렇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마치 어렵고 어두운 필연의 미로 속에 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행복하게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 같았다. 나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함께 놀았다. / 416p

 

 

 

  이윽고 두 사람이 헤어질 무렵, 당신이 읽는 그 빌어먹을 책에는 뭐라고 써있냐고, 그 위대하다고 하는 책들이 대체 인간을 어떻게 구원해줄 수 있는 거냐고 부르짖었던 조르바의 말이야말로 어쩌면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평생 질문처럼 품고 산 말은 아니었을까. 문학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이상과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다면 자신의 문학은 어디로 나아가야하는 것인지 작가는 끊임없이 고뇌한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스스로 자유로워졌다고 믿는 에게 조르바가 한 말 역시 매우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보다 좀 길 거예요.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매달려 있으니까, 이리저리 다니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은 자르지 않으면…….”

 

 

 

  사회적인 인간으로서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나와 타인 혹은 사회적인 구속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자유롭다고 착각하거나 끊임없이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옭아매는 것들을 잘라내려는 부단한 시도와 행동하는 자세 속에서 우리는 조금이나마 자유를 엿볼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또한 문학이 그러한 길을 제시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것이 그리스인 조르바가 품고 있는 함의이자 당대인들을 비롯해 오늘날까지도 큰 울림을 주는 이유일 것이다.

 

 

 

나는 곧잘 친구들에게 이 위대한 인간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교육받은 사람들의 이성보다 더 깊고 더 자신만만한 그의 긍지에 찬 태도를 존경했다. 우리들이라면 고통스럽게 몇 년을 걸려 도달할 정신의 경지에 그는 단숨에 가닿았다. 그래서 우리는 말했다. <조르바는 위대한 인간이다!> 때로 그는 그 경지를 훌쩍 넘어 더 멀리 나가 버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우리는 말했다. <조르바는 미쳤다!> / 436p

 

 

 




 

 

 

 

  해설에 따르면 조르바는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자기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꼽을 만큼 실존하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호쾌하고 농탕한 사나이 조르바는 떠도는 인간 카잔차키스가 한동안 쉬어 가고 싶어 하던 구원의 오아시스이자 자유의 상징이었다. 완벽하게 실제 성격 반영한 것인지 여기에 문학적 상상력을 얼마간 가미한 것인지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확실히 조르바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캐릭터라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이다. 덕분에 사회적 제약이나 이미지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갈구하는 그에게 왜 유독 50대가 특히 공감하는 것인지 적잖이 이해가 된다. 한편,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읽는 것도 이 책을 깊이 있게 읽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개인의 자유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오스만 제국과 강대국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자유와 독립을 꿈꾸었던 그리스인들 전체의 소망이 이 작품에 반영된 것은 아닐까 짐작해보면 인물 하나하나의 삶이 보다 풍부하게 읽힐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 464p

 

 

 

  책을 다 읽고 난 뒤에야 알았지만, 이윤기 작가 님의 번역으로 보석 같은 문장들을 만날 수 있었던 점은 독자들에게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 될 듯하다. 20대 후반에 읽었다 그대로 쭉 덮어두었다면 이 작품의 진면목을 발견하지 못했으리라. 혹여 이 책을 책장에 묵혀두고만 있을 또 다른 분들에게 언젠가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린다.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접어보기
그리스인 조르바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a****1 | 2022.10.04

처음부터 조르바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저항감이 생겼다. 여자를 마음대로 다루는 카사노바 같은 면모에다 잘 다듬어 지지 않은 날것 같은 행동이 낯설고 무례하게만 느껴졌다. 그런데도 서서히 그의 매력에 빠져든 이유는 무엇일까.

조르바와 두목(화자)의 첫만남에서 뜬금없이 함께 데려가 달라는 조르바에게 두목은 ‘왜요?’ 라고 묻는다. 조르바는 ‘<왜요>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하는 건가요? 하고 싶어서 한다면 안됩니까?’ 라고 말하는 데서 두 사람이 대비된다. 두목은 매사에 원인과 결과를 따져서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조르바는 직관과 감각에 따라 결정하는 사람이다. 두목은 조르바에 대해 알아가면서 정확한 직감과 독수리 같은 원시의 모습을 함께 지니고 지름길을 잡아 숨 한번 차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노력의 정상에 이르러 거기에서 더 나아가는 사람이라고 묘사한다. 마치 대니얼 카너먼이 「생각에 대한 생각」에서 말한 시스템1과 시스템2를 보는 것 같다. 카너먼은 우리의 뇌가 슈퍼 컴퓨터처럼 빨리 작동하는 시스템1과 매우 느리게 작동하는 시스템2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하는데 시스템1은 직관적이며 저절로 작동하고 노력이 필요치 않는 반면 시스템2는 깊은 생각을 하거나 복잡한 계산을 할 때처럼 고도의 집중을 필요로 하고 성급하게 결론에 도달하지 않고 하나씩 따져보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조르바는 시스템1의 뇌를 주로 사용하고 두목은 시스템2의 뇌가 발달되어 있는 것 같다. 조르바가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오?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 보는 버릇 말이오. 자, 젊은 양반, 결정해 버리쇼. 눈 꽉 감고 해버리는 거요’ 라고 하는 걸 보면 조르바는 두 가지 뇌를 다 사용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또한 상대방을 단번에 꿰뚫어 보는 눈도 가졌다. 이 장면은 영화 「탑건:메버릭」에서 그냥 지르는 스타일인 메버릭이 모든 것을 안정 지향적이고 계획적으로 하며, 숙고와 계산을 거쳐서 진행하는 스타일인 루스터에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라고 말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에서 메버릭 역시 그냥 지르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1과 시스템2를 적시에 사용할 줄 아는 전체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이다.

조르바가 ‘산투리를 치려면 온갖 정성을 산투리에만 쏟아야 해요. 알아듣겠어요?’라고 하자 두목은 조르바야말로 그가 오랫동안 찾아 다녔던 사람,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임을 알아차린다. 그런 면에서 두목도 시스템2를 주로 사용하지만 시스템1에 대한 갈망이 누구보다 있는 사람이기에 조르바에게 빠져들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두목이 점점 조르바에 빠져들면서 독자인 우리도 조르바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그는 조르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내가 고독 속에서 의자에 눌어붙어 풀어 보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칼 한 자루로 산속의 맑은 대기를 마시며 풀어 버린 것이었다.’라고.

‘나는 달빛을 받고 있는 조르바를 바라보며 주위 세계에 함몰된 그 소박하고 단순한 모습, 모든 것(여자, 빵, 물, 고기, 잠)이 유쾌하게 육화하여 조르바가 된 데 탄복했다. 나는 우주와 인간이 그처럼 다정하게 맺어진 예를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이 구절은 저자의 시 <편도나무야, 나에게 신에 대해 이야기해다오>에서 편도나무에게 신에 대해 이야기 해달라고 하자 편도나무가 꽃을 활짝 피웠다는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말이 필요 없는, 존재로 말하는 사람이 조르바였다. 두목은 영혼이 곧 육체고 육체 또한 영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조르바에게 중요한 것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지금 잠을 자고 있으면 잠을 잘 자는 것에, 일하고 있으면 일에, 키스하고 있으면 키스에 집중하는 것이다. 조르바가 하는 말들은 의미가 풍부하고 포근한 흙 냄새가 나는 말들, 존재의 심연으로부터 나오는 말들인 반면 두목 자신의 말들은 종이로 만들어진 것들, 머리에서 나오는 말이라서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말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두목이 관념의 세계에 머무르고 있다면 조르바는 자기의 존재의미를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창조해 내는 진정한 실존주의자였다.

철탑이 무너지고 난 뒤 두 사람의 대화를 보자. 조르바는 말한다. ‘사람을 당신만큼 사랑해 본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이 쌓이고 쌓였지만 내 혀로는 안돼요. 춤으로 보여 드리지’ 그리고 그는 팔다리에 날개가 달린 것 같이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그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존재로 더 잘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돈, 사람, 고가선, 수레를 모두 잃은 바로 그 순간 두목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다. 외부적으로는 참패했으면서도 속으로는 정복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인간은 더할 나위 없는 긍지와 환희,자유를 느낀다. 광산에 대한 욕망을 놓아버리자 오히려 영혼이 더 가벼워지게 된다.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느끼는 그 해방감을 우리도 한번쯤은 경험할 때가 있지 않은가. 두목은 점점 조르바를 닮아간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헤어질 때 나누는 대화. 두목은 말한다. ‘조르바, 당신은 버찌를 잔뜩 먹어 버찌를 정복했으니 나는 책으로 책을 정복할 참이에요. 종이를 잔뜩 먹으면 언젠가는 구역질이 날 테지요. 구역질이 나면 확 토해 버리고 영원히 손 끊는 거지요.’ 두목이 자신은 자유로우니 조르바와 함께 갈수도 있다고 하자 조르바는 두목은 긴 줄 끝에 있는데 그걸 자르지 않으면 자유는 없다고 말한다. 그 줄을 자르려면 바보가 되어야 하는데 인간의 머리는 계속 계산하는 식료품상점과 같기에 결코 자를 수가 없다고 하면서. 머리란 좀상스러운 가게주인과 같아서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줄을 자를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더 붙잡아 맬 뿐이라고.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말이다. 여기서 저자는 우리가 자유를 원하면서도 왜 자유롭지 못한지, 자신이 정한 테두리 안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자유를 원한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놓아버리지 않고는 결코 불가능 하다는 것을.

인간은 욕망의 존재다. 그 욕망이 없다면 살아갈 동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욕망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니 자유롭지 못한 것은 어쩌면 인간이 타고난 숙명이 아닐까.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현재에 오롯이 집중하면 욕망은 사라진다. 결국은 현재에 집중하고 산다면 미래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니 자유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일 수도 있겠다. 문제는 우리가 과거와 미래에 사로잡혀 머리가 너무 복잡한 나머지 현재에 집중하지 못한다는데 있는 것이 아닐지.

조르바는 두목이 어릴 때부터 찾고자 하던 바로 그 초인이었다. 우리가 조르바처럼 되기를 갈망하지만 조르바가 될 수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유독 우리나라 40-50대로부터 많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고 조르바처럼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행복을 갈구하는 사람이야말로 지금 현재 행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조르바를 갈구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만큼 자유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방증이 아닐런지. 책을 읽는 내내 영화 속 조르바 역의 안소니 퀸이 떠올라 상상에 방해를 받았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지만 영화 속의 안소니 퀸보다는 책 속의 조르바가 훨씬 더 멋지다고 생각되는 것은 상상력의 힘이 더 크기 때문 같다. 또한 그 당시 영화를 봤을 때는 두목의 시각을 통해 조르바를 본 것이 아니라 관객의 시각으로 조르바를 보았기에 조르바의 위대함을 깨달을 수가 없었던 것은 조르바도 위대하지만 그를 알아 본 두목이 없었더라면 조르바라는 위대한 인물은 발굴되지 못했을 것이므로.

조르바의 자유는 어디서 왔을까. 사람이 가장 자유로울 때는 타인의 시선에 구애 받지 않고 자기답게 행동할 때이다. 자신이 아닌 남을 흉내 내거나 남처럼 살고자 할 때 스스로를 구속하게 된다. 조르바처럼 살고 싶다고 그대로 따라 한다면 가장 조르바와 멀어진 삶이 될 것이다. 오히려 자기답게 사는 것이 가장 조르바스럽지 않을지. 자유함은 말과 행동의 일치에서 나온다. 자신이 하는 말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가장 강한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다. 조르바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조르바에게는 남을 의식 하거나 남 탓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스스로의 판단 하에 본인이 한 행동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기에 그가 더 커 보이는 것이 아닐까. 지극히 상식적이고 단순한 일임에도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기에 그에게는 힘이 있었다. 스스로를 믿는 힘. 그것은 배움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경험에서 나온 체득의 힘이었다.

번역서임에도 불구하고 글자로 낱말을 조합하여 살아 움직이는 문장을 만들어 내는 저자의 필력이 책의 곳곳에서 느껴져 읽는 내내 부러움과 한탄을 자아냈다. 즐거움과 감동 외에도 상상을 초월한 조르바의 삶을 통해 진정한 행복과 자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한 것도 조르바처럼 살라는 것이 아니라(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결코 그가 될 수 없으므로) 자기답게 살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집중한다면 바로 거기에 자유와 행복이 있다는 것으로 생각된다. 여행과 영성에 대한 저자의 열망에 나도 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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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회원 리뷰 (4건)

조르바와 함께하는 동안의 시간은 다른 맛이 났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s******c | 2019.01.20
2012년에 이 책을 읽었다. 그전까지는 주로 기독교서적만을 읽다가 여러가지 이유로 세계관이 바뀌는 경험을 하면서 일반(?) 문학에도 관심을 가지기로 마음을 먹고 처음 읽은 책이었다. 왠지 2019년, 7년만에 올해 첫 책으로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고 싶어졌다.

같은 책을 두번 읽는 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7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 자신과 나를 둘러 싼 환경이 변하면서 같은 책이라도 읽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또한 한번 읽어서 주요 내용은 대강이나마 기억을 하고 있기에 책을 한발 떨어져서 감상하는 느낌으로 읽을 수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 하면 “자유인“의 대명사로들 인식된다. 실제 조르바가 “자유”를 많이 언급하기도 하거니와, 조르바의 거침없는 말과 행동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독자에게 카타르시스 같은 시원함을 준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이 책의 화자가 되어 조르바를 만난다. 이 책의 “나“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나”, 나의 친구, 그리고 조르바 중에 “나“에 가까운 사람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가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나”는 생각이 많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지만 정작 행동에 옮기기에는 너무 생각이 많고 결단력은 없다. 생애 첫 과감한 결정으로 크레타 섬을 찾아 탄광 사업을 해보기로 하고 크레타섬으로 들어가는 길에 만난 사내 조르바와 그 사업을 함께 하기로 하고 함께 몇달을 지낸다. 그 기간동안 “나”는 조르바라는 사내에게 깊이 빠져든다.

“그래, 알겠다. 조르바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母胎)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나는 그와 보낼 몇 달이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될 것임을 예감했다. 요모조모 따져 봐도 나는 아무래도 행복을 헐값으로 사는 기분이었다.”

“나는 인생을 허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레를 찾아 내가 배운 것, 내가 보고 들은 것을 깡그리 조르바라는 학교에 들어가 저 위대한, 저 진정한 알파벳을 배울 수 있다면……! 내가 선택하는 길은 사뭇 달라질 것이다.”

“조르바와 함께하는 동안의 시간은 다른 맛이 났다.”


조르바 또한 “나“를 많이 의지하고 좋아한다. 조르바는 “나”를 <두목>이라고 부른다. 처음 읽을 때는 그게 영 어색했는데, 계속 읽다보면 익숙해지긴 하지만 그래도 어색하긴하다. 서점에 들려 다른 번역본에서는 어떻게 칭하는지 본 적이 있는데, <대장> 또는 <대장님>이라고 하던데, 그것도 어색하긴 마찬가지다.

“「두목! 당신에게 할 말이 아주 많소. 사람을 당신만큼 사랑해 본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이 쌓이고 쌓였지만 내 혀로는 안 돼요. 춤으로 보여 드리지! 자, 갑시다!」”

안소니퀸이 조르바를 연기한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를 본 사람들은 위 대목, 즉, 광산을 다 말아먹고 두사람이 아이러니 하게도 신이 나서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을 하이라트로 꼽던데, 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 역시 이전의 쑥스러움을 다 벗어던지고 조르바가 하라는데로 춤을 추는 대목에서 나 역시 그 광란의 판에 함께 하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이다.

참 많은 구절을 ‘건져 올렸다‘. 그런데 다 모아 놓고 보니 마치 조리바의 어록 같다. 기억에 남는 문구가 대부분 조르바가 한 말들이다. “나“에 더 가까운 나는 절대로 조르바와 같이 생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광산을 다 말아먹고 조르바와 헤어진 이후, 조르바를 그렇게 그리워하면서도 자신이 있는 곳에 한번 오기를 청하는 조르바의 편지를 받고도 가겠다는 결정을 하지 못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마 나도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에 조르바가 한 말들이 더더욱 가슴을 때리는지도 모른다.


조르바가 한 말들 한구절 한구절에 내 커멘트를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그와 대화하는 기분으로.

“「왜요! 왜요!」 그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왜요〉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 하는 건가요? 가령, 하고 싶어서 한다면 안 됩니까?”

“「산다는 게 곧 말썽이오.」 내가 대꾸하지 않자 조르바가 계속했다. 「죽으면 말썽이 없지. 산다는 것은…… 두목, 당신,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이오!」”

앞에서 인용한 글 처럼 조르바라는 학교에 들어가 그의 알파벳을 배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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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로얄 n****e | 2016.11.02

너무나 다른 느낌의 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을 때 받았던 감동을

이 낯선 소설에서 받았다고 하면 억지일까

내면의 혼란, 주변인의 갈등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안나 카레니나의 인물과는 너무도 다른

조르바의 유쾌한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절대로 나는 저러지 못하겠다고 하면서도 어느새 대리만족을 하고 있었다.

알베르 까뮈가 너무 겸손하여 본인보다도 노벨상을 수백번을 더 받아야했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책을 읽은지 오래지 않아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카잔차키스가 더 나은지 알베르 까뮈가 더 나은지는 메시가 나은지 커쇼가 더 나은지를 판가름하는 것 만큼이나 의미없는 일이지만,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만담같은 이야기, 아름다운 풍경의 묘사는 단연코 일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기억의 도움으로 조만간 많은 것을 까먹을테니 좀 기억을 잃어갈 때 쯤 다시한번 책을 펴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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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면 상대하고 싶지 않은 남자, 조르바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케*K | 2015.07.09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하여

 

여자라면 상대하고 싶지 않는 남자, 조르바

 

읽는 책마다 인용이 되곤 하던 고전인데도 읽지 못했다. 그저 자유분방한 남자 이야기거니 추측했다. 그러다 이번에 집에 내려와 읽게 됐다. 저번에 달리 고속버스를 타면서 달랑 책 한권만 넣어 왔다. 그 책도 그 날 다 읽어버렸다. 한 권 더 들고 올 걸. 아쉬워하던 차에 저번에 소정씨가 올린 전자책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쉬운대로 전자책을 봐야겠군. 광명 도서관에서 전자책 메뉴를 찾았다. 생각대로 신간은 거의 없고 전체 양도 적었다. 그래도 보석 같은 책들이 눈에 보였다. <그리스인 조르바>도 그중 하나였다. 집에도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있지만 여간해서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이번에 휴대폰을 바꾼 것도 전자책 읽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가볍고 화면이 편해서 잘 넘어갔다. 지리한 주인공 이야기인 앞부분을 지나자 내용이 눈에 들어오면서 가독성이 붙었다. 주인공인 나는 책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는 작가다. 반면에 조르바는 모든 걸 몸으로 배운 사람이다. 사랑도, 전쟁도, 선도, 악도 모두 그에게는 경험이자 이야기거리다. 몸으로 체화된 지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조르바의 인생 모토는 인생 별거 없다는 거다. 그래서 그는 여자만 보면 환장을 하고 달려든다. 나이든 여자든 어린 여자든 가리지 않는다. 그런 그가 상대하는 여자들이어서 그런가. 만난 대다수 여자들은 남자 지갑에 혹한다. 그는 맘 가는 대로 살고 규칙 따위에는 얽매이지 않는다. 주인공인 나는 그에게 훈계하듯 말하지만 실은 부러워하며 대리만족 한다. 정반대의 인생을 사는 그들은 서로에게 끌린다.

 

사랑에 포커스를 맞춰 읽으면 이 책은 남자들의 환상이다. 이곳 저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순간적 만남에 충실한다. 이국적인 여자들과의 수많은 만남에도 그의 인생에서 죄책감은 없다. 그는 모든 걸 통달한 부처일까. 아니면  개념없는 망나니일까. 많은 경험을 했다고 해서 그의 인생관을 높이 살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세상의 이치를 나도 책을 통해 터득하는 편이라 자신하진 못하겠다. 책으로 배운 지식과 몸으로 배운 지식 가운데 무엇이 나은지, 무엇보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여자를 수없이 경험했으니 조르바의 여자에 대한 생각이 맞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내 눈에는 진실한 사랑을 하지 못한 사람처럼 보인다. 혹은 사랑을 초월한 사람이든가.

 

반면에 조르바의 전쟁에 대한 체험은 와 닿았다. 국적은 따질 필요가 없다. 그저 좋은 놈이냐 나쁜 놈이냐를 구분할 따름이라는 그의 말이 인상적이다.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저질러지는 일은 인간의 단면을 보여준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도 아프리카 내전의 잔인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시대는 달라도 조르바가 살던 시대의 참상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살아있는 사람의 목을 따고 여자들을 강간하고 미친 듯이 불을 지르고. 무엇을 위해서일까? 남은 자들은 평생을 트라우마와 증오로 살아간다.

 

부불리나가 죽는 장면은 씁쓸하다. 죽음은 정말 혼자 맞는 것임을 잘 보여준다. 그나마 조르바가 앵무새를 챙겨가 다행이다. 조르바가 좋은 남자는 아니여도, 사실 형편없는 거짓말쟁이 연인이지만 그와 사귄 보람이 있다. 그녀가 준 반지를 다른 여자와 결혼식에 쓰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남자들이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 김훈에 열광하는 남자 독자들이 많은 것처럼. 조르바의 인생은 남자들에게 로망일 게다. 여자들에게는 악몽 같은 남자라고 말하고 싶다. 남자로 태어나면 저런 인생을 사는 것도 뭐 호탕하고 대장부 같기도 하겠다. 이제 든 생각이지만 조르바는 다음 생에 '계집'으로 태어날 것 같다. 요망한 암컷들이라며 짜증내면서도 미친듯 좇아다니던 존재 말이다.

 

<책은 도끼다>에서 저자는 <조르바>보다는 <안나 카레리나>를 청소년에게 먼저 권한다고 했다. 안나 카레니라를 통해 기본적인 가치관을 정립한 뒤에 조르바를 읽는 편이 낫다고.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생각을 심어줄 수도 있으니까. 난 순서를 바꾸어 이제 <안나 카레리나>를 읽어야겠다. 마지막으로 든 생각. 날 보고 싶어하고 놀러오라는 사람에게는 가자. 사람과의 만남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내가 읽은 전자책은 정재영 역인데 여기에 없어서  이윤기님 전자책으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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