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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저/이윤기 | 열린책들 | 2011년 6월 1일 한줄평 총점 9.6 (246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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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러시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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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20세기 문학의 구도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 준 작품으로, 호쾌하고 농탕한 자유인 조르바가 펼치는 영혼의 투쟁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려 내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 조르바는 실존 인물로서,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힌두교도들은 '구루(사부)'라고 부르고 수도승들은 '아버지'라고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한 사람 선택해야 했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을 것이다……. 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오랜 세월 책으로부터 빨아들인 영양분의 질량과, 겨우 몇 달 사이에 조르바로부터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이켜 볼 때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메토이소노' 즉, '거룩하게 되기'의 개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의 임계 상태 너머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다. 포도가 포도즙이 되고 포도주가 되는 것이 물리적, 화학적인 변화라면, 포도주가 사랑이 되고 성체(聖體)가 되는 것은 바로 '메토이소노'인 것이다. 카잔차키스는 바로 이 책에서 조르바의 거침없이 자유로운 영혼의 투쟁을 통해 '삶의 메토이소노'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그리스인 조르바
20세기의 오디세우스
개역판에 부치는 말
니코스 카잔차키스 연보

저자 소개 (2명)

저 : 니코스 카잔차키스 (Nikos Kazantzakis)
작가 한마디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불리는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1883년 크레타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터키의 지배하에서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 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상적 특이성을 체감하고 이를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과 연결시킨다.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호메로스와 베르그송, 니체를 거쳐 부처, 조르바에 이르기까지 사상적 영향을 고루 받았다. 그리스의 민족 시인 호메로스에 뿌리를 둔 그는 1902년 아테네의 법과대학에 진학한 후 그리스 본토 순례를 떠났다. 이를 통해 그...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불리는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1883년 크레타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터키의 지배하에서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 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상적 특이성을 체감하고 이를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과 연결시킨다.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호메로스와 베르그송, 니체를 거쳐 부처, 조르바에 이르기까지 사상적 영향을 고루 받았다. 그리스의 민족 시인 호메로스에 뿌리를 둔 그는 1902년 아테네의 법과대학에 진학한 후 그리스 본토 순례를 떠났다. 이를 통해 그는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업적은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임을 깨닫는다.

1908년 파리로 건너간 카잔자키스는, 경화된 메카니즘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를 창출하려 한 앙리 베르그송과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신의 자리를 대체하고 '초인'으로서 완성될 것을 주장한 니체를 접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적 인간상"을 부르짖었다. 또한 인식의 주체인 '나'와 인식의 객체인 세계를 하나로 아울러 절대 자유를 누리자는 불교의 사상은 그의 3단계 투쟁 중 마지막 단계를 성립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의 오랜 영혼의 편력과 투쟁은 그리스 정교회와 교황청으로부터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그의 대표작 『미칼레스 대장』,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그리스인 조르바』가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파문당하기도 했지만, 그는 1951년, 56년 두 차례에 걸쳐 노벨 문학상 후보에 지명되는 등 세계적으로 그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다른 작품들로는 『오뒷세이아』,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 『성 프란치스코』, 『영혼의 자서전』, 『동족 상잔』 등이 있다.
역 : 이윤기 (Lee Yoon-ki,李潤基)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탁월한 번역가 이윤기. 1947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하였다. 중학교 2학년 때 학비를 위해서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책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인문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경북중학교, 성결교신학대 기독교학과를 수료하였다. 국군 나팔수로 있다가 베트남전에 참가하기도 했었다. 그리스·로마신화를 비롯해 오랫동안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뒤 신화에 관한 저서를 내 크게 성공했다. 1976년 첫 번역서 『카라카스의 아침』을 펴냈고 그 이듬해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하얀 헬리콥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1...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탁월한 번역가 이윤기. 1947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하였다. 중학교 2학년 때 학비를 위해서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책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인문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경북중학교, 성결교신학대 기독교학과를 수료하였다. 국군 나팔수로 있다가 베트남전에 참가하기도 했었다. 그리스·로마신화를 비롯해 오랫동안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뒤 신화에 관한 저서를 내 크게 성공했다.

1976년 첫 번역서 『카라카스의 아침』을 펴냈고 그 이듬해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하얀 헬리콥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종교학 초빙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번역을 생업으로 삼아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그리스인 조르바』, 『변신 이야기』 , 『신화의 힘』, 『세계 풍속사』등 20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번역가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에 한국번역가상을 수상했다. 1999년 번역문학 연감 『미메시스』에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이윤기는 한국 최고의 번역가로, 『장미의 이름』은 해방 이후 가장 번역이 잘 된 작품으로 선정됐다.
2000년 첫 권이 출간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전 5권)는 ‘21세기 문화 지형도를 바꾼 책’이라는 찬사와 함께 신화 열풍을 일으키며 200만 명 이상의 독자와 만났다.

번역과 동시에 작품활동도 이어갔다. 1994년 장편소설 『하늘의 문』을 출간하며 문단으로 돌아온 그는 중단편과 장편을 가리지 않고 활발한 창작 활동을 했다. 1998년 중편소설 「숨은 그림 찾기」로 동인문학상을, 2000년 소설집 『두물머리』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소설은 풍부한 교양과 적절한 유머, 지혜와 교훈을 두루 갖추고 있어 ‘어른의 소설’ 또는 ‘지성의 소설’로 평가받았다.

장편소설 『하늘의 문』, 『뿌리와 날개』, 『내 시대의 초상』 등과 소설집 『하얀 헬리콥터』, 『두물머리』, 『나비 넥타이』 등을 펴냈고, 그 밖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등의 교양서와 『어른의 학교』, 『꽃아 꽃아 문 열어라』 등의 산문집을 펴냈다. 2010년 8월 27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종이책 회원 리뷰 (222건)

고전독서회 9월 모임(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눈* | 2022.04.16

고전독서회에서 지난 해 9월에 읽은 책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입니다. 9년반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영화주제가로 그리고 영화로 먼저 만났고, 책으로 만나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그런 탓인지 처음 책을 읽고 쓴 독후감의 반은 음악과 영화이야기로 채워졌습니다(http://blog.yes24.com/document/6346670). 오랜만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으면서도 화자와 조르바의 인간성에 천착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리스의 역사를 개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역사는 기원전 2,700년경부터 기원전 1,450년까지 이야기의 무대인 크레타 섬에 존재했던 미노아 문명으로부터 시작될 정도로 오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어서 펠로폰네소스반도의 북동부에서 기원전 1,600년경에 시작한 미케아문명으로 연결되어 기원전 1,100년 무렵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어서 북쪽으로부터 도리안인이 침입해오는 시기로 기원전 800년 무렵까지는 그리스 역사의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9세기 무렵 도시국가들이 성립하면서 그리스 문명은 다시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고대 그리스 시기를 맞습니다. 특히 기원전 323년부터 고전기 그리스의 심장부가 로마제국에 병합된 기원전 146년까지의 기간을 헬레니즘 시대라고 합니다.

 

로마제국에 병합되었다고 해도 그리스는 로마제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자치를 인정받았습니다.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할되어 동로마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지금의 이스탄불)를 수도로 하는 비잔틴제국으로 존속하는 동안 그리스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제4차 십자군전쟁(1204년)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고 들어선 서유럽인의 라틴제국이 57년간 지배한 끝에 들어선 그리스인 후계국으로 회복되었습니다. 하지만 1453년 오스만제국이 침략해오면서 비잔틴제국이 멸망하고 그리스 사람들은 오랜 세월 오스만제국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1830년에 이르러서야 독립을 얻어 그리스 왕국이 들어섰습니다.

 

그래서 일제 식민지배 시기의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있다고 보아 독후감에 반영했던 것 같습니다. 다음과 같은 부분입니다. “해외로 이주하는 행동파, 떠나지 못고 눌러앉아 현실에 안주하면서도 자유로운 삶을 무한 동경하는 나약한 지식인, 그리고 압제에 눌려 살아가는 기층민들. 특히 기층민들은 정신이 타락하고 폭력성이 슬며시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조르바는 그것을 내 안에 들어있는 또 다른 나, 악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악마를 죽이는 일, 그것이 바로 자유로운 삶을 얻는 길이고, 나약한 지식신인 화자는 붓다의 가르침에서 그것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날 모임에서는 세 가지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1. 주인공은 불교를 공부합니다. 불교와 조르바는 주인공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주인공은 붓다에 경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조르바는 붓다는커녕 불교가 무엇인가도 모르는 듯합니다. 초면의 조르바가 화자에게 “물레방앗간 집 마누라 궁둥짝을 보고 철자법을 배우겠다는 생각은 안 하시겠지? 물레방안간 집 마누라 궁둥짝, 인간의 이성이란 그거지 뭐.”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조르바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화자는 불교경전을 필사하면서 붓다의 이치를 얻고자 합니다. 한편으로는 붓다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화자가 추구하는 목표는 “붓다에서 벗어나고 모든 형이상학적인 근심인 언어에서 나 자신을 끌어내고 헛된 염려에서 내 마음을 해방시킬 것. 지금 이 순간부터 인간과 직접적이고도 확실한 접촉을 가질 것.(84쪽)”이라는 과업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화자는 궁극적으로 ‘붓다가 그 최후의 인간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붓다에겐 스스로를 비운 ‘순수한’ 영혼이 있다. 붓다의 내부는 공허하며 그 자신이 바로 공(空)이다.”라는 깨우침을 얻습니다. 그리고 ‘네 육신을 비워라, 네 정신을 비워라, 네 가슴을 비워라’라고 외칩니다. ‘호쾌하고 농탕한 사나이 조르바는, 떠도는 인간 카잔차키스가 한동안 쉬어가고 싶어했던 구원의 오아시스였다’라고 적은 것을 보면 화자가 추구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전형을 고르바로부터 발견하였다는 생각입니다.

 

2. 소설 중에서 뱀처럼 사는 것과 새처럼 사는 것을 이야기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뱀처럼 살기를 원하시나요?

"아프리카인들이 왜 뱀을 섬기는가? 뱀이 온몸을 땅에 붙이고 있어서 대지의 비밀을 더 잘 알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 뱀은 배로, 꼬리로, 그리고 머리로 대지의 비밀을 안다. 뱀은 늘 어머니 대지와 접촉하고 동거한다. 조르바의 경우도 이와 같다. 우리들 교육받은 자들이 오히려 공중을 나는 새들처럼 골이 빈 것들일 뿐....(94쪽)”이라는 대목에서 나온 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뱀은 조르바를, 새는 화자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아프리카의 민속을 끌어와 조르바의 본성을 설명하려 했는지 의문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메두사의 머리를 장식한 뱀을 비롯하여 라오콘에 등장하는 바다뱀 등을 인간을 괴롭히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고, 그리스에 전해진 초기 기독교의 성서에 나오는 뱀도 인간을 유혹하고 타락시키는 악마와도 같은 존재인데 말입니다. 이 책에서 나오는 뱀에 관한 서사 대부분이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대목은 이해되지 않습니다. 화자 자신이 허울뿐인 지식인이라고 스스로를 자학하는 생각에서 나온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새들은 골이 비어있는 것은 아니라 하늘을 비상하기 위하여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하여 뼛속이 비어있다는 점을 작가가 놓친 것 같습니다.

 

참고로 카잔차키스는 23살이던 1906년 소설 <뱀과 백합>을 썼습니다. 공원에서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 화가의 일기 형식으로 인 소설입니다. 처음엔 단순하고 솔직하게 여인과의 사랑에 탐닉하던 주인공은 점차 육체적 쾌락에 만족하지 못하고 좀 더 지고한 것을 갈망하게 됩니다. 고뇌 끝에 주인공은 하나의 공에서 다른 공으로 이행해 가는 우주적 힘에 이끌려 죽음을 선택합니다.(열린책들에서 <향연 외>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뱀과 같은 혹은 새와 같은 삶의 어느 쪽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양쪽을 모두 선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뱀은 대지의 의미를 느낄 수 있으나 하늘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며, 새는 넓은 세상을 알지만 대지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니, 이는 숲에 들면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며, 숲에서 멀어지면 숲은 보되 나무를 보지 못함과 같다 하겠습니다. 숲과 나무를 한꺼번에 볼 수는 없는 노릇이나 뱀이나 새가 아니라 그저 사람으로 살면 족할 것 같습니다.

 

참고로 카잔차키스가 변진섭이 노래한 <새들처럼>을 알았더라면 이런 비유를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면 / 나도 따라 날아 가고싶어 / 파란하늘 아래서 자유롭게 / 나도 따라 가고 싶어’라고 한 후렴구는 화자가 추구하는 이상이었을 터이니 말입니다.

 

3. 카잔차키스는 지족을 자유로운 상태로 보는 것 같습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진정한 자유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지족을 논의의 주제로 삼은 것은 알릴레오에서였던가 봅니다. 이 이야기에서 화자는 지족을 구하려 했다기 보다는 붓다의 경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고심한 듯합니다. 지족의 의미는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의미하는 안분지족(安分知足)에서 온 말이라고 합니다. 지족불욕 지지불태(知足不辱 知止不殆)라는 말과 상통하는데 만족할 줄 알면 욕심이 없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로움이 없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지족하는 삶을 강조할 때 요나라의 성인 허유세이(許由洗耳)의 고사를 이야기합니다. 요나라 왕이 성인 허유를 불러 왕위를 물려줄 뜻을 밝히자, 허유는 이를 고사하고 물러나왔다고 합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못들을 것을 들었다 하여 강물에 귀를 씼었다는 것입니다. 허유로부터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은 친구 소보는 허유가 귀를 씻어 더럽혀진 강물을 소가 마실까봐 상류로 끌고 가서 마시도록 했다고 하니 그 친구에 그 친구였던 모양입니다. 허유는 집에 머물면서 지족하는 삶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10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접어보기
구매 [도서]그리스인 조르바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E**Y | 2022.04.14

[도서]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도서 구입이 가능해 

잠시 짬이 나 YES24의 도서를 훑어 보던 중 무엇인가 눈에 딱 꽂혀 저희 팀원 분께

바로 구매요청을 부탁드렸습니다. 작가가 어린시절 굉장한 영향을 준 작가이기 때문에

도서가 오자마자 근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표지부터 바로보며 눈으로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눈에 담으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잘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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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독서회 9월 모임(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눈* | 2022.04.09

고전독서회에서 지난 해 9월에 읽은 책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입니다. 9년반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영화주제가로 그리고 영화로 먼저 만났고, 책으로 만나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그런 탓인지 처음 책을 읽고 쓴 독후감의 반은 음악과 영화이야기로 채워졌습니다(http://blog.yes24.com/document/6346670). 오랜만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으면서도 화자와 조르바의 인간성에 천착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리스의 역사를 개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역사는 기원전 2,700년경부터 기원전 1,450년까지 이야기의 무대인 크레타 섬에 존재했던 미노아 문명으로부터 시작될 정도로 오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어서 펠로폰네소스반도의 북동부에서 기원전 1,600년경에 시작한 미케아문명으로 연결되어 기원전 1,100년 무렵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어서 북쪽으로부터 도리안인이 침입해오는 시기로 기원전 800년 무렵까지는 그리스 역사의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9세기 무렵 도시국가들이 성립하면서 그리스 문명은 다시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고대 그리스 시기를 맞습니다. 특히 기원전 323년부터 고전기 그리스의 심장부가 로마제국에 병합된 기원전 146년까지의 기간을 헬레니즘 시대라고 합니다.

 

로마제국에 병합되었다고 해도 그리스는 로마제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자치를 인정받았습니다.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할되어 동로마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지금의 이스탄불)를 수도로 하는 비잔틴제국으로 존속하는 동안 그리스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제4차 십자군전쟁(1204년)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고 들어선 서유럽인의 라틴제국이 57년간 지배한 끝에 들어선 그리스인 후계국으로 회복되었습니다. 하지만 1453년 오스만제국이 침략해오면서 비잔틴제국이 멸망하고 그리스 사람들은 오랜 세월 오스만제국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1830년에 이르러서야 독립을 얻어 그리스 왕국이 들어섰습니다.

 

그래서 일제 식민지배 시기의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있다고 보아 독후감에 반영했던 것 같습니다. 다음과 같은 부분입니다. “해외로 이주하는 행동파, 떠나지 못고 눌러앉아 현실에 안주하면서도 자유로운 삶을 무한 동경하는 나약한 지식인, 그리고 압제에 눌려 살아가는 기층민들. 특히 기층민들은 정신이 타락하고 폭력성이 슬며시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조르바는 그것을 내 안에 들어있는 또 다른 나, 악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악마를 죽이는 일, 그것이 바로 자유로운 삶을 얻는 길이고, 나약한 지식신인 화자는 붓다의 가르침에서 그것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어제 모임에서는 세 가지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1. 주인공은 불교를 공부합니다. 불교와 조르바는 주인공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주인공은 붓다에 경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조르바는 붓다는커녕 불교가 무엇인가도 모르는 듯합니다. 초면의 조르바가 화자에게 “물레방앗간 집 마누라 궁둥짝을 보고 철자법을 배우겠다는 생각은 안 하시겠지? 물레방안간 집 마누라 궁둥짝, 인간의 이성이란 그거지 뭐.”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조르바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화자는 불교경전을 필사하면서 붓다의 이치를 얻고자 합니다. 한편으로는 붓다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화자가 추구하는 목표는 “붓다에서 벗어나고 모든 형이상학적인 근심인 언어에서 나 자신을 끌어내고 헛된 염려에서 내 마음을 해방시킬 것. 지금 이 순간부터 인간과 직접적이고도 확실한 접촉을 가질 것.(84쪽)”이라는 과업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화자는 궁극적으로 ‘붓다가 그 최후의 인간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붓다에겐 스스로를 비운 ‘순수한’ 영혼이 있다. 붓다의 내부는 공허하며 그 자신이 바로 공(空)이다.”라는 깨우침을 얻습니다. 그리고 ‘네 육신을 비워라, 네 정신을 비워라, 네 가슴을 비워라’라고 외칩니다. ‘호쾌하고 농탕한 사나이 조르바는, 떠도는 인간 카잔차키스가 한동안 쉬어가고 싶어했던 구원의 오아시스였다’라고 적은 것을 보면 화자가 추구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전형을 고르바로부터 발견하였다는 생각입니다.

 

2. 소설 중에서 뱀처럼 사는 것과 새처럼 사는 것을 이야기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뱀처럼 살기를 원하시나요?

"아프리카인들이 왜 뱀을 섬기는가? 뱀이 온몸을 땅에 붙이고 있어서 대지의 비밀을 더 잘 알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 뱀은 배로, 꼬리로, 그리고 머리로 대지의 비밀을 안다. 뱀은 늘 어머니 대지와 접촉하고 동거한다. 조르바의 경우도 이와 같다. 우리들 교육받은 자들이 오히려 공중을 나는 새들처럼 골이 빈 것들일 뿐....(94쪽)”이라는 대목에서 나온 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뱀은 조르바를, 새는 화자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아프리카의 민속을 끌어와 조르바의 본성을 설명하려 했는지 의문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메두사의 머리를 장식한 뱀을 비롯하여 라오콘에 등장하는 바다뱀 등을 인간을 괴롭히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고, 그리스에 전해진 초기 기독교의 성서에 나오는 뱀도 인간을 유혹하고 타락시키는 악마와도 같은 존재인데 말입니다. 이 책에서 나오는 뱀에 관한 서사 대부분이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대목은 이해되지 않습니다. 화자 자신이 허울뿐인 지식인이라고 스스로를 자학하는 생각에서 나온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새들은 골이 비어있는 것은 아니라 하늘을 비상하기 위하여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하여 뼛속이 비어있다는 점을 작가가 놓친 것 같습니다.

 

참고로 카잔차키스는 23살이던 1906년 소설 <뱀과 백합>을 썼습니다. 공원에서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 화가의 일기 형식으로 인 소설입니다. 처음엔 단순하고 솔직하게 여인과의 사랑에 탐닉하던 주인공은 점차 육체적 쾌락에 만족하지 못하고 좀 더 지고한 것을 갈망하게 됩니다. 고뇌 끝에 주인공은 하나의 공에서 다른 공으로 이행해 가는 우주적 힘에 이끌려 죽음을 선택합니다.(열린책들에서 <향연 외>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뱀과 같은 혹은 새와 같은 삶의 어느 쪽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양쪽을 모두 선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뱀은 대지의 의미를 느낄 수 있으나 하늘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며, 새는 넓은 세상을 알지만 대지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니, 이는 숲에 들면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며, 숲에서 멀어지면 숲은 보되 나무를 보지 못함과 같다 하겠습니다. 숲과 나무를 한꺼번에 볼 수는 없는 노릇이나 뱀이나 새가 아니라 그저 사람으로 살면 족할 것 같습니다.

 

참고로 카잔차키스가 변진섭이 노래한 <새들처럼>을 알았더라면 이런 비유를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면 / 나도 따라 날아 가고싶어 / 파란하늘 아래서 자유롭게 / 나도 따라 가고 싶어’라고 한 후렴구는 화자가 추구하는 이상이었을 터이니 말입니다.

 

3. 카잔차키스는 지족을 자유로운 상태로 보는 것 같습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진정한 자유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지족을 논의의 주제로 삼은 것은 알릴레오에서였던가 봅니다. 이 이야기에서 화자는 지족을 구하려 했다기 보다는 붓다의 경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고심한 듯합니다. 지족의 의미는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의미하는 안분지족(安分知足)에서 온 말이라고 합니다. 지족불욕 지지불태(知足不辱 知止不殆)라는 말과 상통하는데 만족할 줄 알면 욕심이 없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로움이 없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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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회원 리뷰 (4건)

조르바와 함께하는 동안의 시간은 다른 맛이 났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s******c | 2019.01.20
2012년에 이 책을 읽었다. 그전까지는 주로 기독교서적만을 읽다가 여러가지 이유로 세계관이 바뀌는 경험을 하면서 일반(?) 문학에도 관심을 가지기로 마음을 먹고 처음 읽은 책이었다. 왠지 2019년, 7년만에 올해 첫 책으로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고 싶어졌다.

같은 책을 두번 읽는 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7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 자신과 나를 둘러 싼 환경이 변하면서 같은 책이라도 읽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또한 한번 읽어서 주요 내용은 대강이나마 기억을 하고 있기에 책을 한발 떨어져서 감상하는 느낌으로 읽을 수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 하면 “자유인“의 대명사로들 인식된다. 실제 조르바가 “자유”를 많이 언급하기도 하거니와, 조르바의 거침없는 말과 행동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독자에게 카타르시스 같은 시원함을 준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이 책의 화자가 되어 조르바를 만난다. 이 책의 “나“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나”, 나의 친구, 그리고 조르바 중에 “나“에 가까운 사람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가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나”는 생각이 많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지만 정작 행동에 옮기기에는 너무 생각이 많고 결단력은 없다. 생애 첫 과감한 결정으로 크레타 섬을 찾아 탄광 사업을 해보기로 하고 크레타섬으로 들어가는 길에 만난 사내 조르바와 그 사업을 함께 하기로 하고 함께 몇달을 지낸다. 그 기간동안 “나”는 조르바라는 사내에게 깊이 빠져든다.

“그래, 알겠다. 조르바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母胎)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나는 그와 보낼 몇 달이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될 것임을 예감했다. 요모조모 따져 봐도 나는 아무래도 행복을 헐값으로 사는 기분이었다.”

“나는 인생을 허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레를 찾아 내가 배운 것, 내가 보고 들은 것을 깡그리 조르바라는 학교에 들어가 저 위대한, 저 진정한 알파벳을 배울 수 있다면……! 내가 선택하는 길은 사뭇 달라질 것이다.”

“조르바와 함께하는 동안의 시간은 다른 맛이 났다.”


조르바 또한 “나“를 많이 의지하고 좋아한다. 조르바는 “나”를 <두목>이라고 부른다. 처음 읽을 때는 그게 영 어색했는데, 계속 읽다보면 익숙해지긴 하지만 그래도 어색하긴하다. 서점에 들려 다른 번역본에서는 어떻게 칭하는지 본 적이 있는데, <대장> 또는 <대장님>이라고 하던데, 그것도 어색하긴 마찬가지다.

“「두목! 당신에게 할 말이 아주 많소. 사람을 당신만큼 사랑해 본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이 쌓이고 쌓였지만 내 혀로는 안 돼요. 춤으로 보여 드리지! 자, 갑시다!」”

안소니퀸이 조르바를 연기한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를 본 사람들은 위 대목, 즉, 광산을 다 말아먹고 두사람이 아이러니 하게도 신이 나서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을 하이라트로 꼽던데, 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 역시 이전의 쑥스러움을 다 벗어던지고 조르바가 하라는데로 춤을 추는 대목에서 나 역시 그 광란의 판에 함께 하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이다.

참 많은 구절을 ‘건져 올렸다‘. 그런데 다 모아 놓고 보니 마치 조리바의 어록 같다. 기억에 남는 문구가 대부분 조르바가 한 말들이다. “나“에 더 가까운 나는 절대로 조르바와 같이 생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광산을 다 말아먹고 조르바와 헤어진 이후, 조르바를 그렇게 그리워하면서도 자신이 있는 곳에 한번 오기를 청하는 조르바의 편지를 받고도 가겠다는 결정을 하지 못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마 나도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에 조르바가 한 말들이 더더욱 가슴을 때리는지도 모른다.


조르바가 한 말들 한구절 한구절에 내 커멘트를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그와 대화하는 기분으로.

“「왜요! 왜요!」 그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왜요〉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 하는 건가요? 가령, 하고 싶어서 한다면 안 됩니까?”

“「산다는 게 곧 말썽이오.」 내가 대꾸하지 않자 조르바가 계속했다. 「죽으면 말썽이 없지. 산다는 것은…… 두목, 당신,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이오!」”

앞에서 인용한 글 처럼 조르바라는 학교에 들어가 그의 알파벳을 배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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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로얄 n****e | 2016.11.02

너무나 다른 느낌의 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을 때 받았던 감동을

이 낯선 소설에서 받았다고 하면 억지일까

내면의 혼란, 주변인의 갈등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안나 카레니나의 인물과는 너무도 다른

조르바의 유쾌한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절대로 나는 저러지 못하겠다고 하면서도 어느새 대리만족을 하고 있었다.

알베르 까뮈가 너무 겸손하여 본인보다도 노벨상을 수백번을 더 받아야했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책을 읽은지 오래지 않아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카잔차키스가 더 나은지 알베르 까뮈가 더 나은지는 메시가 나은지 커쇼가 더 나은지를 판가름하는 것 만큼이나 의미없는 일이지만,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만담같은 이야기, 아름다운 풍경의 묘사는 단연코 일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기억의 도움으로 조만간 많은 것을 까먹을테니 좀 기억을 잃어갈 때 쯤 다시한번 책을 펴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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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면 상대하고 싶지 않은 남자, 조르바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케*K | 2015.07.09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하여

 

여자라면 상대하고 싶지 않는 남자, 조르바

 

읽는 책마다 인용이 되곤 하던 고전인데도 읽지 못했다. 그저 자유분방한 남자 이야기거니 추측했다. 그러다 이번에 집에 내려와 읽게 됐다. 저번에 달리 고속버스를 타면서 달랑 책 한권만 넣어 왔다. 그 책도 그 날 다 읽어버렸다. 한 권 더 들고 올 걸. 아쉬워하던 차에 저번에 소정씨가 올린 전자책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쉬운대로 전자책을 봐야겠군. 광명 도서관에서 전자책 메뉴를 찾았다. 생각대로 신간은 거의 없고 전체 양도 적었다. 그래도 보석 같은 책들이 눈에 보였다. <그리스인 조르바>도 그중 하나였다. 집에도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있지만 여간해서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이번에 휴대폰을 바꾼 것도 전자책 읽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가볍고 화면이 편해서 잘 넘어갔다. 지리한 주인공 이야기인 앞부분을 지나자 내용이 눈에 들어오면서 가독성이 붙었다. 주인공인 나는 책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는 작가다. 반면에 조르바는 모든 걸 몸으로 배운 사람이다. 사랑도, 전쟁도, 선도, 악도 모두 그에게는 경험이자 이야기거리다. 몸으로 체화된 지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조르바의 인생 모토는 인생 별거 없다는 거다. 그래서 그는 여자만 보면 환장을 하고 달려든다. 나이든 여자든 어린 여자든 가리지 않는다. 그런 그가 상대하는 여자들이어서 그런가. 만난 대다수 여자들은 남자 지갑에 혹한다. 그는 맘 가는 대로 살고 규칙 따위에는 얽매이지 않는다. 주인공인 나는 그에게 훈계하듯 말하지만 실은 부러워하며 대리만족 한다. 정반대의 인생을 사는 그들은 서로에게 끌린다.

 

사랑에 포커스를 맞춰 읽으면 이 책은 남자들의 환상이다. 이곳 저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순간적 만남에 충실한다. 이국적인 여자들과의 수많은 만남에도 그의 인생에서 죄책감은 없다. 그는 모든 걸 통달한 부처일까. 아니면  개념없는 망나니일까. 많은 경험을 했다고 해서 그의 인생관을 높이 살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세상의 이치를 나도 책을 통해 터득하는 편이라 자신하진 못하겠다. 책으로 배운 지식과 몸으로 배운 지식 가운데 무엇이 나은지, 무엇보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여자를 수없이 경험했으니 조르바의 여자에 대한 생각이 맞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내 눈에는 진실한 사랑을 하지 못한 사람처럼 보인다. 혹은 사랑을 초월한 사람이든가.

 

반면에 조르바의 전쟁에 대한 체험은 와 닿았다. 국적은 따질 필요가 없다. 그저 좋은 놈이냐 나쁜 놈이냐를 구분할 따름이라는 그의 말이 인상적이다.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저질러지는 일은 인간의 단면을 보여준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도 아프리카 내전의 잔인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시대는 달라도 조르바가 살던 시대의 참상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살아있는 사람의 목을 따고 여자들을 강간하고 미친 듯이 불을 지르고. 무엇을 위해서일까? 남은 자들은 평생을 트라우마와 증오로 살아간다.

 

부불리나가 죽는 장면은 씁쓸하다. 죽음은 정말 혼자 맞는 것임을 잘 보여준다. 그나마 조르바가 앵무새를 챙겨가 다행이다. 조르바가 좋은 남자는 아니여도, 사실 형편없는 거짓말쟁이 연인이지만 그와 사귄 보람이 있다. 그녀가 준 반지를 다른 여자와 결혼식에 쓰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남자들이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 김훈에 열광하는 남자 독자들이 많은 것처럼. 조르바의 인생은 남자들에게 로망일 게다. 여자들에게는 악몽 같은 남자라고 말하고 싶다. 남자로 태어나면 저런 인생을 사는 것도 뭐 호탕하고 대장부 같기도 하겠다. 이제 든 생각이지만 조르바는 다음 생에 '계집'으로 태어날 것 같다. 요망한 암컷들이라며 짜증내면서도 미친듯 좇아다니던 존재 말이다.

 

<책은 도끼다>에서 저자는 <조르바>보다는 <안나 카레리나>를 청소년에게 먼저 권한다고 했다. 안나 카레니라를 통해 기본적인 가치관을 정립한 뒤에 조르바를 읽는 편이 낫다고.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생각을 심어줄 수도 있으니까. 난 순서를 바꾸어 이제 <안나 카레리나>를 읽어야겠다. 마지막으로 든 생각. 날 보고 싶어하고 놀러오라는 사람에게는 가자. 사람과의 만남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내가 읽은 전자책은 정재영 역인데 여기에 없어서  이윤기님 전자책으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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